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은 계 22:18절의 저주를 받은 흉한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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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웬은 계 22:18절의 저주를 받은 흉한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 정이철
  • 승인 2019.11.09 07: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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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목사님의 글들을 읽고 청교도 문제가 결국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회중파 청교도 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청교도 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 모두가 결국 그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에 빠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최고의 청교도 신학자라고 알려진 존 오웬에 대해서는 목사님의 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존 오웬의 신학의 핵심적인 문제를 쉽게 요약하여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변>
아직까지 존 오웬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에는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동안 늘 존 오웬에 대한 공부가 청교도에 공부의 방점을 찍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데, 미국으로 돌아갈 때 존 오웬의 책들을 구해서 갈 생각입니다. 미국에 돌아가서 차분한 일상을 살면서 존 오웬의 책들을 읽고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제가 에드워즈에 대해서 했던 것처럼, 존 오웨에 대해서도 문제들을 설명하는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제가 존 오웬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은 비성경적인 능동순종 교리 논쟁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떤 분이 말해준 내용입니다. 존 오웬의 책 <성도와 하나님의 교제>의 151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어떤 이들은 이 순종이 그의 피흘림과 몸을 드림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예수)의 죽음만이 오로지 우리의 칭의, 우리에게 전가된 모든 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예수)의 순종은 순수한 순종의 행위로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순종으로 간주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예수)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

위 내용은 존 오웬의 구원론의 핵심이고 동시에 회중파 청교도 신학의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위 내용만을 본다면, 저는 존 오웬이 진즉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이번에 한국에 와서 신천지 때문에 저의 친척 가운데에도 가정의 비극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천지도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성령 안에서 성경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 종교가 너무도 많으나 그들 가운데서도 신천지는 가장 유별나고 심각한 것 같습니다.

세상의 뱀들이 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흉측하고 징그러운 뱀도 있고 예쁘고 징그럽지 않아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집에서 기르는 뱀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성령 안에서 성경대로 믿지 않는 이단 사이비들도 마찬가집니다. 신천지 같이 누가 보아도 심각한 이단 사이비도 있고 존 오웬을 비롯한 회중파 청교도 같이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고 오히려 더 탁월한 신학으로 보이는 비성경적인 사상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령 안에서 성경대로 예수를 믿지 않는 다는 면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오직 성경입니다.

하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원리와 근거는 오직 성경의 말씀에 속에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들을 대신하여 성자 하나님께서 죄 없는 한 사람으로 오시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와 배상의 피를 흘리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의’(영생의 권리와 자격)가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그 무슨 선행(율법준수)이나 죄인의 어떠한 행위가 아니라 죄인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칭의와 구원이 주어진다고 가르칩니다. 다음의 사도 바울의 말들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딛 2:14)

성경은 죄인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지 그리스도가 사람을 대표하여 선행(율법준수)한 것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기독교의 중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영원히 자랑하고 의지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다음의 사도 바울의 말들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우리의 칭의와 구원의 핵심적 근거와 원인은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기독교의 기둥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종교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 안에서 성경대로 예수 믿는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거짓 지혜를 받은 자들이 시작한 회중파 청교도는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자신들도 이미 다음의 성경 말씀이 경고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학을 추종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같은 저주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회중파 청교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열성적이나 하나님의 복음에 자신들의 사변을 더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라고 하신 경고에 정확하게 해당됩니다. 성경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속죄의 보혈 때문에, 그리고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에 연합됨으로 하나님이 의롭다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성도의 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신하여 모세의 율법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고 하고, 그것이 믿는 죄인들에게 전가된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고 또한 자신들의 사변을 추가하였습니다. 다음의 존 오웬의 말을 보십시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 어떤 이들은 이 순종이 그의 피흘림과 몸을 드림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예수)의 죽음만이 오로지 우리의 칭의, 우리에게 전가된 모든 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예수)의 순종은 순수한 순종의 행위로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존 오웬)

존 오웬은 성도의 의(칭의)의 근거와 원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오히려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칭의의 원인이라고 믿는 일반 성도들의 성경대로 믿는 신앙을 “어떤 이들은 이 순종이 그의 피흘림과 몸을 드림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예수)의 죽음만이 오로지 우리의 칭의, 우리에게 전가된 모든 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예수)의 순종은 순수한 순종의 행위로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은근히 비판하면서 죄인의 칭의의 원인을 그리스도의 전체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돌렸습니다.

존 오웬의 다음의 말을 보면 그가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인을 정하게 하여 칭의를 얻게 만드는 능력이 없다고 믿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예수)의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존 오웬)

존 오웬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보혈로 죄인을 의롭게 만들 수 있었다면 더 일찍 죽으셨을 것이나, 그리스도가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는 우리의 칭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오래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합니다. 더 오래 사시며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칭의를 위해 무엇을 하셨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전체 율법에 대해여 적극적인 자세로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로는 단지 우리의 죄만 사하시고(수동적 순종) 더 오래 사시면서 모세 율법에 순종하여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는(능동적 순종) 매우 특이하고 비성경적인 회중파 청교도의 구원론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딛 2:14)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이 죄인이 속죄와 칭의를 얻게 만드는 원인이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죄인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제 아무리 존 오웬이라도 칭의에 대한 성경 말씀에 자신의 사변을 더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지독한 독사들은 어미의 배를 찢고 세상에 나온다고 합니다. 존 오웬과 같은 회중파 청교도들은 어미의 배를 찢고 나온 그란 종류의 독사의 신앙(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 바르게 말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존 오웬도 사랑한다면, 그것을 성경 안에서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죽이는 독사 새끼의 거짓 신앙입니다. 문제는 국내에도 이런 독사의 거짓 신앙을 정통 신앙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합동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김병훈 교수도 존 오웬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깅병훈 교수(합신 조직신학/ 합신 동서울 노회)
김병훈 교수(합신 조직신학/ 합신 동서울 노회)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셨음을 말하는 것은 그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가 없는 자연적 의미에서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하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김병훈 교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이 필요한가에 관련한 토론의 초점은 그리스도께서 대리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무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김병훈 교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과 관련하여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순종으로 얻으신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가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주시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김병훈 교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순종으로 얻으신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가(를)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주시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 죄인들의 보증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속한 죄인들을 위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을 하시어 율법의 의를 이루심으로써 영생의 권리를 획득하시고, 그 권리를 행사하십니다.”(김병훈 교수)

“그리스도께서 만일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을 행하신다면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있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대리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자격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영생의 권리도 상실하게 되고 맙니다.”(김병훈 교수)

회중파 청교도 신학을 정통 종교개혁신학으로 믿고 있는 김병훈 교수도 그리스도의 율법순종이 죄인에게 영생의 권리를 주시는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십자가의 완전한 제물이 되시기 위한 요건이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얻을 수 없는 칭의를 얻으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특별한 신앙 작업이라고 합니다. 칭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을 부정하는 존 오웬의 신학과 동일한 사상입니다. 김병훈 교수는 더욱 더 심각하게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리스도 자신도 영생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김병훈 교수에게 배운 합신의 노승수 목사도 동일한 내용을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으시어 우리에게 전가하셨고, 만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 자신도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노승수 목사(예장 합신 동서울 노회)
노승수 목사(예장 합신 동서울 노회)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노승수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그리고 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7년 12월 14일)

“이 때 칭의란 바로 그리스도 속죄를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2일)

성경의 말씀에 인간이 사변이나 무엇을 더하여 예수 믿으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재앙들을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김병훈 교수나 노승수 목사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경고하신 저주받는다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들의 손상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바른 주장을 하면서 자신들의 거짓 신학을 드러내는 정이철 목사와 서철원 박사(‘바른믿음’이라고 표현)의 신학을 조사하여 달라고 자기 교단에 청원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아주 나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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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 2019-11-09 10:00:05
존 오웬은 그당시 종교적 혼란 속에 개혁신학을 지키려고 신학을 발전시켰다는데 칼빈과 어거스틴을 연구하는 것 외에 스콜라주의적 책도 많이 섭렵했다고 합니다. 이런 면이 이성을 중시하는 지금 신학자들에게는 더욱 더 학문적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오웬은 캔터베리 안셀름 (안셈)과 아퀴나스로 이어지는 괴상한 스콜라주의 신학을 개혁주의와 섞었습니다. 겉으로는 칼빈주의를 대표하고 종교개혁을 이어간 것 같지만 개혁신학의 타락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개신교의 신학은 배운자들의 학문이 되었으며 신학자들은 예수님 때의 바리새인과도 닮아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자는 신학을 모른다고 무시하면서 실은 자신들이야말로 신학교에서 배운 것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입니다. 존 오웬을 연구해야지 청교도를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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