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하심’(以信稱義)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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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하심’(以信稱義)의 은혜
  • 김현일
  • 승인 2020.02.0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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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목사
김현일 목사

성경은 의에 대한 온전한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1-22) 한편 이 말씀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에서는 의롭하심에 관한 물음과 답은 이렇다.

60문 :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습니까?

답 :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에 의해서입니다. 비록 나의 양심이 모든 하나님의 계명에 반해서 심각하게 죄를 지었음과 그 어느 하나도 결코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음에 대해서 나에게 가책을 주고 또한 지금도 나에게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을 만하지도 않지만 순전한 은혜로써 하나님께서는 마치 내가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것처럼 또 죄인이 아니었던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온전히 복종하신 것처럼 내가 온전히 복종한 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만족, 의, 거룩하심을 내게 허락하시고 내 것으로 여겨 주십니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는 이 하나님의 선물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0-31)

예수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구속함이 되셨다는 말은 예수 안에서 예수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을 우리가 소유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것을 전혀 받을 만하지 않는데도 그리스도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거저 주신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빌립보서 3장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9) 말한다. 즉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어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롭다 하심‘ 이란 성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이어지는 과정으로 ’광의적‘(廣義的)으로 해석함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칼빈성경주석 롬8:30).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신학적 단어로 “이신칭의‘(以信稱義)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의로움은 우리의 행위와 공로 이전에 주어진 ’의‘ 이기에 별개로 즉 행위, 공로와 전혀 무관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것을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는 믿음에 의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신 것이다. 이러한 ’의로움‘ 즉 ’칭의‘를 기독교강요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갈 3:11-12; 합 2:4). 율법의 의에는 행위가 필요하나 믿음의 의에는 행위가 필요 없다. 율법의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롬 10:5). 그러나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는 온전할 수 없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만(롬 10:6) 구원에 이른다“(3.11.17-1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의의 조건을 찾으신다“. 라고 하였다” (기독교강요 3.11.14, 16).

칼빈은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이 법정적인 용어로서 행위와 관계없는 죄의 용서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선행과 올바른 행위를 의로서의 법리를 두고 법정적 선고 아래 무죄를 선고하시지 않으신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한 것은(고후5:19) 무슨 의미가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21절) 처음 구절의 해석은 하나님과 화목된 자들이 의롭다고 인정된다는 핵석을 할 수 있다. 소위 하나님께서 용서하심으로써 의롭게 하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은 다른 성경 구절상에서 칭의가 고발과 대조적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내용의 설명은 법률 용법으로부터 취해졌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행위 없는 인간의 ‘의’가 다윗의 고백을 통하여 잘 설명 되어진 부분이라 가르쳐 주고 있다. “허물의 사함을 얻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칼빈은 칭의을 다룸에 있어서 ‘율법의 행위를 통한 죄 용서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의의 전가와 죄의 용서’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므로 그의 칭의의 개념에서는 하나님의 의의 전가와 율법의 행위와 칭의가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론을 중심을 밀접하게 연계되어 전개되고 있다.

우리의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 주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신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는 죄 용서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상속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죄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알미니안은 죄 사함은 인정하지만,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부정한다. 알미니안은 예수께서 우리 대신 온전히 순종해주셨다는 교리가 신자의 성화의 열망에 가리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신학적으로 편협하고 그릇된 해석에서 나온 결과이다. 그러하기에 이 의롭다 함의 은혜를 받은 신자는 당연지사 감사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믿음 안에서 자연스레 성화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이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므로 수없이 많은 실패와 내면의 부패로 인해서 일상을 신음하며 보내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서 율법의 종노릇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자범죄로 인한 죄책으로 짓눌려서 “소망이 없다”고 하거나 “이제는 하나님께 나아갈 면목이 없다”고 하면서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대속과 구속의 은혜로 다 이루셔서 오늘날 신자들 각각에게 의를 전가해 주신 것이다. 그러하기에 믿음에 행위를 더함은 믿음을 부정함이다. 의롭다 함에 관하여 성경은 말한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오직 믿음의 의는 값이 주시는 전가의 의니 아무도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롬 8:35).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그리스도로부터 받게 된다’(기독교강요, 3.13.4-5). 그러므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잘살든 못살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께 접붙여졌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우리가 이 은혜를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님 안에서 참 쉼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다. 하지만 ‘무상’(無償)으로 받은 믿음의 ‘의’(의)를 우리는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아무 공로와 값이 없이 하나님의 법정적 선고 아래 받아 누리고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어찌 보면 너무도 아프시고 고통스러움 가운데 당신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죽이시므로 부어주신 ‘의’(義)의 은혜이므로 하나님의 믿음의 의로운 자녀인 우리는 이것을 상기하면서 받은 의와 구속함을 절대로 경홀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과 거룩함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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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2020-02-07 11:36:49
능동적 순종 지지자들은 그 근거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 60문을 제시합니다.

본문 중간에 있는 김현일 목사님께서 쓰신 내용에도 있는 "우리의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 주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신 것을 의미한다."를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으로 해석하더군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어(요3:16) 성자하나님께서 행하신 온전한 순종은 성육신부터 십자가의 죽으심까지임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음을(빌2:7~9) 그들은 지금도 성경으로 반론과 반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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