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교수, 워치만 니 창조론은 영국 회중파 신학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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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교수, 워치만 니 창조론은 영국 회중파 신학의 산물
  • 조덕영
  • 승인 2019.06.21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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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 / 지방교회 창시자

워치만 니(Watchman Nee, 1903-1972)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여러 질문이 있어 여기서는 그의 창조론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려 한다. 워치만 니는 중국 푸저우(福州)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 때 푸저우 삼일(三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신앙을 갖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워치만 니는 1920년 당시 영국성공회 선교사였다가 탈퇴한 뒤 형제회 소속으로 푸저우에서 활동하던 M E 바버(중국명 허셔우언)를 만나 침례를 받고 그녀를 영적인 어머니라 불렀는데, 바버 선교사는 교회 건물을 짓지 말고 신자들의 집에 집회소를 세워서 평등하게 서로 영적인 체험을 나누는 모임을 가질 것을 강조하였다.

워치만 니도 1922년 푸저우에서 지방교회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영적 체험을 기록한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발행, 배포하며 활동하게 된다. 1931년에는 영국형제회의 대표단 8인이 상하이에 도착, 선교활동을 펼치게 되면서 워치만 니는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이후 런던의 ‘기독인교제센터’ 책임자였던 T A 스파크를 만나면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워치만 니는 고난의 길을 걷게 되는 데, 1952년 중국 정부에 체포되어 1956년 6월21일 상하이고등법원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7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지만 질병으로 생을 마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제도권 교회 안에서 워치만 니의 신앙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그가 영국형제단의 영향을 받고 평신도 집회소를 중심으로 활동한데 기인한다. 그는 또한 독서를 즐겨 수천 권의 신앙 서적을 독파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독자적으로 정립해 갔다. 그의 책들은 주로 중생과 영적 생명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워치만 니 개인의 창조론에 대한 견해만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에 관한 입장

워치만 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었다. 그는 창세기와 지질학 양자가 놓여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지질학이 아니라 창세기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성경은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책이 아니면서도 과학적인 오류를 갖고 있지 않은 책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견해로 볼 때 그는 일종의 성경축자영감설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창조론도 성경에 기반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믿는다고 모든 학자들의 창조론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실 기독교인 숫자만큼 창조론도 다양하다. 창조 신앙은 같으나 창조론은 그렇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성경이 우주 창조의 대드라마에 대해 너무 단순하고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즉 자세하게 설명해주어도 어리석은 인간은 온전히 깨닫지 못했을 텐데 창조 사실의 골격만 제공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리고 그 세상의 원형 가운데 지구는 창세기 대홍수(창 6-9장 참조) 이전 대 격변을 겪는다. 홍수 이후를 사는 우리 인류가 홍수 이전의 창조 세상을 판단하고 묘사한다는 것은 사실 지극히 단편적 일 수밖에 없다. 원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창조론이 난무하는 이유다. 바른 성경적 믿음은 신학이 판단할 과제라 할 수 있다. 그 일차적 출발은 "본질적인 것은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를, 모든 일에는 사랑을”(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freedom; in all things, love/ in necessariis unitas, in non-necessariis livertas, in utrisque caritas)이라는 명언처럼 정통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속에서 이 다양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워치만 니의 창조론도 그런 범주 안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간격 이론을 수용한 워치만 니

위치만 니는 재 창조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간격 이론(The Gap Theory)이라고도 하고 '파괴와 재창조 이론', '아담 이전 격변론', '아담 이전 아담론'이라고도 불려지는 이론이다. 이 주장은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초대 의장이었던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 의해 리바이벌되어 스코틀랜드 개혁 성경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학설이다. 이 이론은 지난 19-20세기 미국의 여러 성경연구소들과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가르쳐져 왔다. 정통장로교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나 한국에서도 몇몇 교단에서 이 주장을 따르고 있다.

이 학설은 지질학적 연대 구분과 성경적 연대기를 조화시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이론 가운데 하나다. 원래 세상의 황폐화와 그 심판의 원인 제공은 인류가 아니라 사탄이었으며 그 이후 세상의 타락은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 아래 그는 현대 지질학에서 말하는 지층의 연대 문제나 화석 생성을 주로 하나님의 재창조 이전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위치만 니는 이러한 창조 이전의 심판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이사야 14: 12절에 나타난 사단의 타락과 에스겔서(겔 28: 12-15) 등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중요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이며 영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성경이 보다 명료하게 그러한 사실을 인류에게 전해주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그런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사야서 14장 12절의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사단을 나타내는 지도 분명하지가 않다. 계명성(히, ‘헤렐’, Day star)이란 해가 뜨기 전 새벽 동쪽에 하늘에 나타나는 샛별 즉 금성(Venus)을 말한다(벧후 1:19; 계 2:28 참조).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통치자를 나타낸다. 열국을 얻었던 바벨론 통치자가 멸망당한 모습을 하늘에서 떨어진 계명성에 비유되고 있다. 과거 교회 교부들은 이 구절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하늘로부터의 사단의 타락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KJV에 나타난 ‘Lucifer’라는 단어는 바로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 말이 비유적으로 사단을 칭하기는 하나 신약의 예수님은 루시퍼와 사단을 구분하고 있다(눅 10: 18 참조). 오히려 베드로후서는 샛별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짓고 있고, 사도 요한은 ‘새벽 별’이 두아디라 교회를 도울 그리스도임을 암시하고 있다(계 2:28).

즉 워치만 니가 자신의 주장에 인용한 구절들은 사실 달리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고, 오히려 그러한 해석들이 워치만 니의 해석보다도 더 전통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사야서 14장의 '루시퍼'를 사단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사단이라고 보는 해석은 단지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된다.

화석의 문제에 있어서도 위치만 니는 화석들이 바로 재창조 이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나 그럴 경우 좋으신 하나님께서 거듭 실패를 하셨다는 논리로 귀착 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 교리와 충돌할 수 있다. 당연히 신정론적 문제도 발생하며 영지주의 창조론에 창조론의 주도권을 넘겨버리는 아주 위험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으로는 그와 같이 화석을 재창조 이전에 의거한 결과물로 해석할 경우 창세기 7장에 나타난 전 세계적인 대홍수에 의한 지구 생태계 파멸에 따른 생물의 유기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해석이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지층과 화석에 대한 해석에 있어 오늘날의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에 따르는 지질학과 창세기 7장을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는 대홍수지질학 그리고 재창조 이전의 지층 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등 아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세속 지질학은 동일과정설이 절대 우세한 편이나 기독교 관련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지층 형성에 있어 합의된 견해가 나오지 않고 견해가 다양하므로 앞으로 관련 학자들의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여겨진다.
 

창세기 1장 히브리어 '욤'(‘yom’) 해석에 있어 24시간 적용

창세기 1장 해석에 있어 워치만 니는 창조 기간의 '욤'을 오늘날의 24시간으로 보았다. 이 점이 이채롭다. 즉 워치만 니는 재창조 이후에는 창조 주간의 하루를 오늘날 24 시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애굽기 말씀(20: 8-11)을 참고할 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 7일은 24시간의 날들을 가리킨다고 본 워치만 니의 주장은 재창조설만을 제외하면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우주와 지구 기원에 있어 오랜 연대와 젊은 연대에 대한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워치만 니의 주장은 두 입장을 절묘하게 절충할 수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창조와 그리스도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

워치만 니의 창조론에 있어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기독론을 창조와 구속의 관계로 확장한 점이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창조와 구속의 중심(요 1:3; 골 1:16)이라는 관점에서 워치만 니는 창세기의 물리적 창조 기사를 물리적 창조에 그치지 아니하고 영적 창조의 모형으로 끌고 간다.

이와 같은 입장은 필연적으로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낳게 되었다. 워치만 니는 창조 주간의 첫째 날은 예수님의 출생을 상징하고, 둘째 날은 주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며, 성경은 3일(사흘)을 부활을 상징하는 날로 계시하므로(고전 15:4; 유월절 후 제 3일 맥추절 등) 셋째 날은 주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넷째 날은 주 예수의 승천(승귀)를 의미하며, 다섯 째 날은 생명의 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섯 째 날의 사역은 주님의 재림과 왕위 등극을 상징하며, 마지막 일곱 째 날은 영원하신 주 예수님을 상징한다. 워치만 니의 이런 입장은 그가 알레고리 해석에 능했던 초대 교회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조와 시대 구분에 있어 세대주의 입장

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 잘 구분된 시대를 통해 각 시기마다 성취되어야 할 특정 목표를 계시하고 그에 대해 인류가 신앙이나 불신앙으로 반응을 보이는 세대들(dispensations)을 통해서 우리 인류를 다루어 오셨다는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워치만 니는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수한 시대에 사람들을 특수하게 다루신다고 보고 시대 구분에 입각한 성경 연구가 필연적임을 역설하여 세대주의를 수용한다. 그래서 그는 세대를 무죄 시대, 양심 시대, 인간 통치 시대, 언약 시대, 율법 시대, 은혜 시대, 막간, 왕국 시대로 나누고 있다. 세대주의자들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르기는 하나 워치만 니의 세대 구분은 인간 통치 시대와 막간 시대를 부가한 것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세대주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마치면서

위의 네 가지 입장이 워치만 니 창조론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창세기 1장에 대한 해석은 아직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쟁점과 상이점들이 존재한다. 기독교 신앙과 성경에 있어 창조된 사실 그 자체는 믿음의 아주 중요한 핵심 사안이요 교리다. 그렇기는 하나 인류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창조 방법이나 시기 등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호기심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런 가능한 해석들 가운데서 교리의 차별화를 가져온 면이 없지 않다.

위치만 니의 창조론도 바로 그런 가운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치만 니의 재창조설이나 창세기 1장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창조론의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견해라기보다 다소 이견(異見)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워치만 니가 성경을 부인해서는 아니었다. '영국 형제단' 선교사들과 주로 그들의 책들을 섭렵한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영국 회중교회의 영향 속에서 그의 창조론도 잉태되었다. 따라서 최근 워치만 니를 따르는 휘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에 대한 정통교단들의 재평가 작업과 더불어 그의 창조론에 대해서도 좀 더 심도 높은 연구와 토론과 비평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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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에 대해 2019-06-22 02:26:49
.워치만 니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워치만 니의 제자들이 워치만 니 그리고 성경에서 빗나갔다는 평가에는 강하게 동의합니다.
관상을 변호한 플로티누스의 '유출과 회복'설 중 상승에 의한 신과 합일 또는 일치(unity) 주장과 워치만 니의 빗나간 제자들과 지방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에게는 '성부의 본성'이 생겨나며 영원히 인성과 피조물인 상태로 신성에 젖어 들며 '예수님 안에서만 신이다'는 신화사상이, 결론적인 합일의 시각에서는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워치만 니 당시의 여러 성경연구소와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간격이론을 가르쳤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많은 근본주의 신학교에서는 간격이론을 지지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유로 첫째로 여러 성경말씀에 위배 되며 둘째로 과학과 진화론에 대해 과학적 논리적 대응이 가능해졌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고 저도 이 견해들에 동의합니다.

.히브리 단어 헬렐은 앗수르 최전성기를 이룬 디글랏 빌레셋 3세 왕 당시에,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바벨론 왕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예언된 말씀 중에 있으므로 바벨론 왕에 대해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또는 문자적 외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유비적인 해석을 해도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고 봅니다.
이사야서의 바벨론 왕 예언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노래로 지어진 예언인데, 예언이며 하나님의 명령으로 노래로 지어졌고 그 구성과 내용의 흐름까지 비슷한, 동일 패턴의 예언으로 에스겔 28장의 두로 왕 예언이 있습니다.

헬렐이 과연 행성인 금성인지 여러 해를 알아보았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서를 기록할 그 당시에 히브리 단어 '헬렐'에 금성이란 뜻이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이사야 선지자 약 한 세기쯤 후에 가나안 시집 속에 있는 시 중에서 바벨론 왕 노래예언의 짝퉁으로 보이는 가나안 신화 내용의 시가 기록된 점토판이 있었고, 좀 더 정확히는 장송곡 모음집에 있는 장송시인데 이것과 이 이방신화가 침투해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외경이, 성경말씀 속의 헬렐이 금성이라는 가장 가까운 증거였습니다.
성경 속의 단어 헬렐이 금성으로 번역된 가장 가까운 근거는 이방신화였습니다. 이점은 저에게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성경 전체에 단 한 번 쓰인 헬렐이라는 단어 자체의 뜻을 직역하면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는 두 개의 뜻이 있는데, 하나는 '오만한 자'이고 하나는 '빛나는 자(shining one)'입니다. 빛나는 자란 뜻은 많이 알려져 있지요.
공동번역 성서를 퇴출시키고 새로 번역한 가톨릭 성경도 헬렐을 금성 대신 빛나는 별(shining star)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톨릭은 여차하면 도망갈 구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인들 중에 아직도 '히브리어 헬렐'을 금성으로 확언하고 거기에 더해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히브리 단어 헬렐을 한글로 번역할 때, 루시퍼나 계명성 또는 금성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차라리 단어 자체의 직역 뜻을 각주로 처리하고 '헬렐' 그대로 한글로 번역해서 성도들이 문맥을 통해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신대원생 2019-06-21 13:35:11
신학을 하게 되면서 창세기1장1절과 2절의 해석을 연구하니 참 재미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가 창1장의 전체를 요약하는 제목으로 생각했을 때 도대체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의 해석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기 전에 왜 땅이 있고 물이 있는지요? 박형룡 조직신학책에서도 나왔듯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천지가 하늘과 땅 즉 이 우주 공간과 지구라는 것입니다. 1:1절에 이미 지구와 지구 외의 우주 공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때 지구의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다고 표현됩니다. 영어로 formless, empty(void)인데 그때 지구의 모습이 단단한 땅의 개념으로 되어있지 않고 땅의 원소들이 서로 흩어져 있는 흐물흐물 비어있는 공간처럼 되어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아직 빛이 창조되지 않았기에 흑암으로 가득했습니다. 지구의 땅은 물로 완전히 덮여있게 창조하셨기에 성령님이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빛의 창조가 태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태양은 4째날 창조됩니다. 이 빛은 근본우주에너지일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보면 모든 질량을 가진 물체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즉 물질 자체에 에너지가 E=mc제곱으로 있는데 2절의 땅의 원소들이 질량이 없는 상태로 흐물흐물 비어있다가 빛 즉 에너지가 창조될 때 엄청난 에너지를 보유한 질량을 가지게 되어서 중력이 생기고 서로 끌어당겨서 형태를 이루어 단단한 땅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이러면 간격이론과 비슷하게 보이는데 1:1-2절과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창조의 첫째날 사이가 상당한 간격이 있다는 것이 간격이론이고 워치만리처럼 이 간격에 사단의 타락이 있었다는 것은 그냥 상상을 한 것이고요. 이 이론에 의해 진화론을 옹호하고 오래된 지구론을 펴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창1:1-2절과 3절에 상당한 간격이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첫째날에 우주와 물로 덮인 지구 그리고 빛이 생기면서 중력이 생기고 지구의 형태가 원형으로 갖추어지고 땅이 단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1:1-2절과 3절이 첫째 날의 창조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땅이 창조되어 있어야 둘째 날 땅을 뒤덮고 있는 엄청난 양의 물층이 나누어져서 궁창위의 물과 궁창아래의 물로 나뉘면서 대기권이 만들어지고 (아직도 궁창아래의 물이 온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세째날 물이 한 곳으로 모이는 사건 아마도 지각변동에 의해 땅이 솟아오르고 꺼지기도 하면서 에베레스트산과 해구들이 만들어지고 물이 중력에 의해 움직이면서 뭍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셋째날 뭍이 드러났다고 했지 땅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고 물도 만들었다는 표현이 없기에 땅과 물은 창1:1절에 천지를 만들 때 만들어졌다고 봐야 설명이 됩니다. 저는 축자영감을 믿고 따라서 지구가 6천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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