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목사님의 청교도에 대한 자세가 점점 대범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거침없이 청교도를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인가요? 본인의 주장이 틀리면, 오히려 본인의 생명이 끝날 것임을 모르십니까? 청교도를 건드리고 살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난 수 백년 동안 전 세계 교회의 주류 신학으로, 최고의 신학으로 군림하고 있는 청교도 신앙을 이단으로 내려치는 그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답변>
가장 기본적인 것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청교도 신앙은 오직 영국의 독립파 청교도와 분리파 청교도로 불리워진 회중파 청교도들, 그리고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회중교회를 세운 그 후예들의 신앙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언약도'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스코틀랜드 중심의 장로파 청교도는 훗날 장로교회로 발전했고, 그들의 신앙을 청교도 신앙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회중교회를 세운 회중파 청교도 운동만이 이후 역사에서 청교도 신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교도들은 이단으로 내려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구원 신앙이 성경에서 심각하게 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원죄를 아담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 영생을 얻지 못한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청교도들이 아담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 영생을 얻지 못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이해하는 내용이 그들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는 웨민고백서 19장에도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아담이 십계명을 지키지 못해 저주받았으므로 제 2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 즉 하나님 백성의 의를 얻어야만 자신과 우리를 구원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아담이 지키지 못한 십계명을 잘 지켜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 영생을 누리고 살아가 권리(생존권)를 얻었고, 우리에게 전가했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형벌, 즉 저주와 죽음을 해결하였다고 가르칩니다.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켜서 자신과 우리들이 영생하고 살 권리를 얻었으나, 아담과 후손들이 받아야 할 저주의 형벌이 남아 있으므로 제 2의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어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와 죽음을 해결하였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청교도들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이라는 구원론 교리입니다. 능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의, 즉 영생의 권리와 자격을 얻으셨다는 것이고, 수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대신 저주받으시면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저주와 사망을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청교도(회중파)들의 신앙고백서 '사보이 선언에 다음과 같이 최초로 명문화되었습니다. 

“율법 전체를 향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의 죽음을 통한 수동적 순종을 그들의 모든 행위와 유일한 의로서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사보이 선언, 11장)

그러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의를 얻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의 용서를 얻으셨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단 한 줄이라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으나, 단 한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을 건국한 청교도들의 신앙이었다는 이유 때문인지, 그대로 유통되었고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원론입니다. 구원론이 성경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이단입니다. 성경과 다른 구원론을 주장하면 반드시 이단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는 단지 죄 용서를 얻어냈고, 십계명 등의 율법 준수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냈다는 구원론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다른 구원론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십계명이나 율법을 지켜서 우리를 구원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말합니다.

청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십계명 등의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한 것이라면, 사도 바울은 거짓 사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죄인의 구원에 관하여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계명 준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만 구원의 영광을 설명하는 바울의 말들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십계명 등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의, 즉 영생의 권리와 자격을 얻었다는 거짓 구원론 이단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예수로 예수를 치는 참으로 교묘한 마귀의 작품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보다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 방법에 대하 잘 아는 전문가는 없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사도 바울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얻어지는 죄 사함으로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의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사도 바울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흠 없는 자기의 육체와 생명을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지켜서 의롭다하심을 얻고 우리에게 전가하였다고 가르치지 않았고, 오직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었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키게 하셨다고 하지 않았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우리의 죄를 전가하시고 우리 대신 피 흘리고 죽게하였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사도 바울이 저술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히브리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얻어 하나님 앞에 나갈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으로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도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그리스도의 피로 얻어지는 죄 사함으로 설명하였지, 결코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켜서 얻어 전가한 것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았다고 말할 때에(갈 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서 의를 전가하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은가? 또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불경건한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다고 말할 때(롬 3:26). 그것은 불경건하여 당연히 정죄를 받을 사람들이 믿음의 덕택으로 그 정죄에서 풀려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독교강요, 3.11.3)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한 것과 똑같은 뜻이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4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칭의를 "의의 전가"라고 부르며 칭의를 죄의 용서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기독교강요, 3.11.4)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죄인이 얻는 하나님의 의를 그리스도의 피로 얻어지는 죄 사함으로 설명하지, 결코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잘 지키신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24)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구원론이 성경의 가르침, 특히 사도 바울의 구원론에서 벗어나면 이단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되지 못합니다. 청교도 신앙이 사도 바울과 다른 구원론을 가르쳤으나 그 동안 이단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를 통해 많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일어났고, 교회는 그 만큼 망가졌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청교도의 능동순종 구원론 이단사상의 뿌리가 되는 아담이 십계명을 지키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저주받았다는 원죄 해석입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는 청교도의 이단적인 구원론이 탄생했고, 계속해서 율법에 대한 엉뚱한 강조와 적용이 초래되었습니다. 

성경은 율법이 있기도 전에 이미 죄가 먼저 있었고, 죄가 일어 난 후 죄를 죄로 규정하고, 구원자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율법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교도 신앙은 태초부터 율법이 있었고, 율법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갈라졌다고 하고, 구원도 율법에 의해 좌우된다고 합니다. 같은 성경을 사용하여 다른 종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청교도들의 이단사상으로 인해 율법이 하나님이 의도하시지 않았던 필요 이상의 중요성과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은혜의 신앙에서 율법의 신앙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청교도들은 구원 받기 전에는 율법을 듣고 순종하면서 구원을 준비해야 하고, 구원 후에는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기 위해 율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과 정통 종교개혁의 가르임은 그리스도의 구원 이후 율법(도덕법)의 기능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비추어주는 거울 정도로 그칩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제 할일을 다하고 사라진 몽학선생이라고 했는데, 청교도들은 몽학선생이 장성한 주인의 아들들을 여전히 다스리고 관리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청교도처럼 율법에 대해 그릇되게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리처드 멀러, 안토니 후쿠마 ... 등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들이 이쪽에 연류되어 있다고 해도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같은 분들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성경에 기록하였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도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기록된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이 시대의 신학자들 100명 중에서 99명이 성경을 잘못 해석한다고 하여 성경의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99%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한다고 하여 성경의 구원론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한 사람 루터가 결국 종교개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결국 사람의 수가 성경의 진리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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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