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의 신학적 문제 정리

필자는 조엘 비키의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2장을 분석하는 글의 서두에서 다음과 말하였다.

 

“회심준비론 개념은 반펠라기안 신학에 부착된 로마교회의 ‘도움의 은총’ 개념 속에서 더 먼저 나타났다 ... 이후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를 통해서도 명칭이 다른 회심준비론이 나타났다 ... 웨슬리는 일반은혜와 자유의지가 협동하여 회심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회개해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하면, 성령이 그를 중생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중생을 얻은 후부터 자유의지가 일반은혜의 도움을 받아 성화되는 작업을 이루어 간다고 하였고, 성화가 완전 상태에 도달하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신다고 했다.

명칭이 다른 로마교회의 회심준비론과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의 차이는 무엇일까? 알미니안 신학과 영국 국교회 속의 로마교회 신학의 영향을 받았던 웨슬리의 명칭이 다른 회심준비 사상과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의 분명한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언제 인간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가 주어진다고 가르치는가에서 결정된다. 천주교에서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는 자의 선행에 근거하여 칭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천주교에는 믿음으로 인한 완전한 칭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웨슬리도 믿음으로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완전한 칭의는 성화가 완전해지는 것에 달려있다고 가르쳤다.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인간이 언제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칠까? 이 부분에서 필자는 한 가지 심각한 의문에 봉착했다. 지금까지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오직 그 믿음에 근거하여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는 가르침을 본 적이 없다.” (정이철, “어거스틴을 회심준비론과 연결시키는 비키의 주장은 오류”)

회중파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을 가르치는 교회들이 신자들에게 권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서적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에 내포된 신학적 문제점들을 분석하면서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회중파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완전한 칭의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성화를 칭의의 근거로 가르치는 천주교의 회심준비론 ‘도움의 은총론’과 완전성화를 칭의의 근거로 가르치는 웨슬리의 구원론과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본질적으로 같다.

회중교회들이 발전시킨 회심준비론은 근본적으로 반펠라기안 신학에 부착된 로마교회의 구원론의 아류이다. 그리고 벤펠라기안 신학이 조금 약화된 형태인 알미니안주의와 천주교와 유사성이 많은 영국 국교회의 신학을 실천한 존 웨슬리의 구원론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에 대해 앞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이 많으므로, 이 글로써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에 대한 분석을 마치려고 한다. 독자들은 이 점을 감안하고 글이 길어지더라도 인내와 열심을 발휘하여 주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저자의 영적각성을 받은 사람의 회심준비에 대한 주장을 그대로 소개할 것이고, 필자의 해설은 가급적 적게 하려고 한다. 

 

 

1. 자기 구원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

“구원에 대한 깊은 근심은 세상에서 가장 이치에 합당한 것입니다. 자기 영혼의 영원한 행복에 관해서 무관심 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정말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가’라고 되묻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사람인가요? 짐승인가요? 그 사람은 자기 이성을 쓰고 있나요? 아니면 미쳐있는 겁니까? 무저갱의 절벽 난간 위를 항상 걷고 있으면서도 자기 ‘구원’에 대해서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니요! 여러분은 마땅히 그 문제에 대해 근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 근심이 없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영혼의 구원에 관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29 페이지)

->로마교회의 반펠라기안주의와 웨슬리의 반펠라기안-알미니안주의 신학은 원죄로 인하여 인간의 영혼의 기능이 전적으로 죽고 부패하였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원죄의 영향이 구원에 관한 인간의 영혼의 기능의 일부에 손상을 주었을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지각과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자연인이 자기의 구원에 대해 스스로 근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죽은 영혼(엡 2:1)을 살리는 순간 하나님과 구원과 영혼의 운명에 대해 지각한다고 가르친다(시편 14:2-3; 53:2-3).
 

2. 율법을 알아야 구원받는다.

“그러나 율법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자신이 죄인임을 알 수 있습니까? 행동뿐만 아니라 그 감정에서 있어서도 이 율법을 떠나는 즉시 모든 것이 죄라면 여러분이 지은 범죄는 얼마나 무수하며 얼마나 크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이것만이 아닙니다. 율법이 원하는 완전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것도 율법을 대적하는 것만큼 죄가 되는 것입니다.” (67 페이지)

->복음으로 구원을 얻게하기 전에 먼저 율법의 정죄를 선포하여 죄를 알게 해야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는 주장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비성경적인 율법주의 신학의 핵심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성령과 은혜의 역사였지 율법의 능력이 아니었다.
 

3. 죄의 극악성을 이해해야 구원받는다.

“여러분이 저지른 ‘실질적인 죄악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본래의 고유한 부패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행실 속에 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본성의 죄도 있습니다 ...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받을 때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당신 자신의 형상, 곧 의와 참된 거룩 안에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자신의 본성 자체와 여러분의 인격의 모든 기능들 전체가 전적으로 부패해 있음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69-70 페이지)

->구원은 죄인이 자신의 죄성의 심각성을 알아서 얻는 것이 아니고, 죄에서 건지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 죄인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기 전에는 영적으로 죽은 죄인의 영혼이 자신의 죄의 심각성과 자신이 전적부패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역사로 의지가 작용하여 믿음을 선택하고, 의지의 노력으로 성화의 길을 추구한다는 펠라기우스-알미니안 사상이다.
 

4. 인간은 율법을 어겨서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뿐만 아니라 죄를 미워하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까? 정말 완전하게 미워하시죠. 우주의 의로우신 통치자로서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으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였습니다. 또 그 율법을 어기는 모든 자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위협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그렇게 하셨죠. 모든 사람들이 그 율법을 어겨 그 형벌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72 페이지)

“속죄는 어긴 율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 구원을 열망하는 죄인들이여, 그리스도의 속죄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거기에 여러분의 소망과 기쁨과 생명이 있습니다 ... 그 분의 중보의 결과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러하신 분(그리스도)이 율법을 순종하셨습니다. 그분만큼 율법을 더 존귀하게 해드린 이가 어디 있습니까?” (76-77)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존귀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의롭다 하심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민 의를 근거로 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가 뜻하는 바입니다.” (86 페이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원인을 아담의 하나님 섬김의 거부와 반역으로 이해하지 않고, 성경에서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아담의 마음에 영생 얻을 조건으로 심겨진 율법에 대한 불순종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사변신학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회중파 청교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병폐이다.
 

5. 부패한 본성을 죽여야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란 무엇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형벌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 구원은 ‘우리의 육체를 그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갈 5:24). 또한 부패한 본성을 죽이는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약속하는 구원은 장차 지옥에서 건짐 받을 것이라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세에서 죄로부터의 구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여러분을 타락 전 아담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함입니다.” (81 페이지)

“의롭다 하심(칭의) 안에서 그는 용서를 받습니다. 성화 안에서는 치료를 받습니다. 두 복락이 구별은 되지만 항상 함께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그 둘 다 필요합니다 ... 이 두 복락, 칭의와 성화를 아는 지식은 성경 전체를 여는 열쇠입니다. 오1 복된, 아니 무한히 복된 상태는 우리를 죄의 정죄로부터 자유함을 입고, 우리를 지배하고 더럽히고 있던 세력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구원입니다.” (87-88 페이지)

“정말 자신을 철저히 검증하십시오. 경건하고 엄중하게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십시오. 거듭남에서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 본성 자체가 변화되되, 전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심령에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향이 신적인 차원에서 전적 변이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관점과 취향들, 우리의 고통과 즐거움들, 소망과 두려움들, 소원과 추구하는 것들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도록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 신령한 행사에 참여하는 일뿐만 아니라 죄를 죽이는 자기부인의 도리도 실천해야 합니다.” (140-41 페이지)

“그 사람이 이전에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들을 영적으로 분변합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이 전적으로 미치지 못하였다면, 다시 말해 본성이 전적으로 새롭게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결코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142 페이지)

->위 글은 구원을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죄용서와 칭의 선언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죄인이 자신의 부패한 본성을 죽이고 고침으로 얻는 댓가로 가르치는 것은 로마교회와 웨슬리가 가르치는 성화에 근거하는 구원신학이다. 성경과 종교개혁 신학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완전한 칭의를 가르친다.
 

6. 영혼이 각성 받아 죄를 슬퍼하는 사람이어야만 구원받는다.

“각성 받고 구원에 대해 열망하며 근심하는 죄인이여, 저는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권하는 바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토로하는 그 감동적이고 보배로운 방식을 특별하게 주목하라고 말입니다 ... 여러분의 발자취를 따라서 뒤로 거슬러 올라가 범죄를 행했던 각 장면마다 생각하고, 그럼에도 여러분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인내가 어떠한지 멈추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102 페이지)

“여러분의 죄를 진정으로 한탄하고 있습니까? 어떤 핑계나 구실을 대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께 죄 지었음을 고백합니까? 진실로 죄를 미워하며, 죄 때문에 자신이 역겹습니까? 죄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느끼며, 죄를 짓지 않아야 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며, 아주 최소한의 허물이라도 죄가 됨을 알고 무서워합니까?” (109 페이지)

->성령의 역사와 의지의 협력으로 인간이 구원의 길을 찾고 완성해 간다는 로마교회와 웨슬리 신학에서는 이런 말이 가능하겠으나, 죽은 영혼에게 오직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거듭남이 주어진다고 가르치는 성경(개혁신학)의 가르침 안에서는 불가능한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성화의 도상에서 경험하는 일이다. 인용된 인물 다윗이 자기의 죄를 슬퍼할 때는 이미 구원받은 후였다. 구원 전에 자신의 구원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7.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보편구원론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향하여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어 여러분 각자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죽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의 한 부분입니다.” (120 페이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실제로 죽으셨음을 믿고, 의뢰하는 모든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임도 믿으십시오.” (122 페이지)

“첫 번째 단순한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믿는데서 야기되는 그 다음의 믿음의 행사는 첫 번째 믿음의 행사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세상의 일부로서의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161 페이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으니 ‘나’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추구해야 하는 확신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실 능력을 갖고 계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실 기꺼운 용의를 갖고 계시다는 진리에 설득 당하도록 하십시오.” (164 페이지)

->그리스도께서 누가 자기의 피를 믿고 구원얻을지 알지 못하시는 상태에서 일단 피 흘리고 죽으셨고, 이후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를 믿으면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나, 결국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사람만 구원받는다는 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로마교회와 웨슬리가 가르치는 신앙, 즉 보편구원론이다. 성경(개혁신학)은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일부를 택하셨고, 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택하신 자들에게 불가항력적 은혜, 즉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역사하시어 완전하고 영원하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8. 죄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면 그리스도를 믿을 준비가 된 것이니 즉시 믿어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갖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요,’ 여러분이 율법의 정죄 아래 있음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까? 죄인이 그 본성에 있어서 전적으로 부패하여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실제적인 죄를 지어 지옥에 가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 그리스도께서 어느 것에서 ‘죄에 대한 깨달음이 어느 정도의 깊이에 이르기까지 내가 너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문제는 여러분이 죄에 대해서 진실로 각성을 하였는가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죄에 대한 각성을 했으냐가 아닙니다.” (144-45 페이지)

“그들이 죄를 미워하게 된 것이고, 임박한 심판을 피하여 달아나고 싶은 소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147 페이지)

->죄에 대해 깨달았으면, 더 깊은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당장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 죄에 대한 깨달음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이다. 성경(개혁신학)은 구약에서 예언된 구원자(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라는 사실이 설명되어질 때, 성령의 역사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결코 죄에 대한 혐오감이 생긴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준비가 되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죄에 대한 깨달음과 혐오감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성화의 도상에서 체험하는 핵심적인 일이다.
 

9. 회개하고 기도해야 구원받는다.

성의 없이 드리는 기도는 결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악인들이 구원받기 위해 드리는 기도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사실 죄로부터 구원 받고 싶은 소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진지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여로분에게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한, 여러분의 기도는 자기 사랑의 작용일 뿐입니다 ... 여러분의 기도에 믿음을 합해야 합니다.” (188 페이지)

->구원받기 전에 죄인이 스스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으면서 믿음으로 기도하여 구원을 얻고, 완전한 칭의는 이후의 성화의 여부를 통해 결정된다고 하는 로마교회와 웨슬리의 신학과 같은 내용이다. 결코 성경(개혁신학)의 가르침이 아니다. 


10. 구원을 열망했던 사람이 다시 물러나 영원한 멸망에 빠질 수 있다.

“구원을 매우 진지하고 간절하게 추구하였던 사람들이 조심성을 잃어버림으로 빠져 나온 죄 속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빠진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과 낙심의 가중된 압박을 받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멸망 가운데 그대로 머무를 수 있는 성향이 있습니다. 자기는 구원을 얻을 가망도 전혀 없고, 그러니 더 이상 구원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며 기각해 버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215 페이지)

->성경(개혁신학)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에게 성령께서 복음으로 역사하여(불가항력적 은혜) 반드시 중생시키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끝까지 지키신다고 말씀한다. 구원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사람이 다시 뒤로 물러나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은 성령과 의지가 협력하여 인간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으나, 이후 다시 퇴보하여 영원한 지옥에 빠질 수 있다고 가르치는 로마교회와 웨슬리의 신학이다.
 

--- 참고 ---

1) 조엘 비키,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마르투스 역(인천: 마르투스, 2019).

2) 존 에인절 제임스,『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서문강 역(서울: 청교도신앙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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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