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 13:28 (목)
칼빈에게 청교도 신학의 행위언약 개념이 있었다는 것은 억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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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에게 청교도 신학의 행위언약 개념이 있었다는 것은 억지입니다
  • 정이철
  • 승인 2020.02.09 00:0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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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학의 문제들을 연구하면서 웨민고백서에도 등장하는 행위언약 개념이 성경에 위배된다는 필자의 외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바른믿음>의 한 독자가 <리폼드 뉴스>의 김순정 목사가 게시한 김인환 교수(전 총신대 총장)의 행위언약에 대한 연구의 글과 미국 덴버신학교의 정성욱 교수의 행위언약에 짧은 글, 그리고 또 한분의 행위언약에 대한 글을 보내주었다. 행위언약 개념에 대한 그 간의 맹목적인 자세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는 면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오늘은 총신대 총장이셨던 김인환 교수의 행위언약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총신대학 신학과 학생이었을 때 김인환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팔머 로벗슨의 책 <계약 신학과 그리스도>과 함께 행위언약 신학을 처음으로 배웠다. 그런데 이제 행위언약 신학이 바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사람의 앞 일을 참 모를 일이다. 김인환 교수님께서 나름 신학적으로 성장한 제자를 좋게 바라보실 것이라 생각한다.
 

칼빈과 행위언약에 관한 김인환 교수의 관점

다음의 내용은 <리폼드 뉴스>에 게시된 “김인환, 칼빈과 언약”이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김인환 교수의 핵심은 칼빈이 행위언약 개념을 정확하게 진술하지 않았을지라도 이후 청교도 신학자들이 만든 행위언약 신학의 내용들이 이미 칼빈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김인환 교수(총신대 전 총장)
김인환 교수(총신대 전 총장)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 설교에 나타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칼빈은 분명히 은혜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언약이라는 언약신학의 특징적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행위언약의 제반 요소와 본질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김인환 교수)

“칼빈은 어거스틴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왕국에서 추방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아담이 타락 전 하나님의 왕국에 있었다는 것이며 아담이 타락 전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 때도 도덕적으로 완전한 상태에 있었다고 이해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이 법에 순종하게 될 때 인간은 드디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상의 복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두 그루의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것과 더불어 설명한다. 이 두 그루의 나무를 성례적 나무로 일종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했다.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세례는 외적인 의식이나 성례이다. 마찬가지로 에덴 동산에 두신 두 그루의 나무도 외적인 상징으로 이러한 성례라는 것이다.”(김인환 교수)

“그러므로 칼빈이 생명나무를 언약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보았다면 결국 이 생명나무는 언약의 상징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칼빈은 성례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타락 전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성례를 세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과 에덴 동산의 아담 사이에 언약의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김인환 교수)

“칼빈은 이처럼 타락 전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가 언약적이었음을-비록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나타내고 있다. 칼빈의 이런 신학 사상은 소위 칼빈 이후에 등장하는 언약신학자들의 내용과 부합함을 고려할 때 후기 언약신학자들이 그들의 신학을 칼빈과 무관하게 발전시켰다기 보다는 칼빈의 이런 전체적 사상의 테두리 속에서 칼빈이 기초를 놓은 신학을 언약신학의 체계 속에서 행위언약이나 은혜언약 등의 명칭 등을 개발해 보다 명료하게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면서 묘사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김인환 교수)

김인환 교수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선악과’, 이 두 가지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언약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생명나무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또한 성례전적으로 해석했으므로 칼빈이 이미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전제하고 있었다고 해석했다.

김인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칼빈이 이해하고 있었던 태초의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개념과 후대의 청교도 신학자들이 구체화한 행위언약 사상이 동일한 노선의 신학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이 왜 동일시되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들을 분석하면서 그의 저술 속에 나타난 특별히 행위언약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분석의 결과는 칼빈의 사상은 오늘날 언약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김인환 교수)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김인환 교수님께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놓친 것 같다.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칼빈에게 이미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후대의 청교도 신학자들이 고안한 행위언약 개념과 칼빈의 언약 이해가 같았다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심한 억지라고 여겨진다. 김인환 교수님은 언약 신학을 한국 교회에 소개하였던 선두주자이었다. 그때에는 언약 신학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었지, 언약 신학이 성경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한 조사에까지는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 조상 윌리엄 퍼킨스가 15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행위언약은 영국 국민들 대부분이 유명무실한 신앙에 빠져 있었고, 그 원인 중의 하나가 예정된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힘들이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퍼킨스는 영국 국민들 각자가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몸부림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이 행위언약이었다.

퍼킨스의 이러한 새 신학적 전략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교회 중심 정책으로 인해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비릇되었다.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은 더 이상 여왕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아야만 했고, 또한 방해도 받지 않을 새로운 종교개혁 전략을 수립해야만 했다. 그것은 일반 백성들이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근심하면서 믿음을 붙들게 하고,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종교개혁 전략으로서 등장한 것이 행위언약이었고, 또한 사람이 영적으로 각성되어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근심하면서 예배, 기도, 회개, 율법준수에 주력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구원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회심준비론이 탄생했다.

행위언약의 골자는 하나님은 영생이 없는 아담을 일단 만드시고 아담이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획득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영생을 획득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제시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아담에게 율법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으나 아담이 거부했으므로 하나님은 아담을 저주하셨다. 이것이 행위언약의 골자이다. 청교도들은 아담이 지켜야 할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었다고 하고, 그것이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행위언약을 최초로 고안한 윌리엄 퍼킨스의 말을 보자.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7)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8)

칼빈에게 이런 행위언약 사상이 이미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과 모든 은혜와 은사들을 충분하게 주시었고 다만 하나님만 섬기라는 내용의 언약을 맺으셨으나, 아담이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나님을 향하여 반역한 것으로 원죄를 설명했다. 그리고 율법이 아담 창조와 동시에 탄생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 이후 400년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기독교강요, 2.1.4)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기독교강요, 2.1.5)

“아브라함이 죽은 후 약 400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첨가되었다”(기독교강요, 1.7.1.)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칼빈에게도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언약에 대한 개념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아담이 영생을 획득하고 하나님 백성이 되게 만드는 율법준수를 골자로 하는 언약 개념은 그 명칭이 무엇이든지 간에 칼빈이 이해하였던 언약 개념은 아니었다.

2)청교도 신학자들이 만든 행위언약의 골자는 아담이 영생을 얻도록 하나님이 율법준수를 명하셨다는 것이고, 아담이 그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이미 아담에게 영생과 모든 은사들을 넘치도록 주시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하시었고, 그 내용을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로 상징(표현)해 주신 언약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3)청교도 신학자들이 세운 행위언약은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의 지배를 받을 사람이 되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거짓 신학을 이끌어 온다. 그러나 칼빈의 언약 이해는 죄인을 살릴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죄와 무관한 완전히 의로운 사람으로 성육신하였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죄의 담을 허무셨고, 자기의 믿기만하면 의롭게 하신다는 구원론으로 귀결된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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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 2020-02-09 16:51:41
(영국의 신학자와 이메일로 답장 받은 내용을 댓글에 올린 적이 있는데 다시 올립니다.)
네, 당신과 같은 생각입니다.
나의 논문의 요점은 칼빈은 행위언약을 믿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의 기독관 (Christology = understanding of Christ)을 상당히 많이 고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공로를 쌓았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유익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그분의 신성에서 인성을 추출해내므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칼빈이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을 이해하는 아주 색다른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그 전에 있었던 어떤 언약을 고치러 오셨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 자체가 언약이라고 봤습니다. 이 말은 기독관 (또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이 언약을 위한 the proper dogmatic locus (교의적 중심)이지 그 반대가 아니란 것을 뜻합니다.

우동사리 2020-02-09 09:34:01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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