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2 06:05 (화)
11월의 현란한 기도 이벤트
상태바
11월의 현란한 기도 이벤트
  • 김선주
  • 승인 2019.12.06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주 목사
김선주 목사

해마다 11월이 되면 교회들 속에서 작은 파동이 인다. 오륜교회에서 11월 1일부터 21일까지 행하는 ‘다니엘의 기도회’ 때문이다. 이 기도회가 지금은 90여개 교단과 12,000여 교회가 참여한다고 자랑하는 ‘글로벌 기도 이벤트’가 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중소형 교회들이 인터넷과 방송으로 다니엘기도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우리 교인들도 나에게 작년부터 ‘다니엘 기도회’에 참여하자고 한다. 작년에는 대충 타일러서 그냥 넘어갔는데 올해도 또 하자고 한다. 은근히 속이 상한다. 교인들이 내 설교에 만족하지 못해서 다른 교회의 간증이라도 들어야겠다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유치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비위가 많이 상한다.

첫째, 대형교회가 물적, 인적 자산으로 한국 교회 전반의 신앙과 정서를 흡입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거대한 예배당과 세련된 무대, 풍부한 네트워크, 정교한 시스템, 화려한 스탭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다. 간증과 통성기도 프로그램은 시각적으로 관중을 압도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인들의 무의식 가운데 대형교회의 성공신화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지질한 개척교회나 자산이 빈약한 중소형 교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화려한 무대와 시스템을 통해 소위 은혜 받는(?) 교인들이 선택하고 지향하게 되는 것은 대형교회일 수밖에 없다. 대형교회와 그들의 프로그램이 모든 교회와 예배의 전범이 되는 것이다. 각각의 교회들이 갖고 있는 특수성과 고유성이 사라지게 된다.

둘째, 기도회가 간증을 모토로 진행된다는 점이 우려된다. 간증은 타인의 신앙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내 신앙의 지경을 넓히는 수단이다. 하지만 간증이 모든 신앙의 전범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그간의 많은 간증집회들이 보여주었다. 간증은 유사경험을 통해 신앙의 행태를 단순화시킬 우려가 있다. 각각의 고유한 사유와 신앙 경험의 다양성이 단순화될 우려가 있다. 특히 성공신화가 간증의 콘텐츠가 될 때, 그 간증은 많은 사람의 신앙이 성공신화를 낳기 위한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다.

셋째, 다니엘이 세이레, 즉 21일 동안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을 근거로 하여 21일 동안 기도회를 한다는 취지에서 이 기도회를 기획한 교회와 인도자들의 신학적 저급성을 볼 수 있다. 다니엘서의 신학적 주제와 무관하게 기도하면 응답받고, 그 응답이 곧 기도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수능 기간에 기도회를 잡은 것도 그런 목적을 의심케 한다. 사실은 ‘수능대박 기원기도회’의 다른 이름 아닐까?

다니엘의 기도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중요한 신학적 문제는 자신의 지위나 명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적 아픔을 하나님 앞에 홀로 엎드려 애통하는 마음과 자세였다. 그런데 이런 떼거리 통성기도를 통해 다니엘의 기도 성취를 흉내 내겠다니, 이건 다니엘의 껍데기만 취하자는 짓이다. 다니엘의 기도 내용은 없고 기도 시간과 기도 결과로써의 응답만 존재하는 꼴이다. 다니엘이 기도는 왜 했는지 도대체 깊이 고민해보지 않고 그의 기도 외피와 응답이라는 단순한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이다.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사기를 치던 한 인사가 급기야 목사가 되어 그 장사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제 아예 다니엘의 이름으로 교회가 기도 장사를 하는 꼴이다.

이러한 기도 이벤트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과연 일상에서 하나님과 스스로 소통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거창한 이벤트나 종교적 의례 없이 일상에서 스스로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종교적 이벤트를 극도로 꺼려한다. 우리교회의 표어가 <삶이 예배가 되는 교회>다. 교회와 의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호흡하는 신앙인으로 만드는 게 내 목회의 지향점이다. 그러려면 기성교회들에 의해 길들여진 이벤트화된 신앙생활, 교회와 제도, 프로그램에 갇힌 의식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 나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자꾸 남들이 다 하는 이벤트를 우리는 왜 안 하냐고 조르니 나도 대략 난감해진다.

차라리 교인들과 함께 다니엘에 관한 좋은 주석서 한 권 택하여 읽으며 한 달 동안 성숙해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음이 편치 않아 김근주 교수의 <다니엘처럼: 낯선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를 뽑아들고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휘리릭 훑고 나니, 이 시대의 교회들이 더욱 가슴에 맺힌다. 기도 이벤트에 줄을 선 교회들과 교인들이 아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