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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쇼올스가 이동훈, 정성우 목사에게 보내는 귀하고 복된 가르침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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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7  10: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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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투스> 출판사가 조엘 비키의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를 출판하여 ‘청교도 회심준비론’(이하 ‘준비론’)을 확대시키고 있다. 필자는 <바른믿음>의 지면을 통해 이동훈, 정성우 목사(마르투스 공동대표)가 각각 쓴 그 책의 서문을 분석하였다. 필자는 준비론이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훼손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준비론으로 인하여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그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구원을 위해 인간 편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하거나, 준비할 수 있다는 사상은 영국의 수도사 펠라기우스(Pelagius, 360?~418)에 의해 본격적으로 주장되었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타락이 인간의 영혼 속의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하게 파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구원을 추구하는 영혼의 기능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며,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했다.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는 529년에 열린 ‘오렌지 공의회’을 통하여 정통교회로부터 정죄 받았다. 그러나 이후 펠라기우스주의가 조금 변형되고 약화된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가 등장하였고, 결국 로마교회의 핵심적인 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반펠라기우스주의는 구원에 대해 ‘신인협동설’을 가르친다. 아담의 타락이 인간의 영혼 속에 자리하는 하나님의 형상에 큰 타격을 미치지 않았으므로, 인간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을 인식하고 스스로 구원을 추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반펠라기우스주의의 가르침이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신앙을 로마교회의 반펠라기우스주의로부터 구출하여 사도 바울의 신학으로 되돌리는 작업이었다. 종교개혁은 구원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의 역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재확인하였다. 종교개혁 교회들은 구원을 위해 사람이 사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거나, 준비할 수 있다는 로마교회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거부하였다. 구원이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에게 은혜를 따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회복하였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그러나 종교개혁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구원을 위해 인간이 무엇을 준비할 수 있거나, 준비해야 한다는 사상이 대두되었다. 그런 주장이 제네바에서 칼빈의 후계자 테오도르 베자(Théodore de Bèze, 1519-1605)에게서 신학을 배웠으나, 칼빈의 예정론을 수용하지 않은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을 통하여 출발되었다. 

알미니우스가 죽은 1년 후(1610년), 그의 사상을 따르는 제자들이 알미니우스의 사상에 기초한 신앙 5개조(Fice Article pf Faith)를 작성하여 화란 정부에 ‘항의’(Remonsstrance)의 형식으로 제출하였다. 칼빈의 후예들이 다해 싸웠고, 그 결과로서 도르트 신경,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이 탄생했다. 정통 칼빈주의 교회들이 종교개혁과 칼빈의 개혁신학에 의거하여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거나, 준비할 수 있다는 주장을 격퇴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일평생 영국 국교회의 신부였던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에 의해 구원을 위한 인간의 역할이 또 다시 주장되었다. 영국 국교회의 신학의 근저에 반펠라기우스주의가 많았고, 웨슬리가 성장할 때에는 이미 알미니안주의가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전에 정통교회가 펠라기우스주의를 합법적으로 정죄하고 배격하였던 것처럼, 종교개혁 교회들은 웨슬리의 구원에서 인간의 역할과 협력(준비)을 강조하는 신학을 합법적으로 비판하지 못하였으므로 오늘날 종교개혁 교회 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을 신앙과 신학의 기본으로 삼는 개혁교회들은 인간이 구원을 위해 준비하거나 어떤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결코 용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위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 종류의 개혁신학의 계보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개혁신학을 추구한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회중파)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이 구원을 위한 인간의 준비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흐름은 최근 미국의 청교도 신학교의 학장 조엘 비키의 “Prepared By Grace, For Grace”를 마르투스 출판사가 번역한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을 통해 그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마르투스> 출판사를 처음 접한 것은 칼 쇼울스(Karl A.Schouls, 1942~ )의 저술 “Simply, Faith”를 번역한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라는 작품이었다. 그 책을 너무도 즐겁게 읽었고, 아주 장래성 있는 젊은 분들이 귀한 뜻을 품고 출판사를 차렸다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준비론과 관련된 내용이다 싶어 표시하여 두었는데, 어제 다시 보니 저자 칼 쇼올스가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확인했다. 

청교도 준비론에 대한 칼 쇼올스의 생각은 놀랍게도 필자의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현재까지 필자가 준비론의 문제점들에 대해 파악한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구원 이전에 영혼의 깨어남을 주장하여 가르치는 준비론은, 성경의 중생하기 전에 죄인의 영혼 상태가 완전히 죽었다는 가르침(엡2:1)과 상충된다.

2) 죄인들에게 율법의 저주를 먼저 강력하게 증거하여 겸비하게 만든다는 청교도 준비론의 핵심은 성경에서 나타나는 사도 바울 등의 전도 방식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사도들은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설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예언된 구세주라는 사실을 논증하였고, 그때 성령께서 택하신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고백이 일어나도록 역사하셨다고 성경은 설명한다.

3) 청교도 준비론이 가르치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이미 구원 받은 성도의 성화분야에 적용되면 더욱 적합하고 많은 유익이 되는 가르침들이라고 판단된다. 

4) 준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율법을 영화롭게 하신 그리스도’라는 주장(사상)도 나타난다. 율법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런 개념은 복음과 율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 저주받았고, 제2의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모든 모세의 율법과 계명들을 지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을 얻어 전가했다는 회중파 청교도들의 그릇된 능동순종 교리의 배경에서 나오는 말이다.

5) 구원 받기 전에 죄인이 스스로 회개하고, 지옥에 갈 자신의 영혼에 대해 근심하고, 하나님을 인식하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고, 구원의 길을 상담해 줄 안내자를 구하고, 스스로 예배, 기도회에 참석하기를 시작한다는 청교도 준비론의 주장은 종교개혁이 철저하게 배격한 반펠라기안주의(로마교회, 알미니안주의)의 구원론과 매우 유사하다.

6) 성경과 개혁신학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고, 선택된 자를 효과적으로 부르심(불가항력적 은혜)으로 구원이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중생과 함께 회개와 성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어떤 신학의 진위를 판단하는 1차 기준은 성경이고, 그 다음은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이미 정통 교회가 확립된 교리이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청교도 준비론은 종교개혁 교회의 핵심적 교리들, ‘무조건적 선택’, ‘제한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와 크게 상충한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영적각성이 일어난다고 하고, 영적으로 깨어난 그 사람이 반드리 구원에 이르도록 성령이 인도하시는 보장은 전혀 없다고 하니, 종교개혁 교회의 개혁신학의 예정교리, 제한속죄 교리,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와 맞지 않고 오히려 펠라기안주의(천주교, 알미니안주의)의 보편구원론과 유사한 속성을 보인다.
 

   


오늘은 이미 이동훈, 정성우 목사가 <마르투스 출판사>를 통하여 보급하여 한국교회의 개혁주의 청교도주의자들에게 크게 호평받은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에서 저자 칼 쇼올스가 준비론을 비판하는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칼 쇼올스는 회중파 청교도의 칭의 사상인 능동 순종 교리를 지지하는 내용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들이 발전시킨 회심준비론이 그릇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마침내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전까지 무엇이, 어떤 순서로 경험되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먼저 죄에 대한 애통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구원을 위한 많은 울부짖음과 탄식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죄인이 스스로의 구원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깊이 자신의 상실된 상태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지도 말합니다. 이러한 함정에 빠진 사람들은 얼마나 가련한지요!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께 나아오기 위한 어떤 종교적 경험도, 어떤 준비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죽은 교리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이러한 내용을 읽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들을 주시기 전에 우리 스스로 얼마간의 선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어디에서 가르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얻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죽음과 멸망뿐입니다.” (칼 쇼올스,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마르투스역)(마르투스, 2017), 135.)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학자들 역시 성경적 진리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고, 그들 역시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의로움을 이뤄낼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의 도움과 그분의 자비와 용서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인가가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있어야 한다. 먼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통회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는 은혜의 역사의 실제를 증명하기 위한 선행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이 말은 매우 좋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의 개혁주의 선조들은 이 가르침이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칼 쇼올스, 316.)

“우리의 행한 어떤 일도 칭의를 일으키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칭의 가운데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포하십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칭의를 과정으로 보았는데 죄인이 세례를 통해 주입된 은혜와 여러 가지 행위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 결국 하나님께서 ‘이제 나는 네가 내 앞에서 의롭다고 선포한다.’라고 말씀하시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문론 개혁주의는 로마 가톨릭의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개혁주의 또한 한 사람이 의롭게 되기 전에 어떤 과정이 일반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통회와 죄에 대한 애통의 문제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칼 쇼올스, 318.)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역시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눈꼽만큼도 죄를 슬퍼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로 향하기 위해 마음을 돌일 수 도 없습니다. 1 mm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 받아드려질 만한 존재가 되도록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돌려주실 대까지 계속 죄를 지으며 살아가도 된다는 뜻으로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주님은 항상 우리를 주님께로 부르고 계시며 회개와 믿음으로 그 분께 돌아가는 것은 항상 우리의 의무입니다.” (칼 쇼올스, 2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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