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다시 꺼내서 공부하고 살펴 정리하는 과정 가운데 내용들을 장별로 묶어서 기고하고자 한다. 그 첫째로 <기독교강요> 1권 1-5장의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요약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짓는 것으로 하고자 한다. 칼빈은 첫 장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그의 논의를 마무리하고, 이어서 구원에 이르는데 필요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위해 성경의 필요성을 논하게 된다.

1-5 장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

첫 번째 주요 관심사는 온 인류가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과 이러한 창조와 관련하여 인간 모두는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시작에서 다섯 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자신을 아는 명료한 지식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본 다음 이어서 그를 묵상하고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 자신을 살펴야 한다." (1.1.2) … 라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첫째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둘째로, 우리의 안내자와 선생으로서 그 지식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구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1.2.2) ...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과 그분이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헌신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증거에 의하여 정죄 받는 것이다(1.3.1) … 비참한 사람들은 마땅히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세속적인 어리석음의 자로 하나님을 판단하여 건전한 탐구를 하지 아니했다. 이로써 어리석은 호기심에 이끌려 허망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1.4.1) …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자연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받게 되면 아무런 확실하고 명쾌한 지식을 얻지 못하고 이름 없는 신을 섬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1.5.1).

만일 우리가 로마서 1:18-25을 읽고 칼빈의 기독교강요 1-5장을 읽으면 순서와 내용을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사실에 관하여 더욱 명백하게 밝혀 주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한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 1:19-20)

이외 나머지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의 상호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까닭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면서도 경외하거나 영광 돌리지 않기 때문에 아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를 자기 형상으로 빚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17:28)

이런 까닭에 이 두 지식이 뒤엉켜 있다고 칼빈은 단언한다. 사람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이 두 지식은 뒤엉켜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는 인식과 불확신 가운데 독립적인 실재로 우리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허망한 환상을 갖게 되고 만다.

“우리는 땅 너머를 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의와 지혜와 덕으로 만족하는 한 스스로를 가장 멋있게 생각하고 반신(demigods)으로 여긴다”(1.1.2).

“이런 까닭에 우리 자신의 무지와 허무함과 빈궁함과 연약함 그리고 부패와 오염을 마음으로 느낄 때 참된 지혜의 빛과 건전한 덕, 차고 넘치는 모든 선 그리고 순결한 의가 오직 주님에게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1.1.1).

이 같은 깨달음은 성령으로 생각이 변화된 자들의 경우에만 가능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이 아주 밀접하게 뒤엉켜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 자신을 보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이 참으로 무엇이며 누구인지를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를 아는 지식의 상호적 관계성 논한 다음 칼빈은 3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먼저 논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라는 바울의 논증 논리를 따랐다.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타고난 본능에 의한 신 의식을 칼빈은 키케로(Cicero)rk 말한 것처럼, 시간이 흐름 속에서 잘못된 것들이 없어지며, 종교라는 것은 날이 갈수록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성장하며 개량된다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한 신 의식의 개념을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종교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지역이나 도시나 가정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신 의식에 대한 무언의 고백이 새겨져 있었다”(1.3.1)라고 설명했다. 

신 의식에 대한 보편적 증거 때문에 우리에게 신 의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언의 고백으로서 보편적 증거가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제시한 성경의 주장이 참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는 이 신 의식이 모든 사람들 안에 새겨져 있다는 증거라 한다(1.3.1). 이런 신 의식을 칼빈은 본성의 빛으로 언급한다. 부패한 본성에 아직도 남아 있는 빛은 주로 두 가지로 되어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본성적으로 종교의 씨를 가지고 있는 것과 둘째,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양심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통해 어떻게 해서 계시되어 있는가를 설명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우리의 생각 속에 심어진 종교의 씨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내면적 방식과 외형적 방식 둘 다를 통하여 심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모든 피조물들은 '눈부신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훈장'으로서, '거울'로서 하나님을 찬미한다(1.5.1,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화려한 미와 위대한 은사들로 그를 장식하셨다”(1.14.20).

그리하여서 영광의 극장의 최고 배우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헛된 사색을 멈추고 그 분이 하신 일을 목도하며 찬미로 나아가자!

“그 분을 찾기 위하여 꼼꼼히 따지기보다 그 분을 더욱 경배하도록 하자!”(1.5.9).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7, 후반)“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