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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의 소강석 목사의 <생명나무> 서평과 부탁의 말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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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2  02: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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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소강석 목사에 대해 매우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전집> 때문이다.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이 출판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애썼고, 가장 큰 노력을 발휘한 분이 소강석 목사라고 전해 들었다. 그 일의 가장 큰 실질적인 공은 소 목사의 지도를 따르는 분당 세에덴 교회의 신자들에게 있겠으나, 소강석 목사에게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 출판의 가치를 보는 안목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일이었다.

서 박사님의 사상과 신학을 명료하게 진술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놓지 않으면 보물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들이 손을 뻗어서 서 박사님의 사상과 신학을 잡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 개혁교회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해 소강석 목사가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하나님이 쓰시고자 기르시는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과 신학 교수 지망생들이 서 박사님의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을 정독하며 정리할 때 자주 소강석 목사를 생각했다.

더불어 필자는 소강석 목사의 신학과 사상에 대한 궁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여) 소 목사의 외모를 보면 그에게는 신학적 지성이나 문학적 재능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페이스 북과 신문지상을 통해 소 목사의 글들을 읽어보면 “과연 소강석 목사의 글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보였다. 역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맞다 생각되었다.  

소강석 목사의 저서 <생명나무>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한 문장으로 소감을 말하자면, “소 목사의 신학적 지성이 이렇게 깊고 심오하였는가? 저렇게 생긴 사람에게도 이 정도의 깊은 신학적 안목이 있고, 그것을 설교로 녹여내는 능력이 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강석 목사는 매우 분주하고 바쁜 분이므로 그의 글을 교정하고 다듬어 내는 조력자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그럴지라도 그 자신의 지성 안에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 없다면, 이런 작품은 나올 수가 없다.
 

   


아직 뒷부분을 조금 남겨둔 상태이지만, 계속 흥미롭게 읽으려고 한다. 조금 쓴 약이 몸에 더 좋듯이 좋은 말들로만 서평을 마치면 저자 자신과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 소강석 목사와 우리 모든 독자들의 발전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최근 <바른믿음>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청교도 신앙(회중교회)과 웨민고백의 행위언약 사상과 관련된 문제이다. 소강석 목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공히 해당되는 문제이다.

성경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소강석 목사는 더욱 서철원 박사의 신학과 가르침에 유의하면 좋겠다. 서 박사님의 사상과 신학을 한국 개혁교회 앞에 정리하여 내어 놓는 큰일에 앞장선 분이므로 하는 말이다. 창세기의 선악과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지금 개혁신학 진영은 상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태이다.
 

1. 선악과를 불완전한 아담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생 얻는 조건으로 해석

한쪽에서는 선악과를 하나님이 불완전한 존재로 지은 아담이 스스로의 힘으로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적 계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이다. 이 주장은 장로교 신앙의 표준 문서라 불리우는 웨민고백서(WCF) 19장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성경과 기독교를 심각하게 왜곡한다.

1) 인간이 스스로 계명을 준수하여 그 공로로 영생을 회득한다는 것은 모든 이방 종교들의 공통적인 교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은혜로 영생을 주시지 않고, 인간이 자기 힘으로 조건을 성취하여 영생을 얻게 만드는 분이라고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

2) 이 주장을 하는 분들은 선악과 하나를 먹느냐 마느냐로 아담의 영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계명들이 아담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위험한 사변이다. 또한 그 계명들이 훗날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웨민고백서 19장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정말 십계명 준수가 아담의 영생조건이었다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마귀의 우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자평하셨다고 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모순된 분으로 왜곡하는 위험한 주장이다.

3) 선악과를 영생을 위한 계명으로 해석하였던 사람들에 의해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도 창안되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지키지 못한 계명(모세의 십계명 등)을 완전하게 지켜 자신과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생존권, 즉 하나님 백성의 의(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을 얻었고, 십자가의 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제거하였다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은 오직 죄 없으시고 율법과 모든 면에서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사하심이 곧 우리의 의라고 말씀한다. 능동순종 교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지 속죄를 이루었고, 또 한편으로 십계명 등의 율법준수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의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주장을 지지하는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다. 이 주장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전하였던 사도 바울까지도 다른복음 전하는 이단으로 만드는 사악한 이론이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절대성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다른복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예수로 예수를 치는 사탄의 고도의 술책이다. 

특히 이 주장을 반복하는 청교도(회중파) 목회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구원받기 전에 율법을 지키면서 회심을 준비하여야 하고, 구원 받은 후에는 자신의 구원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차원에서 율법을 더 열심히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과 신자들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이단들에게 경고한 저주를 향하여 매일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선악과를 불완전한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자기 힘으로 지켰어야 할 계명들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방식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
 

2. 선악과를 하나님 백성 아담의 하나님 섬김 거부(반역) 의사 표시로 해석

개혁신학의 한쪽 편에서는 선악과를 완전한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진 아담의 하나님 섬김에 관한 언약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 아담의 죄는 단지 먹지 말라는 과일을 먹은 것이 아니고, 하지 말라고 하신 일들을 어긴 정도가 아니다. 아담의 선악과 사건의 본질은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졌으면서도 하나님 섬김을 거부한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 다음과 같은 면에서 선약과에 대한 이 해석이 옳다.

1) 하나님이 자기를 섬겨야할 백성으로 아담을 지으셨으나 아담은 자신의 교만과 욕망을 따라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반역을 결심했다. 그 결단의 표시로 선악과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영원히 저주하고 심판하였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자연스럽게 상응한다.  

2) 율법은 인간의 죄악된 상태를 규정하고, 인간의 방법으로는 구원 얻을 수 없고, 오직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3) 인간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심지어 인간이 반역했음에도 죽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하여 구원을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잘 드러내고 설명하여 준다.

서철원 박사는 두 번째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미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는 한국의 개혁신학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소강석 목사는 이 부분에서 서 박사님의 신학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한국 개혁신학을 위해 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전집> 출판하는데 앞장선 소강석 목사가 이 중요한 부분에서 서 박사님의 신학을 수용하지 않고 기존의 다수 입장을 수용하여 성경의 문을 열었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서 박사님의 비위를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불완전하게 지은 인간이 스스로 완전해지기 지기 위해 선악과로 표현되는 계명들을 지켰어야 했다는 성경 해석은 알미니안주의, 펠라기안주의, 행위구원론, 유보적 칭의론, 신인협동구원론의 지원하는 이론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는 자기 백성 보기를 원하시어 인간을 창조하셨고, 아담의 타락으로 창조가 파괴되었음에도 원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여전히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먼저 은혜로 역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에 근거하여 영원히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방식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 박사님이 가르치는 대로 선악과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표시로 해석해야만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정당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율법이나 그 무엇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모든 뜻과 율법 앞에서 무흠하셨던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얻는 죄 사함, 곧 의롭다하심으로 얻는 구원을 바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웨민고백서의 행위언약이 심각하게 기독교를 왜곡한다고 생각하고, 서 박사님의 언약신학을 합동 교단이 공식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웨민고백서의 선악과 해석을 거의 절대적 진리로 믿고 무작정 따라온 지금까지의 상황 속에서 소강석 목사의 선악과 이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있다. 한국 개혁신학과 개혁교회를 더 건강하게 세우자는 취지에서 말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소강석 목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합동의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을 더 많이 보급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예장 합동의 소망은 말씀 회복, 즉 진정한 개혁신학 확립에 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분이고, 진리의 말씀이 없는 곳에서 역사하는 영은 귀신이지 성령이 아니다.

말씀이 진리대로 선포되어야 성령이 역사하고, 그리고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에서 저절로 도덕과 윤리도 살아나게 된다. 합동의 장래의 소망을 위해 서 박사님의 <교의신학전집>을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방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소강석 목사는 능력이 있는 분이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바른믿음/바른믿음 아카데미 대표 정이철 목사(예장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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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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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7-14 18:10:45

    롬5장에 따라 아담에게 주어진 조건은 그리스도께서 충족하셔야 했던 조건과 같다…가 행위언약이 나오게 된 가설로 알고 있습니다. 가설이 진짜가 되어 외국 신학교에서도 행위언약을 부정하면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원하시지 겉으로만 보여지는 법의 준수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순종을 말할 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 전체의 순종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순종은 고난과 관련이 깊습니다.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고 해서 진짜 종 취급을 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법 준수가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입니다. 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고 고난을 통한 삶 전체의 순종입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고 말씀만 지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비유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없이 법적 의무만 지킨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해와 사랑의 부재는 불신과 범죄함으로 이어집니다.

    호세아 6:6-7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히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빌 2: 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신고 | 수정 | 삭제

    • 김리훈 2019-07-12 23:06:23

      선악과 명령은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피조물인 인간에게 알려주신 경계표지 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아담에게 선악과 명령이 주어진 이후 아담이 선악과를 볼때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차이점을 인식했어야만 했고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했어야만 했습니다. 아담은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져버리고 하나님 되려고 했던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 것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개념에 대해 2019-07-12 15:17:24

        행위언약은 명령(창2:16)과 율법이 동일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신구약을 묶어내는 논리전개를 펼칠 수 있는데,

        문제는 "명령(고전7:19)과 율법이 동일한가" 하는 것이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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