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합니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 선다고 하네요.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 둔답니다. 살다가 또  화가 날 일이 생겨 분노의 감정이 솟아오르면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이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는 일도 생기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은 좌절감과 외로움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우리 마음에 억제할 수 없는 슬픔, 두려움,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솟아 오를 때, 그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능력을 잃게 되면 우리는 어느 새 그 감정들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맞게 됩니다. 좌절이 왜곡된 형태로 굳어지게 되면 적개심이 됩니다. 나와 내 주변을 병들게 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적개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그 감정과 친해져야 합니다. 친해져야 한다는 의미는 그 감정을 잘 살펴 알아보고, 대화를 나누며,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성찰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아가 또 다른 자아 (분노하는 자아)를 바라보고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보면 고통당하고 낙심하고 좌절한 자아를 또 다른 자아(믿음 안에 거하는 자아)가 말을 걸어, 위로, 책망, 격려를 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적개심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우리 내면에 등장할 때, 얼른 또 다른 나(자아)를 깨워 일으키십시오. 분노하는 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고, 다독이며, 스스로 돌아설 수 있도록 권면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심호흡, 쉬었다 감이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을 한자로 살펴보면,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에 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식(息)은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무에 기대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게 휴식인 것입니다. 나무에 기대어 내가 나하고 대화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휴식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돌보아 내면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고, 또한 이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내 삶의 건강을 회복할 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화평을 가져옵니다.

우리의 삶에도 막대기 하나 꽂아  두면 좋겠습니다. 그 나무 밑에서 마음이 휴(休)할 수 있게 그래서 부정적 감정으로 병들지 않게 자신을 돌보는 지혜를 간직하기 원합니다. 

 

서정곤 목사 / 세인트 루이스 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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