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에게 회심준비론 사상 있었다는 비키의 말에 일면 수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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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에게 회심준비론 사상 있었다는 비키의 말에 일면 수긍한다
  • 김리훈
  • 승인 2019.05.27 11:57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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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시대의 칼빈과 영국 식민지 시대에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Virginia에서는 성공회, New England에서는 회중교회를 중심으로 정부가 교회에 관여하는 일종의 신정정치를 구현하였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의 도전에 직면하여 제네바에서 교회를 개혁하였는데, 율법에 기초한 엄격한 교회법을 제정하였고, 그 법을 실행하는 종교국을 설정해, 제네바 시민들의 종교생활을 점검하였다. 만약 법을 어길시 목사, 장로, 성경 교사등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그 법에 의하여 처벌 받았다. 벌은 엄격하여 권징, 출교, 파문, 축출, 고문, 심지어 사형(화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여 외부에 의한 억제가 없으면 인간은 방종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당시 교회회원이 되는 것과 생존권은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법에 굴복 했어야만 했다. 물론 first priority는 그들의 신앙을 개혁신앙으로 견고히 하고 어떠한 신학적 도전과 이단사설로 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영적문제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의 글에서 율법을 어떤 때는 회심 전의 용도로, 즉 첫 번째 용도인 하나님의 의와 정죄를 선포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고 회개케 한 후 복음을 선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은 후 즉 회심 후에 율법의 세 번째 용도인 선한 행실을 강조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칼빈의 글에서도 청교도의 ‘회심준비론’과 비슷한 사상이 나온다고 주장한 죠엘 비키의 말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칼빈 시대의 종교법, 그리고 청교도 시대의 ‘회심준비론’은 그 시대에 적합한 그 시대의 기독교 산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같은 칼빈주의를 추구한 회중파 청교도와 장로파 청교도들 사이에 어떤 사상적 차이점이 있었는지? 물론 교회 정치면에서는 현저히 차이점이 있었다. 뉴잉글랜드의 회중파 청교도들에게 영향을 받았던 Jonathan Edwards가 스코틀랜드 개혁파 장로교의 보고요 산실이었던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마쳤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리훈 장로는 Nevada주의 Las Vegas에 거주하며, 갈보리장로교회(협동장로)에 출석한다.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라스베가스의 '김리훈 보철치과'의 원장이다. 남가주대학(USC), 캘리포니아대학(UCLA, 치의학박사), 미시간대학(U of M, 보철전문의 석사)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또한 미주 총신(M.Div)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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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 2019-05-29 10:11:20
제가 이해가 짧았군요. 제 답글로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기사 내용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미 정목사님 기사에서 칼빈의 주장 중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 문구들에 대해서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키의 주장이 맞다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신학적 질문을 하는 것과 "칼빈에게 회심준비론 사상 있었다는 비키의 말에 일면 수긍한다" 라는 말은 차이가 있습니다.
칼빈이 율법폐기론자들을 경계하기 위해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령 누군가 ‘율법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끈다’라는 주장을 했다면, 회심준비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 말이 성령께서 어떻게 문자인 율법을 이용하시는가로 해석합니다.
조엘 비키가 말했듯 칼빈은 회심준비론을 지지했다는 주장에 어느정도 동의한다라는 기사는 독자의 입장에서 칼빈은 헷갈리는 신학자라는 결론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에서 과연 칼빈이 이런 말을 했을 때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신학적 질문과 칼빈신학에서의 율법과 성령사역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김리훈 2019-05-29 08:55:13
저도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으면서 칼빈이 어떤 때는 이 말을 하고 또 어떤 때는 저말을 하는 내용들이 있어서 매우 혼란을 느낀적이 있었는데 최종의 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하고 또 그 당시의 상황을 교회사를 통해 찾아 봐야 합니다. 제가 Minn님과 토론한 내용들이 이런 것들 입니다. 제가 죠엘 비키가 칼빈의 글에서 ‘회심준비론’과 같은 내용이 있다는 것에 동의 한다고 해서 죠엘 비키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 하는것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 입니다. 정목사도 그의 글에서 이것을 매우 specifically 밝혔고 제 글에서도 밝히지 않았습니까 ?

김리훈 2019-05-29 07:30:09
율법이 몽학 선생으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칼빈의 말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고 개혁자 라면 일반 상식입니다. 제글 중에 율법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죠엘 비키는 학자 입니다. 저도 기독교 강요는 수 차례 읽었고요. 죠엘 비키가 칼빈의 글을 이용하여 ‘회심준비론’을 정당화 하려는 것에는 저도 반대 입니다. 그러나 칼빈의 글에 죠엘 비키가 언급한 것처럼 ‘회심준비론’과 같은 내용이 있다는것에는 동의 한다는 것입니다.

Minn 2019-05-29 06:37:55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신학은 다른 학문과는 다릅니다. 왜 다른지 아십니까? 신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바라보는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변하지 않습니다. 칼빈을 다 맞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도 수긍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고 칼빈이 연구한 내용 위에 더 연구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개혁이론들은 칼빈이 연구한 내용 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옆길로 새서 가톨릭의 아퀴나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거스틴의 이론들이 칼빈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지만 칼빈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선진들이 있고, 그들의 발판 위에서 이론들을 다시 정립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칼빈 외에 더 훌륭한 신학자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퀴나스의 영향으로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 당시의 상황을 정교가 분리된 다원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또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 아이러니 하게도 조만간 정목사님이 쓰실 기사에 나오는 멀러라는 인물이 님과 비슷한 말을 합니다. 또, 무엇을 위한 이치인가요?
"그 당시 칼빈은 율법에 기초한 종교법으로 제네바 시민을 통제 해야 했고 청교도들은 그보다 더 강한 회심준비론과 같은 원리로 예비 신자들의 구원 얻는 믿음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님이 여태껏 정목사님이 반박하시던 내용을 이 한 문장으로 깡그리 무시하고 반대하시는 것을 아시나요?
그리고 아무런 근거 제시없이 칼빈과 회심준비론을 같이 보는 것은 좋은 기사도 아니고, 학문적 가치가 있는 바른 의문제시도 아닙니다. 바른믿음의 기사들이 서로 반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칼빈이 율법의 몽학선생으로서의 용도를 설명했다고 했습니다. 칼빈의 어떤 주장이 율법이 구원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지 칼빈이 율법의 용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구원에 필요하다고 말하는지 바른믿음 독자들이 판단하실 겁니다.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이 해왔던 오류처럼 칼빈의 말을 부분적으로 이용하여 그가 말하려던 내용을 왜곡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리훈 2019-05-29 01:57:56
제가 말 하려고 했던 것은 율법을 구원과 연관시켜 말하려는 것이 아닙이다. 그 당시의 신정국가의 상황에 대해 말하려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 당시 칼빈은 율법에 기초한 종교법으로 제네바 시민을 통제 해야 했고 청교도들은 그보다 더 강한 회심준비론과 같은 원리로 예비 신자들의 구원 얻는 믿음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의 종교개혁 시기나 청교도의 영국 식민지 시대에 율법이 강조된 것은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죠엘 비키가 언급했던것 처럼, 칼빈의 글 속에서도 ‘회심준비론’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이고요. 제가 말하려는 어떤 상황을 ‘Minn’님께서 일반적인 성경이나 칼빈의 원리로 평가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Minn’님의 의도는 알겠고 그러한 평가도 또한 고맙습니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을 정교가 분리된 다원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또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칼빈의 글 속에서도 이율배반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성경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외 여러 저서들과 그의 사상을 통해 개혁정신을 이어 받은 사람들 이지만 그를 우상화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Anyway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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