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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 회심준비는 없다 회심조건은 오직 성령세례이다
이창모  |  rhicm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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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6  11: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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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을 받으리니" (한글개역 행2:38)

위 본문의 개역한글(개역개정) 번역에 의하면, 물세례를 받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회개이며, 회개와 물세례가 죄 사함을 얻는 선행 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리하면’이라는 번역 때문에 회개와 물세례를 선행 조건으로 하는 죄 사함이 저절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 조건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하면 행 2:38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죄 사함, 성령 세례)을 받기 위해 인간 편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에서는 이 본문 등을 근거로 ‘물세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고, 사제가 아닌 산파라 할지라도 죽어가는 영아에게 세례(영세)를 베풀었다. 또 알마니안들은 행 2:38 등을 근거로 ‘죄 사함과 성령세례’ 전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행 2:38은 최근에 <바른믿음>에서 정이철 목사님이 뜨겁게 다루고 있는 ‘회심 준비론자들’에게는 어쩌면 ‘회심 준비론’을 지원하는 성경 본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은 행 2:38의 헬라어 원문을 오역한데서 비롯된 코미디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행 2:38의 헬라어 원문들은 이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번역 성경(필자가 검토하지 못한 번역 성경은 제외하고)은 행 2:38의 헬라어 원문을 심각하게 오역하고 있다. 한글개역, 개역개정,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은 물론이고 영어성경들에서도 하나같이 거의 같은 수준의 번역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러면 번역 성경들에서 행2:38의 헬라어 원문이 얼마나 심각하게 오역되었는지를 “죄 사함을 얻으라”와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죄 사함을 얻으라

“죄 사함을 얻으라”로 번역한 헬라어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은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본문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한글 성경에서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을 마치 ‘물세례’가 ‘죄 사함’의 조건인 것처럼 “죄 사함을 얻으라”로 번역한 것은 한글성경 전체에서 몇 안 되는 악역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번역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인 “이신칭의”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오역이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서 ‘얻으라’로 번역된 헬라어 “eivj”(에이스)는 ‘동사’가 아니라 ‘전치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은 독립절이 아니라, 앞의 문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의 목적이나 수단을 나타내는 종속절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한글 성경에는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에서 전치사 “eivj”(에이스)를 동사인 것처럼 ‘얻으라’로 번역함으로써,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이 마치 독립된 명령문인 것처럼 소설을 썼다. 다행히 영어성경에서는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을 ‘세례를 받으라’의 ‘종속절’로 바르게 보고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으로 제대로 번역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어성경에서도 전치사 “eivj”(에이스)를 ‘~를 위하여’(for)로 오역하므로, 결국 한글성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인 “이신칭의”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번역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아래 제시한 영어성경은 NIV의 행2:38이다. “eivj”(에이스)를 “for”로 번역함으로써, ‘회개와 물세례’가 ‘죄 사함’을 위한 조건처럼 오역했다.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막1:4(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의 헬라어 원문에도 행 2:38의 “eivj a;fesin a`martiw/n”(에이스 아페신 하말티온)과 동일한 문형이 등장한다. 그런데 한글성경은 막 1:4에서는 행 2:38과 다르게 독립절로 번역하지 않고,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의 종속절로 번역했다. 물론 막 1:4의 번역이 행 2:38보다는 조금 나은 번역이지만(그러나 둘 다 원문의 의미와는 다른 엉터리 번역이다), 어쨌든 한글성경은 같은 책에서 같은 문형을 다르게 번역하여 번역에 일관성이 없는 우를 범했다(한글성경에는 일관성 없는 번역들이 너무 많아서 심히 걱정 된다).

전치사 ‘eivj’(에이스)의 1차적인 의미는 단연코 ‘~안(에서)으로, ~와 관련하여’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를 위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로’ 등이 있다. 그런데 행2:38의 ‘eivj’(에이스)는 성경 전체가 말하는 진리와 또 전후문맥에 비추어 볼 때, 단연코 ‘~안으로’의 의미에 속해 있는 ‘~와 관련하여’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아래 막1:9을 보라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막1:9)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evbapti,sqh eivj to.n VIorda,nhn u`po. VIwa,nnou”(에밥티스데 에이스 톤 이오르다넨 휘포 이오안누)이다. 여기서 “eivj to.n VIorda,nhn”(에이스 톤 이오르다넨)은 요단강을 ‘위하여’(eivj/에이스)가 아니라 요단강 ‘안(에서)으로’(eivj/에이스)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세례요한에 의해서(u`po VIwa,nnou/휘포 이오안누) 요단강 안(에서)으로(eivj to.n VIorda,nhn/에이스 톤 이오르다넨) 침례1)를 받으셨다(evbapti,sqh/에밥티스데). 그런데 ‘요단강 안(에서)으로’ 침례 받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요단강과 관련하여’ 침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를 헬라어 원문대로 다시 바르게 번역하면, “너희들의 죄 사함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침)례를 받으라”가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에서처럼 ‘회개’, ‘물세례’ 등을 ‘구원’(죄 사함, 성령세례)의 조건처럼 오역한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의 ‘이신칭의’의 교리가 어처구니없는 오역에 의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한글성경에서 이 부분을 “너희들의 죄 사함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로 어서 속히 고쳐야 하며, 설교자들이나 성경 교사들은 이 부분을 바르게 숙지하고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2)로 받으리니”는 악역 중 악역이다

행2:38에서 “kai. lh,myesqe th.n dwrea.n tou/ a`gi,ou pneu,matoj”(카이 렘프세스데 테 도레안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로 번역한 것은, 앞에서 살핀 “죄 사함을 얻으라”보다 더욱 심각한 오역이며, 번역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오역들 중에 거의 최고의 악역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성령세례”(구원)를 인간적인 어떤 행위에 의해 주어지는 것처럼 번역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대놓고 모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의 악역은 바로 앞의 문장이 명령문이기 때문에 생겨난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죄 사함을 받으라”(한글성경), 또는 “죄 사함을 위하여 세례를 받으라”(영어성경)의 명령문 뒤에 나오는 “kai.”(카이/and)를, 영어에서처럼 별 생각 없이 ‘명령문+and’의 문형으로 여기고, “그리하면”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불행하게도 모든 번역 성경에서 거의 예외 없이, 헬라어 원문의 명령문 뒤에 나오는 “kai.”를 “그리하면”으로 오역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번역은 되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오역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kai.”(카이/and)를 ‘그리하면’으로 번역해 버리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성령세례’가 마치 인간의 행위로 이루어진 ‘회개와 죄 사함의 물세례’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대가’처럼 되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이것이 성경 본문의 참 의미라면, ‘이신칭의’의 교리는 거짓 진리가 되고 만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는 번역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악역들 중에 악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의 바른 번역

그렇다면 행2:38의 “kai. lh,yesqe th.n dwrea.n tou/ a`gi,ou pneu,matoj”(카이 렘프세스데 텐 도레안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를 어떻게 번역해야 바른 번역일까?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직 문형들이 세분화되지 않은 고전 헬라어에는 영어에서처럼 “명령문+and”의 형태로 “너는 A하라, 그리하면 너(나, 그)는 B할 것이다”의 의미를 표현하는 정형화된 문형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전 헬라어의 “명령문+kai”에서 “kai”(and)는 영어에서처럼 “그리하면”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고전 헬라어에서 본문에서와 같은 “kai”는 ‘인과 접속사’가 아니라 ‘등위 접속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의 “kai”는 A(회개하라)와 B(세례를 받으라)와 C(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를 단순히 대등하게 병렬로 연결해주는 기능만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행 2:38은 ‘회개하고 죄 사함과 관련된 물세례를 받으면, 그 결과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회개하라’와 ‘세례를 받으라’의 명령과 함께, 그 후에 있을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라는 사실이 서로 인과 관계 없이 단순히 병렬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행2:38에서 베드로가 ‘회개하는 것’과 ‘죄 사함과 관련해서 세례 받는 것’과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의 순서로 나열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베드로는 이 나열이 차례대로 일어나는 사건의 순서로 생각했을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그 뒤에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한 사건(행10: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을 통해 물세례보다 성령이 먼저 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 헬라어에서 “너는 A하라, 그리하면 너(나, 그)는 B할 것이다”와 같은 의미를 전달하려고 할 때에는 어떤 표현을 쓸까?

고전 헬라어에서는 “너는 A하라, 그리하면 나(너, 그)는 B할 것이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정형화된 문형이 없으므로, “너는 A하라, 네(나, 그)가 B하기 위하여(i[na/히나)” 또는 “만일 (eva.n/에안) 네가 A한다면, 너(나, 그)는 B할 것이다”의 문형을 사용한다. 아래에 예문으로 제시한 요 5:14과 눅 4:7을 보라.

요 5:14의 “mhke,ti a`ma,rtane( i[na mh. cei/ro,n soi, ti ge,nhtai”(메케티 하마르타네, 히나 메 케이론 소이 티 게네타이)에 해당하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i[na/히나/~를 위하여)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리하면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로 바꾸어 표현해도 의미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또 눅 4:7의 “su. ou=n eva.n proskunh,sh|j evnw,pion evmou/( e;stai sou/ pa/sa”(수 운 에안 프로스퀴네스 에무, 에스타이 수 파사)에 해당하는 “그러므로 네가 만일(eva.n/에안) 내게 절하면 다(모든 것이) 네 것이 되리라”는 “그러므로 너는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다(모든 것이) 네 것이 되리라”로 바꾸어 표현해도 의미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설명에 비추어서 보면, 행 2:38에서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가 얼마나 원문의 의미에서 멀리 벗어난 오역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행 2:38의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가 오역인 것은 행 2:38의 본문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하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령이 선물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때 “그리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정말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데 있어서 어떤 전제 조건도 없어야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선물은 조건 없이 주어지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성령을 선물이라고 말하면서도 본문의 번역처럼 ‘그리하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인다면,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그 전제 조건에 합당하게 인간이 노력한 ‘대가’, 또는 ‘상급’ 정도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행 2:38을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바르게 번역한다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을 것이다.

“베드로가 말했다. 너희는 회개하라. 또 너희는 각각 죄 사함과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명령문+“kai.”(카이)]의 문장을 헬라어 성경에서 만났을 때, “kai.”(카이)를 ‘그리하면’으로 번역하는 것이 전후문맥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렇게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번역한다할지라도 원래 그 문장에서 “kai.”(카이)가 ‘그리하면’의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앞 문장과 뒤 문장을 병렬로 나열해서 이어주고 있는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너는 A하라, 그리하면 너(나, 그)는 B할 것이다”에서 B가 하나님의 행위일 때는, 어떤 경우에도 “kai.”(카이)를, 행2:38처럼, “그리하면”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만약 “그리하면”으로 번역하면,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B라는 행위가 인간의 A라는 행위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령문+“kai.”(카이)]의 문장에서는 영어성경보다 한글성경이 번역을 더 잘한 경우가 있다(어쩌면 이것은 한글성경 번역자의 실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영어성경에서는 [명령문+“kai.”(카이)]의 “kai.”(카이)를 예외 없이 ‘and’(그리하면)로 번역했지만, 한글성경에서는 더러 “kai.”(카이)를 생략하고 번역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서 “kai.”(카이)를 생략하므로 영어성경보다 번역을 더 잘한 예문 몇 가지를 든다면 아래와 같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4:19)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4)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6)
 

글을 마치며

헬라어 원문에서 말하는 행2:38을 살펴보아도 ‘회심 준비론’이나 ‘새 관점’ 등은 결코 성경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어설픈 이론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다른 성경 구절들을 찾아 나열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는 작업들을 계속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작업들은 모두 허사가 될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행 2:38이 ‘회심 준비론’이나 ‘새 관점’ 등의 교리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회심 준비론’이나 ‘새 관점’ 등의 교리를 지원하는 성경 구절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은 행 2:38이 하나님의 말씀이듯 성경의 다른 모든 부분도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회심 준비론’이나 ‘새 관점’ 등을 주장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지원하는 성경 구절을 찾았다면, 그것은 행 2:38처럼 그 성경 본문을 잘못 번역했거나, 잘못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회심 준비론’이나 ‘새 관점’ 등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첫째, 해석하기 애매한 본문은 뜻이 명확한 다른 본문들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둘째, 어떤 교리를 주장할 때에는, 그 근거를 결코 애매한 성경 본문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한 때 귀납법적인 성경 공부가 유행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다. 성경 공부든 인생 공부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출발하는 연역법이 바른 방법이다. 왜냐하면 만물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각, 삶 등의 진위 여부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회심 준비론’이든 ‘새 관점’이든 간에, 어떤 교리(진리)를 주장하려는 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미리 결정해 놓고, 그 결정의 타당한 증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는 자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교리에 반대되는 수백 가지의 증거가 성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성경 구절만 찾는다. 이들은 소수의 애매한 성경 구절들을 찾아서 오역, 오석을 하면서까지 자신이 주장한 교리를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만약 인간에게 성령 세례로 말미암은 거듭남(회심) 이전에 회심을 준비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이시는 대신에, 회심 준비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여지를 훈련시켜 더욱 발전시켜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회심할 수 있게 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셨다면, 하나님은 헛된 일을 계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되고 만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 각주 ---

1. 개역한글에서 “성령을 선물로”는 개역개정,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헬라어 원문의 “th.n dwrea.n tou/ a`gi,ou pneu,matoj”(텐 도레안 투 하기오스 프뉴마토스)대로 “성령의 선물”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성령의 선물”의 의미가 ‘성령이 주시는 선물인가’, 아니면 ‘성령이 그 선물인가’ 중 어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누가는 ‘선물’의 의미로 “ca,risma”(카리스마)가 아니라 “dwrea”(도레아)를 사용했다. 그리고 ‘선물’을 복수가 아닌 단수를 사용했으며, 또 ‘선물’ 앞에 정관사를 붙인 것으로 보아, 누가가 사용한 ‘선물’의 의미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들)”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그) 선물”임이 틀림없다.

2. 우리가 받은 세례는 원래는 침례였다. 예수님도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으셨다. 이것은 다음 절에서 “곧 물 위로 올라올쌔”로 더욱 분명해 진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지역적으로 확대되어 가면서 물이 없는 곳이나, 물에 들어가면 안 되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침례 대신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침례보다 더 용이한 세례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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