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구원받은 성도는 구약의 율법과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율법과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라면 율법의 내용들이 뭔지 들어 본 적이 없을지라도 율법들이 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경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그 사람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교지 어디에서나 오직 성령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성령이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도록 사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성도들에게 믿음을 격려하는 편지를 쓸 때에도 결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구약은 율법은 인간에게 구원을 발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온 적이 없습니다. 율법을 알기도 전에 이미 많은 구약의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하나님을 믿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노아는 율법이 뭔지 알기도 전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율법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하나님을 믿게하시는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기생 라합, 여호수아, 모세 ... 모든 구약의 위대한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최초의 사람 아담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 안에서 처음부터 구원받고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졌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 누구도 율법이나 무슨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을 얻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동의하지 못하면 기독교인의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영생과 누리는 모든 은사들과 능력들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 백성의 신분과 신앙을 스스로 파괴하였으므로 영생을 잃었고,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과 은사들을 잃었던 것입니다. 결코 아담에게 영생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법을 지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개혁신학의 아버지 칼빈도 이같이 가르칩니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기독교강요, 4.14.12)

구약의 율법은 이미 은혜로 구원 얻은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의 형식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그 원칙대로 실천하고 지키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지상에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

하나님은 구원 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그 원칙대로 살 수 없는 부패한 죄인들을 장차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급하여 적용하심으로 구약의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실천해야 할 삶의 원칙(율법의 내용)이 실현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입니다. 지상에서 십자가로 완성된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신자에게 적용시키는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롭 8:2)

성령의 법으로 인해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의 성품과 본성까지도 변화되기를 시작합니다. 성령으로 인한 변화가 일어나면, 율법이 뭔지도 모르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저절로 율법이 금하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싫어하게 되는 신비한 일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법으로 사람의 성품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과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받았고, 구원받은 후에는 여전히 율법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신자에게 적용하고 새 사람을 세우시는 성령의 법,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성화됩니다.

신약의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구약의 율법은 칼빈이 말한 것처럼 단지 ‘제 3의 용도’, 즉 이미 성화되어 가고 있음을 측정하게 만드는 거울과 같은 것 입니다.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구약의 율법과 일점의 상관이 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구원 후에 신자들이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야 마땅하다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한 글자의 표현으로 인하여 복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은 이신칭의와 법정적 칭의를 부정하는 회중파 청교도들의 핵심적인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고 동시에 율법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 사도 바울에게서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라고 판정받았던 갈라디아 이단들의 주장과도 명확하게 구별되지 못합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상관없이 구원받았고,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를지라도 성령의 법으로 성화가 진행되어가는 사람입니다. 성화는 율법이 말하는 바를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성화가 전혀 없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 후 신자들이 인위적으로 (신경써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가르침은 바울과 신약의 가르침과 다르고, 또한 그것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핵심적인 주장과 같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구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타나는 과정에 율법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전하거나,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고 요청하였을 뿐입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이 율법과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받았으나, 구원 후에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표현은 오해를 유발합니다. 오히려 율법을 포함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