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완성으로 가고 있는 신학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전하지 못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신 지식이 참이 아니라거나 거짓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유래하였으므로 참 지식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거울을 통하여 보는 것과 같고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어서(고전 15:13:12) 완성을 필요로 한다.
이 완성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서 마주 볼 때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성에 이를 것이다. 인류의 목표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다. 첫 인류가 역사의 시작에서 창조주 하나님 모시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다. 역사의 끝은 허무가 아니고 처음 창조경륜대로 인류가 하나님 백성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실 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완전해진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뵈올 때 특별한 빛을 받아 합리적 영혼이 신화되어 하나님의 본질을 직관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종말에서 영광의 하나님 빛을 받아 영혼이 신회되어 본질을 직관하는 것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로마교회는 신되기를 구원 과정의 종국으로 삼는다. 이것은 하나님와 같이 되려고 한 원죄를 인류가 도달해야 할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계시가 주어지고 성육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통보 혹은 분여이다. 또 성육신도 신 존재의 통보를 위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인류가 마침내 신되기에 이른다.
칼 발트도 인간이 도달할 목표가 신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피조 수준의 한계를 벗어나 신의 존재와 합일한다. 이 일을 위해 성육신이 발생하였다. 성육신은 죄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과 합일 혹은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자기의 생을 다신다. 곧 하나님은 자기 존재 자체로 피조물을 끌어 올린다고 한다. 결국 발트는 신화를 목표하여 신학을 전개하였다.
19세기 매개신학도 인류의 신화가 인류역사의 목표이므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육신이 필연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지식의 완성은 피조물이 신이 되는 것을 결코 내포하지 않는다. 종말에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인간은 피조물로 남는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피조물로 살며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인 삼위일체의 신비를 들어다보는 신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므로 모든 지식이 완성된다. (서철원 박사, 신학서론, 1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