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목사님의 율법 이해에는 매우 문제가 많습니다. 괜한 문제를 더 일으키지 말고 이제 조용하십시오. 목사님의 문제점은 율법과 영생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고신의 우병훈 교수님도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인간이 성실하게 반응하고 순종해야, 즉 율법을 잘 지켜야 영생의 언약이 완성된다고 잘 말했는데, 목사님은 그 교수님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습니다. 

회중파 청교도 신학이 말하는 대로, 아담이 십계명과 율법을 지켰으면 영생을 얻었을 것입니다. 책들을 폭넓게 보시고 많은 이론들들 다양하게 공부하기 바랍니다. 회중파 청교도 신학자들의 구원론은 개혁주의 정통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고 하나님의 예정의 실행입니다. 개혁신학의 ‘오직 믿음’이라는 전제 속에 다 포함되는 내용입니다. 아담은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못해 더 완전한 사람이 되는데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저주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담 대신 십계명과 율법을 다 지켰으므로 의롭다하심을 얻었고, 우리에게 의를 전가하여 주셨습니다.  회중파 청교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목사님처럼 구약의 율법을 가벼이 여기고 섣불리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중시하면 저주받을 겁니다. 예수님의 율법준수의 의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생의 길이었습니다. 인간이 부족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했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주셨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유럽의 모든 위대한 학자들이 지지하는 신학인데, 왜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기독교강요도 읽었다면서, 마치 난독증 환자 같습니다. 
 

변증>
(친일파(토착왜구)와 회중파 청교도는 우리 민족과 교회에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왜 회중파 청교도 목회자들이 교회를 해치는 위험한 세력인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상이 청교도(회중파) 목회자들의 십계명이나 그 하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율법들이 아담에게 영생의 조건이었고, 일반 구약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조건이었다는 사상은 크게 비성경적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율법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 즉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이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세례와 구원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상적인 신앙 안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분명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이 교회에 오래 다녔으나, 세례 받고 싶은 신앙이 일어나지 않아서 세례를 외면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군대에서 하루 휴식하고 초코파이 얻어먹으려고 교회에 갔다가 얼떨결에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고서 세례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천주교는 세례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세례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공표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세례의 의미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보내신 구약의 율법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대략 3,500년 전에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후에 개인적인 세례를 받기도 했고, 집단적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증하는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세례를 받은 대표적인 사람은 노아입니다. 베드로전서 3: 20, 21절은 홍수를 노아가 받은 세례였다고 합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세례라”(벧전 3:20, 21)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생존한 노아와 그 가족들이 홍수의 세례를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신약의 교회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하는 모양의 세례는 아니었지만, 신약의 세례와 같은 의미의 세례가 이미 구원받은 노아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어야만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을 입어 살게 되었음이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노아와 그 가족들은 홍수를 통해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집단적 세례를 받은 구약의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 10:1,2)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추격해 오는 바로의 전차 군단에 사로잡혀서 다 죽거나, 다시 노예 생활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적적으로 살리셨습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를 가르시어 육지처럼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 가능성이 1%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살았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막의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모두 죽게되었습니다. 반대로 밤에는 사막의 추위로 인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또 은혜를 베푸시어 살려내셨습니다. 낮에는 거대한 구름기둥으로 태양을 가려 서늘하게 해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일으키시어 따뜻하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받은 구약의 세례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자리에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구원받은 사람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때에는 아직 율법이 오지도 않았고, 그들은 아무 율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그들보다 훨씬 나중에 모세를 통해 왔습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동일합니다. 구원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여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언제 왜 주셨습니까? 하나님 택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 사람들이 지키고 살아야 할 원칙과 원리로서 주어졌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그 사람들은 이미 구원 받았고 바다와 구름기둥의 세례까지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 구원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 백성이 된 그들이 지키고 살아야 할 삶의 원리로서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슨 관계일까요? 이미 창세전에 작정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택하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율법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도입하는 특별계시였습니다. 십계명과 그 하부의 율법들이 제시하는 대로 완전하게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에 이끌리는 죄인들이므로 십계명과 율법들이 가르치는 대로 완전하게 살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롬 7:21-25)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관계는 사도 바울의 이 말 속에 들어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칙은 더 없이 아름답고 고상하지만, 사도 바울 같은 율법의 대가에게도 지킬 수 없는 불가능한 요구였습니다.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오직 창세전에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안에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동일한 택하심과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율법을 많이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선전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를 제시하는 율법의 완성이고, 인간에게 죄사함을 주어 '하나님의 의'를 얻게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율법으로 기독교를 왜곡하는 회중파 청교도의 거짓신학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하는 말을 따르지 말고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율법이 구원과 영생의 조건으로 주어졌다는 성경을 왜곡하는 신학을  따라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대신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 예수 믿고 구원 받아야 할 사람에게도 먼저 율법을 전해야 한다는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 같은 거짓 신학이 탄생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성경에서 벗어난 거짓 신학, 즉 이단적 사상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창세전에 구원 받기로 예정된 자들에게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미리 적용하여 구원이 일어났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노아, 아브라함 같은 구원받은 사람들도 오직 장차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율법은 더 나중에 이미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이 지키고 살아야 하지만, 죄인의 본성적으로는 지킬 수 없는 하나님 백성의 신앙과 삶의 원리로 도입되었고,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과 구원을 얻는 것은 무관합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구원받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의 청교도(회중파) 목회자들의 율법 사상은 심각한 거짓 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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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