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러 테제, 청교도 거짓복음을 정통으로 둔갑시키는 고난도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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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러 테제, 청교도 거짓복음을 정통으로 둔갑시키는 고난도 기술
  • 정이철
  • 승인 2019.07.20 05: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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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멀러 교수


질문>
목사님, 멀러 테제가 무엇인가요?


답변>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아는 대로 말해 보겠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칼빈신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 1948 ~ 현재)라는 분이 주장한 문제 많은 학설입니다. 핵심은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대략 100년 후 유럽의 교회에 ‘개혁파 정통신앙’(개혁파 교리, Refomed Orthodox Theology)로 정착되던 시대의 신학이 같은 내용의 신학이었는가하는 논쟁의 와중에서 나온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이 '웨민고백서'(WCF, 1647년) 등의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들로 문서화되었던 시대의 신학이 과연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였는가에 관한 주제의 문제입니다. 

최근 저는 <바른믿음>의 지면을 통해 웨민고백서 7, 19장에 기술되어 있는 행위언약 사상은 성경과 기독교를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칼빈의 신학과 약 100년 후에 웨민고백서가 작성되던 시대의 신학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칼빈이 웨민고백서를 작성하는 현장에 있었다면, 절대로 집어넣지 않았을 내용이 버젓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칼빈과 다른 칼빈주의가 교회 속으로 들어왔다”

리차드 멀러 교수는 정반대의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을 후대 신학자들이 바르게 잘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신학을 전개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멀러 교수가 주장하여 지배적인 학설이 된 그 이론을 ‘멀러 테제’(Muller’s Thesis)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멀러 테제는 영국의 회중파 청교도의 거짓 신학을 정통으로 둔갑시킨 고난도 테크닉일 뿐입니다. 멀러 테제의 핵심은 16세기 종교개혁 신학과 17세기의 신학이 연속선상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운동, 특히 히중파 청교도 신학을 빼고 17세기 신학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운동은 크게 장로파 청교도와 회중파 청교도로 나누어지는데, 장로파 청교도들은 칼빈에게서 직접 배웠으므로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훗날 신대륙에서 회중교회를 세운 회중파 청교도의 초기 인물들은 칼빈에게서 직접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칼빈의 신학과 달랐고, 칼빈을 비판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습니다.

16세기 신학과 17세기 신학이 같은 신학인가? 다른 신학인가의 논쟁은 곧 칼빈의 신학과 회중파 청교도 신학이 같은 내용의 신학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멀러 교수에게서 배운 사람도 아니고, 멀러 교수의 저서를 연구한 것도 아닙니다. 간단히 17세기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작성한 웨민고백서 속에 있는 행위언약 사상 하나만을 가지고 과연 멀러 테제가 맞는 이론인지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멀러 테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멀러리안’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멀리리안들은 회중파 청교도 신학에 미쳐있는 회중파 청교도 전도사들입니다.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멀러리안은 청교도 신학교의 학장 조엘 비키 교수입니다. 조엘 비키 교수가 요즘 무엇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회심준비론 등의 회중파 청교도 거짓사상을 기독교 정통신앙으로 둔갑시키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엘 비키 교수가 학장으로 있는 청교도 신학교는 칼빈의 사상과 17세기 회중파 청교도 사상이 같은 신학이라고 확신하는, 멀러 테제를 신봉하는 학교입니다. 원죄에 대해 종교개혁 신학과는 다른 해석과 구원론을 피력하는 책 <도르트신조 강해>를 저술한 프롱크 교수도 그 학교에서 강의합니다. 멀러 테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곧 회중파 청교도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한국에도 멀러리안들이 많습니다. 칼빈신학교에서 유학하는 동안 멀러 교수의 영향을 받은 분들이 귀국하여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합동신학교는 조엘 비키 교수가 학장으로 있는 미국의 청교도 신학교와 MOU를 체결하였습니다. 합신은 청교도 신학을 극히 장려하고 있고 멀러리안들이 많은 학교입니다. 

한국의 조나단 에드워즈를 신봉하는 많은 분들도 멀러리안들입니다. 회중파 청교도의 화려한 꽃 조나단 에드워즈의 저술에서 칼빈의 책을 인용한 흔적을 보기 어렵습니다. 에드워즈와 회중교회 신학이 칼빈의 신학을 존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드워즈의 성령에 대한 이해,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신비주의 성향,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기름부음 사상 등은 칼빈의 신학과는 무관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많은 분들이 에드워즈 신학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멀러 테제로 인해 더 가능해진 일입니다. 

과연 멀러 테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학 이론일까요? 청교도 거짓 신학을 정통으로 둔갑시킨 마귀의 고급 기술이라는 필자의 말은 근거 없는 모함일까요? 최근 <바른믿음>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 웨민고백서 7장과 19장의 행위언약 사상을 통해 멀러 테제의 진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멀러 테제의 핵심은 16세기의 종교개혁 신학과 17세기의 회중파 청교도 신학이 같은 노선의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웨민고백서의 행위언약 사상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과 동일한 신학이고, 칼빈의 저술에서 행위언약 사상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웨민고백서의 행위언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태초에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쌍방의 의무와 조건에 근거하는 영생에 관한 계약이 있었다.

2)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을 얻기 위해 성공적으로 준수해야 할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

3) 제 2의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아담 대신 십계명 등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하나님의 의(영생의 권리와 자격)를 얻으시고 우리에게 전가하셨다.

과연 이런 사상을 담고 있는 웨민고백서의 행위언약 사상은 성경적일까요? 그리고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과 일치하는 사상일까요? 한국 교회의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는 어떤 이론이 성경적이고, 종교개혁 신학으로서 정당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고 제시하였습니다.
 

“성경은 모든 신학의 표준이고 진위를 판결하는 재판장이다. 신학이 성경적 진리대로 구성되면 합당한 그리스도교 신학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성경의 판결을 받아 그리스도교 신학이 되지 못하여 배척된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신학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에 근거될 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을 판결받는다. 따라서 모든 신학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과 합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30)

“그리스도교 신학이 교회의 신학이 되려면 교회의 교리에 부착해야 한다. 교리에 부착하여 신학하는 것은 교리가 진술하는 내용대로 신학하는 것을 말한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왔고 성경에 근거하여 공식화되었으므로 신적권위를 갖는다 ... (중략)

“교리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근본진리를 뜻한다. 교리는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신적 권위에 근거하여 교회가 신앙고백 형식으로 표현한 명제이다. 성경에서 유래하고 성경에 근거한 근본진리를 신앙 고백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교회 존립의 근본으로 삼은 것이 교리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92-98)

“우리의 신학은 개혁교회의 신학, 즉 개혁신학이므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규범과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 삼는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신학 전개와 그의 주석에 나타난 성경이해를 준거해서 신학한다. 물론 고대교회이 교리를 기본 진리로 받아서 신학함은 말할 필요도 업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31)

서철원 박사에 의하면 다음의 세 가지 기준으로 웨민고백서의 행위언약 사상의 진위와 개혁신학으로서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가?

2) 종교개혁 이신칭의 교리에 합당한가?

3) 종교개혁자 칼빈의 <기독교강요> 등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행위언약 사상을 실질적으로 입안하여 도입한 사람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입니다. 행위언약 사상은 청교도 운동의 정신적, 신앙적 원동력입니다. 종교개혁 신학과 청교도 신학이 같은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멀러 테제가 성경을 바르게 섬기는 이론이라면, 17세기 청교도 신학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웨민고백서의 행위언약 사상은 위의 세 가지 기준에 의해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1. 성경의 가르침과 행위언약 사상

1)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영생을 매개로 쌍방이 수행해야 할 조건, 역할, 의무가 명시된 계약이 있었다는 것이 청교도들의 행위언약 사상입니다. 과연 성경에서 그런 내용, 또는 그런 주장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나요?

2) 청교도의 행위언약 사상은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을 영생 얻게 만드는 십계명 등의 율법과 함께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태초부터 율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사실을 찾을 수 있나요? 그런 내용을 추론해 낼 수 있는 근거라도 성경에 나옵니까? 성경은 십계명이 모세를 통해 처음 주어졌고(요 1:17),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죄가 먼저 들어왔고(롬 5: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율법이 모세를 통하여 처음 주어졌다(요 7:19)고 하셨습니다.

3) 청교도의 행위언약 사상은 십계명 등의 율법준수를 못하여 영생을 얻지 못한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십계명 등에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생존권, 영생의 권리와 자격)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의 원리를 그렇게 가르치는 말씀, 또는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 말씀을 성경에서 단 한 줄이라도 찾을 수 있나요? 오히려 롬 3:24, 딛 2:14, 롬 5:9, 고후 5:21, 히 10:19절은 죄인을 위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에게 주어진 죄사함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합니다.

4) 청교도의 행위언약 사상은 아담이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생을 위한 계명이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란 명칭으로 주어졌다고 합니다. 웨민고백서와 코르넬리스 프롱크 등의 청교도 신학자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십계명의 가르침대로 영생얻기 위해 공경해야 할 부모는 누구였을까요? 아담이 간음하지 않기 위해 아내 하와 외의 조심했어야 할 여성들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아담이 영생 얻기 위해 섬기지 말았어야 할 우상들은 에덴동산의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와 같은 청교도 신학의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이설이 정통신앙으로 둔갑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멀러테제입니다.
 

2. 이신칭의 교리와 행위언약 사상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정착된 교리는 ‘이신칭의’입니다.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하면 종교개혁 교회가 아닙니다. 이신칭의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영원히, 최종적으로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음 외에 그 무엇이라도 첨가되면 이신칭의를 거부하는 것이고, 종교개혁 교회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행위언약 사상을 도입할 때에 이미 그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구원에 관한 칼빈의 하나님의 예정, 은혜,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이 신자들에게 수동적인 자세를 유발시킨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 능동적, 헌신적 자세를 유발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청교도들의 행위언약 사상입니다.

청교도 신학의 구원론을 얼핏 보면 종교개혁의 이신칭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동의, 승낙, 역할, 책임을 더 많이 강조합니다. 결국에는 율법 잘 지키는 것이 구원과 연관됩니다.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보면, 좋은 나무에게서 절로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열매가 좋은 나무를 만들어 낸다는 식입니다.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외에 다른 무엇이 첨가되면 그 즉시 율법주의로 판정되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청교도 신학의 구원론은 율법주의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율법을 지키면서 회심을 준비하고, 구원받은 후에는 더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증명하고 유지하라고 합니다. 결국 회중파 청교도 신학의 행위언약 사상은 이신칭의를 파괴합니다. 앞에서는 이신칭의를 말하고 뒤에서는 인간의 동의, 승낙, 책임, 역할을 말하므로 이신칭의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이신칭의를 파괴하는 청교도 신학의 행위언약 이설이 정통신앙으로 둔갑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멀러테제입니다.
 

3.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행위언약 사상

16 세기의 종교개혁 신학과 17세기의 회중파 청교도 신학이 같은 신학이라는 멀러 테제가 거짓 이론이 아니라면, 칼빈의 <기독교강요> 속에서 청교도들의 행위언약 사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칼빈도 인간의 원죄를 영생과 완전한 생명을 부여받은 하나님 백성 아담이 감히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는 ‘반역’으로 해석하지 않고, 회중파 청교도들처럼 불완전한 아담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명을 아담이 싫어한 것으로 가르쳤어야 합니다. 과연 칼빈이 청교도들처럼 아담의 원죄를 가르쳤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강요, 2.1.4)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인간이 그 자신의 배은망덕으로 말미암아 최고의 영광의 자리에서 극도의 치욕된 상태로 떨어진 지금은 더욱 겸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최고의 영예의 최정상에 올라 있을 때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밖에 사람에게 돌린 것이 없다(창 1:27).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이 그 자신의 선행들로 인해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써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기독교강요, 2.2.1)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4.14.12)
 

리차드 멀러 교수는 라틴어, 독일어에 정통했고, 어마어마한 학문적인 자료들을 확보한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17세기 신학을 대표하는 웨민고백서의 구원론이 성경의 구원론과 맞지 않는데, 멀러 교수는 그것을 드러내기는커녕 도리어 같은 구원론이라고 가르침으로 교회를 훼방하는 거짓 신학을 크게 이롭게 했습니다. 멀러 교수가 주장하여 널리 유포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방하고 있는 멀러 테제(Muller’s Thesis)에 대한 합당한 성경 말씀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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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 2019-07-20 18:26:18
과연 학문이라는 이유아래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도 되는 것인가, 정치나 개인적 또는 학문적 욕심때문에 복음을 왜곡해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잠 9:10). 제가 읽은 논문에 의하면 'imputation and impartation'을 쓴 윌리엄 에반스가 그리스도와의 연합교리 안에서의 개혁신학자들의 이런 변화 (전통 해석에서 벗어나 언약적이고 도덕적인 해석을 강조)에 대해 지적했는데 멀러와 페스코가 개혁신학의 다양성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철학이라면 다양성이 중요하겠지만 신학은 아닙니다. 어느 신학자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지만 권면의 말을 해도 거부하고 비난한다면 참으로 걱정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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