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7): 2부 1장의 루터 부분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사상이 최고의 엘리트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 2부 1장의 앞부분의 루터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신호섭 교수가 주장하는 말들은 전부 루터의 신학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었다. 루터가 청교도들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지라도 능동순종 사상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는 신 교수의 주장은 루터의 설교 등의 자료를 억지로 왜곡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신 교수의 오류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담이 영생을 위해 지켰어야 하나 지키지 못한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완벽하게 준수하여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의를 얻었다는 거짓 신학과 루터가 무관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의 말을 하나씩 차근차근 분석해 보도록 하자. 먼저 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루터의 이 설교에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 분의 행하심고난 받으심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 의롭게 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61 페이지)

신호섭 교수는 루터가 청교도들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리스도의 행하심, 즉 율법에 대한 적극적 순종,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 즉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을 통해 영생의 의를 획득하고 전가했다는 사상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가 인용한 루터의 설교문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삶과 행하심, 말씀하심, 고난 받으심과 죽으심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신 것이 마치 내가 그렇게 살고 행하고 말하고 고난 받고 죽은 것처럼 나의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신부의 소유물 전부가 신랑의 것이며, 신랑의 소유물 전부가 신부의 것이라는 사실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루터의 설교문, 신 교수의 책 61 페이지)

아무리 보아도 루터가 청교도 신학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 개념을 가졌다고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루터가 단지 그리스도께서 철저하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셨다고 설교한 내용이다. 칼빈이 강조했던 것처럼, 루터도 성육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극치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에서 기원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가르쳤음을 보여주는 내용일 뿐이다. 신 교수가 왜 루터의 이 설교문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 사상이 나타난다고 보았는지 의아하다.

일본이 한국에게 무역 보복을 시작하였을 때부터 한국 사람들에게 빨간색 동그라미는 일본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로 각인되었다. 미국에 사는 필자도 도로에서 신호 대기할 때 붉은 색 원반 모양을 보고 순간적으로 “아! 미국의 미시간 백인들도 한국과 같은 심정으로 ‘No! Japan’에 동참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사람들이 이럴 리가 없는데!” ... 하는 생각도 스쳤다. 다시 보니 빨간 신호등에서는 우회전하지 말라는 교통 표지판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것에 단단히 영향받아 집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루터에 대한 신 교수의 글을 보면 그가 청교도 능동순종에 단단히 꽂힌 사람이다.
 


신 교수는 루터의 다음과 말도 인용했다.

“주 예수여, 나의 죄가 당신의 죄가 되듯이, 당신께서 나의 의가 되십니다. 당신은 스스로 나의 것을 취하셨고, 당신의 것을 내게 주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니셨던 것을 취하셨고, 내게 내가 아니었던 것을 주셨습니다.” (루터의 말, 신 교수의 책 60 페이지)

“이 위대한 교환을 통해, 우리의 죄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를 비우고 종의 형체로 낮추어 우리의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신의 의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루터의 말, 신 교수의 책 60페이지)

아무리 보아도 루터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수동순종 사상을 가졌다고 볼 근거로 판단할 수가 없다. 단지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고, 사람이 꿈도 꿀 수 없는 ‘의’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었다는 지극이 일반적이고 성경적인 루터의 가르침일 뿐이다. 칼빈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늘 가르쳤던 내용이다.

신 교수는 폴 알트하우스(Paul Althaus)라는 사람이 루터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로서 죄의 형벌과 고난을 받으신다. 그리스도는 이 두 가지를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감당하신다.” (폴 알트하우스의 말, 신 교수 책 62 페이지)

여기서 ‘율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율법순종-능동순종으로 볼 수 있고, ‘죄의 형벌’은 그리스도의 수동순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루터가 아니고 루터를 핑계 삼고 있는 폴 알트하우스라는 사람이다. 루터가 언제, 어디에서 한 말을 근거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하기야 칼빈 핑계대면서 구원의 탈락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런 정도의 내용이 아닌가 싶었다.

신 교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칼빈과 마찬가지로 루터에게도 칭의 교리는 단순히 죄의 용서나 죄의 무전가(non-imputation of sins)뿐 아니라 적극적인 의의 전가(imputation of righteousness)로 말미암는다.” (62 페이지)

끝까지 신호섭 교수는 칭의에 대해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의 길을 가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성육신하신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자기 피를 하나님께 드리심이 곧 우리의 칭의와 죄용서의 근거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신호섭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의 이 가르침을 완고하게 부정한다. 대신에 칭의가 그리스도의 율법을 준수하신 삶을 통해, 죄 용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유래되었다는 다른 신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던 루터까지 끌어들이면서 그 주장을 강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신 교수는 “루터에게도 칭의 교리는 죄의 용서나 죄의 무전가(non-imputation of sins)뿐 아니라 적극적인 의의 전가(imputation of righteousness)로 말미암는다”라고 강변하였으나, 정작 루터가 그렇게 믿고 가르쳤다는 분명한 사실을 보이지는 못했다. 
 


신 교수는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의 내용도 소개했다.

“이 두 가지가 그리스도의 의를 완전하게 만든다. 첫째는 공식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는 믿음, 곧 신적으로 수여된 선물로서의 마음 안에 있는 믿음이다. 둘째는 세상의 죄를 위해 고난당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의 믿음이 시작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이 불완전한 믿음을 완전한 의로 간주하신다.” (루터의 갈라디아 주석, 신 교수의 책 64 페이지)

루터의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이다. 루터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의 영생의 권리가 되었다고 가르치는 내용으로 판정할 수 없다.

신 교수는 후기 루터파 신앙고백서의 내용도 인용하였다.

“신성과 인성에 따른 완전한 그리스도 전부가 바로 우리의 의이시다.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순종 안에서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리스도는 이 순종을 통해 우리를 위한 죄의 사면과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셨다.” (후기 루터파의 신앙고백, 신 교수의 책 65 페이지)

신 교수는 위 내용으로 루터와 루터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을 충실하게 믿었다고 은근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위 내용은 성육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된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으로 인해 죄 용서와 칭의가 주어졌다는 일반적이고 지극히 성경적인 가르침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특별한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신 교수는 루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종합해 보면, 비록 루터가 능동적, 수동적이라는 개념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루터 자신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전가로 말미암아, 또는 그리스도의 신적이며 인간적인 삶의 죽음이라는 구속적 사역 안에서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로운 자로 간주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했다는 것이 자명하다.” (65 페이지)

여기서 독자들은 신 교수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전가’라는 말의 내막을 알아야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1)그리스도가 오래 사시면서 모든 율법을 적극적으로 지키신 능동적 순종, 2)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용서를 위애 십자자게 달려 피 흘리신 수동순종, 이 두 가지를 넉넉하게 감당했다는 의미로 신 교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전가’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비록 루터가 능동적.수동적이라는 개념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라고 말했던 것이다.
 

맺는 말

신 교수는 루터가 그리스도의 순종을 율법준수와 십자가 죽음으로 찢어진 돼지 족발같이 이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 교수는 학위논문 지도 교수들과 독자들에게 루터도 그리스도가 율법의 행위로 의를 획득하여 전가했다는 능동순종 개념을 가졌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신 교수가 주장하는 근거들은 루터에 대한 왜곡이었다. 신 교수의 오류의 근본적인 원인은 루터가 아담이 영생을 위해 지켰어야 하나 지키지 못한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완벽하게 준수하여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의를 얻었다는 신앙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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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