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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이 떼로 이단했어도 성경의 진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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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이 떼로 이단했어도 성경의 진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 정이철
  • 승인 2020.02.10 00:2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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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13): 2부 2장의 클락슨, 왓슨, 십스, 부룩스, 번연, 굿윈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청교도 사상이 최고의 엘리트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 2부 2장의 데이비드 클락슨, 토마스 왓슨, 리차드 십스 ... 등 여러 청교도 인물들의 능동순종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도 신 교수의 핵심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1)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 것이지 천주교의 가르침 같이 그리스도의 의가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2)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순종(능동순종)의 의이다. 결코 죄 없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가 아니다.

청교도들이 의의 주입을 가르치지 않고 의의 전가를 가르쳤다는 것은 옳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얻으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가르침은 거짓 신학이다. 이 사실을 감안하고 신 교수가 소개하는 여러 청교도들의 능동순종 사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데이비드 클락슨(David Clarkson, 1622-1686)

신 교수는 청교도 신학의 황태자 존 오웬의 강단을 물려받은 후임자 데이비드 클락슨의 능동순종 주장을 가장 먼저 소개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공로를 부정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한다면, 그리스도의 순종이 가진 공로적인 탁월함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데이비드 클락슨의 말/신 교수의 책 94 페이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결론이 따라온다 ...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러한 순종을 행하셨으며 그것이 우리를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전가를 통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데이비드 클락슨의 말/ 신 교수의 책 95 페이지)

클락슨의 말은 그 동안 수 없이 비판한 청교도들의 일반적인 주장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없으므로 특별한 언급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토마스 왓슨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하여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회중파 청교도 측의 12명의 총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음은 신 교수가 소개한 왓슨의 말이다.

“그리스도는 능동적 순종으로 ‘모든 의를 성취하셨다’(마 3:15 참고). 그리스도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 그 분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를 위해 그 율법에 순종하셨다.”(토마스 왓슨의 말/ 신 교수의 책 97 페이지)

왓슨이 그리스도께서 율법적 순종으로 의를 얻으셨다는 주장의 근거로 마태복음 3:15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새롭다. 지금까지 본 청교도 신학자들 능동순종의 성경적 근거를 말하는 경우는 왓슨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왓슨이 근거로 제시한 성경 구절은 능동순종 사상과 무관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5)

위 구절은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여 이스라엘 앞에 소개하는 큰 사명을 띠고 온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에게 그리스도께서 안수 받으심으로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구원사역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안수를 받으시므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신다는 의미이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신다는 뜻이 아니다.
 

리처드 십스(Richard Sibbs, 1577-1635)

리처드 십스는 윌리엄 퍼킨스, 존 프레스톤과 더불어 청교도 운동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존 카튼, 리차드 백스터, 토마스 굿윈 등이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청교도 운동의 거목들로 성장하였고, 이후의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로이드 존스 등의 인물들도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십스는 특별히 사람의 마음의 ‘상함’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전에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듣고 먼저 사람의 마음이 겸비해져야 한다는 청교도 회심준비론과 연관된 것이었다. 다음은 신 교수가 소개한 십스의 능동순종 주장이다.

“수동적 순종은 능동적 순종만큼이나 맹렬하고 힘듭니다. 능동적 순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 믿고 힘써 일합니다 ... 영광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순종할 때 반드시 본받아야 하는 우리의 거룩한 구주를 바라보십시오.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9).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과 고난 받으심이 아니고 무엇이라는 말입니까!”(리처드 십스의 말/ 신 교수의 책 100 페이지)

“그리스도는 자신을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모두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셨으며, 자신을 아버지께 복종시키셨습니다.”(리처드 십스의 말/ 신 교수의 책 101 페이지)

십스의 주장도 그 동안 많이 설명한 청교도들의 일반적인 주장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1608-1680)

토마스 브룩스는 청교도 생존 시에 대추방령(1662년)을 경험한 인물이다. 잉글랜드 내전을 승리로 이끈 회중파 청교도 신자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회중파 청교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1658년, 크롬웰이 죽자 국교회 세력이 다시 등장했고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찰스 2세가 합법적 국왕이 되어 귀국했다. 찰스 2세는 처음에 장로교와 회중파 청교도 교회를 인정할 것처럼 했으나, 1660년 왕정복고를 선언하고 국교회의 감독제도를 공식화하였다. 1661년과 1662년의 ‘통일령’으로 국교회 하나만 영국의 교회로 인정하였고, 그에 반발하는 청교도 목회자들을 국교회로부터 추방하였다. 이때 2천명의 청교도 목회자들이 국교회로부터 추방되어 목회지를 잃었다.

그전까지는 청교도들은 Puritan(청결한 사람들)이라 불리웠으나, 이때부터는 Non-conformists(국교회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라고 불리워졌다. 청교도 목회자들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이 부과되기 시작했고, 불법적 예배를 인도하다 출동한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브룩스는 이런 고통의 시대를 살면서 청교도 신앙을 지킨 사람이다. 신 교수는 브룩스의 능동순종 주장을 소개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받은 자기 백성을 위해 수행하신 위대한 일은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는 그들의 모든 죄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고 속죄를 이룬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보혈과 죽음을 통해 이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본성의 삶을 하나님의 율법에 절대적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전자를 통해 구속 받은 자기 모든 백성들을 지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고, 후자를 통해 구속 받은 모든 백성이 천국을 얻게 해 주셨다.”(토마스 브룩스의 말/ 신 교수의 책 103 페이지)

브룩스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았고, 율법준수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인 의를 얻었다는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 사상을 정통으로 붙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부룩스의 구원론을 지지하는 내용은 없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존 번연은 1635년에 개종하여 침례파 청교도 신자가 되었고, 찰스 2세가 영국 국교회만 영국의 종교로 인정하는 ‘통일령’(1662년)을 공표하자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비밀 집회에서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1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천로역정>을 저술하였다. 신 교수는 번연의 능동순종 사상도 소개했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 순종 안에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며, 우리의 칭의를 위해 우리에게 충분한 의가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존 번연의 말/ 신 교수의 책 105 페이지)

“율법의 모든 명령들을 성취하신 그 분의 행하심과 죄의 형벌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고난당하심을 통해 모든 의가 성취되었다.”(존 번연의 말/ 신 교수의 책 106 페이지)

과연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시었다는 로마서 10:4절(“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를 주시려고 모든 모세의 율법들을 다 완전하게 지켰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자의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왜 볼 수 없는가? 존 번연과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모세의 계명들에 완전하게 순종했다는 뜻으로 로마서 10:4절을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신 것이 로마서 10:4절의 ‘율법의 마침’이라고 해석했다.

존 칼빈
존 칼빈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1.6.2.)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가 친히 자기의 피로 죄 값을 갚으신 것이 율법의 완성이고 마침이라고 해석한다.

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죄 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서철원, 그리스도론, 147)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76)

토마스 굿윈은 리챠드 십스, 존 오웬과 함께 청교도 3대 거목이라고 불리워진다. 회중파 청교도 측의 총대로서 웨민총회에 참석하여 웨민고백서(WCF, 1647년)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리고 존 오웬과 함께 본격적으로 장로교 청교도와 길을 달리하기 시작한 회중파 청교도의 신앙고백 ‘사보이 선언’(the Savoy Declaration, 1658년) 작성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 신 교수는 굿윈의 능동순종 사상도 소개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지 않으셨다면, 그 분은 결코 율법의 지배를 받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시고 율법 아래 처하게 되신 것이다(갈 4:4 참조) ...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만 남아 계셨다면, 그 분은 율법을 준행하심으로써 우리를위한 공로를 쌓지 못하셨을 것이다.”(토마스 굿윈의 말/ 신 교수의 책 111 페이지)

굿윈이 능동순종의 근거로 제시한 갈라디아서 4:4절(“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은 결코 그리스도가 모세의 계명들을 일일이 지키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다음 5절(‘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의 내용처럼, 자기의 피로 속죄를 이루시어 죄인들을 율법의 정죄로부터 구하시려고 오셨다는 의미이다. 죄로 인해 죽은 자기 백성을 다시 살리기 위한 다른 방법이 전혀 없으므로 창조주께서 친히 죄 없는 완전히 의로운 사람으로 오시었고,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시고 자기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완전한 의인으로 오시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이 곧 우리의 의이다.

성경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의로우셨고 그리스도를 믿음이 우리의 의로움이라고 가르친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송하여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백부장이 ...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눅 23:47)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토마스 굿윈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목적을 율법의 지배를 받으시기 위해서였다고 함으로 성경과 기독교를 왜곡하였다. 그가 말하는 율법의 지배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요구하시는 죽음을 대신 당하시기 위함이라는 차원이면 옳으나, 모세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의미라면 옳지 못하다. 성육신의 의미와 목적을 바르게 보지 못하면, 칭의-구원론이 바로 설 수가 없고, 따라서 성경적인 신앙의 길로 나아갈 수도 없다. 칭의-구원론이 바르게 서지 못하면서 이단의 길로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교도 황태자 존 오웬과 더불어 청교도 신학을 대표하는 굿윈의 하나님의 성육신과 칭의에 대한 가르침은 청교도 신학이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신 교수는 오바댜 그류(Obadiah Grew, 1607-1689), 로버트 트레일(Robert Trail, 1642-1716), 랄프 로빈슨(Ralph Robinson, 1614-1655)의 능동순종 사상도 소개하였는데, 모두 대동소이한 주장들이었다.
 

맺는 말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가 자기에게 전가되었다는 신학을 가졌으면서 과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빌 3:9)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가 자신에게도 전가되었다는 신학을 가졌으면서 과연 예수도 믿고 예수님처럼 율법도 지켜야 한다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저주를 선언할 수 있었을까?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청교도들이 떼로 이단의 길을 갔다고 성경의 진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주장은 거짓 신학이고 이단 사상이다. 청교도 신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 사상의 성경적 근거를 설명하지 못했다. 모두 앵무새같이 앞 사람의 말을 따라 하기만 했다.

1800년대 장로교 역사신학자 윌리엄 커닝햄이 능동순종 사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잘 설명하였다. 그는 이 사상이 칼빈의 글에서 공식적으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후대 (청교도)신학자들의 칭의론에 대한 사변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사변에서 탄생한 교리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A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assive and active righteousness of Christ, - the first regarded as more immediately the ground of our pardon and second of our acceptance, - this does not appear formally brought out in the writings of Calvin. It is to be trace rather to the more minute and subtle speculations to which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was afterwards subjected; and thought the distinction is quite in accordance with the analogy of faith, and maybe of use in aiding the formation of distinct and definite conception,(William Cunningham, The Reformers and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m (Carlisle, PA: The Canner of Truth Trust, 1979), 404.)

(우리의 죄 용서의 근거가 되는 수동적 의 개념과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아드려지는 능동적 의 개념은 칼빈의 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 교리의 뒤를 따르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변(사색)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분이 지극히 합당한 신앙적 유추라고 믿었고,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 형성을 돕기 위해 유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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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사리 2020-02-11 22:13:15
능동순종 주장하는 마귀의 종들이 칼빈을 자꾸 끌어쓰는데

칼빈의 로마서 주석을 빌려 말을 하자면 "그리스도의 신성은 능력과 의와 생명을 담고 있고, 이것들은 그의 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 "라고 보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도 오래사셔야 했던 이유는 사람에게 별도의 율법의 의를 획득해 주어 십자가론 죄용서만 받아놓아 의가 없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 생명을 주기위해서 율법을 지켜서 획득된 의를 전달해주었다. 라고

주장하는 마귀의 종들은 앞으로 칼빈도 그렇게 주장했다는 개소리를 멈춰야 할 것입니다.

칼빈은 신성에 이미 담겨진것이 그의 인성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로 정리했습니다. 그의 기독교강요에도 능동순종같은 마귀의 음성은 없습니다.

다른의를 선사해 만족케하는 다른복음입니다.

Minn 2020-02-10 17:46:05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롬 13:10). 그 사랑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율법의 완성이자 마침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십계명 뿐만 아니라 모세법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신약의 모든 저자들, 특히 바울, 베드로, 요한은 이 사랑이 궁극적 목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라고 하니까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만을 생각하는 많은 개혁신학자들 때문에 불쌍한 교인들만 고생하고 있습니다. 캔터베리 안셈이 시작했다는 이성과 철학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스콜라주의로 이어지고 그래서 거기에 물들은 개혁신학이 사랑을 우습게 봅니다. 싸구려 감정으로 보는 것이지요. 지난번 한 개혁교회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궁극적 목표가 사랑이라고 했더니 비웃더군요. 그것이 성경에 나와있는데도 자칭 학자라면서 기본도 모르고 있는 것이 개혁신학의 현실입니다. 앞으로의 신학은 반드시 율법과 사랑을 같이 봐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0-02-10 14:10:01
정이철목사님! 신호섭목사님의 책을 읽으셨으니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능동적 순종의 전가교리를 지지하시는 분들은 스스로를,
의의 주입을 주장하고 전가를 반대하는 캐톨릭이나 의의 전가를 거부하는 알미니안 그리고 신율주의와 페더럴비젼과 새관점 등을 막아내며 대항하고 있는 보루이고 이 역할을 사명처럼 생각하시는 것을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수정 대안을 국내에서 최초로 제시하신 서철원박사님께서
행위언약을 수정하며 능동적 순종의 전가교리를 폐기해도 캐톨릭과 의의 전가를 거부하는 알미니안 그리고 신율주의와 페더럴비젼과 새관점 등을 막아내며 대항하고 있는 보루의 역할을 하는 데에 문제가 없으며 더욱 온전한 보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성명이나 입장을 발표하시면
쌍방과 제3자 모두, 보다 더 안정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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