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첫 신앙고백은 주 예수였다(요 20:18.20,28; 21:7,15-16; 행 1:6,21,24; 2:36,16:31). 그리고 모든 사도의 가르침을 믿었다. 그러다가 교회의 진행과 함께 이단의 발생으로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바른 믿음이 무엇이며, 유사하면서도 바른 믿음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바른 믿음이 아닌 조항들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른 믿음의 조항들을 정하는 과정에서 사도신경과 신앙의 규범이 공식화되어 이단을 식별하고 바른 신앙을 지키며 교회 교육을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그 후 이단들이 격렬해지자 공교회가 정통신앙을 확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신앙의 내용을 확정하는 일을 위해 신학들이 일하였고, 공교회의 승인과 고백에 의해 교리가 탄생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 삼위일체 교리, 성육신의 교리, 그리고 종교개혁 때 이신칭의 교리 등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교의는 교회의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이 면 있어서 교의는 교의신학의 산물이었다.

둘째로 교회의 자체 필요성과 요구에 의하여 교의의 발생과 규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가 믿음의 내용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할 필요에서 발생하였다. 먼저는 세례 예비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침에 있어서 믿음의 내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 필요에서 초대교회의 신앙의 규범과 사도신경이 나왔으며, 종교개혁 때 칼빈의 요리문답과 기독교강요가 등이 나왔다.

이 교회 교육의 필요에서 생긴 믿음의 조항들은 교육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단 방지에도 쓰여졌다. 이 일은 교회사가 증명한다. 고대교회에서 생겨난 신앙의 규범과 사도신경은 후에 니카야 신경과 콘스탄티노플리스 신경의 기초가 되었다. 또 칼빈의 요리문답과 기독교강요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의 기초가 되었고, 루터의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이 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다.

또 주석을 통한 성경계시의 이해가 교리 확정에 도움을 주었다. 교리 확정에 있어서 이단들도 동일 성경본문에 호소하였다. 니카야 신경 작성시 아레안파와 정통파는 동일하게 골 1:15-16에 호소하였다. 정통파는 동일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을 도출하였고, 아레오스파는 그리스도의 피조물임을 도출하였다. 성경본문의 바른 이해는 교리 확정과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성경계시의 바른 이해를 위해 교의신학도 성경신학과 함께 노력한다 ... (중략)

우리의 신학은 개혁교회의 신학, 곧 개혁신학이므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규범과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 삼는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신학 전개와 그의 주석에 나타난 성경이해를 준거해서 신학한다. 물론 고대교회의 교리를 기본진리로 받아서 시작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개혁교회는 종교개혁 교회이므로 루터교회와 함께 종교개혁의 기본원리들을 기본으로 한다. 신학함에 있어서 루터는 중생 혹은 이신칭의 교리를 실질적 원리로 삼았다. 따라서 개혁신학도 이신칭의 교리를 기본으로 삼고 또 출발점으로 삼음에는 루터교회와 동일하다. 즉 이신칭의 교리를 신학함의 근본으로 삼는다.

또 개혁신학은 루터와 함께 중생과 칭의를 강조하면서도 성화를 중시한다. 칭의에서 출발하고 칭의로 돌아가는 루터파 신학과는 달리 성화 곧 믿음에 의해 거룩한 생활을 강조한다. 따라서 개혁신학에서는 윤리가 합당한 강조와 존경을 받는다.

종교개혁은 모든 믿음의 내용들을 성경에 근거시켰다. 따라서 개혁신학은 성경을 신학함의 원리와 근거로 삼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므로 성경의 권위를 신적 귄위로 받는다. 신학함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하고 믿음의 내용도 다 성경에서 도출하고 성경대로 구성한다. 그리하여 성경을 신학의 원천과 원리로 고수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는 것을 바른 신학함의 원리로 삼는다.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모든 일을 자기의 작정대로 이루셨다. 그리고 자기의 경륜대로 구원을 이루신다. 다른 신학계계들이 별로 관심하지 않는 예정 교리를 합당한 교리로 받는다. 예정 교리는 실은 은혜의 주권성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예정 교리는 주 예수의 복음을 믿어 구원되도록 작정하심으로 이해해야 하고, 예정된 자들은 예정됨만으로 구원 얻는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개혁신학은 다른 신학체계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언약사상을 중요한 교리로 삼는다. 하나님은 구원협약 때 삼위 간에 협약하셨다. 하나님은 창조 시에 언약을 체결하셨는데, 언약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약정이다. 따라서 언약 교리를 개혁신학의 기본으로 삼는다. 언약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됨의 약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성경적 진리이다.

개혁신학은 인간의 타락 상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부정적이다. 전적인 부패와 무능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없다.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불가능하다. 구원을 창조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요, 인간의 능력에 의한 시발이나 보충이 불가능하다. 전적 부패와 무능이므로 전적으로 은혜가 일한다. 구원 얻음의 시작점인 부르심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은혜가 사람을 중생시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전적인 부패와 무능을 강조하므로 다른 신학체계들 특히 로마교회로부터 개혁신학이 많은 비난을 받는다.

개혁신학은 구원 얻음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시작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모든 구원은혜가 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구원 얻음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는 근본진리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고 그의 생명을 공급받아 거룩한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칼빈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개혁신학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을 강조하고 그 한계를 분명히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어도 신성과 인성을 섞는 것이 아니고 두 존재 간의 거리는 엄격하여 넘어설 수 없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개혁신학의 근본원리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그 한계를 벗어나서 신(신화)되기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영화되는 것은 신 되기가 결코 아니다. 그때도 피조물로 남는다. 그리스도의 구속 때문에 낙원의 처음 상태를 넘어가나 피조물의 한계선을 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또 하나님과 피조물의 거리와 한계를 강조하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사람에 의해 보충되는 일이 결코 없다. 구원을 이룸에 있어서 사람이 하나님과 동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적으로 은혜로만 일이 이루어진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