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 하나님의 지식 수납의 손

하나님을 믿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 사역, 성품, 구원을 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고 확실하게 안다.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은 구원이 창조주 자신의 사역임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안다. 또 믿음으로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계시고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심을 확신 있게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지식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믿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믿음의 본성

이처럼 하나님 지식에 있어서 믿음이 지식 획득의 길이다. 믿음은 본래 논증 없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확실성을 얻는 영혼의 기능이다. 확실성을 얻는 의식작업에 의해 우리는 내 자신의 존재, 세계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받는다. 회의론자들은 세계의 실제를 부인 내지 의심하고, 철학자들은 객관적 세계의 실재와 표상을 분리한다. 그들은 사물의 본질 내지 근본 요소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현상계와 물차제의 세계가 둘로 구분되어 이층세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내부 세계야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의 지각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는 확신한다. 사고에 의해 증명되고 논증되어야 사물의 존재, 내 자신의 존재를 분명한 것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이들 존재에 대한 확실성을 얻는다.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도 믿음으로 알되 바르고 확실하게 안다.

이때 믿음은 아브라함 카위퍼가 밝히듯 구원론적 의미의 믿음이 아니고, 인간의식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영혼의 형식적 기능을 뜻한다. 영혼이 자기 확실성을 수립하는 기능이 믿음이다. 확실성을 얻을 때 논증 없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획득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자기 의식에서 내 존재의 확실성을 얻는다. 즉 내 자신을 믿음으로 내 자신의 지식이 획득된다... (중략)

믿음의 발생

이 믿음의 작용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 중생하므로 하나님과 그의 구원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받는다. 자연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아는 것은 불신자의 믿음이어서 역사적 믿음일 뿐이다. 믿음은 중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 선포된 복음의 내용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절대적 진리로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받으며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구원으로 확신한다.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믿음의 요소

믿음은 믿음의 대상과 사람의 주관적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교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사역이다. 성경이 선포하고 증거하는 복음 곧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계시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내용은 논증되는 것이 아니고 선포되고 증거된다. 선포되고 증거된 대로 받는다.

이 믿음은 우리의 자연적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증거로 된다. 즉 중생하므로 믿음이 발생한다. 믿음으로의 결정이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믿음의 내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성령이 하신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므로 무한자를 우리의 자연적 능력으로 받을 수가 없다. 성령이 우리의 지각을 여사 우리로 받아들이게 하신다. 성령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물처럼 지식을 받는 것이 아니고 진리로 승인하는 것을 받는다. 이 받아들임이 곧 믿음이다. 우리는 유한하므로 무한자를 수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로 받아들이게 역사하실 뿐 아니라 칼빈의 가르침처럼 성령이 하나님과 그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손 노릇을 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령의 중생 사역으로 발생하고 성령의 증거에 의해 활동한다.

믿음은 먼저 대상을 분명히 아는 지식을 전제한다.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안다. 그것은 추리와 논증에 의한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신앙의 대상을 바로 아는 것이 믿음이다. 신앙의 대상을 아는 지식은 필연적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선포에서 온다고 하였듯이(롬 10:17) 믿음의 대상지식은 복음선포에서 온다. 온전한 복음이 선포되면 바르고 확실한 믿음의 대상지식을 얻는다.
 


복음선포를 들어서 믿음의 대상지식을 얻으면 믿음고백을 하여 믿음에 굳게 세워진다. 믿음은 믿음고백으로만 성립한다. 믿음은 대상지식에 찬동하는 것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이해는 로마교회의 견해 곧 믿음을 진리 지식에 찬동이란 것을 변명한 것일 뿐이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지식에 찬동하여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믿음고백으로 성립한다.

믿음이 실제로 믿음이 되려면 믿음의 대상의 지식을 받음과 동시에 믿음고백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였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믿음고백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믿음고백으로 믿음이 된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그 대상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고백으로 성립한다.

믿음의 인식

믿음으로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 지식의 수납은 전적으로 믿음이 하지만 중생한 이성이 인식작업을 한다. 중생된 이성이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는 작업을 한다. 그러나 이 인식작업은 자연이성의 경우처럼 논증과 증명에 근거하여 신앙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증거에 의해 신앙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이해하게 하므로 받아들인다. 즉 이성은 자기의 자연적 권리로서 계시의 내용을 수납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이성은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한다. 계시의 권위에 순종함이 곧 믿음이다.

믿음은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 권위에 의해 수납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 때문에 자기 가신성을 가지므로 우리로 믿게 한다. 이 자기 가신성은 바로 성령의 증거와 같은 것을 뜻한다. 성령이 성경의 원저자이시므로 성경이 가신성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속에서 내적 증거를 하신다. 그리하여 성경의 증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한다. 이 받은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안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01-106)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