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중파 청교도 > 역사와 발전
청교도와 인터콥을 비교해보니 최바울 대표 좀 억울하겠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9.06  01:02:1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지난 수 십년 동안 베뢰아, 신천지, 통일교 등을 제외하고 한국 교회의 가장 많은 비판과 경계를 받은 곳은 인터콥이다. 한국과 미주의 거의 모든 주요 교단들이 인터콥에 대해 ‘교류금지’, ‘참여자제’ 등의 결정을 내렸다. 필자는 인터콥의 신학적 문제들을 한국 교회에 공론화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종종 인터콥이 미친 영향과 청교도 신앙이 미친 영향을 비교해 본다. 인터콥(최바울 대표)의 어떤 점들이 지적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초기에 지적된 일반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김기동 베뢰아 사상
베뢰아의 신학의 ‘하나님의 사정’ 개념 등이 있다고 비판받았다.

2. 삼위일체 신학의 문제
성부와 사람이 되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구별이 없다고 비판받았다.

3. 이원론 사상
인류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마귀의 대립 관점으로 해석하는 이원론자라고 비판받았다.
 

이런 내용들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최바울 대표가 대학 시절에 김기동 교회를 출석했고, 그의 책에서 ‘하나님의 사정’ 개념 등의 베뢰아 신학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나타났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최 대표는 당뇨가 심해져 심하게 체중이 빠지고 얼굴이 병자처럼 초췌해질 정도로 비판과 정죄를 당하였다. 한참 논쟁이 뜨거울 때 우연히 옆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인간적으로 참 안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최 대표는 베뢰아 사상이라면 치를 떨고 싫어하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후 비슷한 내용이 나타나거나 주장한다는 비판은 더 나오지 않는다. 인터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그 일을 또 이용하려고 하면, 인터콥에 대한 새로운 연구도 하지 않고 옛날 것만 써먹는다는 비판을 듣게 되는 상황이다. 

2) 최바울 대표에게 삼위일체 신학의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여 인터콥에 대한 모 교단의 신학조사 보고서에 그 내용이 들어가게 만든 두 이단연구자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자신들이 동일한 삼위일체 이단 시비를 초래하여 큰 곤욕을 당하고 있다. 

이인규 장로라는 평신도 이단연구가는 그 전에 이미 춘천한마음 교회의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을 옹호하고, 부활복음의 문제를 지적하는 필자를 이단으로 몰려고 시도하였다. 그 와중에 자신의 신학적인 문제들이 노출되어 3개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성 있는 인물로 규정되었다. 그런데 그가 삼위일체에 대한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여 오히려 삼위일체 문제로 이단성 조사를 받게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년 모 교단 총회에 상정된 안건에는 이인규 장로를 ‘이단’으로 규정해 달라는 심각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박형택 목사도 공교롭게 다른 사람을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으로 심각하게 비판하다 오히려 자신이 삼위일체를 훼손하는 이단으로 몰리게 될 상황이 벌어졌다. 뒤늦게 신학교 교수의 도움으로 문제를 깨닫고 박 목사는 더 큰 사태를 막기 위해 자신이 주장한 그릇된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들을 공개적으로 철회하고 반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바울 대표에게 삼위일체에 관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던 두 사람이 얼마 후에 동일한 삼위일체 문제로 이단 시비를 받았고, 실제로 교단의 총회에 조사청원 헌의안까지 접수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최바울 대표에 대한 삼위일체 이단성 시비는 신뢰할 수 없고, 정당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최바울 대표에 대한 예장 합신의 조사보고서에는 삼위일체 신학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최 대표는 억울할 것 같다.

3) 최바울 대표가 세상만사를 사탄과 하나님의 대결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이원론 시비는 어떠할까? 이런 내용은 칼로 자르듯이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서 이원론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하나님의 뜻과 허락과 섭리 안에서 벌어진다. 하나님의 허락과 뜻에서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아무도 도전하지 못한다. 동시에 사탄은 늘 하나님과 교회에 반항하고 도전하고 훼방한다.

뒷부분만 보면 이원론이고, 하나님의 절대주권 부분만 보면 일원론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못하고, 또한  사탄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나 결국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을 이루어내는 도구가 될 뿐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마귀의 도전, 즉 하나님 절대주권 하의 이원론이 기독교 세계관이다.

최바울 대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마귀의 도전만 말하는 사람일까? 2년 전에 필자는 3일에 걸쳐서 최바울 대표의 강의 4편을 심층적으로 들었다. 그때 최바울 대표가 강조하는 내용들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세계 교회가 복음을 말하면서도 진정한 복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적그리스도적인 현상이다 ... ‘하나님에 대한 글로벌 저항시대! 성경이 경고하는 대로 하나님의 법과 때를 바꾸는 적그리스도적인 시대가 점점 무르익고 있으나, 결국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루어 질 것이니, 이런 종말의 징조를 보면서 선교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최바울)

최바울 대표가 이전에는 성숙하지 못한 역사관, 세계관을 피력했을지라도 지금 현재에도 그렇다는 볼 근거는 없어 보인다. 계속해서 인터콥과 최바울 대표에 대해 지적되었던 특별한 내용들, 즉 신사도 운동과의 연관성에 대한 내용들을 더듬어 보자.

 

4. 인터콥과 신사도 운동

인터콥이 주장했던 '백투예루살렘' 비젼은 원래 중국 교회들이 중국으로부터 실크로드를 지나 복음의 발상지 예루살렘까지 전도해 보자는 취지에서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사도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 비젼이 위험스럽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신사도 운동은 단지 지금 사도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선교, 기도, 성령사역 등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동반했다. 신학을 연구하지 않고 선교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작한 최바울 대표와 인터콥 중요 멤버들이 여기에 휩쓸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는 그 점을 세게 지적하여 제동했고, 그래서 인터콥뿐 아니라 한국 교회에 좋은 경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인터콥이 그런 일들을 멀리하고 더 성경적이고 바른 선교를 하겠다고 하니 격려하고 돕고 싶다. 인터콥과 신사도 운동에 대해 지적되었던 내용들을 다시 더듬어 보자!
 

1) 복음의 서진, 백투예루살렘

신사도 운동은 선교를 영적인 정복전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성취하기 위해 아직도 적의 땅으로 남아있는 선교지들을 탈환하여 예수의 깃발을 꽂으면 선교가 완성되고 그리스독 재림한다고 전쟁방식으로 선교를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신사도 교회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곳은 예루살렘이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곳이고, 복음이 시작된 곳이고,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하실 곳이기 때문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루살렘을 그리스도의 땅으로 만들면 그리스도가 그곳에 재림하신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 마치 아직도 예루살렘이 적의 수중에 있으므로 재림하지 못하시는 것 같이 말하기도 한다. 

신사도 운동으로 인해 이와 같은 선교사상이 확산되면서 이미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고 있던 인터콥에게도 영향이 들어갔다. 선교를 전쟁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드는 선교신학 아이디어들이 가장 존경받는 신학자 피터 와그너에게서 생산되고 있었다. 인터콥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그 당시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더 적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인터콥이 선교를 전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초기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당시의 많은 비판들이 나타날 수가 없었고, 오히려 비판자들이 전부 무고죄로 역공 당했을 것이다.

지금도 인터콥과 최바울 대표가 여전히 그리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도 그리하는 구석이 있으면 그 정황을 필자에게 제보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행동이 인터콥의 윗선의 방침 때문인지, 일부 멤버들의 그릇된 행동인지를 확인한 후 모두를 위해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사실 선교운동 단체들이 예루살렘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예루살렘의 상황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

신사도 운동의 전쟁 개념의 선교, 재림을 위한 예루살렘 탈한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복음의 서진’, ‘백투예루살렘’ 비젼이 그렇게 가혹하지 비판받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온 역사를 큰 틀에서 볼 때, 복음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서쪽의 가장 중요한 곳에 예루살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복음의 서진’, ‘백투예루살렘’을 기치로 하는 선교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선교를 (무속이나 타종교의) 전쟁 개념으로 진행하여 기독교를 변질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땅 끝까지’라는 성경적 선교 명령보다는 예루살렘 중심의 임박한 종말사상이 강조되는 것이다. 필자는 인터콥이 ‘복음의 서진’, ‘백투예루살렘’이라는 구호를 쓰느냐 안 쓰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사도 운동이나 타종교에서 나타나는 전쟁으로서의 선교, 그리고 임박한 종말을 주도한다는 위험스러운 선지자 의식이 결부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교회와의 신뢰구축을 위해 약속한 대로 ‘복음의 서진’, ‘백투예루살렘’ 이란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지금 인터콥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내용을 아직 듣지 못했다.  
 

2) 아이합의 24/7기도, 중보기도 학교 등의 문제들

신사도 운동의 한 축이었던 아이합(IHOP, 마이크 비클)에서 24/7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켰고, 신사도 운동의 대표 사도였던 피터 와그너와 신디 제이콥스 등이 일반적인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켰다. 모양은 조금 달랐지만 둘 다 같은 특징을 가졌다. 아이합에서는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하에, 즉 구약시대 성막(성전)에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것과 같은 형태로 하나님을 직접 대하는 공간에서의 중보기도 사상을 발전시켰다.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는 공간에서의 기도이므로 당연히 예언, 즉 하나님과 대화 형식의 직통계시가 함께 추구되었다. 피터 와그너는 특별한 영적인 권세를 부여받아 직접 사탄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능력자들의 중보기도를 발전시켰다. 그들도 하나님의 특별한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직통계시가 동반됨을 당연시했다.

이것이 신사도 운동의 기도이다. 신사도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런 기도 사상이 퍼졌고, 인터콥도 알게 모르게 연관되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혹독하게 비판받았고, 한국과 미국의 주요 교단들이 다 경계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면 지금 현재는 어떠한가? 지금도 아이합의 24/7 운동에 합류하고, 피터 와그너가 일으킨 중보기도 운동에 합류하고 있는가? 필자는 그런 내용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인터콥은 ‘중보기도’라는 용어와도 공식적으로 결별하였고, ‘현장기도’라고 바꾸기로 결정하여 전체 멤버들에게 공지하였다. 최바울 대표와 다른 중요한 중요 포지션의 간사들, 그리고 인터콥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가혹한 비판을 당하면서 이전보다는 개선된 점들이 분명히 있고, 앞으로 더 개선의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교도 추종하는 교수들과 목사들은 전혀 문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 
 

   


청교도 신학은 어떠한가?

정통 개혁신학, 최고의 엘리트 신앙이라고 수 백 년 동안 추앙받아 온 청교도 신앙에 대해서 말해 보자! 청교도 신앙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인터콥(최바울)보다 더 좋은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면 필자는 이렇게 집요하게 청교도 신앙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여기서 다시 청교도 신앙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독자들은 먼저 청교도에 대한 다음의 기사를 정독하기 바란다.

“청교도가 이단이면 장로교가 다 이단이란 말인가요?”(크릭)
청교도의 역사와 주요 교리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설명할 글이다.

“청교도(회중파) 사상은 민족과 교회에 아주 해롭습니다”(크릭)
청교도에서 중시되는 구약의 율법의 기능을 설명하는 글이다.
 

1. 청교도(회중파) 신앙과 원죄

성경은 모든 필요한 은혜와 은사를 다 받은 아담이 감사하며 하나님 백성의 본분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결단 것, 즉 반역이 선악과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씀한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 6:7)

이 점을 생각해 보자. 통일교는 인간이 뱀(사탄)과 섹스하여 사탄의 혈통이 유입된 것이 원죄라고 가르친다. 청교도(회중파) 신앙은 영생과 은혜를 더 주시기 위해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아담이 따르지 않은 것이 원죄라고 한다. 둘자 성경의 원죄에서 벗어나기는 일반이다.
 

2. 청교도(회중파) 신앙과 율법

구약 성경은 율법이 오기 전에 이미 노아, 아브라함 등의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와 광야에서 먼저 구원(세례, 고전 10:1,2, 벧전 3:20, 21) 받았고, 이후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가 되는 십계명 등의 율법을 받았다. 구원을 얻는 것과 구약의 율법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십계명 등의 율법은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의 원칙과 질서로 주어졌지, 구원을 얻는 조건으로 오지 않았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통해 주시는 믿음으로 얻는다. 구약의 사람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구원받았고 신약의 사람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다.

그러나 청교도는 하나님이 아담을 처음부터 구원 얻게 할 십계명과 함께 지었다고 한다. 아담은 마음에 심겨진 십계명을 잘 지켰어야 영생을 얻었다고 한다. 청교도는 성경에 나오는 율법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기독교와 유사한 또 하나의 유사종교를 창안하였다고 볼 수 있는 형편이다. 지금도 청교도는 그리스도를 믿음과 더불어 인간의 인위적인 율법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런 사상을 매우 경계하였다. 이제 그리스를 믿음으로 인해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은 인위적인 율법준수에 힘쓸 필요가 없다. 신약의 성도에게는 구원의 열매로서 율법이 이루지는 것이다.
 

3. 청교도(회중파) 신앙과 구원

성경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저주받은 아담의 죄를 그리스도가 자신의 흠 없는 속죄의 피로 배상하셨다고 가르친다. 그 피로 인해 우리에게 전가된 죄에 대한 책임과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해소됨이 곧 우리의 영생의 자격과 권리(하나님의 의)라고 말씀한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 주어진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러나 청교도는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에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영생의 자격과 권리)를 얻었다고 한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라고 하면서, 그것을 안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자. 통일교가 교주를 그리스도로 주장하고, 교주와의 성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주어진다고 가르치는 것이나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얻고 전가하였다는 청교도의 구원론은 내용은 다르지만 어떤 형식 면에서 유사해 보인다. 
 

4. 청교도(회중파) 신앙과 전도

성경은 전도자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바울은 명령했다. 성경에 정통한 모든 신학자들은 성령이 구원을 베푸시는 방법은 전도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을 선포할 때이다. 성령은 전도자이시지만, 자기 스스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복음선포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냥 예수 믿으라고 하는 단순한 권고는 성령이 일하시기에 합당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 성령은 전도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을 전파하고 증거하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사역이 분명히 전파되는 곳이다 ... 이것이 효력있는 부르심이다. 효력 있는 부름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을 말하는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50-52)10)

그러나 청교도는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을 못되고 나쁜 일이라고 한다. 저주와 심판의 율법을 전하여야 마땅하다고 하고, 그래야만 불신자들이 나중에 진정으로 성령의 회심을 체험한다고 한다. 그것을 이름하여 ‘청교도 회심준비론’이라고 하고, 지금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태고 이래 그런 기독교는 없었다. 기독교에 정통한 모든 신학자들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사람으로 회개하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므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인 줄을 깨닫고 회개하여 믿고 의에 이른다(롬 4:13-16). 율법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 죄를 알게 하고 피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된다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선포해야 한다. 즉 그렇게 육의 욕망을 따라가면 범죄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율법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율법으로 사람을 고치려고 책망하고 꾸짖으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반발과 반감만 갖는다. 율법을 가르치고 전파해서는 결코 죄짓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행실을 고칠 수도 없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6: 교회론, 97-99)


청교도와 인터콥

지면의 한계로 청교도 신앙에 대해 더 말하지 못하겠다. 이제 인터콥(최바울)과 청교도를 비교해 보자! 인터콥이 이전에 지적 받았던 문제들과 현재 청교도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생각해 보자! 그 문제들은 비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1) 인터콥은 단 한 번도 성경의 원죄를 건드리지 않았다.
2) 인터콥은 단 한 번도 기독교의 율법의 기능과 역할을 건드리지 않았다.
3) 인터콥은 단 한 번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법을 건드리지 않았다.
4) 인터콥은 단 한 번도 성령이 영혼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청교도 사상의 문제들은 하나 같이 기독교의 근간, 기둥과 연관된 문제들이다. 원죄론와 구원론에서 매우 심각한 오류가 나타난다. 그 부분이 성경으로부터 벗어나면 건강한 기독교로 남을 수가 없다. 그러나 청교도 신앙이 지난 수 백 년 동안 최고의 개혁신학이라고 칭송받았고, 최고의 엘리트 신앙이라고 존경받았다. 인터콥은 문제의 단체라고 계속 시비를 받고 있으나, 청교도 신앙 추구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기독교 엘리트들이라고 칭찬받고 있다.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Minn 2019-09-08 13:42:49

    청교도가 각광받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들이 마땅한 비판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인터콥과 비교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인터콥을 비판하다가 이단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니 깨닫는 바가 많습니다. 조금 신학을 배웠다고 해서 섣불리 이단연구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만입니다. 제 주위에서도 이단을 논리로 이겨보겠다고 몰몬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위험천만한 일입니요.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 아니라면 자신도 모르게 이단적 사상을 주장하게 됩니다. 혹시 이단들도 맞는 말을 하지않을까 찾아 읽어보고, 개인적 판단을 하며 말실수, 글실수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저도 식은땀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단을 비판하다가 이단판정을 받는다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모두 기억해야겠습니다.
    인터콥에 대해서 맞는지 안맞는지 찾아볼 필요도 느끼지 못하지만 기사 내용만 봐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이끄는 단체같습니다. 진짜 복음을 알리지 않고 가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책을 쓰고 팔고 홍보합니다. 세미나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모읍니다. 특히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결국 돈이 목적이란 말이지요. 돈이 목적이 될 때 인간은 배교를 하게 됩니다. 아무리 개혁교리를 따른다고 해도 돈이 목적이면 가짜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인기와 명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단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글과 스피치로 저 사람이 이단으로부터 돌이키면 주님께서 나를 칭찬해 주실까 생각해봅니다. 더 자극적인 말을 하면 정신차릴까? 제 생각은 나를 통해서 돌이키게 하지 않으시고 성령의 힘으로 성경말씀을 통해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어거스틴도 그랬고 제 개인경험도 그렇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습니다. 인간적 연민때문에 내 노력으로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9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