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성으로 신학할 수 없다. 이성이 믿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희랍철학 초기에는 이성이 가장 완전한 지식을 주는 것으로 믿었다. 파르메니테스(Parmenides)와 플라톤은 이성이 신적이어서 가장 확실한 실재의 지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칸트는 이성은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단지 현상들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현상들도 다 이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말하여 관념론 철학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들은 객관적 실재의 지식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으로 바뀌었다. 근세는 이성으로 합리적인 세계를 구성했다고 믿고 주장해 왔는데, 오히려 이성은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이르렀다.

이성은 절대적 표준도 확실한 규범도 제시하지 못한다. 자기에 유익하면 진리가 된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말한 대로 이성은 창녀와 같다. 편견과 억측이 과도하여 객관적인 실재의 지식을 줄 수가 없다. 죄성이 이성에 역사하므로 물질적인 실재에 대한 지식도 바르게 제시할 수 없다. 이런 이성으로 신학할 수 없다. 이성으로 신학하면 신학은 신학이 되지 못한다.

믿음으로 신학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막연히 상정하고서 신학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신학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 곧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서 신학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이시고 지혜와 권능이 무한하시므로 많은 큰일들을 하셨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하셨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계시하셨다. 믿음으로 신학하는 것은 무한한 존재에서 직접 출발하거나 그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계시에 의존해서 신학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이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신학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므로 그의 계시에 근거해서 신학하므로 바르고 확실한 하나님 지식을 얻는다.

하나님은 무한한 영적인 존재이므로 지성으로 직접 하나님을 탐구할 수 없다. 그의 계시에 의존해서만 신학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바르고 확실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신학은 무한자를 직접적 대상으로 삼의 그의 지식(cognitio)를 추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하나님 지식을 추구하고 획득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심(se revelare)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에서 모든 하나님 지식이 유래한다. 하나님 지식이 계시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revelatio Dei ipsius)이므로 신학을 이 계시를 직접적 대상으로 삼는다. 이 계시는 하나님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계시이므로 하나님을 그 자체대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계시에서 하나님 지식을 올바로 획득한다.

그러면 신학은 믿음으로 무한자의 계시를 받는가? 계시 자체는 무한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창조세계 안에 하나님이 그의 무한한 영광과 권능과 지혜를 많이 계시하셨다. 창조가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가 반사되어 있다.
 


그러나 특별계시의 경우는 다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영광과 지혜가 무한하셔도 계시를 받아들이는 존재의 능력에 맞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명(illumintio)하신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 계시의 수납자인 인간이 감당할 수 있도록 인간의 능력에 맞게 적응(accomodatio)하셨다. 무한한 영의 계시 즉 하나님의 존재 자체대로의 계시는 인간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굽히여 계시하셨다. 이것을 하나님의 자아겸비(condescensio Dei)라고 한다. 따라서 신학에 잇어서 하나님 지식은 많은 경우 의인화 되어 주어진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인간의 표현 방식들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계시는 무한한 존재물이 아니고 인간의 능력에 적응되어 계시되었다.

자연이성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권능만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내용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다. 계시가 무한한 존재물이어서 아니라 계시의 내용이 자연이성의 능력과 이해 범위를 전적으로 넘어간다. 그러므로 계시를 믿고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신학은 하나님의 학문(scientio de Deo)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고 자기 지식(scientio ipsius Dei)를 계시하신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자기 지식을 원형신학(theologia ectypa)이라 하였다. 하나님 지식(scientio Dei)은 계시를 통하여 얻는다.

신학은 계시에서 출발하고 계시로 진행하며 계시에서 하나님 지식을 획득한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여서 우리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도록 한다. 하나님 지식은 계시를 통하여 획득하므로 직접적 획득이 아니고 매개된 지식이다. 매개된 지식이어도 참 하나님 지식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 관한 지식도 포함한다. 계시에는 하나님의 사역이 현시되고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지식은 신학의 정의에 넣지 않으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뿐만 아린라 그의 사역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하나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인격, 경륜과 작정 그리고 그의 사역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에 관하여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계시는 성경계시이고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한 계시를 말한다. 참 하나님 지식 곧 창조주와 구속주의 지식은 다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하고 그에게서만 참 하나님 지식이 도출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계시가 성경계시이다.

개혁신학은 성경계시를 모든 하나님 지식의 원천으로 삼는다. 창조가 하나님 지식의 다른 원천이지만, 창조 혹은 자연은 성경계시를 통하여서만 계시로 기능한다. 창조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성경이 증거하는 동일한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유한성과 죄 때문에 창조에서 직접적인 하나님 지식을 얻지 못한다.

자연은 하나님 지식의 부차적인 원천이다. 칼빈이 말대로 성경의 안경을 통해서만 바르게 볼 수 있는 계시이다.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이므로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러나 계시로서의 창조가 계시로 이해되는 것은 성경계시를 통해서이다.

하나님 지식은 사변적 지식이 아니다.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을 만남이어서 그 지식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격을 지닌다. 하나님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엄위와 그 하나님이 구속주이심을 아는 지식이므로 그 지식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격을 지닌다.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한다. 본래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 창조주가 인간을 지으셨으므로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된다. 이 섬김이 인간 본연의 본분에 이르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한다. 하나님 섬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함이다.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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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