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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보다 율법의 정죄를 먼저 선포하는 방식은 잘못된 루터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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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보다 율법의 정죄를 먼저 선포하는 방식은 잘못된 루터의 전통
  • 서철원
  • 승인 2020.01.0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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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


특별계시는 율법과 복음의 형태로 왔다. 둘 다 구원의 길로 제시되었다. 율법은 모든 명령을 지켜라, 그리하면 살리라 (신 4:1; 5:29-33; 6:1-3; 8:1)의 형태로 주어졌다. 그러므로 구약 교회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이로써 구원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복음은 죄 용서와 영생의 약속으로 왔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은 그리스도의 출생과 십자가와 부활로 종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과 십자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율법은 구원의 길로서 폐지되었다. 이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 더 이상 구원의 길에 율법이 개입하지 않는다. 회개하고 예수 믿음은 복음의 선포로만 이루어지고 율법이 예배 과정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음에 율법준수를 병행하였다. 바로 이 방식으로 그들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바울은 이 구원의 방식에 한사코 반대하였고, 복음의 선포와 그것을 믿음만으로 구원이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밝혔다.

율법은 본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시민생활에서의 악을 제재할 뿐이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길에는 절망과 멸망뿐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독촉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할 수 없는 절망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위한 몽학선생으로 도입되었다. 율법이 몽학선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한다는 것은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또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가 와서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을 열망하게 하므로 그 임무를 다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사 우리를 아들로 만들고 상속자가 되게 하셨으므로 더 이상 노예 가정교사의 가르침과 재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 노예 가정교사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믿음은 아들로서의 자유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과 율법 이해로 유대교에서 분리하고 독립하였다. 그러나 구원의 길에 율법준수의 요구는 교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로마교회는 예수 믿음에 율법의 준수 곧 선행을 더함으로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믿음을 율법의 길에 넣어 그리스도교를 유대교화하였다. 왜냐하면 내 선행이 내 믿음을 구원하는 믿음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는 믿음에 선행을 더함을 반대하고 배척하였다. 구원은 선행과 무관하며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에 관계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주창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복음와 율법의 관계 이해는 구원서정적으로 이루어졌다. 루터에 의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만들기 위하여 복음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율법을 선포해야 한다.

왜 먼저 율법을 선포해야 하는가? 율법의 역할에 대한 루터의 제시를 살펴보자. 하나님은 사람을 의롭게 하려고 하실 때, 먼저 그를 정죄하신다. 그가 세우시려는 자를 허신다. 그가 낫게 하시려는 자를 깨뜨리시고, 살리시려는 자를 먼저 죽이신다. 하나님은 이것을 하실 때 사람을 통회로 몰아넣으시고 자기 자신과 자기의 죄를 알아 겸손하게 하시고 떨게 만드신다. 그리하여 죄인들은지옥으로 돌아가고 그들의 얼굴이 수치로 가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당황함에서 구원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주를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본래적인 작 일을 하시기 위해 생소한 일을 하신다. 이것이 심장의 참된 회개이고 영의 겸손이다. 여기서 은혜가 부어진다. 이처럼 믿음의 길에 율법이 개입한다. 율법의 선포로 사람을 절망과 지옥으로 몰아넣은 다음 복음이 선포되어 예수를 믿게 한다고 하여 믿음의 시작에 율법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을 향한 전도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만 선포함으로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였다. 베드로도 유대인들에게 선포할 때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선포하여 믿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는 복음선포에 앞서 율법의 정죄를 선포하지 않았다.

바울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구원사적으로 이해하였다. 복음의 도입을 위한 준비과정이 율법의 수여이다. 율법으로 구원이 불가능함을 말하고 은혜로만 구원이 가능함을 보이기 위해 율법이 도입되었다. 율법은 본래 지킬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이루시고 율법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른다. 구원은 율법을 행함에 있지 않고 율법의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 율법이 주어졌다.
 


율법으로 구원은 전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 이후에는 율법이 구원의 길에서 전적으로 배제되었다. 처음부터 복음만 선포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른다. 그러나 루터의 전통에 선 사람들은 계시가 율법과 복음으로 나타났으므로 이 둘을 늘 함께 상관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계시하고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므로 복음선포 전에 율법이 선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속사역 후에는 율법이 구원의 길에 개입하지 않는다. 구원이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구원을 말함에 율법을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 율법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가 구원을 성취하였으므로 율법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것은 율법을 다 지켜서 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범죄하므로 율법은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죗값을 갚으시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수하셨다. 계명을 범한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피로 갚으셨으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다. 그리고 피로써 이루신 죄용서 곧 의를 믿음으로 받았다. 따라서 율법준수의 요구가 믿는 자에게서 다 성취되었다. 율법이 계명을 범한 죗값을 다 받았으므로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요구할 것이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율법은 완전히 성취되었다.

따라서 율법은 구원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역사한다. 본래 율법은 언약 백성들의 생활규범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구원의 성취를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생활규범이고 구원의 길은 전혀 아니다.

통상 율법을 의식법, 형벌법, 도덕법으로 나눈다. 그리고 도덕법은 삼중용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정치적 용법으로서 큰 죄들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역사한다. 둘째는 교육적 용법으로서 사람들로 죄 인식에 이르게 한다. 셋째는 교훈적 용법으로서 믿는 자들의 생활규범이 된다. 이 도덕법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규범으로 작용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다 성취되어 그 기능을 다하였다. 따라서 율법은 구원의 방식으로서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도덕법은 강화되어 생활의 규범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역사한다. 율법은 구원의 길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규범으로 역사한다.(신학서론, 198-203)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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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2020-01-06 01:56:05
4/4 이것을 종교개혁기 초기에 좀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지 않았다면 이 시대에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서,
우리는 특별계시인 율법도 없던 자들이기에
"하나님 백성(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율법의 제3용도를 넘어서는
율법주의로 빗나가는 오류나 사변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바로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0-01-05 20:03:11
3/4 이 논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에 올라와서 이의를 제기했었고 이것이 예루살렘교회에 "많은 논쟁이" 있은(행15:7) 유대인 쪽의 이유도 그것(행25:8)입니다.
또한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가 이방인 성도들의 “율법준수의 의무에서 자유함”을 선포하고 이를 확정한 이방인 성도 쪽의 이유가,
이방인 성도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도가 되기 전까지는 원래 율법도 없고 하나님도 없던(엡2:11~12)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유와 베드로를 통하신 하나님의 증거하심과 성경의 증거(행15:15~17) 등을 통해서 이방인 성도들의 "율법준수 의무에서 자유함"이 확정되었(행15:28)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0-01-05 20:02:37
2/4 바로 믿음에 의해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방도로서가 아닌 율법지킴을 베드로와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교회의 유대인들은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율법의 당사자들인 유대인들에게 명하신 구약의 율법준수 의무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후에도 하나님께서 율법을 맡은 자인 유대인들에게 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도 믿음에 의해 구원을 얻었으니 이방인 성도도 율법을 준수케 해야 된다는 일부 주장이 논쟁을 낳은 사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0-01-05 20:01:49
1/4 서박사님의 성경 가르치심은 참으로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합니다.
다만 종교개혁기 초기에 쯔빙글리파도 루터파도 칼빈파도 주의를 세심하게 기울이지 못하고 조금 소흘히 여긴 듯하여
후대에 율법주의에 관한 사변들로 논란들이 생기는 것을 미리 막지 못한 것들은
이 시대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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