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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김은호 목사)가 주관하는 다니엘 기도회 찬양 장면

오늘 읽은 성경 말씀 속에서 특별히 다음의 구절에 마음과 눈길이 머물렀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 39:43)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백성의 삶과 신앙을 연습하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는 십계명과 각종의 계명들(율법)과 성막과 제사제도가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서 착각하는 것 한 가지가 있다. 구약의 율법이 하나님이 구원을 주실 사람들에게 구원의 방법으로 주셨다는 오해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제사 등과 관련된 각종의 계명들이 주어진 시기는 이미 수 없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이 나타나고 난 후였다. 노아, 아브라함 등의 구원받은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은 율법과 무관하게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노아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았다고 볼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노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구원받았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었다. 신약의 사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고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신 사건을 신약의 세례와 성찬과 일치시켰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을 믿음으로 중생한다. 그리고 후에 세례를 통해 중생한 하나님 백성되었음을 사람 앞에서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먹고 마시는 성찬에 참여하게 된다. 동시에 말씀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신약의 신앙이다. 먼저 믿겠다고 작정하고, 말씀(행위, 율법)을 지키며 살면서 세례를 받으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따라 먼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나중에 세례 받는 것이고, 나중에 성찬에도 참여하는 것이고,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원리가 구약 시대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신약 성경은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세례를 받은 후에 광야에서 그리스도이신 신령한 음료, 즉 성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까지 율법은 주어지지도 않았다. 율법을 더 나중에 시내산에 이르러서 주어졌다. 먼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면, 세례(홍해)와 성찬(반석의 생수) 이전에 시내산의 율법이 먼저 주어졌을 것이다.

사람의 행위, 즉 사람이 스스로 믿음을 취하는 것,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의 자격을 만드는 것, 사람이 스스로 각성하여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 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사상이나 교리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즉 구약에서는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 신약에서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동일한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성화가 일어난다. 성화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자신을 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다보면 이 부분에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고 성화를 구원받은 자의 투쟁과 율법준수로 이루어 내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어떤 때에는 만일 누군가 율법을 제대로 지켰다면 그것으로 구원을 얻었을 것이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십계명, 제사 제도, 성막, 그리고 각종의 계명들이 주어지는 출애굽기에 대한 독서와 연구를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방법으로서 제사와 율법을 주시지 않았다. 율법과 제사는 이미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신앙과 삶의 원리로서 주어졌다. 행위구원, 율법구원, 신앙의 발전(깨달음)과 관련된 단계적 구원, 신인협력구원, 구원에 대한 인간의 동의, 조건, 역할에 근거한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회중파 청교도 구원론),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믿음과 성화에 의한 구원 ... 이런 사상들은 출애굽기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짓 신앙이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 39:4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셨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출애굽기의 하나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대로 실천했으므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알아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대로 행해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거짓 신앙, 즉 이단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주변 친척들 가운데 이미 두 가정이 신천지 때문에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모두 장로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나가는 교회의 친척 목사는 힌돌산 기도원(윤석전)에 드나들고 있고, 여동생이 나가는 교회의 아는 목사도 불건전한 부흥에 환장하여 ‘셀’ ‘셀’ ‘셀’ ... 하면서 싱가폴의 거짓 사도에게 교인들을 데리고 가는 분이다. 문제는 그런 교회에서 당장 떠나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스스로 선생된 사람들이라 나의 말을 듣지도 않겠지만, 혹시 나오게 만든다고 하여도 그 다음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부지런히 하나님을 믿는다. 부지런히 찬양하고 기도하고 선교한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하라하신 대로 믿고 행하는 신앙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믿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토는 “성령 안에서 성경대로 믿는 신앙”이어야 한다. 그러나 마귀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교묘하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내용을 비틀고 왜곡한다. 이것이 마귀의 장기이다.
 

이번에 한국의 여러 교회들을 다녀보았다. 한국 교회의 실제 현장을 경험하였다는 면에서 아주 유익하였다. 세 교회에서 주일예배(오전, 오후)를 직접 경험하였다. 주중에 어떤 곳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회 등을 할 때 부르는 요즘의 찬양 분위기를 더욱 진하게 경험하였다. 어떤 특정 교회나 단체를 염두하고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전반적으로 한국 교회의 찬양이 기독교와 예배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기독교에서 찬양의 근본적인 목적과 기능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죄사함과 구원에 대한 감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예배에 나온 사람을 즐겁게 하고, 예배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용도로 발전되고,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용도로 발전되면 더 이상 찬양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사탄의 도구이다. 그런 찬양이 주를 이루는 예배에 취하여 사는 신자들의 신앙은 다음과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마귀 안에서 좋을 대로 믿는 거짓 신앙”
 

예배와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지 않는 합당한 찬양이 되기 위해서는 1)가사가 예배 찬양에 합당해야 하고, 2)가사를 표현하는 음악적 기법이 찬양에 합당해야 한다. 찬양의 가사는 1)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서 다시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내용, 2)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믿도록 권유하는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내용의 가사가 예배에 합당한 가사이겠는가? 특별수련회나 전도행사 등에서 사람에게 신앙을 권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의 신앙을 고무시키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찬양은 예배에서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존귀하심보다 예배드리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지는 분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사도운동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사의 문제는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탄의 가르침이 찬양 가사를 통하여 노골적으로 신앙과 예배를 공략하고 있다. 거짓된 성령사상, 거짓된 예언사상, 비성경적인 은사주의 ... 등의 가르침을 내포한 가사들이 예배 시간에 노골적으로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사탄을 칭송하는 거짓 예배로 변질되어 버린다.

가사의 문제보다 더 분간하기 어려운 것은 가사를 표현하는 음악의 기법이다. 국가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일반적인 군인을 훈련시킬 때 이용되는 군가를 생각해 보라! 일반적인 군인들과는 달리 반드시 자신이 죽어야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가미가제 특공대와 같은 자살특공대 요원들이 불렀던 노래를 생각해 보라!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특수한 음악 기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단순히 가사의 문제가 아니다.

라스베가스의 도박장에서 이용하는 배경 음악들을 연구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았는가? 술집에서 매출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음악들의 특징을 연구해 보았는가? 자살한 가수들이 생전에 불렀던 노래의 특징을 연구해 보라!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일깨워 부지런히 일하게 만드는 노래들, 독재정부가 국민들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해 퍼드리는 대중가요를 연구해 보라!

결코 단순한 가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사를 표현하는 음악 기법의 중요성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음악 기법은 사람의 정신과 자세를 지배하는 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합당한 음악기법은 반드시 있다. 반대로 이단들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지배하기에 좋은 음악기법도 있다. 사탄의 거짓 역사를 일으키기에 좋은 음악 기법도 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1)무속인들에게 아무런 음악 도구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2)무속인들에게 오직 피아노만 사용하게 하는 것,
3)무속인들이 장고, 꽹과리, 징 등 뭐든지 원하는 대로 사용하게 하는 것

어떤 것이 접신과 신내림 굿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가장 비효율적인 것인지 생각해 보라! 누구나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찬양으로 예배와 기독교를 위협하는 교묘한 방식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들의 사탄과의 접신을 위해 유리한 찬양이 발전되고 있다. 점점 거짓 은사들이 교회에서 넘쳐나는 것과 찬양이 예배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발전되는 것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외국의 많은 전문가들도 신사도 운동과 거짓 은사주의 교회들의 특징이 위험한 음악기법과 연관된 찬양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접신에 유리한 찬양과 설교의 공격을 심각하게 받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더 암울한 사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 있고 사람 있는 단체들과 교회들은 점점 더 그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야 규모가 유지되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기 때문이다.

다니엘 기도회하는 김은호 목사가 담임하는 오륜교회의 찬양영상을 보면 정말 심각하다. 찬양이라고 보기 어렵다. 김은호 목사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돈과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는 있을 뿐이다. 돈 있고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인터콥 모임, 또는 인터콥 정서가 강한 교회에서 그런 찬양을 잘 한다고 여러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최근에 내가 본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인터콥이나 오륜교회나 ... 어느 교회나 단체나 ... 사람이 많이 모여서 기독교 신앙에 위협이 되는 그런 노래들을 떼창하면서 은혜(?)를 받는다면, 그것은 불건전한 것이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청교도 목회자들이 목메고 있는 시편 찬송이 좋다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시편의 내용은 아직 그리스도의 구속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구약 시대의 계시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죄사함과 구원이 아직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음악 기법이 건전하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찬송으로서 기능에 한계가 있다. 특히 한국의 청교도 목회자들의 사상은 회중파 청교도 사상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거짓 신학을 우상시하고, 원죄, 행위언약,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 회심준비론 등의 성경과 종교개혁 신학을 대적하는 요소가 강하다. 그런 문제들이 중세풍의 음악으로 포장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더욱 속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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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