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신학이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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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신학이 같았어요?
  • 정이철
  • 승인 2020.01.03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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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6): 2부의 서문 부분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사상이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의 2부의 서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2부 서문에서 신호섭 교수는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이후 '청교도')의 신학이 종교개혁 신학과 동일한 신학 노선이었다고 말했다.

“전가 교리의 역사적 발전을 살펴보려면, 무엇보다 청교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청교도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 왜냐하면 적어도 정통적인 역사적 교리의 발전에 관한 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사이에 일련의 연속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55 페이지)

“청교도들이 종교개혁을 가장 충실히 계승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자들과 동일한 신학 노선을 걸었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의 후계자들이자 표상과도 같았다. 17세기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의 신학을 계속 가르치고 전수했다.” (56 페이지)

신 교수의 이 주장은 ‘종교개혁 신학과 후기 개혁신학의 동일성 여부’ 에 관한 논쟁의 핵심에 속한다. 종교개혁 신학과 후기 개혁신학자(청교도)들의 신학이 같은 노선이라고 결론나면 청교도 신학은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신학이라고 결론나면 청교도 신학은 이단사상 또는 유사 개혁신학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논쟁과 관련된 1900년대 이후의 중요한 세 사람의 주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패리 밀러(Perry Gilbert Eddy Miller, 1905-1963)

1900년대 초반에 청교도 사상을 연구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뉴잉글랜드의 지성』(The New England Mind, 1966년 퓰리쳐 상 수상작), 『17세기 뉴잉글랜드의 지성』(The New England Mind in Seventeenth Century), 『조나단 에드워즈 전기』(Jonathan Edwards Biography) 등을 저술한 패리 밀러이다. 필자는 패리 밀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고,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패리 밀러는 무신론주의 역사학자였으면서 미국의 사상사를 연구하는 차원에서 청교도 신학을 연구하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패리 밀러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의 신앙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고, 특히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과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신학이 같은 노선이 아니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1899-1981)

영국의 웨일즈(Wales) 출신이었던 로이드 존스는 원래 의사였다. 정규 신학교에 다니지 않고 홀로 신학을 공부하여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고, 나이 40세에 의사직을 떠나 영국 런던의 회중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했고, 이후 30년 동안 목회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청교도의 부흥 운동에 큰 관심을 가졌고, 청교도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특별한 열정을 가졌다. 로이드 존스는 자신이 목회하였던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예배당에서 1956년부터 1983년까지 매년 12월에 청교도 세미나를 개최하여 청교도 신학에 대해 가르쳤다. 로이드 존스의 청교도 세미나에서 발표되는 내용은 'The Banner of Truth Trust 출판사의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이라는 월간신학지를 통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종교개혁자들과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이 같은 신학이라고 평가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다. 사실 로이드 존스 때문에 한국 교회는 큰 피해를 보았다. 한국에서도 로이드 존스의 저서들이 번역되어 빠르게 보급되었으나, 아무도 그의 사상에 비판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 거의 최초로 로이드 존스의 신학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필자인 것으로 생각된다.

로이드 존스의 청교도 신학 연구에는 심각한 점들이 많았다. 가장 심각한 점은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과 뉴잉글랜드의 회중교회 청교도들의 이단적인 성령론을 그대로 수용하여 전파했다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부흥을 ‘기름 부으심’이 더 부어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특히 에드워즈는 믿는 자들과 교회에 하나님께서 더 기름 부으심을 주시는 것이 부흥이라고 가르쳤고, 기름 부으심을 더 받기 위해 기도하자고 강하게 선동하였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름 부으심이 임한다는 표현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구원을 주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하시려고 택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기름 부으심이 있으면 그 사람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의 임재하심을 따랐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인해 모든 성도가 기름 부으심을 받는다.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신약 시대의 사람들이지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기름 부으심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부흥을 위해 또 다른 기름 부으심을 구하였으니, 그들의 성령 이해는 오늘 날의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과 동일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성령은 단 한번만에 영속적으로 오시는 것이지, 결코 구원 이후에 수시로 더 오시지 않는다. 구원받은 신자에게 수시로 더 오시는 성령은 거짓 성령이다. 거짓 성령은 반드시 거짓된 이적과 속이는 현상들을 동반한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가들의 부흥회와 에드워즈의 부흥회에서 똑 같은 거짓 현상들이 나타났다.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의 성령론을 그대로 수용했다. 에드워즈의 부흥집회의 거짓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여 점하는 예언, 쓰러짐, 비정상적인 웃음, 히스테리적인 현상들, 환상들이 성령의 부흥의 때에 나타나기도 한다고 가르쳤다.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중생하는 순간 완전하고 영원한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대범하게 파괴하였고, 대신에 구원의 성령세례와 그 이후의 반복되는 능력의 성령세례를 가르쳤다.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신사도 운동에서 가르치는 위험한 신학이론, 즉 하나님의 성육신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능력의 성령세례를 받아서 이후 놀라운 능력들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재세례의 본을 보였다고 주장하였다. 아주사 거짓 부흥을 일으킨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 1870-1922),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로이드 존스는 동일한 성령세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세례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지 보자.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사역과 이적을 위해 자신에게 능력을 주는 성령을 구하였다면, 오늘 날 우리 보통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세례가 얼마나 더 절실하게 필요하겠습니까?” (윌리엄 세이모어)
(​Roberts Liardon, The Azusa Atreet Revival (Shippensburg, PA: Destiny Image, 2006), 127.)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주님의 성화된 인성 위에 성령세례가 임하였습니다.” (윌리엄 세이모어)
(앞의 글, 127.)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기도하여 성령을 받으셨다.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라고 누가복음 3장 21,22절에 나온다.” (조나단 에드워즈)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2, 964.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144.)

“그리스도의 세례는, 말하자면, 엄숙한 취임식으로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는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숙한 가시적인 방법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임했고...” (조나단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 「구속사」 (에드워즈 전집 3권, 김귀탁 역) (부흥과개혁사, 2007), 410.)

“다 시 한번 말하면 주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분에게 임하셨다. 바로 그때 주님은 메시아적 사역과 구원사역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셨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로이드 존스)
(마틴 로이드존스, 「하나님의 자녀: 요한일서 강해 1-3장」(임성철 역)(서울: 생명의말씀사, 2010), 393.)

 

성령론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성령신학이 성경에서 벗어나면 이단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영국의 청교도와 WCF 신학자들의 신학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같다면, 먼저 성령론에서도 신학이 일치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반복적으로 임한다는 성령재세례론을 가르치고 주장하였던가? 칼빈이 구원의 성령세례와 능력의 성령세례를 구분하여 가르쳤었는가? 칼빈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성령을 받아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가르쳤었던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어떻게 가르쳤는지 보자. 
 

“이 거룩한 기름부음의 상징이 그리스도의 세례 때에 눈에 보이게 나타났다. 즉,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와 그의 위에 와서 머물렀다(요 1:32 ; 눅 3:22). 성령과 그 은사를 ‘기름부음’이라고 부르는 것은(요일 2:20, 27) 새로운 일이 아니며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것도 아니다. 우리가 힘을 얻는 방법은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늘 생명에 관해서는, 성령이 주입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는 그 생명력이 한 방울도 없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거처로 택하시고, 우리에게 심히 필요한 하늘 보화가 그를 통하여 풍부하게 흐르게 하셨다.” (기독교강요, 2.15.5)

칼빈은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실제로 능력을 주는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성령이 함께 하셨고, 처음부터 성령이 그리스도를 거처로 삼으시고 계심을 상징하는 차원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리스도에게 임하셨다고 가르쳤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시냇물같이 부으시고 그들의 생기를 회복하며 강하게 키우시기 때문에 ‘기름’과 ‘기름 부음’이라는 이름을 얻으셨다(요일 2:20, 27).” (기독교강요, 3.1.3)

칼빈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말이 성령을 더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믿는 자에게 임재하시는 성령의 또 다른 별명이라고 가르쳤다. 성령론 하나만 보더라도 칼빈의 신학과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은 같은 노선이 아니었다.
 

3.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 1948-현재)

리처드 멀러는 최근에 칼빈신학교에서 은퇴한 역사 신학자이며 세계적인 칼빈연구가이다. 그는 칼빈과 청교도들의 신학이 같은 신학이라고 강력하게 그리고 매우 영향력 있게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멀러 테제’(Muller Thesis)라는 말이 생겨났다. ‘멀러 테제’는 종교개혁-칼빈의 신학과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신학이 같은 신학이라는 주장을 대표하는 말이다.

그러나 멀러 테제는 희대의 거짓 부롱이다. 웨민고백서(WCF, 1647) 7, 19장에 삽입되어 있는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의 핵심 사상인 행위언약 개념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에게 영생을 주셨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면 영원히 살 것이나 믿음을 버리면 죽을 것이라고 선악과로 경고하셨다. 그러나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의 행위언약 사상은 하나님께서 영생이 없는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영생을 획득하도록 정하셨다고 한다.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버려서 저주받은 것이 아니고 영생을 위한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저주 받았다고 가르친다. 

행위언약에 의하면 인간의 원죄의 본질은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반역’(호 6:7)이 아니다. 영생이 없는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멋대로 살아버린 것이 원죄가 되는 셈이다. 성경은 원죄를 영생과 모든 은사를 받은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교만과 반역을 시도한 것이라 가르치나, 행위언약은 영생이 뭔지도 모르는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율법을 아담이 거부한 것이 원죄라 가르친다.

칼빈은 원죄에 대해 한 번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칼빈은 아담의 원죄의 핵심은 교만과 반역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2.1.5)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적어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2.1)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이 원죄에 대한 신앙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서 벗어나자 구원론에서도 칼빈의 신학과 길을 달리하였다.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지키시어 칭의의 원인을 제공했고,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가르쳤다. 전자가 청교도 신학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고 후자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 용서를 받은 것이 구원이고 칭의라고 가르쳤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이 죄를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고(시 32:1-2) 그 선언한 그 정의에 찬성한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단순히 죄책의 반대 개념인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강요, 3.11.4)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았다고 말할 때에(갈 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서 의를 전가하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은가? 또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불경건한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다고 말할 때(롬 3:26). 그것은 불경건하여 당연히 정죄를 받을 사람들이 믿음의 덕택으로 그 정죄에서 풀려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독교강요, 3.11.3)
 

칼빈의 신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서철원 박사도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 용서 받는 것이 칭의이고 구원이라고 한다.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24)
 

회심준비론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회심준비론이다. 회심준비론이라는 여전히 구원에 관한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으나,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합당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의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 선포로 죄인임을 깨달아야 하고, 영적으로 각성되어 예배, 기도, 회개, 율법준수와 선행 등에 힘쓰면서 구원을 열망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여 성령의 회심체험을 주신다고 한다. 구원에 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가르치기는 하나 사람이 합당한 자격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니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이신칭의 구원이 아니다. 
 

사람의 동의, 역할이 요구되는 언약신학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조건과 자격을 사람이 갖추어야 한다는 회중파 청교도의 알미니안 사상은 언약신학에서도 나타난다.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복음선포와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그 믿음만으로 모든 언약의 조건들이 충족된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만일 하나님이 선물하여 주시는 믿음 외에 인간의 다른 무엇이 요구되면 율법주의 구원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르쳤다. 

그러나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은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나,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자격, 조건, 역할을 강조하는 언약사상을 발전시켰다.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의 후계자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던 또 다른 회중파 청교도의 거목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의 언약 사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리처드 십스의 설교를 통해 회개한 대표적인 사람은 존 카튼(John Cotton, 1582-1652)과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구원의 언약에 대해 리처드 십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언약과 계약의 관계를 통하여 관계를 맺으신다. 다른 모든 언약들 가운데 계약을 포함하고 있는 언약은 가장 달콤하다. 그 안에는 우리의 쪽으로부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아멘’을 불러일으킨다. 성령께서 ‘아멘, 그렇게 될 것이다’하면 우리 영혼은 ‘아멘 주여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고 말한다." (리처드 십스)

"비록 하나님의 은혜가 다 하시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승낙을 주어야 한다. 왕과 반항하여 떨어져나간 백성들 사이에 화합이 이루어지자면, 용서와 새로운 순종의 약속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자면,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하고, 그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경외심이 있어야 하고, 그를 우리의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 (리처드 십스)

"하나님께서 이 조건을 요구하실 때에 우리가 그 말씀으로 동의하고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유서와 유언으로 만드시도록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하도록 말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를 가지심으로 그것으로 우리를 명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명예스러운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없이 수행을 안하시니 말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 없이는 영생을 이루시지 않으신다." (리처드 십스)

 

맺는 말

신호섭 교수는 청교도 신학이 종교개혁 신학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주장하였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신학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과 원죄, 구원론, 언약신학, 성령론, 묵상 신비주의 등에서 매우 다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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