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경을 읽을 때 다음의 이 구절에 마음과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구약의 제사법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을 상징하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곡식 가루의 제물(소제의 예물)을 드릴 때, 올리브 기름과 유항을 섞어야만 했고(레 2:1), 그리고 절대로 누룩을 섞지 말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어떤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올리브 기름과 유향은 어떤 것인가? 이것들을 음식에 가미하면 더 먹고 싶게 만드는 좋은 냄새가 날 뿐 아니라 실제로 음식의 맛이 더 좋아진다. 누룩은 어떤 것인가? 누룩은 음식이 발효되게 한다. 발효된다는 것은 인체에 해를 미치지 않도록 썩힌다는 것이다. 가루 반죽에 누룩을 섞으면 몸에 해롭지 않게 발효되고(썩혀지고) 부드러워지고 맛은 더 좋아진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과학적 의미 안에서 누룩에 관한 제사법을 제정하셨을까? 안식일  교회 교인들은 구약의 제사법과 음식법을 인체의 건강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룩은 음식의 본래의 특성과 모양을 변화시킨다. 누룩이 들어가면 본래의 것과 유사하지만 다른 특성과 모양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음과 은혜를 유사한 '다른 복음'과 '거짓 은혜'로 변질시켜 죄악된 사람의 구미에 맞도록 고쳐버리는 것을 누룩으로 상징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법은 그 어떤 제물에도 누룩이 들어갈 수 없게 규정했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출 12:15)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레 2:5)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6:16)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들과 제사를 위해 일하는 제사장들이 먹는 음식에 누룩이 없어야 한다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 섬김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왜곡하는 그 어떤 요소가 하나님 자녀들 속으로 들어오게 용납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예수께서도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구원의 진리를 왜곡하는 가르침을 ‘누룩’이라고 표현하시면서 강하게 경고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마 16:6)

예수께서 구원의 진리를 대적하고 왜곡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종교와 사상을 누룩으로 비유하면서 제자들에게 본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신 것을 보면, 구약의 제사법에서 등장하는 누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신앙을 변질시킬 수 있는 거짓 복음, 거짓 영, 거짓 교훈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그런데 구약에서 유일하게 누룩을 섞어서 만든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도록 명하시는 내용이 있다. 오순절에 드리는 소제물이 그랬다.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레 23:17)

유월절 기간 속에는 반드시 한 번의 안식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안식일 다음 날이 초실절인데, 이날 들판에서 막 베어 온 곡식 한 단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때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그 곡식 단을 들어서 흔드는 동작을 취했는데, 그것은 모든 죽은 자들을 가운데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행동이었다.

그날부터 49일이 지나면 오순절이다. 오순절에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누룩을 넣어서 만든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드렸다. 왜 오순절에는 누룩을 섞어서 만든 떡 두덩이를 드리도록 명하셨을까? 매우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설득력있는 해석은 장차 나타날 신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유대인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나, 오순절 성령강림부터는 이방인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 떡 두 덩이는 기존의 유대인 외에 이방인도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됨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오순절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떡 두 덩이 속에 누룩도 섞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해석하기에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있고 많은 토론들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신약의 교회와 구원받은 신자들 안에 여전히 죄와 위험요소들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진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신약의 성도들과 교회 속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집어넣으신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죄에 물들었고 본질적으로 타락하여 마귀와 짝할 수 있는 죄인들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의 교회들은 부풀지 못해서 안달이다. 일단 한번 부풀고 나면 사람들이 절로 찾아오고 모여서 더 부풀어 오른다. 크게 부풀어 오른 현대 교회들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스도의 복음과 참 하나님 섬김의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다.

1)무슨 목적으로 부르는지 모를 신나는 떼창(찬양)

2)일단인지 삼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상

3)아무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는 설교

4)너무 진하지 않게 적당히 베여있는 신사도-은사주의 성향

5)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영광을 누리는 분위기

6)아주 감칠맛 나는 거짓복음-청교도주의

크게 요란스럽게 부풀어 오른 교회들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이 어김없이 있다. 예수께서 경고하신 누룩들이다. 이런 종류의 누룩들이 가미되지 않으면 교회를 찾아 떠도는 교인들의 관심을 끄는 영적인 음식이 되지 못한다. 누룩이 들어가야 성장하는 교회가 된다.

과연 예수께서 누룩이 들어가서 부풀어 오르는 신앙 공동체를 원하셨을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하나님은 쉽게 부풀어 오르는 신앙 공동체를 설계하시지 않았고, 그런 교회를 원하신다고 한 번도 말씀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복음 위에 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참된 교회가 큰 규모일 수 있다고 거의 가르치시지 않았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고 거칠고 딱딱하다. 그래서 대중이 입에 맞다고 하지 않는다. 교회는 대중의 입맛에 맞아야 하는 것인가?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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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