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진실시리즈(1)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불편해 한다. 그래서 최근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은 ‘내가 믿고 싶은 것’과는 달리 ‘실재’를 결과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관련한 진실은 기껏해야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 말하려고 하는 진실은 끔찍하다. 진실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실재를 결과한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영원한 멸망이라는 실재를 결과한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예상은 대단히 암울하다. 진실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13절,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좁은 문은 생명의 문이고 큰 문은 멸망의 문이다. 좁은 문은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신다. 멸망의 문은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신다. 이것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고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안된다. 예수님은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런 정황은 이어지는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 말씀을 통해서 명확해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 ‘그 날’은 심판의 날이다. 그 날까지 많은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와서까지 당당하게 자신들의 업적을 시위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에게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 이들은 스스로가 속은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속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명했는데 귀신이 쫓겨나갔다.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했다. 선지자 노릇한 것이야 인간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뚜렷이 증명할 무엇인가가 없지만 귀신이 쫓겨 나가고 권능이 이루어진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모세가 이적을 베풀 때 애굽 술사들도 앞의 세 가지는 따라 했다. 이적의 결과와 현상만을 놓고 보았을 때 말씀에 따른 분별력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분별을 하겠는가?

애굽 술사들은 사탄의 종들이다. 그들도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다든가 뱀을 다시 지팡이로 만든다든가,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한다든가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는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두아디라 교회가 용납했던 거짓 선지자 이세벨은 사탄의 종이다. 교회 안에 사탄의 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세벨이 애굽 술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적을 행하면 두아디라 교회 교인들은 그 이적에 열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적을 행한 자를 무조건 따르게 된다. 이세벨이 거짓 선지자였음을 기억하라. 그가 전하는 말씀이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적에 속은 사람들은 거짓 메시지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더욱 큰 문제는 이적이 나타난 교회에는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적과 거짓 메시지에 ‘은혜’(?)를 받은 자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뛰쳐 들어온다. 거짓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진리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 한 지역교회가 비대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교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신약성경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이적을 사탄의 미혹의 도구로 말씀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 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8-10)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말씀하는 ‘거짓 이적’이라는 표현은 눈속임의 마술같은 거짓의 의미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애굽 술사들이 행한 이적은 눈속임이 아니었다. 실제로 모세의 이적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을 ‘거짓’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이적을 행하는 자들이 거짓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아야 이해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 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 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여기서 ‘너희’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다. 사탄이 거짓의 아비이다. 예수님이 지상생애동안 지옥자식으로 심판하신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 밖에 없다. 그들은 회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렇게 사탄의 종들은 모두 거짓의 존재들이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거짓’이다. 이적의 현상이 똑같기 때문에 진리의 기준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이 사탄의 이적인지 성령의 이적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

과거 한때 소위 금이빨 사건이 기독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남미에서 있었던 기독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 치아가 썩어 충치가 생긴 사람들의 이가 금이빨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동안 잠잠하더니 최근에 다시 금이빨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이번에는 충치가 생긴 이만 아니라 아예 통째로 금이빨로 바뀌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믿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금이빨로 변한 것이 아니라 조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이전에 이미 금으로 치료를 했던 것이라는 증거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적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조작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것 같이 사탄도 얼마든지 인간의 치아를 금으로 바꿀 수 있다.

이 금이빨 사건에 대한 분별은 참으로 최소한의 것이다. 이것에 미혹되는 것은 이제 교회에는 정말 어떠한 진리의 기준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살펴보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인간까지 만드신 후에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가 나타나 있다. 피조물들에게 그 자체로서 무엇이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전능하시며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창조주에게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결과에 대해서 그 분 자신이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면 그 피조물들은 완벽한 것이었다.

우리의 눈, 코, 입, 머리카락 등등은 완전하고도 완벽했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우리의 치아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창조의 지혜가 현시된 것이다. 사람들은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같은 초인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심히 좋게 여기셨던 인간의 원래 모습은 곰이나 호랑이보다 빠르거나 힘이 센 것이 아니었다. 성경의 맥락을 보면 인간의 몸의 모습은 타락 전이나 타락 후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타락 전에도 호랑이처럼 빠르거나 곰처럼 힘이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래 이렇게 만드셨다. 물론 타락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고 상실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베푸신 구원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창조질서의 회복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물론 그 후에는 그 상태를 넘어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도 회복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을 고치셨지만 시력이 초자연적으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분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치셨지만 1,000 Km 밖의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면서 슈퍼맨을 만들지 않으셨다. 그런 분이 충치를 고치시는데 왜 금이빨로 고치시겠는가?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자체에 뭔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가 자신의 창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금이빨이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사람들이 자연적인 치아보다는 금이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는 ‘인간이 좋아하는’ 그 일을 통해서 인기를 얻는다.

성령의 이적과 사탄의 이적을 분별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하나님 그 분이다. 성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나 성품, 그 분의 역사나 섭리하심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연 나타난 현상들이 그 분이 하실 만한 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실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하실만한 일인가 아닌가가 그 기준이다. 전능하신 분이다. 그러나 절대로 안하시는 일이 있다. 그 분의 성품에 맞지 않는 일, 예를 들어 악과 관련된 일들은 절대로 하지 아니하신다. 어리석은 능력을 나타내는 일은 절대로 아니하신다. 제발 눈앞에서 돌이 떡덩이로 변한다고 열광하지 말라. 제발 어떤 사람이 137미터의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긁힌 상처조차 없다(마태복음 4장의 예수님의 시험을 참조하라)고 열광하지 말라.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하셨다(마 7:15). 그들은 ‘노략질하는 이리’다.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오지만 그들에게 잡히면 무자비한 죽음을 당한다. 이리에게 잡혀 먹히는 어린 양을 생각해보라.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신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 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탄에게서 났기 때문에 지옥의 자식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잡히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된다. “목사님에게 순종하라고 해서 순종했어요”라는 말은 하지 말라. 목사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신 선물인 ‘참된 목사’일 때이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인간적인 연약함이 보이면 정죄하기보다는 기도해야 한다. 그들과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한다(갈 6:6 참조). 거짓 선지자 이세벨이 목사로 있다면 그것을 분별하고 시험해서 내쳐야 한다. 그것이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았던 이유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거짓 선지자에게 속으면 희망이 없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찾는 이가 많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 모습이다. 이것이 ‘끔찍한 진실’ 첫 번째 이야기다.

 

한모세 목사(thdhan@gmail.com) / 그루터기 장로교회(아리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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