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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중생에서의 '죽임'과 오웬의 성화에서의 '죄 죽임'은 전혀 다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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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중생에서의 '죽임'과 오웬의 성화에서의 '죄 죽임'은 전혀 다른 내용
  • 정이철
  • 승인 2019.12.29 08: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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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존 칼빈이 먼저 기독교강요에서 죄 죽임을 이야기했고, 존 오웬은 그것을 더 발전시킨 것  아닙니까?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먼저 한 말을 오웬이 발전시킨 것인데, 오웬의 죄 죽임을 개혁교회의 신학이 아니라고 부정하시다니요?

 

답변>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3장 - “믿음으로 말미암는 중생 : 회개”에서 ‘죽임’, ‘살림’이라는 표현을 몇 차례 사용하였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칼빈이 믿음으로 얻는 중생을 회개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회개를 중생과 동일한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회개를 한 마디로 중생이라고 해석하는데 회개의 유일한 목적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지고 거의 말살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시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3.3.9)

칼빈은 중생의 원리(회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죽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결코 존 오웬처럼 이미 중생한 신자의 성화 과정에서의 죄 죽임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칼빈은 중생, 즉 회개에는 중요한 두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죽임’이고 또 하나는 ‘살림’입니다. 중생(회개)의 한 요소 ‘죽임’의 의미는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를 인식하고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에 대해서 잘 아는 어떤 사람들이 훨씬 전에 성경의 표준에 따라 단순하고 진지하게 말한 것이 있다. 그들은 회개는 죽임(mortification)과 살림(vivification)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죽임’에 대해서 그들은 죄를 인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된 영혼이 슬퍼하며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독교강요 3.3.3)

칼빈은 중생(회개)의 또 다른 요소로서 ‘죽임’의 반대되는 개념인 ‘살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와 은혜로 인한 기쁨, 즉 구원의 은혜를 ‘살림’이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살림’은 믿음에서 생기는 위안이라고 해석된다. 바꿔 말하자면 죄의식으로 좌절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 싸였던 사람이 후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고, 즉,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자비와 은혜와 구원을 깨닫고 일어나며 정신을 차리며 용기를 회복하고, 말하자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3.3.3)

칼빈은 ‘살림’이 단순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후의 행복감 정도가 아니라 구원 받은 죄인이 이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내포하는 기쁨이라고 합니다.

“‘살림’이라고 한 부분은 거룩하고 헌신적으로 살겠다는 소원을, 곧 중생에서 생기는 소원을 의미한다. 마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살기 시작하고 자기에게 대해서는 죽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강요, 3.3.3)

칼빈이 중생의 원리, 즉 회개의 요소로서 ‘죽임’과 존 오웬이 구원받은 신자의 성화에서의 ‘죄 죽임’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오웬은 성화를 위해 죄 죽임-성화를 위한 사람의 피나는 노력을 가르쳤으나, 칼빈은 100%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는 중생의 요소로서의 죽임을 말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죽인다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옛 사람이 먼저 십자가 안에서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기 위해서는 죄와 맞서 부단히 싸우고 투쟁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부담을 항상 느끼고 있다 해도, 죄를 죽이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 첫째, 죄를 죽이려는 사람은 맞서 싸워야 할 원수가 있음을 알고, 그 원수로 유념하고 그 원수를 원수로 인정하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원수를 물리치고 말겠다는 단호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존 오웬, 죄 죽임, 85 페이지)

존 오웬이 말하는 죄 죽임은 이미 구원 받은 신자가 성화를 위해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불신자가 오웬이 말하는 것처럼 죄와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존 오웬의 죄 죽임-성화 신학은 다분히 펠라기우스적이고 또한 알미니안적입니다. 왜나하면 구원 받은 자 속에 거하는 성령이, 그리고 구원 받은 자기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죄 죽임-성화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로마 가톨릭과 잉글랜드 국교회의 신앙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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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 2019-12-30 17:56:51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조엘 비키의 강의를 들어보니 마치 인간이 사단과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냥 설명하더군요. 오웬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웬은 칼빈보다 아퀴나스의 이론과 더 많이 닮았다는데 앞으로 그런 연구도 신학에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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