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회중파)들의 회심 족보는 거짓 신학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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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회중파)들의 회심 족보는 거짓 신학의 족보
  • 정이철
  • 승인 2019.08.28 02:3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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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 교수의 책 4장 분석(1)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청교도(회중파) 회심준비론을 다시 살리려고 노력하는 조엘 비키 교수의 책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4장을 살펴보았다. 4장에서 조엘 비키 교수는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과 함께 회중파 청교도의 거두로 거론되는 인물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의 회심준비론을 다룬다. 에임스는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다고 조엘 비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윌리엄 에임스는 퍼킨스의 가장 탁월한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에임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일 수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105 페이지)
 

청교도 거두들의 회심 족보

에임스가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청교도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다는 말이 자주하였던 모양이다. 성 앤드류스 대학의 설교자였던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도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고 퍼킨스의 후계자가 되었다.

폴 베인즈의 설교를 듣고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가 회심했다. 리처드 십스는 종교개혁자 칼빈과 루터도 상당히 존경했던 중세의 신비주의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클레르보의 성 버나드, 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에게서 영향 받았다. 칼빈과 루터는 베르나르의 신학적 유산을 선별하였고 십스와는 다른 신학 작업을 했다. 칼빈과 루터는 베르나르가 심취하였던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신비주의를 철하게 배격하였다. 단지 베르나르가 강조한 이신칭의 신학, 교황제도의 문제점들, 중세 천주교의 사제 조직의 부패성 등에 대해 수용하였고, 명상과 신비주의 요소를 종교개혁 신학으로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종교개혁 신학은 명상을 통한 하나님 체험 신비주의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처드 십스는 베르나르의 하나님 체험의 신비주의를 되살려서 청교도 신앙 속으로 도입하였다. 그 결과 훗날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와 신대륙의 많은 청교도들에게서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신비주의가 ‘묵상’이라는 명칭으로 성행하게 되었다.

리처드 십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유명한 청교도는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이다. 코튼은 초창기에 영국에서 목회하였는데, 자신에게 핍박이 다가옴을 눈치 채고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보스톤에서 목회하였다. 코튼은 서재에 리처드 십스의 초상화를 걸어두었을 정도로 십스의 가르침을 깊이 따랐고, 하바드 대학 설립에 관여하는 등 미국의 회중교회의 초기의 역사와 신학에 큰 영향을 남겼다. 코튼이 십스가 계승한 중세의 신비주의자 베르나르의 명상의 영성을 이어 받아 후대의 청교도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존 코튼이 신대륙으로 이주하기 전 영국에서 목회할 때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이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다. 존 프레스턴은 윌리엄 퍼킨스, 리처드 십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청교도 조상 3인방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존 프레스톤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또 다른 유명한 청교도 인물은 신대륙의 초기 회중교회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토마스 쉐퍼트(Thomas Shepard),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이다. 그리고 훗날 존 웨슬리와 찰스 스펄전 등이 존 프레스턴의 책을 통해 많은 영향을 크게 받았다. 회중파 청교도 인물들의 회심의 계보를 보니, 다음의 두 가지 의문이 든다.
 

1. 언제 누구를 통해 구원받았는지 알 수 있는가?

지금까지 회심이란 용어가 불신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거나, 이단이나 다른 종교에 빠졌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정통 개혁주의자들은 회심이라는 용어보다 '회개'가 더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성령은 회심이나 개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말한다. 더구나 희랍어와 히브리어 단어들을 사용하여 설명할 경우는 더욱 확실하다. 통상 회심을 말할 때는 '뉘우치다', '회개하다'의 뜻인 (히브리어)'니함'을 사용해왔다. 니함은 글자대로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이므로 회심이라고 할 수 없고 회개하고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다가 자기의 본래의 하나님께로 나아갈 경우에 니함을 썼다.

또 돌이키다으 뜻인 (히브리어)'슈브'로 회심을 종종 설명해왔다. 슈브는 글자 그대로 '죄짓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회심이나 개종으로 볼 것이 아니고 뉘우치고 도이킴 곧 회개라고 해야 합당하다. 어떤 이들은 신약에 나오는 (헬라어) '마타노이아'를 사용하여 회심 혹은 개종으로 종의하곤 했다. 메타노이아는 글자대로 '마음을 바꿈'이므로 뉘우치고 돌이키는 회개가 더 합당하다.

또 회심의 용어로 자주 사용해온 (헬라어)'에피스트로페'는 행 15:3에 나타나는데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올 때 사용하였다. 이 경우에는 개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께로 이방인들이 돌아간 것이므로 돌이킴으로 이해함이 합당하다.

위에서 살폈듯이 믿음과 회개가 믿음과 회심이란 표현보다 더 적합하고 합당하다."(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71,72)

인간이 자신의 구원의 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자신이 태어난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나의 생애의 가장 이른 시점은 징검다리가 있는 시냇물에 드러누워 팔 다리를 버둥거리며 어머니에게 껌을 사달라고 떼를 썼던 순간이다. 어디에, 무엇하러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껌을 사 주지 않고 시골의 가게를 그냥 지나쳤다. 나의  고향 마을로 가려면 그곳으로부터 약 3분 거리에 징검다리를 밟고 건너는 시내를 지나야 한다. 그 시내를 지나면 껌을 살 수 있는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징검다리에서 내려 시냇물에 드러누워 껌을 사 달라고 농성을 했다. ‘뿌그럭 뿌그럭’ ... 귀 속으로 시냇물 들어오는 소리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바로 그때 태어났는가?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가장 이른 시점이 그 날이므로 나는 그날 태어난 것인가? 영적인 출생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 의식을 인지하고 깨달은 날을 구원받은 날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 

“구원은 창조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요, 인간의 능력에 의한 시발이나 보충이 불가능하다. 전적 부패와 무능이므로 전적으로 은혜가 일한다. 구원 얻음의 시작점인 부르심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은혜가 사람을 중생시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전적인 부패와 무능을 강조하므로 다른 신학체계들 특히 로마교회로부터 개혁신학이 많은 비난을 받는다.”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서 박사님의 말처럼 먼저 하나님의 영혼의 살려주심이 있은 후 믿음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누구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가 더 자세히 이해되었고 복음의 원리가 깨달아졌다고 해야 옳다. 바로 그 순간 회심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나하면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해 깨닫고 믿음고백함으로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먼저 중생을 일으키시어 믿음고백에 이르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으나 먼저 죽은 영혼을 살려주셨고, 그때부터 사람의 영혼의 기능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 누구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최소한 그 순간 이전에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을 살려주셨고, 살아난 영혼이 자라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고 이해하고 깨닫기를 시작한 것이다. 

“1622년 1월 1일, 캠브릿지 대학 예배에서 윌리엄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 회심을 경험했다!”

대부문의 회중파 청교도 조상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의 구원을 설명하였다. 사실은 그 이전에 (얼마나 이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자신의 영혼이 이미 중생되었고, 이후 믿음의 지각이 성장하다가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 자신의 죄인 되었을 때의 비참한 상태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원리를 확실하게 깨달았고, 이해하였고, 파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설명했어야 성경적인데, 이상하게 청교도(회중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를 분명하게 깨달은 때를 회심한 날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혹자는 회중파 청교도의 사상이 구원파들의 사상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2. 청교도 회심 족보는 역사적 거짓 신학(이단)의 족보

청교도(회중파) 조상들의 회심 족보는 사실상 종교개혁 신학을 방해하는 거짓 신학의 유전을 보여주는 족보라는 사실은 알고 나면 더욱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는 윌리엄 퍼킨스이다. 인류의 족보의 맨 위에 아담이 있는 것처럼, 회중파 청교도들의 회심의 역사과 신학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맨 꼭대기에 윌리엄 퍼킨스라는 인물이 이다.

청교도(회중파) 운동의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청교도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것이 청교도의 언약신학이라고 본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행위언약-은혜언약’이라는 언약신학은 회중파 청교도에 의해 고안된 사상이다. 웨민고백서 7, 19장에도 이 사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웨민고백서를 작성(1643-1647년)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신학이 아니고 회중파와 장로파 등이 함께 웨민고백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삽입된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1602년에 사망한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가 최초로, 본격적으로 그 사상을 고안하여 청교도 신학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비협조와 박해로 인해 국가 규모의 청교도 개혁 운동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부득이 국가와 왕의 동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 청교도 개혁운동을 영국의 국민들 속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야만 했다. 국가와 왕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명목상의 교인에 불과한 대부분의 영국의 국민들이 각자 자신의 구원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만드는 새로운 개혁 사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1680년대 말부터 1690년대 초에 일어난 이와 같은 청교도 개혁운동의 새로운 전략의 중심에 윌리엄 퍼킨스가 있었다.

윌리엄 퍼킨스는 쯔빙글리와 칼빈의 언약 신학이 하나님의 주권, 예정, 은혜만을 너무 강조하므로 교인들을 게으르고 피동적으로 만드는 약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교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책임성을 가지고 노력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언약 신학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윌리엄 퍼킨스가 창안하여 도입한 것이 ‘행위언약-은혜언약’이었다.

행위언약이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아담과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다.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심겨주신 십계명 등을 잘 지키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담이 지키지 않았으므로 저주와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시어 아담 대신 십계명과 율법을 잘 준수하시어 하나님의 의를 얻으셨고,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시어 죄에 대한 벌을 해결하셨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은혜언약을 세우셨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행위언약 아래 태어났고, 구원 얻기로 예정된 자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제시하신 모든 조건과 역할을 수행하여 은혜언약으로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회중파 청교도의 비성경적인 언약 신학이다.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의 새로운 언약 사상, 행위언약-은혜언약 신학 도입으로 인해 종교개혁의 핵심 신학과 신앙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이신칭의, 법정적 칭의 신학 실종

칼빈, 루터의 종교개혁의 최고의 핵심은 이신칭의, 법정적 칭의 신학이다. 아무 공로 없는 죄인이 오직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이다. 실제로 의로워져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로워져다고 판정받는 다는 가르침이다.

윌리엄 퍼킨스에게는 이신칭의 신학이 처음부터 없었다. 교인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헌신하게 만들기 위한 언약 신학을 고안하였으므로 종교개혁이 이루어낸 진리를 다시 허물게 되었다.
 

1) 비성경적인 원죄론

아담은 영생을 얻기 위해 십계명 등을 잘 지키기로 하나님과 계약하였다고 한다. 성경의 원죄 사상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아담이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감히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선악과로 반역을 표시한 사건이 아담과 인류의 원죄라고 한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7)

윌리엄 퍼킨스는 선악과를 하나님 백성의 반역 사건과 관련시키지 않고 영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율법 체계의 상징으로 해석함으로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2) 비성경적인 구원론

성경은 하나님께 반역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다시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은 오직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 뿐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윌리엄 퍼킨스의 원죄론에 의하면 인간의 회복을 위해 구세주는 아담이 지키지 못한 십계명을 잘 지키는 분으로 오시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영생을 위한 권리와 자격)을 얻으셨다는 회중파 청교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가 뒤 따르게 되었다. 원죄론과 구원론에서 성경을 벗어났으므로 회중차 청교도 신학은 거짓 신학(이단 사상)임이 분명하다.
 

3) 비성경적인 율법관

성경에 의하면 죄인이 구원을 얻는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백성들 ... 아무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보장받은 적이 없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아브라함도 은혜를 입어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구원의 자격)를 얻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율법을 알기 전에 이미 홍해와 광야에서 구원의 세례를 받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창자 오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의 소급적용으로 구원받았다.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구원받는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구약 시대에 온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지키고 살아야 삶의 원리였을 뿐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그 원리를 지킬 수 없는 자신의 죄성을 깨달으면서 더욱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갈망하면서 감사하여야 했다.

만일 기독교에서 단 하루라도 율법이 구원을 주는 조건이었다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율법을 준수해야만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고 가르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4) 비성경적인 행위구원, 신인협력구원 사상

청교도 신앙과 행위구원론이 연관되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마 ... 설마’한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을 매개로 십계명 등을 지키기로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행위언약)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그리스도의 은혜언약으로 들어가기 위해 각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대한 동의와 승낙, 그리고 조건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윌리엄 퍼킨스와 그의 제자들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 외에 다른 그 무엇이 구원을 위해 작용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율법주의, 행위구원, 신입협력 구원으로 떨어진다. 예외가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회중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행위언약에서 벗어났을지라도, 각 자에 대한 율법의 요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가르친다.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한 몽학선생에 구속되게 하므로 사람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학으로 귀결된다.
 

4) 비성경적인 행위구원, 신인협력구원 사상

청교도 신앙과 행위구원론이 연관되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마 ... 그럴까?"한다. 그러나 사실이다. 영생을 목표로 십계명 등을 지키기로 아담과 하나님이 계약(행위언약)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했으나, 그리스도의 은혜언약으로 들어가기 위해 각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대한 동의와 승낙, 그리고 조건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윌리엄 퍼킨스와 그의 제자들이 가르쳤다.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 외에 다른 그 무엇이 구원을 위해 작용한다고 가르치면 그 순간 율법주의, 행위구원, 신입협력 구원으로 판정받는다. 예외가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행위언약에서는 벗어났을지라도, 각자에 대한 율법의 요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가르친다. 믿고 회개한 후 율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천한 몽학선생을 넘어서지 않고 장성한 아들과 함께 구원의 증거, 유지의 방법으로 섬기라고 하므로 갈라디아서가 저주한 이단에 속하게 된다. 

종교개혁 정통 신학은 율법의 도덕율을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치지 않고 복음과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의 당연한 열매로 본다. 
 

5) 비성경적인 회심준비론

청교도들은 세상의 불신자, 또는 교회에 다니는 불신앙자들에게 직접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 가야할 지옥의 참상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지 못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담은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곧장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구원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구원하라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그들의 비성경적인 신학 구조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사변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행위언약이 폐지되었을지라도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대한 동의, 승낙, 헌신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를 구원해 주시고 은혜언약으로 들어가게 해 주세요!”

이와 같은 자세를 하나님께 보여야 그리스도의 은혜언약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태도를 보여야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적용되어 성령의 회심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먼저 선포하는 회심준비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를 먼저 충분히 듣고 공포에 질려야만 죄인의 입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를 구원해 주시고 은혜언약으로 들어가게 해 주세요!”라는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대한 동의, 승낙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변이다.

유명한 회중파 청교도 인물들의 회심 족보를 다시 요약해 보았다.

1)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칼빈의 제자 베자의 영향)
    -> 윌리엄 에임스 회심
    
-> 폴 베인즈 회심

2)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1557-1633)
    
->신대륙으로 이주하기 원했으나 네덜란드에서 질병으로 죽었고, 그의 아         내가 신대륙으로 이주한 후 에임스의 <신학의 정수> 등의 저서를 하바         드 대학 도서관에 기증하여 토마스 후커, 코튼 매더 등 신대륙의 초기의         회중교회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

3) 폴 베인즈 (Paul Baynes, 1560-1617)
     
->리처드 십스 회심

4) 리차드 십스 (Richard Sibbes, 1577-1635)
     
->존 코튼 회심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십스의 책 <상한갈대>          를 읽고 중생)

5)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
     
->존 프레스톤 회심
     
->에드워즈에게 영향

6) 존 프레스턴(John Preston, 1587-1628)
     
->토마스 후커 회심(Thomas Hooker, 1586-1647)
     
->토마스 쉐퍼드 회심

7) 토마스 쉐퍼드(Thomas Shepard, 1605-1649, 1622년 회심, 1635년       신대륙 이주)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에 큰 영향

이 사람들 가운데 심각한 거짓 신학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1)비성경적인 원죄론, 2)비성경적인 구원론, 3)비성경적인 율법관, 4)비성경적인 행위구원-신인협력 구원론, 5)비성경적인 회심준비론 등과 연관된 사람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가 일부만 갖추었는가의 차이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청교도의 회심의 족보는 거짓 신학(이단)의 족보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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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사리 2019-08-31 14:58:57
청교도 개혁주의 표방한다는 자들에게서 그들의 사상적 숭배의 대상인 회중파 청교도 이단자들의 특질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 추종자들은 자신도 회중파 청교도들처럼 구원받기위해 다시 율법의 저주 밑으로 기어들어가 기존믿음을 리셋시켜서 구원의 확신과 안정감을 얻으려는 미친짓을 자기 스스로가 은밀히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회심때를 조장하여 스스로가 획득해냅니다. 즉, 숭배하고 동경하는 자들의 구원도식에 주께서 주신 그 처음믿음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끼워맞추는 짓을 하는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은것에 대한 기쁨보다 회중파 청교도들의 구원도식이 자기에게 임했다는것에 더 극적인 희열을 느낍니다. 그 안에 숨은 본질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보다 회중파 청교도적으로 극적으로 기록되는 체감되는 회심, 즉, 또 다른 신비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회중파청교도 이단자들의 사상에 자신을 스스로 복종시킨자들의 특징은 회중파청교도적으로 구원받지 않은자들을 향해서 그 받은 구원을 점검시킨 답시고 자신들과 같은 구원의 도식으로 이끌어 갑니다. 마귀가 늘 그렇듯이 노골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그 흐름에서 그 의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더 교활합니다.

또 하나가 기존교인들은 거의 뭐 신념을 믿음이라 속고있다거나, 거짓믿음이라거나,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섬긴다는둥 완전 가라지들 뿐이고, 한국교회 및 성도들 태반을 마귀소굴로 바라보는 경향이 극심합니다.
그들은 자유주의, 신비주의, 은사주의, CCM, 천주교비평, 알미니안 비판, 세미펠라기안 비판, 각종 이단사상 비판하지만 그렇다고하여 그들 자체도 진리를 따르진 않습니다.

그들의 원죄론, 구원론, 성령론, 율법관, 회심론등이 조직적이고 짜임세가 있을수록 그들은 사람들의 눈엔 가장 독실해 보였을 것이고 실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란시키는 광명의 천사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발적이거나 오해가 아니라 매우 정교하고 조직적입니다.

다른 모든이단들도 다른 이단을 비판하고 정통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진리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식으로 청교도 개혁주의 표방한다며 회중파 사상을 여전히 은밀히 추종하는 그들도 다른이단들과 다를게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서로 알아보면서도 유익이 되는것만 취하면 함께 동행 할 수 있다???? 더러운 영적음행이 자행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2019-08-28 17:31:53
정목사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쯔빙글리와 칼빈은 접어두고,
서철원 박사님께선 쯔빙글리의 후계자인 볼링거의 언약사상이 바르지 못하고 이 언약사상이 웨민 7장에 도입되었고 행위언약으로 표기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별개로 발견된 것은 헬베티카2의 12장 '율법이 주어진 이유'에서 회심준비론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성경해석입니다.

왜 유럽대륙에 있는 볼링거의 언약사상을 중요하게 보냐면, 후에 배척되었던 언약사상을 개혁신학의 기본축으로 부활시키고 미국의 메이천에게 화란신학으로 역전파한 사람들이
유럽의 카이퍼와 바빙크이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갔지만, 시작된 곳도 유럽이며 다시 부활한 곳도 유럽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수학하신 서철원 박사님께 정목사님께서 요청드리셔서 이에 관한 기고문을 올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Minn 2019-08-28 06:18:47
"이상하게 청교도(회중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를 분명하게 깨들은 때를 회심한 날로 말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구원파들이 하는 행동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라고 하셨는데 동의합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개혁교회 목사님이 말해주셨는데 초면에 조엘 비키가 회심이 순간이 있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황당하지요.
청교도는 정통 칼빈주의가 아니고 변질된 칼빈주의라고 생각됩니다. 선택받은 자만 구원받는다는 것이 누가 선택받았는가로 초점이 맞줘지면 안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개혁교회가 청교도에 물들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개인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결국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까 방법을 제시하는 알미니안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조엘 비키가 친가톨릭적인 행보를 보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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