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2): 지은이 머리말 부분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자세하게 살펴보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이다. 기독교는 성경의 종교이고, 잠시라도 우리의 신앙이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유명한 인물들이나 현재의 누구라도 성경에서 벗어난 신앙의 주장을 한다면, 우리는 합심하여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 교수의 ‘지은이 머리말’을 살펴보려고 한다. 독자들이 신 교수가 빈번하게 사용하고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말에 현혹되기 쉬울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 날 교회와 신자는 그리스도의 순종 앞에 나아와 다시 금 배워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수행하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가 우리의 구원과 행위의 유일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순종을 완성하셨습니다(빌 2:8 참고). 그러하기에 바울도 우리에게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명령합니다(빌 2:5 참고).”(16 페이지)

“이 책이 추구하는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을 바로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17 페이지)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우리의 율법의 행위나 공로 때문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은 신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빌 2:12 참고).”(17 페이지)

“부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기를 소원하며, 그 결과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본받아 하나님의 계명과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18 페이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이란 무엇인가?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심까지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 만을 떼어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고 할 수 없다. 성육신만을 떼어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말할 수도 없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육신자로 오시어 지상에서 보내신 전 생애 동안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중에서 마지막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리스도의 순종의 최고의 정점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인이 의인으로 변하게 된 원인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드리신 순종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그러나 여기에 아주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 때문에 많은 죄인들이 의인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죄인에게 ‘의’를 전가하였고, 십자가의 죽으심이 ‘죄 사함’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도 바울의 다른 글들을 보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칭의의 원인이라는 사상은 전혀 없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신호섭 교수도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무척이나 강조하였다. 그런데 신 교수에게 독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트릭이 있다. 이 트릭은 신 교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이전에 배운 것이고, 지금 배운 대로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나쁜 트릭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하나의 순종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둘로 나누는 트릭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율법준수)로부터 칭의가 유래하였고, 그리스도의 순종(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죄의 사면이 유래하였다는 사상이다. 똑 같이 그리스도의 순종이므로 독자들을 어렵게 한다.

성경 속에는 칭의를 얻어서 전가하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그리스도의 순종)을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 성경은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율법의 지배 아래 태어나셨고, 죄인을 향한 율법의 요구대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고 가르칠 뿐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일반적으로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약 613 종류의 계명들을 주셨다고 본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많은 계명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부 지키셨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는 내용이 성경에 없다. 출생 8일 후 어머니의 품에 안기어 할례를 받으셨고, 약 한달 후에 또 어머니의 품에 안기시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어 어머니 마리아의 출산과 관련된 의식을 행하셨다고 성경에 나온다. 그 외에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법을 지키시려고 안간 힘을 쓰시는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신호섭 교수/올곧은교회 담임
신호섭 교수/올곧은교회 담임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태어나시었고(갈 4:4),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계명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키려고 노력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를 드러내고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 대신 죽으시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에도 순종하시어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다. 이 방식으로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이루시었고, 율법의 마침이 되시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이란 바로 이것이다. 칼빈도 이런 뜻으로 그리스도의 순종이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묻기를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 버리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없애며, 의를 얻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와 친절을 품으시게 만드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데 곧 그의 복종 생활 전체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이 점을 증명하는 바울의 증언이 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느니라"(롬 5:19). 참으로 바울은 다른 구절에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하는 용서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에 확대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갈 4:4-5).(기독교강요, 2.16.5)

사도 바울처럼, 칼빈도 그리스도의 순종을 율법 아래 태어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의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으로 이해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 우리의 의가 되었다고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능동순종 사상을 강하게 거부하는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의 순종을 사도 바울이나 칼빈처럼 강조한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롬 5:17-19).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롬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165)

그리스도의 순종을 이렇게 강조하는 서철원 박사가 언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의 순종으로 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하였다고 가르치던가? 사도 바울 -> 칼빈 -> 서철원과 올바른 개혁신학자들이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순종이 죄인에게 의를 주었다고 하지만, 모두 청교도 신학이 만든 능동순종 사상을 거부한다. 능동순종 사상은 종교개혁자들과 칼빈에게서 유래한 신학이 아니고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에게서 탄생한 어긋난 돼지의 발톱 같은 것이다. 청교도들은 바울 같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하면서 묘하게 그리스도의 순종을 두 갈래로 찢었다. 한 갈래(그리스도의 율법준수)에서 의가 유래하였고, 또 한 갈래(십자가의 피)에서 죄의 사면이 유래하였다며 마치 둘로 갈라진 돼지 족발 같은 신학을 만들었다.

신호섭 교수가 자신의 책의 ‘지은이 머리말’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어떻게 강조했는지 다시 보자!

‘교회와 신자는 그리스도의 순종 앞에 나아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기를’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만이 우리를 의롭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 내 것이’

신 교수는 이와 같이 칭의의 원인이 되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했다. 그런데 신 교수가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내막과 의미는 사도 바울, 칼빈, 서철원과 정통 개혁신학자들이 가르친 것과 다르다. 사도 바울, 칼빈, 서철원 등의 개혁신학자들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극치를 이룬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이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신 교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이 죄의 사면을, 그리스도의 철저한 율법준수 순종이 칭의를 얻게 했다고 한다. 결코 같은 신학이 아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내용이 있다. 신 교수의 이 말을 보라!

“부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기를 소원하며, 그 결과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본받아 하나님의 계명과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18 페이지)

신 교수의 이 주장에는 더 무서운 거짓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신 교수가 우리에게 율법의 선행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라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 교수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본받아 하나님의 계명과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신호섭 교수)

“이 책이 추구하는 결론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을 바로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17 페이지)

그리스도가 능동순종(율법준수)하여 의를 얻었으니,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우리들이 마땅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율법준수(능동순종)를 위해 힘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신 교수의 이 주장은 갈라디아에 잠입하여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계속 율법을 지키라고 엉뚱한 소리들을 하다가 사도 바울에서 저주를 선고 받은 그 이단들의 주장과 어떤 면에서 다를까?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자! 신약 성경의 어디에 구원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율법 준수에 힘써야 한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있는가? 물론 죄와 방종을 일삼고 양심의 가책도 회개도 모르는 무율법주의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신약의 성도가 삶으로 율법을 이루어내는 방식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말씀과 성령의 법으로 인가? 능동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의 노력과 결단인가?  

마귀가 청교도들을 통해 만들어 낸 무서운 트릭이 신 교수를 통해서도 정교하게 펼쳐지고 있다. 많은 청교도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 죄인들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지켜 얻으신 의를 전가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성도에게 율법 학교의 몽학선생으로부터 완전한 졸업장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힘써 율법을 지키고, 또는 회개와 믿음의 새 율법을 잘 지켜서 자신의 신앙과 의를 증명해야 한다. 신약에도 마땅히 율법을 잘 지킴이 구원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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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