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오늘도 율법, 내일도 율법, 자나 깨나 율법, 영원무궁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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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오늘도 율법, 내일도 율법, 자나 깨나 율법, 영원무궁 율법!
  • 정이철
  • 승인 2019.07.25 06:2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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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회중교회의 역사에 관한 글을 보내주셨다. 최근 <바른믿음>에서 진행되는 회중파 청교도 논쟁이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회중파 청교도가 신학적으로는 츠빙글리와 칼빈의 사상을 잘 계승하였고, 단지 회중이 중심이 되는 교회정치를 추구했을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청교도 신앙에 대해 왜곡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글을 보내주신 분과 아직 청교도로 불리우는 회중교회 신학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올린다.)

보내주신 글 감사합니다. 청교도 사상에 대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가르쳐진 내용이 많은 글이네요. 영국의 회중파 청교도는 그 시작부터 다른 청교도와는 영적인 특성이 달랐습니다. 신학이 같았으나 단지 교회정치 체제에 대해서만 달랐던 것이 아닙니다. 장로파 청교도는 제네바에서 칼빈에게서 직접 배웠던 잔 낙스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칼빈에게서 직접 배운 적이 없었던 윌리엄 퍼킨스와 윌리엄 에임스 등으로부터 시작된 잉글랜드의 회중파(독립파, 분리파) 청교도의 주장과 신학은 매우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이 점이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보내주신 글도 기존의 관점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신 분의 글입니다. 다 아는 것처럼, 영국의 종교개혁자들과 종교개혁 교회를 모두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지금 우리에게 '청교도 신앙'이라는 명칭의 특이한 신앙의 장르를 형성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회중파 청교도들입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하였던 1600년대 중반의 영국의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장로파 청교도들과 회중파 청교도들은 서로 갈라셨습니다. “언제 함께 웨민고백서(WCF, 1647년)를 작성했었는가?” 싶을 정도로 대립했고, 다시 화합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에 관한 목표와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고, 그 원인은 신학의 차이였습니다.

웨민고백서를 작성하였으나 얼마 후 회중파 청교도들은 자신들만의 ‘사보이 신앙고백’(Savoy Declaration, 1658년)을 별도로 선언하여 장로파 청교도와는 공식적으로 길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로파 청교도(장로교회)는 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웨민고백서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웨민고백서 속에 과연 이게 장로교회와 칼빈의 신앙이 맞는가? 싶은 내용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난 후 스코틀랜드의 장로파 청교도들은 장로교회를 형성하였고, 그냥 장로교회로 불리워졌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저명한 지도자들 가운데 소위 ‘청교도 사상(신앙)’이라고 불리우는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요즘 크게 유행하는 ‘청교도 신앙’이라는 것의 내용은 전부 영국의 회중파 청교도들과 신대륙으로 건너가 회중교회를 세운 그들의 후예들이 발전시킨 사상입니다. 침례파 청교도들이 포함될 수도 있겠으나, 침례파 청교도는 원래 회중파 청교도였던 사람이 시작하였으므로 비슷한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회중파 청교도들에 의해 발전된 그릇된 신학들, 즉 종교개혁을 그르친 회중파 청교도들의 거짓 신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태초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생을 위한 쌍방의 계약 

아담과 하나님이 태초에 영생에 관한 쌍방간의 의무를 명시한 계약을 맺었다는 행위언약 사상을 도입한 사람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슨입니다.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잘 지켰어야 할 계명을 지키지 않아 저주 받았고,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그 내용이 십계명으로 기록되어졌다고 합니다. 아담의 원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회중파 청교도의 신앙은 출발에서부터 기독교와 성경에서 벗어나 버렸으니, 이런 신앙에서 구원이 나온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십계명 등을 지키지 못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원죄 사상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칼빈이나 장로파 청교도들이 아닙니다. 지금의 행위언약 사상을 교회에 도입한 사람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슨입니다. 회중파 청교들은 이 사상을 기반으로 각 개인이 할 일을 해야 은혜언약의 구원에 이른다는 사상도 발전시켰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을지라도 여전히 율법준수의 의무가 남아있다는 사상도 발전시켰습니다. 
 

2) 아담 대신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지켜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는 능동 순종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십계명 등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영생을 위한 자격과 권리, 생존권)를 얻었다는 회중파 청교도의 구원론은 사도 바울과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죄인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흠 없는 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에게 죄 용서를 주시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의 종교입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죽으시고 피를 흘리셨으므로 기독교는 십자가의 은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에 관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십자가의 죄 사함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런데 회중파 청교도는 아담에게 있지도 않았던 십계명을 이야기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키신 것이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성경의 방식, 즉 구원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내용이 변개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구원을 주신 예수와 십계명 준수로 구원을 준다는 회중파 청교도의 예수는 전혀 다른 예수입니다. 하나는 '성경의 예수'이고 또 하나는 '성경의 예수로 가장하는 사탄'입니다. 성경은 십계명을 잘 지켜서 죄인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한다는 예수에 대해서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만들어서 기독교를 변개시키는데 쓰임받은 사람들은 회중파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신호섭 교수의 이 책을 보시면 어떤 회중파 청교도들이 능동순종 교리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인간의 조건, 행위, 역할, 동의, 승낙으로 완성되는 은혜언약 사상

회중파 청교도들은 거짓된 행위언약 사상과 짝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은혜언약 사상도 고안하였습니다. 회중파 청교도들은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십계명 등을 지키지 못하여 저주 받았다고 합니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행위언약 속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오직 은혜언약으로 이동되는 사람은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은혜언약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회중파 청교도들도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강조하였으나, 동시에 인간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 역할, 동의, 승낙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언약 속으로 이동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요구되는 조건, 역할, 동의, 승낙, 성화 등에 의해 은혜언약의 효력이 완성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보스톤에서 목회한 존 카튼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은혜언약을 성립시킨다는 매우 건전한 은혜언약 사상이 제시되기 전까지 윌리엄 퍼킨스, 리처드 십스, 존 프레스턴 등이 가르친 인간의 조건, 동의, 행위, 성화로 효력이 유지되고 완성되는 은혜언약 사상이 청교도를 지배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청교도 율법주의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행위언약에서 해방되고 은혜언약으로 이동된 사람이라도 율법준수의 요구는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킴으로 구원 얻은 사람임을 스스로 드러내게 된다는 가르침이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청교도 = 율법주의’라는 이미지는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인해 구원이 선물로 완전하게 주어진다는 것이 사도 바울과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구원을 위해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그 순간부터 그 신앙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다른복음, 거짓신학으로 전락합니다. 인간이 뭔가를 해야만 그리스도의 구원이 자신의 것으로 정착된다고 가르치는 순간 그 종교는 율법주의 종교로 판정받습니다. 행위언약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은혜언약으로 구원받았을지라도 여전히 각 개인을 향한 율법의 요구는 남아있으므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회중파 청교도 신앙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저주한 이단들의 사상과 같은 내용입니다.

인간의 역할과 조건으로 성립된다는 그리스도의 은혜언약 사상을 세운 사람들도 윌리엄 퍼킨슨, 리차드 십스, 존 프레스턴 등의 회중파 청교도들입니다. 원종천 교수의 이 책을 잘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4) 복음보다 율법을 먼저 선포해야 한다는 회심준비론

회중파 청교도들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율법을 잘 가르치고 전해야만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역사하여 구원이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기로 결단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단정합니다. 율법의 저주를 경험하지 않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원 받기 전에 율법을 듣고 배우면서 은혜를 사모하고, 구원 받은 후에는 구원의 열매로서 율법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날마다 율법! 오늘도 율법! 내일도 율법! 자나 깨나 율법! 앉으나 서나 율법! ... 영원히 율법! 이것이 회중파 청교도 신앙의 정체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 전에 율법의 저주를 알고 영혼이 율법의 쓴 잔을 경험해야만 구원에 이르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그 전에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잘 알아서 구원받았습니까? 12년 동안 피 흘리는 병으로 고통당한 뷸쌍한 여인이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잘 배워서 구원받았습니까? 친구들이 들것에 실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준 중풍병자는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잘 알아서 구원받았습니까?

인간에게 구원과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아는 사람에게나 모르는 사람에게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구원주시기로 택하신 사람이 있으면 성령이 그 말씀과 함께 역사하심으로 구원이 일어납니다. 신약 성경의 전도자들은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로는 구약의 율법의 배경으로 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때로는 동물제사를 배경으로, 때로는 안식일을 배경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청교도 신학의 말을 따르면, 현대의 교회는 ‘율법반’과 ‘복음반’,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해서는 안될 사람들과 준비되어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각각 따로 설교를 듣게 해야 합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말해주면, 영혼이 스포일(spoil, 어린아이가 버릇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될 뿐이라는 것이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어찌 구원받은 성도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한 곳에 앉히고 설교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더욱 중요한 의미가 또 있습니다. 설교자가 사람들에게 저주의 율법을 신물이 나게 퍼 마시게 하면,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 나를 대신하여 저주받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면 너무 좋겠다!”하는 간절한 소원이 일어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청교도들에게는 그것이 행위언약에서 그리스도의 은혜언약으로 이동되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께 보여야 할 동의, 승낙, 조건, 역할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그 상태를 구원받은 상태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이 혼란을 크게 일으킵니다. 어떤 자연인에게서 진실로 그렇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이미 성령이 그의 영혼을 살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사고나 생명활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스스로 숨 쉬기를 원하고 다른 중요한 생명활동을 갈망할 수 있습니까? 

회중파 청교도 사상을 다른 청교도들과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그 방식으로 교회를 농락했습니다. 거짓 신학으로 충만한 회중파 청교도를 별도로 구별하여 조심히 취급하지 않고, 영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을 청교도라 여기는 그 단순한 차원에서 장로교와 회중교를 비슷하게 여기면 사탄이 기뻐합니다. 회심준비론을 만드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들도 모두 회중파 청교도들입니다. 회심준비론을 선전하는 미국의 조엘 비키 교수의 이 책을 보시면 어떤 회중파 청교도들이 이런 거짓신학을 만들었는지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등장하는 이름들 모두가 회중파 청교도들입니다. 
 

 

회중파의 역사적인 열매를 보십시오. 온갖 이단들에게 잘 이용당하였고, 자유주의의 온상이 되어 미국 교회를 타락시키는데 잘 쓰여졌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종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지고 찢어져서 대체 미국 어디에 회중교회가 있는지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미국 건국의 종교라고 무작정 칭송받았던 회중교회가 지금 미국의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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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2019-07-26 12:20:24
아멘!!

김리훈 2019-07-25 21:21:32
매우 좋은 글 입니다. 적극 동의 합니다.

장성일목사 2019-07-25 11:03:14
적극 공감합니다. 정말 기가 막힌 휼륭한 내용입니다.
가히 한국교회에 끼친 그 위력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회중파 청교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교회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처음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당히 헷갈리고 의구심이 들면서 갈등이 많았는데,
계속해서 바른 믿음의 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지금은 적극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인간의 의(목회자, 성도 모두)가 얼마나 강한지, 그게 바로 잘못된 신학의 영향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을 입으로는 고백하고 잘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재 삶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저는 칼빈대와 총신에서 신학을 한 합동측 목사이면서도 하나님 보다는 제 자신이 어떻게 하면 목회에 성공해 볼까, 설교를 잘 하고 책을 써서 내 이름을 내볼까....하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불순한 육신적 동기들로 가득했던 자였습니다..
제가 좀 잘하면 교만하고, 못하면 열등감속에서 큰 교회 목사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판하면서 살아왔던 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아 왔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바른 신학을 회복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하나님께 돌아가서 힘써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에 하나님께서 정목사님을 사용하시는 줄 믿습니다. 험한 길에 주님의 선한 손길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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