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중파 청교도 > 회심준비론
회중파 언약신학(리처드 십스) 알면 회심준비론 등이 다 보인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6.25  03:19:0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웨민고백서 7.2에까지 들어와 있는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s) 사상은 성경을 비틀고 하나님의 은혜를 왜곡하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고 난 후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획득하라 했다고 한다.

2)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마귀의 우상들을 많이 만들고서 아담에게 영생 얻으려면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십계명).

3) 인간과 에덴동산을 불안정하고 위험스럽게 만들고서도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자평하셨다고 하므로 하나님을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 이 같은 왜곡과 변질을 만들어 내므로 행위언약은 매우 그릇된 내용임이 분명하다. 매우 심각한 행위언약 개념 때문에 또 다음과 같은 성경을 허무는 청교도들의 이론들이 나타났다.

1) 그리스도가 십계명 등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자격과 권리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하였다는 능동적 순종 교리

2) 영혼들에게 저주의 율법을 때려 부으면 죄인들이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스스로 갈망하면서 회심이 준비되어진다는 회심준비론

3) 신앙의 중심을 성경 66권이 아니라 십계명 중심의 율법을 최고로 중시하는 율법주의

4) 종교개혁의 법정적 칭의, 즉 오직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신앙을 허무는 행위구원 사상(계속 율법을 지켜야 은혜언약의 효력이 유지된다는 구원에 대한 능동적 참여주의 언약사상).

5) 오순절-신사도 운동의 성령(재)세례로 말미암는 신비적 성화 사상의 원조가 되는 칭의를 확증하는 성령의 신비적인 성화주의(성령의 신적인 빛).

 

행위언약을 실질적으로 고안하여 웨민고백서에까지 들어오게 만든 사람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이다. 청교도 운동이 기독교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비협조와 국교회 감독들 중심의 정치로 인해 1590년대 초부터 노선을 달라지게 되었다. 국가의 체제를 바꾸는 개혁을 포기하고 개인의 경건을 강화하여 훗날 자연스럽게 국가가 변화되게 만드는 개혁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것을 위해서 청교도 지도자들은 구원을 위한 개인의 능동적 참여, 경건, 조건과 의무 등을 강조하여야 했다.

츠빙글리와 칼빈을 통해 발전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언약 사상은 신자들이 구원에 관하여 늘 수동적인 자세를 가지게 만들었으므로 새로운 언약 사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회중파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동의, 헌신, 경건, 의무, 역할을 동시에 강조하는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사상이 대두되었다. 가장 앞장서서 이 작업을 했던 사람은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였다. 퍼킨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철저한 쌍무적 개념으로서 행위언약이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 사상에 체결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원종천 교수의 저서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 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윌러엄 퍼킨스, 47)

회중파 청교도의 비성경적인 행위언약 사상은 성 앤드류스 대학의 설교자였고, 윌리엄 퍼킨스의 후계자였던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에 의해 더욱 더 강화되었다.

리처드 십스에 대해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가 중세의 신비주의 영성가 버나드의 신비주의 사상을 계승하여 회중파 청교도 속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버나드는 인간이 명상을 통해 신비적 하나님 체험과 내적인 환상 등으로 신인합일에 이를 수 있고, 그것이 장차 천국에서 맛볼 수 있는 타락으로 인하여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의 온전해짐을 부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루터와 칼빈은 개인적으로 버나드의 이신칭의 등의 교리가 종교개혁 사상과 상당히 일치하였으므로 그를 존경했으나, 버나드의 신비주의 성향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 루터와 칼빈이 멀리했던 버나드의 신비주의 명상을 다시 계승하여 회중파 청교도들 속으로 이끌어 온 사람이 리차드 십스였다. 그러므로 리차드 십스의 행위언약 개념에는 그가 버나드에게서 영향 받은 신인합일 신비주의 요소가 발견된다.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신 바로 그 성령이 그리스도의 멤버들도 거룩케 하신다. 그리고 믿는 자들 모두 안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말하면) 잉태되시고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해 속에, 우리의 감정 속에 나타나시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여 당신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 안에 잉태되도록 해야 한다 ...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이 모든 참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고, 그들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육신을 거룩하게 하신 바로 그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야 한다.” (리처드 십스, 76)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감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신인합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것에 관한 가르침은 버나드에게서 강조되었던 내용이다. 십스는 인간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가지게 되면, 성령께서 인간을 언약에 합당하도록 거룩하게 만들고 유지시키신다고 했다. 또한 십스는 성령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만드셨던 분이라는 비성경적인 이해를 가졌었다. 그리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만든 성령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온 인간도 거룩하게 만든다고 이해하였다. 버나드가 가르친 하나님과 사람의 신인합일 신비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먼저 그리스도의 형상을 추구하고 닮아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쌍방(하나님과 인간)이 동의하면, 피차간에 유사한 성향이 생긴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본질의 거룩함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 성향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가 은혜언약에서 하나님과 친구 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리처드 십스, 79)

버나드의 명상을 통한 신인합일 신비주의 사상을 계승하였던 리처드 십스는 윌리엄 퍼킨스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회중파 청교도의 언약 사상에다 자신만의 특이한 신비주의 신인합일 개념을 집어넣었다.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유사한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주장, 즉 하나님과 인간의 공통의 본질의 거룩함이 이루어진다는 사상은 명백한 신인합일 신비주의 개념이다.

회중파 청교도들 가운데 리처드 십스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은 존 카튼(John Cotton, 1582-1652)과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였다. 존 카튼은 리처드 십스의 설교를 통해 회개하였고, 이후 자신의 서재에 리처드 십스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살았다고 하니 카튼의 신앙과 사상이 십스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능히 짐작된다. 카튼은 영국에서 회중파 청교도 운동의 유력한 지도자로 활동하다 자신에 대한 핍박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은밀히 신대륙으로 이주하였다. 카튼은 신대륙에서 하바드 대학을 설립하는 일에도 적극 관여하였고, 보스톤에서 회중교회를 담임하면서 신대륙의 회중교회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에드워즈의 저술에서 칼빈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으나, 카튼의 흔적은 많이 보인다고 한다. 리처드 십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카튼이 명상을 중시했다는 사실과 에드워즈가 명상하면서 삼위일체, 그리스도, 하나님 환상을 체험했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십스가 활동할 때, 네덜란드에서 먼저 붉어졌던 알미니안 논쟁이 영국에서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국 국교회는 알미니안 신학에 대해 바르게 대처하지 못했으나, 회중파 청교도들은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영국에서 알미니안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을 때 십스의 언약 사상이 형성되었다. 십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언약의 기초로 제시함으로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거져 주시는 언약이라고 불리운다. 그것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어떤 종류의 동의로 들어가시는 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죽게 하심을 언약의 기반으로 삼으신 것도 은혜로 말미암음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에게 의존하며, 사랑하며, 섬기는 이 모든 것들이 은혜로 말미암음이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부터 온다.” (리처드 십스, 73)

십스는 인간과 하나님의 언약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라고 하였다.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에서 역사하시어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으로부터 받아드려지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십스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것이 은혜언약인가? 약속된 것이 은혜로 되어서만이 아니고, 우리 존재 자체가 은혜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고,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산다. 좋은 생각들이 은혜로 말미암음이다. 새 언약에서는 모든 것이 은혜이고 오로지 은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에 의한 답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암흑에서 광명을 죽음에서 생명을 요구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기고, 또 요구하실 때에 그것을 이루신다 ... 문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고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리처드 십스, 75)

언약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기초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효력을 미친다는 십스의 주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언약에 대한 인간의 동의, 승낙을 함께 주장한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가 다 하시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승낙을 주어야 한다. 왕과 반항하여 떨어져나간 백성들 사이에 화합이 이루어지자면, 용서와 새로운 순종의 약속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자면,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하고, 그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경외심이 있어야 하고, 그를 우리의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 (리처드 십스, 76)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우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시던지, 당신이 그 언약을 수행하실 때에 그는 우리 쪽과 자신의 쪽도 함께 이루신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를 가지심으로 그것으로 우리를 명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명예스러운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없이 수행을 안하시니 말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 없이는 영생을 이루시지 않으신다.” (리처드 십스, 78)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최대한 강조하여 알미니안주의를 물리치고, 동시에 하나님이 제시하는 언약의 내용에 관하여 인간의 동의, 승낙, 의무, 책임을 그 이상으로 강조하면 결국 무슨 모양이 되는 것인가? 이쪽에서 보면 칼빈주의 신학이고, 저쪽에서 보면 알미니안 신학이 되는 것이다. 아주 괴상하고 이상한 신학 노선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회중파들은 츠빙글리와 칼빈의 성경적인 언약 이해는 인간을 구원에 관하여 지나치게 수동적인 자세를 지향하게 만드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1590년대 초부터 발전된 개인의 경건, 신앙 실천, 의무를 강조하는 청교도 운동의 새로운 전략과 맞는 언약사상, 즉 구원에 관한 개인의 능동적 참여, 헌신, 책임을 강조하기에 합당한 언약 개념을 고안하였던 것이다. 츠빙글리와 칼빈의 언약 사상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고, 동시에 불링거의 언약 사상 같이 인간의 동의와 조건 및 의무를 동일하게 강조하는 기형적인 회중파 청교도의 언약 신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도 강조하고, 동시에 인간의 의무, 책임, 동의, 승낙도 동일하게 강조하는 언약 사상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의 범위 안에 남기는 어렵다.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그리고 인간의 동의, 승낙을 모두 칼빈주의 신학이 되게 만들어 주는 뭔가가 중간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회중파 청교도의 하나님이 구원을 준비시킨다는 회심준비론이다. 십스의 말을 보자.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으로 답하는 것이 완전히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비록 순종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우리는 하나님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이 순종이 먼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선하신 약속과 명령에 답할 수 있는 은혜를 갖기 전에 천국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교만한 추정이다.” (리처드 십스, 80)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만 하나님이 제시하는 언약에 동의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언약관계로 들어가기 전에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약에 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제시하는 언약의 내용에 인간이 동의해야만 하고, 인간이 동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고, 그러나 인간의 자연적 능력으로는 하나님이 제시하는 언약에 동의하지 못한다. 먼저 인간이 은혜언약으로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과 회개의 조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 사상이다. 십스의 다음의 말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우리가 심기 전에 땅을 일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대개 당신이 회심시키려는 자들을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우리는 기초를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판다 ... 자연적 영역에나 영적 영역에서나 준비가 필요한 것은 일반이다. 준비는 필요하다.인간의 본질과 부패와 은혜 사이에는 대단한 간격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인간이 원래 갖추어야 할 상태로 오기까지에는 많은 단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비를 허락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든 준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준비할 수 없고 또는 우리 자신의 준비로 미래의 것들을 받을 자격이 없다. 준비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십스, 81)

회중파 청교도들에게 은혜언약의 근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이고, 언약의 또 다른 요소는 하나님의 언약 제시에 대한 인간의 동의, 책임, 조건 이행이다. 이 둘은 결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영원한 평행선이다. 그런데 십스는 이 둘 사이에 ‘하나님에 의한 회심준비’ 개념을 집어넣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회심준비과정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대해 동의, 승낙, 책임과 조건 및 의무 이행의 자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 제시에 동의, 승낙함으로 은혜언약이 실행되기는 해도, 사람이 동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회심준비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에 동의하는 모양 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리되도록 준비시켜 주셨으니, 언약의 근본인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은 전혀 훼손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주장이다.
 

   


이제 조엘 비키 교수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회심준비’라는 사상의 배경이 보이는 것 같다.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전혀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개념, 즉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그리고 인간의 동의와 승낙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회심준비 과정이라는 성경에 없는 것을 매개로 접목시키는 고도의 속임수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로 말미암는 죄인들의 회심을 준비한다고 하는가? 율법의 저주 조항들로 날마다 겁박하여 심신미약(?)의 상태에 떨어지게 만들면 인간이 겁을 집어 먹게 되고, 그때 성령이 율법의 저주를 해결하고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인간의 마음에 일으키신다고 한다.

율법의 저주 아래서 신음하다가 절박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언약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한 인간의 동의와 승낙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그리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율법의 저주를 남발시켜 인간을 그리 만든다고 하니, 칼빈주의 신학에서 언약의 핵심 요소인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는다는 주장인 것이다.

독자들은 이제 회중파 청교도의 성경 파괴의 비밀이 보이는가? 이런 교묘한 청교도 놀음을 세상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 미주 ---

1) 이 글의 인용구들은 원종천 교수의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대한기독교서회,2018)에서 발췌하였다. 괄호 속의 번호는 그 책의 페이지 넘버이다.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9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