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5 03:54 (일)
옥성호의 '가말리엘'은 과연 믿을 만한가?(2)
상태바
옥성호의 '가말리엘'은 과연 믿을 만한가?(2)
  • 이창모
  • 승인 2020.01.31 04: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모 목사의 옥성호의 [야고보를 찾아서] 비판(3)

 

글을 시작하며

지난 번 쓴 필자의 “옥성호의 [가말리엘]은 과연 믿을 만한가?”에 이어 본 장에서는 <야고보를 찾아서>의 제1장 [존경받는 바리새인 가말리엘]에 흩어져 있는 옥성호의 어설픈 잡설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옥성호는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인 성경을 자신의 여러 가지 잡설들로 교묘하게 비틀어 마치 성경이 잡설이며, 자신의 잡설은 사실인 것처럼 왜곡하며 의기양양 미소를 짓고 있다.


사울(바울)과 대제사장

옥성호는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체포에 필요한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요청한 것(행9:1-2)을 문제 삼아 사도행전의 기록들을 믿을 수 없는 사설들로 입증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때로는 죽이는 데까지 가담한 인물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의 바리새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이유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관계 때문이다. 당시 사법권을 가지고 종교적 이유로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 대제사장뿐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사두개인이다. 그와 달리 바리새인은 권력과 한 걸음 떨어진 철저하게 대중들 속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경멸할 정도로 싫어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서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함께 사이좋게 예수를 공격하는 모습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인 바울이 사두개인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의 명령을 받아 마치 그의 심복처럼 일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다.1)

옥성호는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나쁜 관계를 근거로, 만약 사울이 정말로 바리새인이었다면 사두개인인 대제사장에게 찾아가서 공문을 요청하고, 대제사장의 심복처럼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근거로 옥성호는 사울을 마치 바리새인인 것처럼 기록한 사도행전이나 바울 서신서들은 믿을 수 있는 기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옥성호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협력하여 예수를 시험하려고 했던 사건(예를 들면 마16: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을 문제 삼아 복음서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옥성호의 이런 주장들은 자신의 거짓사설들(기독교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울이 조작해서 만든 종교라는 거짓말 등)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성경의 사실들을 거짓 사설로 조작하기 위한 것들이다.

먼저 옥성호는 “복음서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함께 사이좋게 예수를 공격하는 모습은”에서 보듯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함께 사이좋게 등장하는 장면이 복음서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왜곡한다. 그러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함께 사이좋게 등장하는 장면은, 복음서를 통틀어 마16:1에 딱 한 번 나온다. 그럼에도 옥성호는 이런 장면이 복음서에 흔하게 나오는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불신하고 자신의 거짓 사설을 믿도록 유도한다.

또 옥성호는 “바리새인인 바울이 사두개인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의 명령을 받아 마치 그의 심복처럼 일했다고?”라고 말함으로써 행9:1-2(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을 어이없이 왜곡한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올라간 것은 대제사장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열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울이 먼저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청했던 것이다. 사울은 사두개인인 대제사장을 만나 공문을 요청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겠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는 예수 믿는 자들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기 때문에 사두개인인 대제사장을 찾아간 것이었다. 또 사두개인인 대제사장이 바리새인인 사울에게 공문을 발급해 준 것은 그것이 사두개인들에게도 큰 유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대제사장 입장에서 보면, 유대 당국자들에게도 눈에 가시인 예수 믿는 자들을 바리새인인 사울이 자청해서 체포하겠다는 것은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옥성호가 ‘사울이 대제사장의 명령을 받아 그의 심복처럼 일했다’는 주장은 성경의 명백한 기록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옥성호가 지적한 대로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나쁜 사이였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교리적으로 이들의 노선은 극명하게 달랐다. 바리새인은 모세오경과 함께 다른 구약 성경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천사 등 영적인 존재들과 부활을 믿었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런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종교적이든 금전적이든 권력적이든 간에 자신들의 실제적인 이익을 좇아가는 현세주의자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교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서로 멀리한 진짜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 때문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바리새인들대로 백성들의 존경을 얻기 위함이었으며, 사두개인들은 사두개인들대로 종교적, 정치적, 금전적 권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모두에게 대단히 위험하고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나사렛 예수였다.

나사렛 예수가 등장하자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르며 환호했다. 나사렛 예수는 다른 서기관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권세 있는 메시지를 선포했고, 거기에다 말씀 한 마디로 병을 고치고 귀신들마저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을 행사했다. 이런 상황이 갈릴리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이스라엘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가 유대 전역에 확산되며 고조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모두에게 나사렛 예수가 치명적인 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가 그들에게 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자신들을 향해 박수를 쳤던 백성들의 종교적 존경심이 메시아로 이야기되고 있는 예수에게로 어느새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이며, 사두개인들에게는 백성들이 예수를 정말로 메시아로 인정한다면 자신들이 누리던 모든 종교적인 권세와 부귀영화들이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헤롯당도 예수가 자신을 겨눌 칼이 되는 것에 위협을 느꼈고, 그래서 이들도 상종하기 싫었던 바리새인들과 손을 잡고 예수라는 칼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막3:6/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마찬가지로, 예수로 인해 잃어버릴 것들이 너무 많았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서로 상종하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럼에도 그 싫음을 감수하고 나사렛 예수라는 칼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사이좋게 한 편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편이 되는 적과의 동침은 오늘 날에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정치판만 보더라도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정치적인 이념이 달라서 서로 대적했던 정적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 사이좋게 한 편이 되는 적과의 동침은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흔한 일들이다. 따라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함께 사이좋게 예수를 공격하는 모습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옥성호의 주장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옥성호는 예수님 당시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복음서를 악의적으로 비틀고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자신의 거짓 사설을 독자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요세푸스와 예수

옥성호는 예수의 제자들과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예수의 활동이 대부분 기독교인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광범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2)고 추론함으로써,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역사적인 사실들(예를 들면 예수의 치유 이적, 유대 전역에서의 많은 무리들의 환호, 부활과 승천 등)이 거짓인 것처럼 은근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옥성호의 추론은, 역사가들이 자신의 지평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기술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괄목할 만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단 몇 줄로 기록하거나 아예 누락시키는 역사 기록의 특성을 잘 모르는 엉터리 추측에 불과하다.

역사의 기록은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의 관심과 역사 철학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라도 다르게 기록하기 마련이다. 예외 없이 고대와 현대 역사가들 모두는 수집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자신의 역사 기록 목적에 부합하게 선별해서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역사적인 자료는 어떤 역사가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또 다른 역사가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어떤 자료들은 대단히 중요해 보이는 사건의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역사가에게는 자신에게 흥미가 없거나 자신의 역사 기술 목적상 관련이 없다고 간주되면, 그 사건을 짧게 기록하거나, 아예 누락시키는 것이 상례이다(요세푸스에게서 예수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례를 하나 든다면, 루키아노스는 어떤 역사가가 유로포스 전투에 대해서는 겨우 일곱 줄만 쓰고 나서, 어떤 말 사육사의 경험에 대해 훨씬 많이 기록한 것에 대해 불평했다고 한다.3)

필자는 로마의 전기 작가 수에토니우스(AD 69-120년쯤)가 기록한 〈황제들의 생애 De vita Caesarum〉와 누가가 기록한 행18:2(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에 의해 AD 49-50년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시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했다는 역사적인 사건을 알고 있다. 이것은 역사가의 눈에도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1세기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비그리스도인 작가인 필론과 요세푸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 사건’에 대해 그의 글 어디에서도 단 한 마디 언급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옥성호의 주장에 따른다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 사건’의 기록은 아예 없었던 거짓말이거나, 사실일지라도 별 것 아닌 일인데 수에토니우스에 의에 부풀려진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역사가의 지평에 대해 언급했듯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괄목할만한 사건일지 몰라도, 유대인이며 비스리스도인이었던 필론과 요세푸스에게는 자신의 지평 밖에 있는, 즉 자신의 관심 밖에 있는 사소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록에서는 누락된 것이다.

특히 비그리스도인이었던 요세푸스는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신앙을 버리고 로마제국에 빌붙어 살았던 친 로마주의자였다. 그런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하여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예수에 대해 몇 줄 기록했다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 짧게 기록한 것은 그의 독자들이 예수에 대해 광범위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요세푸스가 예수에 관한 사건을 짧게 기록했다는 이유로, 옥성호가 복음서의 기록들을 과장이나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지평에 대한 그의 무지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거짓 사설에 불과하다.


가말리엘과 예수

옥성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가 죽었지만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예수가 무려 수백 명의 사람 앞에서 부활한 사실을 드러냈다고도 말했다. 그뿐 아니라 예수는 하늘로 승천했다. 그런데 그걸 가말리엘이 몰랐을까? 고작 400명이 따라 다녔던 드다의 사건도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면 수천, 수만 명이 따라다녔을 예수를,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를, 그리고 하늘로 승천한 예수를 그가 몰랐을까? 만약에 복음서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가말리엘이 그 사실을 몰랐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옥성호는 행5:34-40에서 “가말리엘의 말만 놓고 보자면 그는 예수에 대해서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같이 느껴질 정도다.4)는 말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부정하고 있다. 옥성호의 논리는 만약 복음서의 기록대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이 사실이라면 가말리엘이 그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말했을 텐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가말리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이 예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 추론이다. 옥성호도 “가말리엘의 말만 놓고 보자면 그는 예수에 대해서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같이 느껴질 정도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자신의 주장의 비 논리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가말리엘이 예수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는 행5:34-40의 상황이 예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당시 그곳에 모인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미 예수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가말리엘은 소문을 통해서라도 예수의 부활과 승천 사건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예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가말리엘이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그의 제자인 도마도 믿지 못할 만큼 황당한 사건인 것만은 틀림없지 않은가!

당시 유대교의 골통 보수라고 할 수 있는 바리새인 가말리엘에게는 메시아로 소문났지만 촌 동네 출신이었던 나사렛 예수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곳곳에서 심심찮게 메시아로 자청하거나, 메시아로 추앙받는 자들이 출현했다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또 예수의 부활의 소문도, 나중에 네로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사람들에게 퍼졌던 것처럼, 가말리엘에게는 황당한 소문 정도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가말리엘이 예수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옥성호의 주장대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말리엘이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옥성호의 최근 저서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의 책 표지 첫 장 안쪽에 기록된 저자에 대한 소개 글에서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 갱신을 위한 초석을 만들었던 한국 개신교의 거목인 옥한흠 목사의 장남으로 태생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해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비판과 성찰이 사라진 한국 교회에 일침을 가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저자는 이제, 질문과 상식이 사라진 한국 교회를 깨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라고 옥성호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위의 글 전부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 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태생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해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는 말로 옥성호가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 것은 더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가당치 않은 허구이다. 왜냐하면 그는 기독교에 대한 얄팍하고 피상적인 지식으로,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기독교의 진리에 더러운 구정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앞 본론에서 필자가 성경을 난도질하려는 그의 어설픈 장난질을 지적했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장난질들은 <야고보를 찾아서>에서는 물론이고, <신의 변명>,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 등에서도 오뉴월 거름 위에 떼거지로 붙어있는 파리들처럼 난무하고 있다.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의 저자 소개에서 옥성호가 “이제, 질문과 상식이 사라진 한국 교회를 깨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옥성호를 바라보는 상당수의 사람들도 이미 그의 어설픈 장난질에 어느 정도 정신이 나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필자는 옥성호에게 ‘이제라도 성경에 대한 글쓰기를 접고, 제대로 된 신학 공부를 통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진지하게 그리고 좀 길게 했으면 좋겠다’는 권면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성경을 바르게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태생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해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는 것과 유대교 신학자들의 책 몇 권,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책 몇 권 정도 읽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동안 그가 쓴 몇 권의 책들을 보면, 옥성호가 “이제, 질문과 상식이 사라진 한국 교회를 깨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뜩이나 죽어가고 있는 한국 교회의 숨통을 완전히 끊으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옥성호의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1:4)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각 주>---

1) 야고보를 찾아서, pp. 23-24의 7번 각주.
2) 야고보를 찾아서, pp. 34-35.
3) Lucian, How to Write History, p.28/Michael R. Licona, The Resurrection of Jesus, p.50에서 재인용.4) 야고보를 찾아서, p.33

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