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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는 기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김만옥  |  potentia-de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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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8  18: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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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 중에서 공모임이 제일 많고 심지어 ‘새벽기도회’라는 독특한 신앙생활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 ‘기도원’도 만든 것에는 민족성이 가무(노래와 춤)와 더불어 종교성이 강해서 기도를 중시하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현상은 80년대부터 ‘영성’을 강조하면서 관련된 책들이 나왔고 각종 기도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바른 기도의 이해에 충실한 책들인지를 물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바르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시기다. 즉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은 강하지만 기도의 대상과 내용이 성경적인지를 검토하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 관점에서 평가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큐티식 기도’를 보면 개혁주의(칼빈주의)를 추구한다는 장로교회가 영적 분별이 없이 강조하고 실천하는 성경 묵상 방법 중 하나인 큐티가 정말로 개혁주의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개혁주의 조직신학자 마이클 호튼은 큐티(QT)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이 구절이 무슨 뜻인가를 묻지 않고 이 구절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고 있다는 것은 ‘세속적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즉 성경의 바른 해석인 문맥적 해석이 아닌 자의적 해석으로 독자의 주관성에 의해 해석될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위험한 것은 ‘큐티식 설교’를 하는 목사들로 성경해석이란 역사적으로 검증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주석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설교자가 자신의 주관적인 성경해석을 통하여 결국은 자의적 해석을 한다는 것은 복음신앙이 아닌 율법신앙 아니면 번영신앙이라는 사실이고 큐티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성경해석(구약학자 김지찬 교수도 비판)은 사실상 사탄적 행위인데 현실은 이러한 거짓 설교자들이 인기가 많고 자신을 ‘강해설교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다시 돌아와서 칼뱅은 분명하게 바른 기도에 대해서 경고하기를 “말씀을 기초로 한 믿음은 올바른 기도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멀어지는 기도는 즉시 부패하지 않을 수 없다(기독교강요, 3.20.27).”라 한 것은 큐티식 기도나 설교가 아니라 주일예배에서 바르게 선포가 된 설교와 교리교육을 통한 올바른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계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도란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본질이 아니라, 바른 예배를 통해서 기도의 대상을 바르게 아는 것부터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변에 보면 기도의 대상보다 기도의 행위를 강조하여 기도의 시간(“하루에 몇 시간 동안 기도를 했느냐”를 중시)과 더불어 새벽기도회를 신앙생활의 기준으로 보거나 강조하는 것은 사실상 ‘율법신앙’이다(참고로 율법신앙이란 “신앙생활에서 자신의 행위를 강조하여 자기 의를 내 세우는 것”으로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대표적 율법주의자들이었고 그들은 자기 의로 신앙생활의 규범으로 기도, 금식, 구제로 내세워 영적 교만에 빠졌다).

그리고 칼뱅도 공중기도를 힘써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지만 전제는 분명하게 말씀을 기초로 한 믿음에는 ‘이중의 신지식(duplex cognitio Dei)’을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중지식은 칼뱅의 신학의 근본원리로 그 기초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식이 기도의 대상을 바르게 아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지만 기도자는 기도의 행위보다 사실상 기도의 대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인격적인 교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한 기도를 해야 한다(말씀과 함께 cum verbo). 그러므로 기도자는 자신의 삶에서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기에 칼뱅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을 예배”로 본 것이다(오늘날 ‘선교적 교회론’을 주장하는 교회는 반성해야 하고 이 사상은 바르트 신학이 배경). 즉 주일예배를 통해서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음인 ‘설교와 성찬식’을 통해서 바른 기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기도의 마침에 있어서 심각한 신학적 문제의 표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하는 것은 사실상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표현이 아니기에 바른 신앙고백적 표현으로 초기교회와 정통적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our Lord Jesus Christ)”해야 올바른 기도의 마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메시아)라는 4가지 단어를 보면 ‘우리’란 기도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으로 인격적 관계이고 ‘주’란 예수님이 신(퀴리오스)이시고 ‘예수’란 이름이시고 ‘그리스도’란 예수님의 신분이 하나님의 유일하시고 영원한 아들이시라는 것이고, 이 4가지 단어는 중요하기에 신약에서 총 41회 사용이 되었고 특히 갈 6:18에서는 분명하게 기도의 마침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개혁주의 교회들은 바른 기도를 알고 실천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을 통한 ‘교리교육’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하고 주님의기도를 바르게 알아서 기도하는 기도자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바른 기도를 비유하면 ‘주파수'로 할 수 있는데, ‘아날로그 라디오’를 청취하려면 주파수를 바르게 맞추어야 청취할 수 있다. 그 처렁 기도자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주파수를 셋팅해야 한다. 주파수가 맞지 않다면 잡음이 들릴 것인데, 잡음을 감상하거나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바른 주파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복음선포로 ‘인격적 교제’, 주파수를 잡을 수 있다. 기도의 대상과 예배의 대상이 같다.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은 바르게 예배할 수 있다.

기도란 사실상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우선이 아닌 기도의 대상부터 올바르게 알아야 바른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호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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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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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리훈 2019-05-29 03:37:1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대표 기도할 때 어느 순간 부터 ‘우리’라는 말을 뺏는데 앞으로는 꼭 넣어야 겠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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