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10:21 (토)
율법과 복음의 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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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의 바른 이해
  • 김현일
  • 승인 2020.02.17 09: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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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을 성경 안에서 온전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율법을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서 칭의를 부여해주신 동기와 더불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규범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부패, 타락한 인간은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통한 의의 전가를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 의를 이루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에 현시대에도 율법주의자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을 논하고 율법과 복음의 전반적인 의도와 취지를 살펴봄으로 양자간을 구별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이지만 이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
 

율법의 기능

성경의 가르침은 율법의 기능을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롬 3:20).

율법이 없었다면 인간들은 죄의 구성요건 적법성 책임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육체적인 병을 얻어 고침을 받으려면 병원에 가서 진료와 치료 그리고 약의 처방을 통하여 병든 몸을 치료받을 수 있는 듯이 율법의 기능이란 어렵지 않게 경하게 해석을 한다면 진료의 단계 그것도 아주 명확히 우리가 어떠한 죄 가운데 있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고정밀도 X-Ray 와 MRI 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병자의 치료는 진료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것이 아무리 고밀도, 고성능의 첨단기구라 하여도 이것의 기능은 진료와 진단이라는 기능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소위 환자의 기대인 병적 치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환자의 병명과 병세가 어떠한가를 가름하는 일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위와 같은 내용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율법의 기능이란 인간의 죄의 인식과 죄인임을 깨달아 알도록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함이니라”(갈 3:24) 하였다.

또한 이에 대하여 서철원 박사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 저서에서 율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고 의의 길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롬 3:19-31; 갈 2:16-21)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하는 것 외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그 자체가 선하고 거룩해도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율법은 인간을 절망하게 하여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핵심이다 라고 율법을 주신 목적을 설명하면서, "구원은 믿음의 길이고 율법의 길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였다.
 

복음의 정의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복음의 정의를 성경적으로 아주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만(롬 1:16),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다(롬 3:21). 복음이란 율법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약속하심을 확인하고 실현했기에 ‘그림자’(umbra)에 ‘몸’(corpus)을 부여했다(기독교강요, 2.9.4)라는 표현을 들고 있다. 그러니까 복음은 이전에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믿음의 백성들이 들었다(골 1:4-5).

율법에는 복음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다(기독교강요, 2.10.3). 율법에 계시된 언약의 약속이 복음에 의해서 계시되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복음의 더 좋은 소망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히 7:19; 시 110:4; 히 7:11, 19; 9:9; 10:1). 복음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율법을 통한 언약의 약속을 실현하며, 확인하며, 인준한다(기독교강요, 2.11.4). 그런고로 복음은 율법의 진료와 관계성을 띠고 있는 치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마 5:17). 따라서 우리는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폐함’의 관계의 지속과 조성이 아니라 ‘완전케 함’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더욱 넓게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도 대립적 차원에서의 ‘폐지’의 관계가 아니라 ‘완성’의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를 통한 율법의 완성과 성취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제15조는 "인간의 본성은 지극히 타락하여 연약하고 불완전하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준행할 수 없다(신 5:29; 롬 10:3). 그러므로 율법의 목표이자 완성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의와 속죄 안에서 그를 온전히 붙잡는 것이 우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삶이다. 우리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에 순종하는 행위에 대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복종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이외에는 지구상의 그 누구도 그 율법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우리가 모든 일을 행할 때는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솔직한 심정으로 무익한 종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눅 17:10)” 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의 목표요 완성이셨다. 소위 하나님의 율법은 본질상 예수 그리스도를 중점에 둔 것이지 인간들이 완벽하게 준수하도록 요구한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를 준수하는 공로는 전혀 불가하여서 그것을 자랑하는 행위는 아주 가증스러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곧 우리 인간이 타락 가운데 연약함으로 인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지 못하고 이루고 사는 것 같아 목소리를 높여 우리의 행위와 의를 드러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늘 정죄 아래 있으며 고통과 저주 가운데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지고 죽음으로(갈 3:13)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었다. 죽음과 부활로 의의 전가를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대신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19:30).
 

율법과 복음 안에서의 바른 믿음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성경의 해석과 신학의 오류를 표명하거나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 이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새 언약 가운데 의롭게 중생한 백성으로 율법의 마침표이시며 복음의 진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깨달아 상기하며 기쁨과 감사에 삶을 살아가는 바른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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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2020-02-17 22:51:49
Amen Hallelujah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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