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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박사, 밀러 테제(Miller Thesis)와 멀러 테제(Muller Thesis)
고경태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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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8  08: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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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리 밀러

페리 밀러(Perry Gilbert Eddy Miller, 1905-1963)와 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 1948-)는 미국 학자들이다. 두 사람이 규정한 학문 카테고리가 한국 교회에 교회사를 이해하는 두 진영을 만들었다. 밀러 테제(Miller Thesis)와 멀러 테제(Muller Thesis)이다.

유럽 학자들도 두 테제로 묶을 수 있다. 테제에 따라서 학문의 이해가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문은 전제와 결과가 일치해야 정상이고, 일치하지 않을 때 왜 일치하지 않는지 설명해야 한다. 밀러 테제(Miller Thesis)와 멀러 테제(Muller Thesis)로 17-18세기 교회 신학을 볼 때 전혀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 두 테제의 공통점은 루터와 칼빈을 지지하지만, 17-18세기 산물에 대해서 전자는 “염려와 의혹”, 후자는 “긍정과 존중”으로 다르다. 그래서 연구자는 두 테제 중 한 테제를 자기 관점으로 삼고 연구를 하면 될 것 같다.

배한극은 밀러의 The Marrow of Puritan Divinity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배한극: 1981, 21, 신학자 이름은 저자의 표기를 그대로 인용함). “뉴우잉글랜드의 언약신학은 윌리암 퍼킨즈, 영국 청교도 신학자 윌리암 아메스, 영국 청교도 신학자 죤 프레스턴, 그리고 리차드 시보스의 저작과 설교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의 저자는 뉴우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며 모든 도서관에서 비치한 책들이었다. 언약이란 말은 성경에서 나오는 말로서, 루터나 캘빈은 그것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16세기 신교의 여러 신앙고백에서도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안상혁은 페리 밀러가 역사학자인데 언약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연구자로 제시했다. 안상혁은 밀러 테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청교도의 언약 신학은 칼뱅의 예정론 신학 전통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칼뱅의 하나님이 전제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예측 불가하다면 청교도의 하나님은 언약의 조건을 수행하고 인간의 행위에 따라 규칙적으로 반응하는 예측 가능한 하나님이다. 둘째, 청교도의 언약 신학이 그들을 칼뱅으로부터 차별화시켰다면, 17세기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교회 언약은 그들을 영국의 청교도로부터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표지가 되었다”(안상혁: 2016, 23)

안상혁은 이러한 밀러리안들은 17세기 청교도들의 수준을 캘뱅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캘빈(Calvin against the Calvinists)으로 표현했다고 제시했다. 페리 밀러보다 더 앞선 밀러리안으로 에른스트 비처, 찰스 맥코이, 바질 홀, 발터 키젤,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있었다(안상혁: 2016, 24). 그리고 밀러 후대의 학자들은 제임스 토란스, 홈즈 톨스톤 3세, 로버트 켄달, 찰스 벨 등이다. 신정통주의인 토란스가 17세기 언약 신학을 율법주의로 규정하여, 칼빈 신학에서 일탈한 것으로 주장했다고 제시했다(안상혁: 2016, 24).

밀러 테제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하는 중에, 예정론과 속죄론 그리고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대해 홀 헬름, 칼 트루먼, 스코트 클락, 빌렘 반 아셀트, 에프 테커, 리차드 멀러가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안상혁은 이들이 일차 문헌 자료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근거로 칼빈과 칼빈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연속성을 설들력 있게 논증했다고 제시했다(안상혁: 2016, 27).
 

   
 리챠드 멀러 

이러한 견해를 멀러 테제(Muller thesis)라고 한다. 안상혁은 <언약신학>에서 그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다. 밀러 테제의 일면적인 구조 이해에서 양립 구도로 한 테제(멀러 테제)가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칼빈과 17-18세기 청교도의 단절성을 주장하는 밀러라인이 극도로 약화된 상태임을 제시했다(안상혁: 2016, 27). 멀러라인의 공통점(안상혁, 로이드 존즈)은 사무엘 러더포드, 존 낙스(스코틀랜드 언약도)와 잉글랜드 청교도(회중파)를 함께 묶어서 한 신학 체계로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즈은 『청교도 신학』에서 바실 홀, 켄달의 이해를 비판하면서, 자기 이해를 제시했다. 바실 홀과 켄달은 밀러라인로 분류되어 있다(참고, 안상혁: 2016, 24).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로이드 존즈는 멀러라인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안상혁은 “밀러 테제와 칼뱅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칼뱅 테제”와 “멀러 테제”를 제시했다. 안상혁은 두 테제에의 근원이 언약 이해에 대한 두 전통과 비교했다. 개혁파 언약 이해에는 제네바 전통과 취리히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편무적(unilateral)이고 후자는 쌍무적 개념(bilateral)이다. 송영재는 제네바는 유언(testament)에 의거한 은혜 일변도의 초월신학, 취리히는 언약(covenant)에 의거한 역사와 인간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않는 내재신학으로 구분했다.

밀러라인은 종교개혁 이후 제 2세대 개혁신학은 두 개혁자들을 분기점으로 칼빈파와 불링거파, “유언신학(Calvinist)”과 “계약신학(Federalist)”이라는 두 라인이 융합될 수 없는 독특한 신학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송영재). 그러나 송영재는 두 진영의 공통점(은혜신학, 공로를 배제함)을 강조하며, 갈등 원인은 행위언약에 대한 논의로 연결했다. 송영재는 이 문제 해결 방안으로 두 테제의 보완성을 인정하여 다양성을 인정하면서(쌍무적과 편무적 개념), 속죄론에서 “공로”를 철저히 배격시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병립된 두 테제가 있다.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 그리고 스위스 언약 이해의 두 유형, “유언신학과 계약신학(제네바와 취리히, Calvinist and Federalist)”이다. 송영재는 칼빈파와 불링거파의 비분리성을 주장했다. 필자도 그 증거로 불링거와 칼빈이 작성한 채택한 제2헬베틱 신앙고백서를 제시한다.

그리고 17세기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논쟁도 심각했지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채택으로 종결시켰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이후에 사보이선언 등으로 분열하면서, 다양한 언약 이해의 난립, 구원의 서정 이해 난립, 율법 이해 난립 등 그리고 최근에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로 대립되어 있다. 칼빈을 사랑하지만 두 테제로 병립된 상태는 일치되어야 바람직하다. 일치되는 방안으로 송영재는 오직 은혜(인간 공로가 없음), 행위언약, 대리적 속죄 구도의 명료한 이해를 제언했다. 필자는 현장에서 적극적인 복음 선포를 협력하여 전개할 것을 제언한다. 세밀한 부분은 다르지만, 죄인을 구원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에서 발생한 아디아포라 논쟁,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선택과 언약 이해,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율법과 죄의 문제, 국가와 교회 문제 등에 대해서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 과정에서 큰 변이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문제이다. 1688년 명예혁명 이전까지 신학은 종교와 국가를 일치시키는 구도였다. 그러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뒤에는 정교분리가 되눈 구도가 되었다. 1646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정교일치 사회에서 작성된 문서이다. 서양은 일련의 역사에서 학문을 하고 있고, 우리는 정교분리가 확정된 된 이후 사회에서 학문을 하고 있다.

우리는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 중 하나를 채택해서 학문을 해야 한다. 그러나 두 테제 모두 칼빈을 근거해서 진행하는 학문임을 인지해야 한다. 멀러 테제는 16세기 칼빈 사상이 지금까지 연속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테제이고, 밀러 테제는 17세기 잉글랜드 청교도가 칼빈 사상을 변개시켰다고 주장하는 테제이다. 우리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루터와 칼빈에서 시작해서 형성한 독일, 네덜란드, 영국의 거대하고 다양한 신학 이론을 정립해야만 한다. 17세기 잉글랜드가 유럽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분파를 만들었는데, 21세기 대한민국은 그 다양한 분파를 한 줄로 정립시키는 시대적이고 교회사적인 과제가 있다.


<참고문헌>

(참고) 원종천은 행위언약 어휘가 1562년 울시아누스에서 처음 소개되었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20년 뒤에 피터 라무스(Peter Ramus)의 영향을 받은 페너와 같은 사람에게서 다시 발전되었다고 제시했다. 1590년 이후 유럽과 영국에서 보편적으로 수용했다(재인용, David A. Wier, The Origin of the Federal Theology in Sixteenth Reformation Thought(NY: Oxford Univ Press, 1990).

안상혁, 『언약신학, 쟁점으로 읽는다』(수원: 영음사, 2016)

로이드 존즈,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서울: 생명의말씀사, 2013)

빌렌 판 아셀트, 에프 데커 엮음,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송영재, “개혁주의 언약교리에 나타난 조직(신학)과 경건의 조화: 윌리암 펄킨스(1558-1602)와 죤 프레스톤(1587-1628)”,

배한극, “페리 밀러와 뉴우잉글랜드 퓨리터니즘”, 경북전문대학 논문집 3권, 1981년.

이승구, “개혁파 정통신학에 대한 멀러 테제에 대한 교의학적 성찰”, 성경과신학 43권, 2007년.

원종천, “16세기 영국 청교도 언약사상 형성의 역사적 배경”, ACTS신학과선교, 2권,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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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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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5-10 16:30:30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Muller 멀러테제 쪽은 언약을 매우 법적인 (forensic) 또는 도덕적인 (moral) 면에서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존 오웬도 그런 쪽인 듯 한데,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점에 초점을 너무 맞춘 것 같습니다.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으로는 법이라는 것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아담에게도 법이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사역은 죄문제 해결과 자신의 도덕적인 깨끗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는 것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언급되는 조상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그들이 타락했기에 요구된 것이 아니라, 아마도 타락 전 아담에게서부터 요구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는 대상을 앎(knowledge, understanding)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아담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고전 2:5-16), 그렇기에 믿음도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는 믿음과 지식이 주어졌습니다.) 복음서들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열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주로 하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신 것과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뜻, 천국, 미래)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시면 하신 말씀을 기억케 하시고 지혜를 주실거라고 하셨습니다 (요14:26). 결국 성도의 특징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헌금을 많이 하고, 성령의 열매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아담은 그의 불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부재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는 결과로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법을 어긴 것이 영생을 잃어버린 결과가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능동수동 순종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법을 지키면 유예기간이 후에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표면적으로 법을 지킨다고 해서 아담에게 영생을 주신다거나 교회의 일원을 만드실 생각은 아니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이미 선악과를 먹기 전에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은혜언약은 말 그대로 법에 근거하지 않고, 성도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조건인 믿음을 직접 심으심으로써 구원을 가능케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협약 (구속언약)이 창세 전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엡1:4-5),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법을 지키는 데에 있지 않았다는 결론이 유추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칼빈과 불링거가 말하듯이 유일하고도 영원한 언약은 은혜언약이어야 합니다. 밀러와 멀러테제가 합해지기 위해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오직 믿음으로 2019-05-09 10:06:50

      고박사님과 정목사님.
      창조경륜 안에 있는 편무적 계약과 쌍무적 계약의 관계를 성경적인지 검증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원사이드 언약' 후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약속에 위배 되지도 않고(갈 3:21) 이 약속을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 없고(갈 3:17),
      범법함으로 더하신 것이며(갈 3:19) 죄를 깨닫게 하시려 주신(롬 3:20) 쌍무적 계약인 첫 상속언약을(히 9:15) 세우셨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쌍무적 계약은 죄 없으신 예수님께 아무런 제약이 될 수 없었고,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유업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의 씨이신(갈 3:16) 예수님께서 받으셨고,

      유업의 상속자이신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셨고 새 언약도 상속언약이기에 상속자가 죽어야만 효력이 있고(히 9:16)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효력이 발생했고,
      성령강림 이후에는 누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갈 3:26)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며(갈 3:7),
      상속받은 유업은 율법에서 나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갈 3:18) 주신 것임.


      첫 상속언약이며 쌍무적 계약인 율법은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음을 알려주고 있음(히9:2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셔서 율법의 요구를 폐하시고,
      믿는 성도 안에 성령하나님께서 내주하심으로 더 이상 구원을 위하여 율법을 준수하라는 요구가 제거되었음.
      믿음도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엡 2:8) 행위구원은 있을 수 없음. 이것이 새 상속언약임.
      그 후에, 성령하나님께서 내주하심 이후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모든 민족으로 확대되게 하심. 창조경륜(엡 1:4)
      성도는 말씀을 읽고 듣고 따라야 함(행 20:32; 요 1:1).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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