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5): 1부 1장의 나머지 부분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사상이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의 1장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 교수는 1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웨민고백서', '사보이 선언', '침례신앙고백서' 속에 능동순종(active obedience)을 기술하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 교수는 능동순종 사상이 한 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고 역사적인 신앙고백서들을 통해 공식화된 교리라고 주장하였다. 이 세 개의 신앙고백서들을 '청교도 신앙고백서'라 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존 오웬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이분법적 정의를 고안했다는 주장은 세 가지 청교도 신앙고백서들이 모두 그 본질 면에서 동일하며, 그저 교회정치와 세례에 관한 용어만을 달리 사용할 뿐이므로 논박되어야 마땅하다. 이 교리를 종교개혁 당시의 모든 개신교인들과 이후 청교도들이 단순하고도 보편적으로 용인하고 견지한 교리이다.” (45 페이지)

능동순종 교리는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여 자신을 위한 영생의 권리를 획득했다고 하므로 심각한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이 청교도 신학의 교리의 시작과 형성 과정을 모르면 정통신학이라고 여기게 된다. 능동순종 사상은 그 정도로 치밀성이 높은 한 철학적 사변이다.
 

WCF와 능동순종

신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이후 ‘WCF’) 11장 1항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하나님은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고 칭하신다(롬 8:30, 3:24 참고) ... 그들 안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이나 그들이 이룬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며, 믿음 자체, 믿는 행위, 또는 어떤 다른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돌림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량을 그들에게 돌림으로써(롬 4:5-9, 고후 5:19-21, 롬 3:22,24.25,2,7,28, 딛 3:5-7, 엡 1:7, 렘 23:6, 고전 1:30,31, 롬 5:17-19 참조), 부르심을 입은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존할 때 의롭다함을 받는다.” (42 페이지)

WCF에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동)와 십자가의 죽으심(수동순종)이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칼빈처럼 ‘그리스도의 순종’이라고 기술했으나, 그 다음에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의미하는 '속량'이라는 단어를 별도로 언급하여 능동순종과 수동순종 구도를 엇비슷하게 맞추었다. 웨민총회에 참석했던 총대들의 신앙 배경은 매우 다양했었다. 그들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공동의 신앙고백서를 만들기 위한 타협점으로서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표현으로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을 은근하게 반영하고, 그 뒤에 '속량'이라는 표현으로 수동순종 사상을 반영하였다고 추측될 수 있다.

청교도 신학 추종자들은 WCF의 이 부분에 대해 “WCF도 사실상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을 구분하여 인정하였으나, 다만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아쉬워 한다. 신호섭 교수도 그렇게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에 참석한 신학자들이 이 주제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호섭 교수, 42 페이지)
 


웨민총회에 참석한 총대들 가운데 다수가 능동순종 사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F에 능동순종 사상과 선명하게 선을 긋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1642년에 시작된 ‘청교도 혁명’이라고도 불리우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 1642-1651) 때문에 WCF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1643년 6월, 의회의 다수를 장악한 청교도 운동 지지자들은 국왕 찰스 1세와 그의 권력의 기반이 되는 국교회에 대항하기 위해 국교회의 신앙고백 ‘39개 신조’(the Thirty-Nine Articles)를 대체할 종교개혁 신앙고백서 작성을 결의했다. 1643년 7월부터 신앙고백서 작업은 시작되었고, 순조로이 15항까지 작업이 진행되었다.

의회파들은 왕당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군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또한 신앙고백서 작업을 위해 잉글랜드보다 먼저 종교개혁을 이루어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도움을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웨민총회의 신앙고백서 작업을 잠시 멈추게 하였고, 1643년 8월, 잉글랜드 의회파 지도자들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에 참석하였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도 웨민총회에 참석할 것을 요청했고, 스코틀랜드의 군대를 보내 줄 것도 요청했다. 1638년부터 스코틀랜드도 잉글랜드 국교회의 신앙과 제도를 강요하는 찰스 1세의 군대에 대립하고 있었으므로 잉글랜드 의회파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양측이 함께 찰스 1세의 국교회 군대와 싸우기로 했고, 향후 전체 영국에 하나의 개혁된 교회(장로교회)를 세우자는 것 등에 관하여 합의를 보았다. 양측의 이 약속을 ‘엄숙동맹과 맹약’(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 1643년)이라고 한다. 1643년 8월, 스코틀랜드의 의회에서 먼저 그 조약을 승인되었고 다음 달에 잉글랜드 의회에서도 승인되었다. 1643년 9월, 웨민총회에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보낸 총대 8명까지 가세하여 장차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에 들어설 하나의 개혁된 교회, 즉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원래 국교회의 ‘39개 신조’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신앙고백서 작성이 더 크고 역사적인 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회중파와 스코틀랜드의 언약도-장로파가 공동의 신앙고백서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배운 존 낙스의 후배들인 스코틀랜드의 언약도-장로파들은 아담의 원죄를 영생과 모든 은사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 반역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반역한 죄인을 위해 속죄의 피로 하나님께 배상하심이 곧 '죄 용서'이고 '칭의'라고 믿었다. 그러나 칼빈에게서 배운 적이 없었던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로부터 시작된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은 영생이 없이 창조된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켰어야 했으나, 하나님이 율법을 지킬 능력도 주셨으나,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을 원죄로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대신 완전하게 지켜 영생의 권리와 의를 얻으신 것으로 믿었다.

향후 전체 영국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우려는 목적 하에 함께 WCF를 만들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양측이 원죄와 구원론에서 너무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공동의 신앙고백에 도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한쪽은 성경과 종교개혁의 신앙을 계승한 정통신학자들이고 다른 쪽은 윌리엄 퍼킨스로부터 시작된 특수한 이단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퍼킨스로부터 유래한 그 사람들의 원죄, 율법, 칭의에 관한 '특수 이단사상'을 명확하게 지적하지 않으며,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WCF 작성 과정에 총 12명의 회중파 청교도 목사들, 즉 존경받기에 합당한 능력을 가진 특수한 이단성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였는데, 현재까지 필자가 확인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토마스 맨톤(Thomas Manton, 1620-1677)
예레미야 바로우(Jeremiah Burroughs, 1599-1646)
윌리암 브릿지(William Bridge, 1600-1671)
필립 나이(Philip Nye, 1595-1672)
시드락 심슨(Sydrach Simpson, 1500-1655)

회중파 목사들 12명은 장로교 목사들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전체 회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저명한 자들이었다. 특히 토마스 굿윈, 토마스 왓슨, 토마스 맨톤은 전체 회의에서 반대하는 의견을 다루는 신학적인 기술은 탁월했다. 신호섭 교수의 책에도 WCF 작성에 참여한 청교도 목사들(특수 이단들)의 능동순종 사상이 기술되어 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의 능동순종

“그리스도는 능동적 순종으로 모든 의를 성취하였다(마 3:15 참고). 그리스도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였다. 그분의 거룩하신 삶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를 위해 그 율법에 순종하셨다. 또는 그리스도는 수동적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책이 그리스도에게로 옮겨 가고 전가되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97-98 페이지)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의 능동순종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그 분은 결코 율법의 지배를 받지 못하셨을 것이다 ...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만 남아 계셨다면, 그 분은 율법을 준행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공로를 쌓지 못하셨을 것이다.” (111 페이지)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600-1671)의 능동순종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으로 의롭게 되는가?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바이다. 칭의에는 두 가지 본질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죄의 사면(forgiveness of sins)과 의의 전가(imputation of rightouness)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책이 사라졌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완전히 의롭게 된다.”(40 페이지)
 

이 사람들이 제 아무리 유명하고 똑똑했다고 해도 성경을 이길 수는 없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과 피 흘리심이 우리의 칭의와 속죄의 원인이라고 말씀한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시어 우리에게 의를 전가했다는 설명이 없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성경과 다른 내용의 복음을 믿는 존경할만한 특수한 이단성을 가진 회중파 총대 12명이 WCF 작성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존경을 받기에 합당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특수한 이단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한 것인가? 원죄와 구원론이 성경과 다르면서 이단이 되지 않는 길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경종을 울리기 위해 특수한 이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웨민총회는 종교개혁 진영이 국교회 측과 생사를 건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국교회를 대체할 종교개혁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앙고백서를 만들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종교개혁 진영의 단합이 중요시되었으므로 그때까지 정체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존경받을만한 특수 이단들을 심각성을 깔끔하게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WCF는 칭의에 관한 부분에서 회중파 청교도들이 100% 만족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내용을 삽입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량'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WCF의 본래 취지는 곧 파손되었다. 군사적 성공으로 의회의 실권을 장악한 회중파 청교도 신자 올리버 크롬웰의 군대가 스코틀랜드로 진격하여 압승하였고,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를 말살시켜 버렸다. 내전에서 패한 국왕 찰스 1세 처리에 대한 이견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스코틀랜드 언약도-장로교회는 잉글랜드 국 교회를 상대로 종교개혁을 주장했다는 면에서는 같은 청교도였으나, 크롬웰과 잉글랜드 군대와 싸울 때 스코틀랜드의 ‘언약도’(covernanters)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싸웠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의 신학을 계승한 언약도들과 잉글랜드의 윌리엄 퍼킨스의 신학을 계승한 회중파 청교도들을 정확한 동일 그룹으로 분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장로교와 길을 달리하기로 결정한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은 이후 자신들만의 신앙고백서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년)을 별도로 작성했다. 이때 회중파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이단사상, 즉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원죄-칭의론 신학을 다음과 같이 선명하게 기술하였다(11장 1항). 신 교수도 그 내용을 인용했다.

“하나님은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를 또한 무조건 의롭다 하시는데 ... 또한 믿음 자체를 전가하거나 믿는 행위 또는 그 어떤 복음적 순종으로써가 아니가 ‘율법 전체를 향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의 죽음을 통한 수동적 순종’을 그들의 모든 행위와 유일은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리하신다.” (41 페이지)

신호섭 교수는 존 오웬, 토마스 굿윈 등이 주도하여 작성한 사보이 선언이 마치 성경과 종교개혁과 칼빈의 신학을 계승하는 선상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었던 것으로 주장하였다. 청교도 신학 추종자들은 모두 신 교수와 입장이 같다. 처음부터 청교도 신학을 맹목적으로 배웠고, 한 번도 성경을 샅샅이 뒤지고 칼빈의 책들을 샅샅이 살펴서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영생에 실패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지켜서 영생과 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은 영생과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받은 아담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과 같아 지려고 반역한 것이 원죄라고 말한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 6:7)

성경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전가한 것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어 우리의 죄를 사하신 것이 곧 칭의이고 구속이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칼빈도 아담의 원죄를 존경할만한 특수한 이단성을 가진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처럼 율법준수 실패로 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교만과 반역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서철원 박사도 원죄를 율법준수 실패로 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할 존재인데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영원한 멸망과 죽음에 종속하였다.” (서철원, 그리스도론, 253)

“첫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을 반역하여(창 3:1-19) 하나님 백성 되기를 거부하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창 2:17; 3:19).” (서철원, 그리스도론, 264)

“그리고 언약을 체결하시어 사람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창조 주 하나님만을 섬기게 정하셨다 ... 이렇게 큰 호의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이렇게 하나님 하나님은 그의 인격과 엄위와 영광을 짓밟힘 당하고 무시당하셨다. 사람이 반역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로 결행하므로 그의 인격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하나님 섬김의 명령을 어기어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언약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주자가 되기로 하였다.” (서철원, 그리스도론, 195)
 

마지막으로 신호섭 교수는 침례교회 신앙고백 11장 1항을 인용하였다.

“하나님은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 칭하신다. 이 칭의는 그들에게 의를 주입함으로써가 아니라 ...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전하여 주심으로 (그 분의 의를 그들의 의로 간주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 전체에 대해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전가하여 주시고, 죽음을 통해 수동적 순종을 전가하신다.” (44 페이지)

침례신앙고백에 능동순종 사상이 나온다고 하여 능동순종 교리가 정통 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침례파 청교도의 조상은 존 스미스(John Smyth, 1570·1612)이다. 그는 원래 국교회의 목사였고 동시에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 운동에 속하였던 사람이었다. 1606년에 네덜란드로 망명하였고, 그곳에서 재세례파 이단사상을 접한 후 침례파 청교도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배경이 회중파 청교도 사상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능동순종 사상을 수용하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맺는 말(신 교수에게 드리는 부탁의 말)

신호섭 교수는 능동순종 교리가 거짓 신학이고, 윌리엄 퍼킨스를 필두로 그것을 발전시킨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이 원죄와 구원론(행위언약)에 관해서는 존경할만한 특수한 이단이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만 한다. 그들과 연관된 역사적인 신앙고백서들, '웨민고백'(1647), '사보이 선언'(1658), '침례신앙고백'(1677, 1689)이 그들의 원죄와 구원론에 대한 특수한 이단성의 영향 하에 작성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땅에서 사탄을 이롭게 하는 신학을 전파하는 도구가 되어 불행하게 사는 교수가 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