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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웨민(WCF)의 구원론과 아브라함의 구원이 맞지 않습니까?
서철원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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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1  13: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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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교수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구원 신학과 성경의 구원론, 특히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방법이 일치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무런 행위를 하기 전에 오직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하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표준 신앙고백서에는 원래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계명준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WCF 19.1)

웨민고백서 19장 1항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켜야 할 법을 주시고, 그것을 완전하게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위반하면 죽음에 처한다고 경고하시면서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2)

웨민고백서 19장 2항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도 그 법에 완전하게 순종하도록 요구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법을 훗날 시내산에서 돌 판에 기록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결국 아담은 십계명 등의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처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 나라 건설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브라함의 구원은 거짓 구원이었을까요?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로 불리워지는 웨민고백서에 나오는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답변>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창조경륜을 몰랐으므로 선악계명이 하나님 섬김을 하느냐 거부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은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하여 대신 속죄 제사로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으므로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속죄제사를 세우셨읍니다. 구약의 속죄제사는 실제로 죄를 제거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예표하고 가르치고 지시하는 역할만을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씩 유월절에 백성을 위해 대속의 제사를 드린 것도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의 예표였고 죄를 속한 것이 아닙니다. 유월절 대속죄 제사를 위해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았는데, 그 어린양으로 제사하여 속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속죄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드린 대신 속죄제사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유월절에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은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잡기 위한 연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기 위한 연습을 1500년 동안 열심히 하다가 예수그리스도를 잡아 십자가에 달므로 그들의 소임을 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제사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70년 로마 디도장군의 손으로 성전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몰살시켰습니다. 이 구원섭리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히브리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겨 오늘의 참상을 이루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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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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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7-02 07:59:39

    서박사님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생각이 칼빈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은 아담이 타락한 것도 하나님 섭리 안에 있다고 봤습니다. 단지 칼빈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니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말자고 했지요. 저는 그 이유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악의 조성자냐고 되묻는데 우리 인간들의 선과 악의 개념은 하나님의 선과 악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아담이 타락한 것은 하나님께서 악하셔서가 아니라, 더 큰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칼빈은 우리 죄가 너무 중하여 재창조가 필요했다고 하지만, 단지 그 이유가 아니라 처음부터 재창조의 목적으로 창조가 됐다고 보는 것이 창조경륜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은 요한계시록을 읽어야지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종말을 계획하셨다고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왜 창조 때는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가 (창 1:4) 마지막에는 해와 달이 쓸데없는 빛만 존재하는 나라가 되는가 (계 21:23)? 어둠이라는 말이 성경에서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보면 타락이 결코 우연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꾸 인간들의 입장에서 선과 악을 나누니까 창세 전에 이미 만들어진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 히브리서에 나오는 '고난'의 의미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칼빈이 시작했으니 앞으로의 개혁신학은 이 부분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신학자들 중에서 선악과를 먹은 결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선악과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가 지식을 주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담이 먹고 생긴 지식과,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해서 인간 자체가 선과 악을 자신의 기준으로 나누게 되고, 하나님의 지식을 무시하고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더욱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과는 적이 되었습니다. 이 관점의 차이가 선택받지 못한 자에게는 남아있고,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갖게 됨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불링거의 A Brief Exposition of the One and Eternal Testament or Covenant of God 를 읽어보면, 칼빈과 같이 처음부터 단 하나의 언약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므로, 17세기 신학자들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그들이 칼빈과 불링거의 주장에서 벗어나서 율법주의로 빠졌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그 이유가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지 않았던 그 당시 배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세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을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과 교황숭배자들에게 아담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설명함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백년이 지나 아브라함 전에 아담에게 법이 있었다고 주장함으로 율법주의자들이 다시 판을 뒤집으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개혁주의를 따른다면서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끌어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계획은 창세 전에 있었다는 엡 1:4-5의 말씀을 통해 이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유일한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신고 | 수정 | 삭제

    • 오직 믿음으로 2019-07-02 02:11:07

      서박사님!
      볼링거에 의해 언약사상이 영국 개혁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이 언약사상이 1647년에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경 제 7장에 도입되었고 웨스트민스터 신경은 이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표기하였다고 하셨는데,
      볼링거의 언약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신경 제 7장에 도입된 행위언약과 볼링거가 설명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편무적 언약'인 은혜언약 도식이 맞습니까?


      언약사상은 19세기 중반까지 배척되었던 사상인데 아브라함 카위퍼와 헤르만 바빙크는 칼빈주의의 재도약을 사실상 볼링거를 통해 모색했나요?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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