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민고백의 원죄는 성경-개혁신학과는 다르고 회중파와 똑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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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고백의 원죄는 성경-개혁신학과는 다르고 회중파와 똑 같아
  • 정이철
  • 승인 2019.09.21 15:2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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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고백 19-1>

God gave Adam a law as a covenant of works. He required Adam and all his descendants to obey this law, individually, completely, perpetually, and in precise accordance with its provisions. God promised life for keeping it and threatened death for disobeying it, and he gave man the power and ability to keep it.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언약으로서의 한 법을 지키라 명하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영원하게 그리고 그 규정대로 정확하게 준수하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그대로 지키는 경우에는 영생을 약속하였고 그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에는 죽일 것이라고 위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대로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도 주셨다.)


웨민고백 19-2>

After the fall this law continued to be a perfect rule of righteousness and was given, as such, by God on Mount Sinai in the Ten Commandments, written on two tablets.

(타락이 발생한 후에도 그 법은 여전히 완전한 의의 표준으로 작용했고, 그리고 그 법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장로교의 표준문서인 웨민고백서 19장의 이 내용은 인간의 원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으신 상태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고 한다. 그 법을 각자가 완전하게 지키는 경우에는 영생을 주시고, 그 내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위협하셨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법을 그대로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고 한다.

웨민고백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담은 그 법을 그대로 지켜서 영생을 얻을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않아서 저주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영생을 가지지 못한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아담에게 법을 지키라고 명하셨다는 내용이 없다. 그것은 어떤  목적하에서 성경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사변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난 후 다음과 같이 기뻐하셨다고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은 아담이 그 법을 지키지 못하여 영원히 저주받게 될 것임을 이미 아셨을 것이다. 웨민고백서의 원죄에 대한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법을 지키지 못하여 영생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한 저주에 처해질 것임을 다 아셨을 것이다. 영생을 이미 주신 상태라면 모를까 영생을 받지도 못한 아담이 더욱 저 심각한 저주에 처해질 것을 아시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뭔가 매우 이상한 그림이고 모든 면에서 성경과 맞지 않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지으신 사람에게 은혜로 영생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힘으로 영생을 획득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므로 성경의 하나님과 맞지가 않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생 얻는 방법만 제시하시고 영생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일들은 모두 인간의 제량에 속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난 후 각자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완전히 행하여 구원에 도달하라는 행위구원 신앙이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이다. 

웨민고백서는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켰어야 할 법의 주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다.

“그 법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웨민고백 19-2)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키도록 명하신 그 법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핵심이 훗날 시내산에서 주어진 십계명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십계명의 내용을 보면,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켰어야 할 하나님의 법의 내용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심각한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1) 성경은 십계명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구약의 사람들이 무수하게 나타난 후 구원받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삶의 원칙으로 주어졌다고 한다. 십계명 유형의 법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수많은 구약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기생 라합 등 무수한 구약의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떠한 종류의 법과 아무 관련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선물하여 주시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노아에게 은혜를 주시어 하나님을 믿게 하시어 구원하셨다. 아브라함에게도 은혜를 주시어 하나님을 믿게 하심으로 구원하셨다. 율법의 왕자 모세도 그 어떠한 법도 알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기생 라합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모험을 감행하는 살아 역사하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웨민고백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수단이 어떤 법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구약 성경은 법이 오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택하신 자를 믿게하시는 은혜로 구원하셨다고 말씀한다.

2) 웨민고백서는 “타락이 발생한 후에도 그 법은 여전히 완전한 의의 표준으로 작용했고”라고 설명한다. 아담이 지키지 못한 그 법이 사람을 죽고 살게하는 표준으로 시종일관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직후 하나님은 무슨 법에 의하여 인간이 살거나 죽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아담의 타락 직후 하나님은 아담의 죄 값을 자기의 피로 해결하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신구약 성경 어디에도 웨민고백서가 말하는 아담에게 영생의 길이 되는 어떠한 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담의 타락 후 그 법이 여전히 인간이 살거나 죽게 만드는 영원한 기준, 즉 의의 기준으로 남는다는 내용이 없다. 성경은 사람을 살고 죽게 만드는 영원한 의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한다.

3) 죄가 들어오지 않았던 순정 상태의 아담과 이미 죄에 물들어 죄의 종살이 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후대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는 동일한 내용의 법이 주어졌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아담에게는 공경해야 할 육신의 부모가 없었고, 섬기지 말아야 할 우상도 없었고, 탐내지 말았어야 할 이웃의 아내도 없었다. 아담이 영생을 주는 법을 지키지 않아서 죽게 되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설명은 넌센스이다. 실제로 아담이 그랬다 할지라도 성경의 하나님은 단 한번으로 끝내어 영원지 죽이고 저주하시지 않으시고 한번 정도의 기회를 더 주었을 것이다.


 

성경은 아담의 죄가 하나님을 반역-배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7)

‘반역’, ‘배반’이라는 개념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영생을 비롯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들과 은사들을 후히 주시었음을 전제한다.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는 것 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해 주셨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사단의 도구로 쓰여진 뱀이 선악과를 먹으면 아담 자신도 하나님과 같은 신의 반열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그것은 이미 아담의 마음에 들어온 하나님에 대한 교만과 배반의 욕구와 일치한 것이었으므로 아담은 기꺼이 선악과를 범하였던 것이다. 영생을 얻기 위한 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저주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영생과 모든 은사를 후히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는 배반과 반역을 결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저주하고 죽이신 것이다. 아담이 영생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어떠한 법을 지지키 않아서 하나님이 저주하고 죽이셨다는 웨민고백서의 설명은 전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고, 성경의 말하는 아담의 원죄를 설명하는 내용도 될 수 없다.

그러면 대체 웨민고백서의 이런 내용은 어떻게 그 자리에게 삽입되었던 것일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우기 위한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여 웨민고백서가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설명되는 문제이다. 잉글랜드 회중파, 잉글랜드 장로파, 잉글랜드 침례파, 스코틀랜드 장로파 등을 대표하는 1,000여명의 학자들이 5년 동안 1,000번 이상의 회합 과정을 거치면서 웨민고백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벨직신앙고백서는 한 사람에 의해 비교적 단시간 동안에 작성되었다. 그러나 1,000명 이상이 1,000번 이상 회합하면서 준비한 웨민고백서에 비해 벨직신앙고백서가 비교할 수 없는 졸작이라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웨민고백서 작성 과정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각 종파들의 핵심 사상들을 고루 반영하는 내용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 종파들을 대표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각 종파의 신학을 고루 반영하는 문서를 만들기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무수한 모임을 가졌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웨민고백서가 말하는 원죄의 내용이 종교개혁자 칼빈이 가르친 원죄의 내용과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칼빈은 아담의 원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적어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2.1)

칼빈보다 더 칼빈 같다는 평가를 받는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아담의 원죄를 영생을 위해 주어진 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배반과 반역이라고 해석한다.
 

“인류의 원죄는 하나님 밑에서 왕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하나님같이 되려는 데서 성립한다.”(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4:그리스도론」, 163.)

“첫 인류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므로 곧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므로 죄인이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죽게 되었다(창 2:17).”(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4:그리스도론」,166)

참으로 이상한 것은 웨민고백서가 가르치는 원죄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이신칭의를 거부한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슨이 가르친 원죄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퍼킨슨은 원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7)

퍼킨스의 이 내용은 웨민고백의 원죄의 내용에 대한 설명보다는 다소 과격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이다.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상호간의 계약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제시하는 법을 철저하게 완전하게 지키면 구원을 주시고 지지 않으면 죽일 것이라고 위협했다는 웨민고백서의 원죄의 내용에 대한 설명과 같다.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8)

'행위언약'(the covenabnt of works)이라는 정확한 용어와 개념은 1602년에 죽은 퍼킨스가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가 죽고 40년 후에 회중파들과 함께 만든 웨민고백의 원죄의 내용 부분에 행위언약이라는 개념이 그대로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칼빈에게는 결코 행위언약 개념이 없었다. 영생을 위해 하나님이 지키라 명한 법을 준수하는 것에 따라 영생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행위언약은 회중파 청교도 신앙의 대들보이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능동순종론', '회심준비론', 구원의 열매를 율법준수라 주장하는 '율법주의' 등의 회중파 신학의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십계명이 행위언약, 즉 아담의 원죄의 내용과 깊이 관련되었다고 말한다는 것도 웨민고백과 회중파 신학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프롱크, 257)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율법은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바라볼 때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프롱크, 26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에서의 율법조차도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돌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프롱크, 258)

현대 회중파 신학의 거두 코르넬리스 프롱크도 아담이 율법 안에서 지어졌고, 아담은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얻었어야 했고, 아담이 영생하게 만드는 방법은 법준수였고, 그 법이 나중에 주어진 십계명의 내용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가르친다. 웨민고백의 원죄의 내용과 같고 퍼킨스의 원죄 사상과 같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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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사리 2019-09-24 11:09:57
예수믿음으로 칭의되어 구원받았으니, 이제 받은 칭의를 확증하는건 내 몫이니 내가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받은 칭의의 진위여부를 내가 증명해 내야한다!!! 이게 무슨 궤변인지

성화의 존재 목적이 받은 칭의를 증명하는 것인가요?

생활의 규범으로서 율법의 용도에 칭의를 증명해야하는 의무와 기능이 포함되어 있나요?

그렇게 중요한거라면 모두가 율법을 사력을 다해 지켜서 자신의 칭의를 증명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정도의 율법준수 실력을 확보해야 그 칭의가 증명이되나요??몇점을 획득해야하고 얼마나 유지해야 하나요??

정이철 2019-09-23 20:19:42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표현의 '아'와 '어'가 만들어 내는 차이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이 율법과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받았으나, 구원 후에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표현은 오해를 유발합니다. 오히려 율법 포함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고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됩니다.

구원 후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 받은 사람의 마땅한 자세라는 주장은 회중파 청교도의 핵심적인 주장입니다. 그래야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사도 바울에게 저주받은 이단들의 주장과도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이철 2019-09-23 20:14:18
구원받은 자는 율법과 상관없이 구원받았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자라면 율법이 뭔지도 몰라도 율법이 금하는 것을 스스로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디서나 성령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믿는 자들에게도 편지할 때에 단 한번도 그리스도인이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인간에게 구원을 발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온 적이 없고, 단지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은 구약의 사람들에게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원칙"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그 원칙대로 실천하고 지키며 살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 원칙대로 살 수 없는 죄인들을 장차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급하여 적용하심으로 구약의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실천해야 할 삶의 원칙이 실현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입니다. 지상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속을 신자에게 적용시키는 성령의 법으로 인하여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성령의 법으로 인해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성품과 본성까지도 변화의 조짐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율법이 뭔지도 모를지라도 자연히 율법이 금하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싫어하게 됩니다. 사람의 성품이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과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받았고, 구원받은 후에는 여전히 율법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신자에게 적용하고 새 사람을 세우시는 성령의 법,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성화됩니다.

신약의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구약의 율법은 (칼빈이 말한것처럼) 단지 제 3의 용도, 즉 이미 성화되어 가고 있음을 측량할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 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율법과 상관없이 구원받았으나, 구원 후에는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는 표현은 마치 이신칭의와 법정적 칭의를 부정하는 회중파 청교도들의 구원론과 같고, 예수를 믿고 동시에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사도 바울에게서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라고 책망받았던 갈라디아 이단들의 주장과 구별되지를 못합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상관없이 구원받았고,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를지라도 성령의 법으로 성화가 진행되어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 후에 인위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가르침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핵심적인 주장과 같습니다.

Minn 2019-09-23 09:46:07
개혁 신학자들의 법에 대한 설명을 보면 거의 대부분 사랑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법과 사랑을 따로 보는 것이겠지요. 법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시119편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법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문자적 법준수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결국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Minn 2019-09-23 09:35:22
이 프롱크란 사람은 과연 성경을 읽었는지 의심이 갑니다. 아니면 이해하는 지혜가 없는가 봅니다. 프롱크의 이론은 현대 개혁교회와 신학이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17세기때에 국가와 교회가 분리가 되지 않아서 법을 강조해야 했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 국민 전체를 다스리려고 했던 신학자들의 이론을 가져와서 앵무새처럼 말하고 법으로 후려치는 것이 과연 옛 바리새인들과 다를게 뭐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마음에 법이 새겨져 있었다면 예레미야서에 새 언약이 언급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담이 하나님과 율법을 사랑했다면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불쌍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원죄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개혁신학자들이 타락 전 아담을 미화시키는 것은 성경과 맞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라면 성도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완벽하게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아직도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문자적인 법준수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지식 안에서, 사랑의 참의미를 아는 지식 안에서 법은 그 존재목적이 있습니다. 성도는 영광의 순간에 도달할 때 더이상 문자적 법이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이 문자적 법준수가 아닌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흙에서 난 자가 법을 지킨다고 하늘에서 난 자가 되지 않습니다. 흙에서 난 자는 하늘에서 난 자와 반드시 연합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듯이 하늘에서 난 자이신 그리스도께서만 성부를 알고 사랑합니다. 성도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그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롬 8:9). 그렇기에 이 성령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렘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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