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비키는 자신이 주장하는 회심준비론은 천주교와 알미니안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개혁주의 준비론이라고 한다. 준비론이라는 용어가 같다고 동일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한다. 

“우리는 일부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이 주장한 준비 교리에 대한 칼빈의 비난을 이와 동일한 오류를 기니지 않는 개혁주의 준비 개념이 잘못 적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한 단지 준비론(prepa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로마 가톨릭이 개혁주의와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조엘 비키,『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68)

조엘 비키의 주장은 천주교와 알미니안 신학의 준비론은 죄인이 스스로 구원을 준비하는 것이고, 자신의 준비론(회중파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철처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를 말하므로 다르다고 한다.

기존의 개혁신학에서도 구원받을 택자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시어 복음을 듣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히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죄인이 자신의 영혼의 불행한 상태를 깨닫고 스스로 구원을 열망하는 상태, 즉 죄인의 영혼이 구원을 사모하도록 영적인 각성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개혁신학은 죄인이 성령의 역사로 중생하기 전에는 자신의 영혼의 불행한 운명을 깨닫고 구원받기를 위해 스스로 무엇을 준비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본다.

조엘 비키의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사상과 ‘영적으로 각성된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비참한 영혼의 운명을 슬퍼하면서 자신의 회심을 준비’한다는 전통적 회중파 청교도의 준비론 다른 내용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는 묘한 말장난이고 근본적으로 같은 주장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조엘 비키와 기존의 회중파 준비론자들 모두 "죄인의 영혼이 구원을 향하여 깨어나게(각성되게) 만드는 방법이 저주와 심판의 율법을 복음보다 먼저 선포하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필요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율법으로 마음을 준비시켜야 한다. 율법은 돌 같은 마음을 망치로 두들겨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율법을 쓰시기 전에 표면을 매끄럽게 한다.” (조엘 비키,『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79 페이지)
 


조엘 비키의 준비론은 기존의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을 개혁신학의 구도에 더 맞게 표현을 고친 것으로 사료된다.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인데, 조엘 비키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이라는 수사를 더 강조하고 있다. 비키의 말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향하여 영혼이 깨어난 죄인이 어떻게 자신의 회심을 준비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는 없을까? 조엘 비키가 매우 존경하는 회중파 청교도의 최고봉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에드워즈도 조엘 비키처럼 "은혜로 말미암는 회심 준비"를 주장했다. 에드워즈가 18세기 뉴잉글랜드에 알미니안주의가 상륙하여 자리잡는 것을 일평생 경계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에드워즈가 알미니안주의를 그토록 경계했다는 사실은 구원을 위해 죄인이 스스로 무엇을 준비하거나, 준비해야 한다는 사상을 철저하게 거부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에드워즈는 정통 개혁주의(칼빈주의) 인물이라고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합당한 수단, 즉 구제, 율법준수, 예배, 기도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사람은 아담으로 인해 이후의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구원에 관하여서는 완전히 무능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중시하는 칼빈주의자가 가질 수 없는 사상이 에드워즈의 가슴에 있었던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수단을 부지런히 이용한다는 것은 로마교회의 반펠라기안 신학과 그것의 후속품 알미니안 신학이 가르치는 내용이다. 칼빈주의로 알려진 에드워즈의 그런 모습과 조엘 비키의 ‘은혜로 말미암는 회심 준비’ 사상은 같은 모습이다.

에드워즈는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한 준비로서 다음과 같이 철저한 율법준수를 매우 강조했다.

“구원 얻는 회심을 획득하는 길은 당신의 삶을 철저히 개혁하고 율법의 두 돌 판에 나타난 모든 의무를 다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것이다.” (에드워즈) 1)

에드워즈는 왜 구원의 수단으로서 율법준수를 강조하였을까?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더 먼저 구약의 저주의 율법을 죄인들에게 선포해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들어설 영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회중파 준비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드워즈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강조하여 청중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두려워 떨고, 심지어 실신하기까지 하는 ‘회개의 아수라장’이 벌어지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설교자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뉴잉글랜드의 대각성(1740-1742)때에 그런 이들이 많았고, 에드워드뿐 아니라 그 시대의 뉴잉글랜드의 회중파 청교도 설교자들 대부분이 설교를 통해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보다 더 먼저 강조하는 회중파 청교도의 구원론 때문이었다. 

조엘 비키,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 사상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사람이 구원을 준비한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회심을 위해 준비된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은 칼빈주의가 아니면서도 항상 칼빈주의 깃발을 흔들기를 좋아하는 회중파 청교도들의 특징이다.

 


에드워즈의 실제 사역에서 은혜로 말미암은 회심준비의 과정을 거친 후 구원에 이른 사람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에드워즈는 1차 부흥(1734-35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 「놀라운 회심 이야기」에 실제 사례가 나온다. 에드워즈는 1차 부흥 때, 큰 은혜를 경험한 아비가일 허친슨이라는 여성에게서 일어난 영적 여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는 불과 1주일 정도 각성된 상태에 있다가 구원에 이른 회심의 명백한 증거를 드러냈습니다.”2)

에드워즈는 허친슨이라는 여성이 1주일 정도 영적각성의 상태에 머물면서 자신의 구원을 염려하고 갈망하다가 성령의 회심 단계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허친슨에게 영적각성이 일어나기 전에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가 많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자기를 회심에 이르게 할 만한 신앙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독하려고 첫 장부터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목요일까지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죄성, 특히 자기 본성의 죄악 됨과 자기 마음의 사악함을 크게 염려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번개의 번쩍임처럼 다가와서 그에게 다가와 극심한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읽던 부분을 덮고 신약 성경으로 가서 고뇌에 빠진 자기 영혼을 위해 어떤 위로를 발견하려 했습니다.”3)

에드워즈는 아직 중생하지 못한 죄인 허친슨이 먼저 자신의 죄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대해서도 인식하고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구원받지 못한 그 여인이 하나님의 위로를 얻으려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개혁신학에서는 아무 공로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를 얻은 성도에게서 동시에 시작되는 성화에 관한 부분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와 그와 동시에 시작되어 일평생 지속되는 성화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회중파 펑교도 신학의 특징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대항해서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에 크게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고뇌는 사흘 동안 점점 커졌습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 앞에 흑암의 어두움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그의 전신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서리쳤습니다.”4)

성경적 개혁신학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의 죄인은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중생시키기 전까지 자신의 불행한 운명이나,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지 못한다고 본다. 아직 중생의 은혜를 받지 못한 허친슨 여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자기의 죄를 인해 공포를 경험했다는 것은 마치 조금 전에 죽은 사람이 어두운 관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며 슬퍼하고 비명을 지른다는 겪이다. 대체 죽은 사람이 무엇을 인식하고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이런 주장은 천주교의 펠라기안 신학과 알미니안 신학에서 가능하다. 아담의 타락 안에서 구원에 관한 영혼의 기능이 완전히 죽었음을 부정하는 알미니안 신학, 펠라기안 신학에서 이런 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적부패와 무능을 가장 중시하는 칼빈주의 신학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

“그 날 밤 잠 자리에 들었을 때 그는 다음 날 아침 꼭 목사에게 가서 어떤 위로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잠이 깨었을 때 그는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놀랐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5)

영적각성을 받은 죄인이 스스로 판단과 의지와 노력으로 점점 구원의 고지에 근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여성은 자신의 불행한 영혼의 상태를 인식하고서 너무 괴로웠으므로 목사에게 찾아가 복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고, 이미 복음으로 영혼이 살아난 (아직 연약한) 생명을 가진 성도의 모습이다. 이래서 많은 학자들이 청교도 준비론이 차라리 '청교도 성화론'으로 등장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웨슬리의 신입협동 구원사상이 형성되는 과정에 에드워즈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은 이제 새롭게 조명되어져야 할 사실이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에드워즈의 이 책과 또 다른 책을 요약하고 편집하여 영국에서 출판하였기 때문이다. 에드워즈의 회심 준비사상이 웨슬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특별한 속성을, 때로는 일반적 속성을 깨달았습니다 ...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와 완전하심의 영광에 대한 감각에 사로잡혀 마치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쉽게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것 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누군가가 그에게 그 체험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다가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럽게 감동받아 기력이 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데려다가 침대에 눕혀야 했습니다.”6)

이것이 회중파 청교도들의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된 사람에게 임하는 신비한 성령의 회심 체험의 진수이다. 성령의 무슨 은혜가 얼마나 어떻게 임했기에 허친슨 여인의 몸의 기력이 다하여 침대에 눕혀져야 했을까? 이런 고약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구원은 거짓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회심 준비가 없었다는 것인가? 구원에 관해 마귀가 내린 거짓된 신학을 붙들었으므로 결국 마귀가 내린 거짓된 구원의 체험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한 번은 그가 동생에게 자기는 여러 날 밤낮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황홀하게 맛보면 즐겼다고 말했습니다.”7)

에드워즈는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의 과정 끝에서 진정한 성령의 회심에 이르게 된 허친슨이라는 여인에게 성령의 특별한 임재가 일어났고, 세상에서 맛 볼 수 없는 황홀경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구원에 관한 거짓 신학이 필연적인 열매이다. 마귀가 내린 거짓 구원론이므로 결국 마귀의 구원 푸닥거리에 귀착되어 기독교를 더럽히는데 쓰여지는 저주를 먹고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순절 성령파들이 말하는 성령(재)세례, 그리고 오늘 날의 신사도파들이 강조하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런 것이 이단이 아니면, 세상에 이단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은 이런 더러운 체험을 회중파 청교도들이 최고의 성화체험으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런 체험을 ‘성령의 신적인 빛’, 또는 ‘성령의 성화되게 하시는 역사하심’으로 설명했다. ‘은혜로 말미암는 회심 준비’를 거쳐 성령의 진정한 회심에 이르면, 성령이 그 사람의 영혼을 성령 불로 지져 죄성을 녹여 빠지게 한다는 식으로 성화를 신비적으로 이해하였다. 칭의와 성화가 혼재되어 있는 회중파 청교도의 괴상하고 더러운 사이비 신학의 특징이다.

대각성 당시, 회심준비의 과정을 거친 후 이런 더러운 신비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에게서 당장 죽어도 전혀 두렵지 않다고 간증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형적인 사이비 신비주의의 모습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에드워즈의 부인 사라이다. 1742년 1월, 사라는 성령의 특별하신 임재를 경험하면서 이틀 사이에 세 번이나 입신으로 들어갔다. 그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황홀경을 체험했고,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그녀가 죽어가는 것 같아 근심했으나, 정작 본인은 그 상태에서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사상은 말 장난이고 속임수이다. 마귀가 내린 거짓 사상이므로 반드시 마귀가 내린 쓴 잔을 받아 마시게 되는 결과가 따른다.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저주의 쓴 잔을 반드시 동반한다. 그러나 조엘 비키가 에드워즈와 전통적 회중파의 회심준비론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 비판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조엘 비키의 준비론은 그들의 준비론과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비키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비키의 신학이 개혁주의라는 탈을 쓰고 있으나 실상은 회중파 이단 청교도의 유사 개혁주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 미주 ---

1) 양낙홍의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259를 보면, 에드워즈의 원문에 대한 정보가 함께 나온다.

2)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론」(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7권, 고언 편집, 양낙홍 역)(부흥과 개혁사, 2005), 129.

3) 앞의 책, 250.

4)Ibid., 250-251.

5)Ibid., 251.

6)Ibid., 252.

7)Ibid.,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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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