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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 믿고 행동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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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2  01: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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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호 목사 / 오륜교회 담임 / 다니엘 기도회 대표

질문>
목사님, 저는 오륜교회에 나가는 청년입니다. 김은호 목사의 5월 31일 설교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다고 설교하네요. 우리가 믿고 행동을 해야만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는 김은호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지요?

 


“​많은 사람들이요 액션이 없어요. ​안 목사님이 그 설교 하대요. 액션이 없다 그런 이야기예요. ​맞아요!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액션이 없어요. 행동이 없다 그 말이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액션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예요? 액션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는 거지요.

반드시 액션이 있어야지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이예요. 오병이어의 기적도 액션이 따랐쟎아요? 그렇죠? 기도만 하고 있는 게 아니쟎아요? 나눠주라고 할 때에 나눠줬쟎아요?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이 보세요! 딱 기도하니까 오천 명 먹을 수 있는 떡이 쌓여있으니까 쌓여있는 거 보고 나눠줬습니까?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나눠주면 생기고 나눠주면 생기는 거예요. 모든 기적이 다 그랬어요. 모든 기적이 다 그랬어요. 액션이 없는 곳에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기름병이 채워질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성경 어느 곳을 봐도, 나사로가 살아날 때의 기적도 마찬가지였죠. 무덤의 문을 열어 놓았쟎아요? 액션이 없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근데 문제는 우리는 기도만 하고 액션이 없다는 것이죠. 이게 장로교회의 특징이예요. 장로교의 특징, 액션이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아는 건 많은데, 만나보면 참 똑똑한데, 논리도 있는데,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는 거예요. 왜요? 믿음으로 행하는 액션이 없으니까요.” (김은호 목사)

 

답변>
저에게 김은호 목사에 대해 질문들과 정보들을 보낸 것이 여러 번인 것 같은데, 너무 애쓰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교회에 본인 외에 가족이 또 나가는지, 아니면 지인, 애인이 나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단에 대해서는 한 두 번 가르치고 훈계하고, 그래도 소용없으면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노력과 설득으로 되는 일이라면,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은호 목사가 설교 속에서 말한 내용은 우리가 흔히 듣는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성경 이해에서 나오는 말은 아닙니다. 믿기만 하고 그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가지게 만드는데 좋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행동을 함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당연히 믿음의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도의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보다 은혜보다,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 내는 인간의 행위를 더 높이고 중시하는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각종의 은혜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준비와 협력의 결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래 전, 같은 해(354년)에 태어난 유명한 두 사람,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이 가진 신앙 논쟁의 주제가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죄인이 회개하고 은혜를 받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이 회개를 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기도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구원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어거스틴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는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만드는 인간의 준비와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영적인 기능이 모두 죽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했습니다. 펠라기우스는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인간의 영적인 기능의 일부가 파손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중요한 영적인 기능들이 살아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타락으로 하나님과 구원에 관한 인간의 영적인 기능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과 관련된 인간의 영적인 행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원에 관하여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면서 구원에 합당한 태도와 행동을 보이면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므로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선물을 주시는데 방해되는 것을 인간이 알아차리고 제거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주장했던 펠라기우스는 418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아 파문당했고, 이후 그의 행적은 묘연합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의 사상은 '반(semi)펠라기우스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였고, 천주교 신학의 신학으로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전파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은호 목사가 기도만 하고 기도의 내용에 합당한 믿음의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교한 내용은 근본적으로 펠라기우스주의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에 합당한 ‘인간의 준비와 행위’라는 조건에 의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믿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응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 됩니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응답은 실제로 준비하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가능해졌다는 것이 됩니다. 

이런 신앙 이해를 ‘신입협동설’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합당한 반응과 행동이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하심의 절대 조건으로 삼는 것입니다. 신인협동설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사상입니다. 언제나 인정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에서 나오는 참 신자의 행위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요? 예를 들자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물맷돌 다섯을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가는 용감한 행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다윗의 믿음의 행위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참된 믿음이 있었으므로 물맷돌 다섯을 챙겨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골리앗에게로 나아가게 된 것으로 설명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역사하는 참된 믿음이 다윗에게 일하였고 열매를 일으킨 것이다. 그 믿음을 선물하신 분도, 그 믿음 안에서 응답하시고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김은호 목사처럼 사람이 행동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뒤 따른다는 설명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사람의 준비와 합당한 행동에 의해 한정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가능한 이유는 그 못지 않게 인간의 큰 믿음과 준비가 있었으므로 가능했다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의 복음이 형성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설교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사람 마음의 준비, 행동의 준비에 의해 하나님의 역사가 좌우된다고 하니, 하나님 앞에서 게으를 수가 없고, 헌금에 인색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일어나는 믿음이 아니므로 성령의 열매가 있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설교가 많아지면, 그 교회는 심리학적이고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그릇된 신앙의 교회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의 믿음과 행위가 더 높아지고 자랑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믿음과 준비하는 행위를 자랑하는 인간적이고 심리학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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