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9): 2부 1장의 베자 부분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청교도 사상이 최고의 엘리트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 2부 1장의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호섭 교수의 핵심 주장은 칼빈의 후계자였던 베자가 청교도 신학의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개념을 개혁신학 속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칼빈의 후계자 베자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을 도입했으므로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 사상은 종교개혁 신학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베자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베자는 어머니가 일찍 죽었으므로 외삼촌의 후원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28년, 베자가 9살 되었을 때 그의 외삼촌은 베자를 오르레앙 대학(University of Orléans)의 교수이고 저명한 그리스어 학자였던 독일인 멜키오르 볼마르(Melchior Wolmar)의 집으로 보내 학문을 배우게 했다. 바로 그 해에 오르레앙 대학에 훗날 종교개혁을 위해 큰 역할을 하게 되는 한 인물이 찾아갔다. 법률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 학교에 찾아온 존 칼빈이었다. 그 당시 칼빈은 멜키오르 볼마르 교수를 만났고, 또한 그의 집에서 살았던 9살 소년 베자도 만났다. 칼빈과 베자,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1540년대 말, 프랑스에서 살던 베자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가운데 하나님께로 회개하였고, 로마 가톨릭의 사제가 되려고 준비하던 것들을 버리고 스위스로 향하였다. 스위스에서 칼빈의 주례로 지난 수년 동안 실질적 혼인 관계에 있던 여성과 결혼했다. 이후 베자는 칼빈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1559년 6월, 칼빈이 그토록 염원했던 종교개혁 신학의 산실 ‘제네바 아카데미’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칼빈의 건강은 이미 많이 쇠약해졌으므로 그의 활동은 이전과 같지 못했다. 1564년 4월, 칼빈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베자를 추천했고, 그해 5월에 죽었다. 칼빈이 죽자 제네바 시민들은 베자를 칼빈의 후계자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과연 베자는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였을까? 이것에 대한 논란이 많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베자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베자가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지 못했다는 증거로 자주 거론되는 사실이 있다. 행위구원론의 대사도 알미니우스(Arminius)가 1582년에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베자로부터 신학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베자에게 종교개혁 신학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알미니우스는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신학과 핵심 사상들을 끝내 거부하였다. 바로 이 점이 베자의 신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1585년, 알미니우스가 고국 네덜란드로 향할 때, 베자는 암스테르담 시의회에 알미니우스를 추천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알미니우스)에게 사물에 대한 민감한 통찰력과 분별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경건으로써 조절된다면 ... 가장 큰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 알미니우스는 칼빈이 평생 동안 육체의 질병과 로마 가톨릭의 모진 핍박을 당하면서 이룩한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신학을 훼파하는데 가장 혁혁한 공로를 남기게 된다. 만일 베자가 칼빈의 신학을 충실하게 따랐다면 칼빈의 신학을 파괴하는데 가장 앞장선 알미니우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자가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계승했는가의 문제는 청교도 신학의 진위 여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와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의 신학의 뿌리가 베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칼빈을 만난 적이 없었고 기독교강요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았었다. 이 두 사람의 ‘행위언약’, ‘회심준비론’은 칼빈의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 행위언약은 아담이 실패한 율법준수를 그리스도가 대신 지켜서 의를 얻고 전가하신다는 능동순종 교리를 동반하였다. 회심준비론은 아담이 율법 앞에서 고꾸라졌으니, 지금 우리도 먼저 율법에 의해 죽어야만 그리스도의 은혜의 구원의 길이 준비된다는 주장이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의 근본적인 길로 제시하지 않고 구약의 율법을 신앙의 중심으로 제시한다. 퍼킨스와 에임스가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처럼 칼빈과 <기독교강요>의 영향을 받았다면 절대로 행위언약과 회심준비론을 도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호섭 교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실질적으로 처음 도입한 사람이 베자라고 설명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베자는 칼빈의 신학적 계승자이다. 그리고 베자는 종종 이 용어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도입한 인물로 간주된다. 한스 보스마는 ‘그리스도의 의의 다양한 국면을 식별하고 구별한 인물’이 바로 테오르드 베자라고 주장한다.”(73 페이지)

베자가 능동순종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사실과 베자에게서 영향 받은 회중파 청교도 조상 퍼킨스가 도입한 행위언약 사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행위언약 사상이 성경적이면 능동순종 개념도 성경적이고, 행위언약 사상이 비성경적이면 능동순종 사상도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영생을 얻기 위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의를 획득하여 전가하였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자가 도입한 능동순종과 퍼킨스가 도입한 행위언약은 같은 신학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의 능동순종 거짓 신학의 역사적 계보는 다음과 같다.

베자 -> 윌리엄 퍼킨스 -> 존 오웬, 토마스 굿윈, 토마스 왓슨 등의 회중파 청교도들

위 계보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신 교수는 베자 앞에다 유명한 두 사람을 억지로 심으려고 하였다. 루터와 칼빈을 맨 앞에서 심고 다음과 같은 신학적 계보를 통해 능동순종 거짓 신학이 발전되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루터와 칼빈 -> 베자 -> 윌리엄 퍼킨스 -> 존 오웬, 토마스 굿윈, 토마스 왓슨 등의 회중파 청교도들

우리는 이미 루터와 칼빈에게서 능동순종 개념이 나타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신 교수는 먼저 루터와 칼빈에게 능동순종이라는 용어는 없었을지라도 그 내용이 있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리고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가 능동순종을 처음으로 도입했으므로 능동순종이 칼빈의 신학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베자가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역사적 진실이다. 오늘은 우리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신호섭 교수는 베자가 능동순종 개념을 도입하게 된 배경이 루터파 신학자 플라시우스(Flacious)의 책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데이비드 슈타인메츠(David Steinmetz)의 말을 소개하였다. 신 교수가 소개한 슈타인메츠의 말은 다음과 같다.

“칼빈은 비록 죄 용서를 더욱 강조했지만, 칭의를 그리스도로 인한 죄의 용서와 전가로 간주했다. 그러나 베자는 루터파 신학자인 플라시우스의 저작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는 개념을 가져왔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순종적인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그리스도의 모든 생애적 삶을 지칭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죄인을 위해 행한 그리스도의 자원적인 순종을 지칭한다.”(슈타인메츠의 말/신 교수의 책 73 페이지)

이 내용은 베자가 독일인 루터파 신학자의 영향으로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보이지 그 외의 무슨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핵심은 능동순종 개념을 도입한 베자가 과연 스승 칼빈의 신학과 같은 노선의 신학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신 교수가 인용한 슈타인메츠의 말 속에도 베자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과 달랐다는 뉘앙스가 나타나 있다.

“칼빈은 비록 죄 용서를 더욱 강조했지만, 칭의를 그리스도로 인한 죄의 용서와 전가로 간주했다. 그러나 베자는 루터파 신학자인 플라시우스의 저작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는 개념을 가져왔다.”(슈타인메츠)

사실 칼빈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의가 본질로서 존재했다고 가르쳤다. 다음은 신 교수가 칼빈과 능동순종에 대한 부분에서 인용하였던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칼빈의 말이다. 

“그(바울)가 이후에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족시키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한 의를 생산하셨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의가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하는데 바로 이 그리스도께 본질로 속한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칼빈의 로마서 주석/신 교수의 책 68 페이지)

칼빈은 우리를 의롭게 한 그리스도의 의가 성육신하실 때부터 그의 안에 존재한 본질이었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죄인에게 전가하여 줄 의를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켰느니 어쨌느니 하는 소리들은 칼빈에게 씨도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칼빈은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가 죄인의 것으로 인정되는 의의 전가를 가르쳤다.

칼빈은 그렇게 가르쳤는데, 그의 후계자 베자는 스승과 다르게 가르쳤다. 그래서 스타인메츠는 칼빈의 칭의론을 간단히 언급하고 베자의 칭의론을 이야기할 때, ‘그러나 베자는’라고 했던 것이다. 칭의에 있어 베자는 스승 칼빈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신학의 길을 달리했다는 의미이다. 능동순종 개념을 베자가 처음으로 개혁신학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설명한 스타인메츠의 말 속에 이미 칼빈의 칭의 이해와 베자의 칭의 이해 가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적되어 있다.

그 외의 여러 사람들이 베자가 칼빈의 칭의론과 다른 내용을 발전시켰다고 지적하였다. 신 교수의 말 속에서도 최소한 두 사람의 신학자가 베자의 칭의 신학과 칼빈의 칭의 신학이 불일치하다고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베자가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으로부터 이탈했다는 클리포드의 비평을 언급했다. 클리포드는 심지어 ‘윌리엄 커닝햄(William Cunningham)조차도 베자의 견해가 칼빈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보았다’라고 주장한다.”(신호섭 교수의 말/73, 74 페이지)

필자는 알란 클리포드의 책을 읽은 적이 없으나, 장로교회의 역사신학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19세기의 신학자 윌리엄 커닝햄(William Cunningham, 1805-1861)의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은 읽어 보았다. 그의 책은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 전개 방식이 다소 느슨하여 조금 인내를 요구하였으나 매우 바른 신학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닝햄이 베자가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베자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과 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매우 많다. 베자가 청교도 신학의 능동적 순종 개념을 개혁신학 속으로 도입했다는 것은 칼빈의 신학과 그 이후의 개혁신학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과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 사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런데 신 교수는 “칼빈의 후계자였던 베자가 능동순종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것은 능동순종이 칼빈의 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그럴싸한 억지 주장으로만 일관했다.

신 교수의 결론적인 말들을 살펴보자.

“베자는 칼빈과 마찬가지로 칭의가 죄용서 이상의 어떤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자에 따르면, 단순한 죄 용서로는 불가능하다. 베자는 그리스도가 전 생애를 통해서 이루신 율법에 대한 능동적 순종과 죽음을 통해 이루신 수동적 순종이 신자에게 전가되는 의의 기초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74 페이지)

“베자와 칼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칼빈과 베자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에 대해 합의하여 사용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 이것은 베자가 종교개혁 신학을 떠났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도, 칼빈이 칭의를 단순히 죄 용서로 제한했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칼빈으로부터 베자의 견해를 추론해 낼 수 있다.”(74 페이지)

신 교수의 이런 주장은 칼빈을 억울하게 만드는 말이다. 칼빈은 죄인에게 전가된 의가 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했던 의라고 가르쳤다. 죄인이 오직 십자가로 죄 용서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의가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하는데 바로 이 그리스도께 본질로 속한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칼빈의 로마서 주석/신 교수의 책 68 페이지)

또한 칼빈은 고린도전서 1장 30절 주속에서 칭의의 본질은 그리스도가 보혈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또한 용서받은 죄인들을 받아주심, 이 두가지라고 말했다. 결코 그리스도의 율법순종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칭의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믿음의 의는 죄의 사면과 무조건적 받아 주심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두 가지를 모두 받는다.”(칼빈의 고린도전서 1:30절 주석/신 교수의 책 70페이지)

그러나 신 교수는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획득한 의를 우리에게 전가했다고 하였으니 능동순종 개념은 칼빈에게서 시작된 것이라고 변형했다. 능동순종 거짓 신학을 위해 칼빈을 억울하게 만들어 버렸다.
 

맺는 말

신 교수의 문제는 성경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이론들과 중요한 인물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만 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지에 대해 신학적으로 분별하는 '계시의존 사색'이 없다.  성경은 죄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 처음부터 존재한 의의 전가를 말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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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