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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이전 영혼이 회개하며 구원을 열망한다는 것은 절대불가능『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서평 1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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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3  06: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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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멎은 사람이 스스로 심장충격기를 자기 가슴에 대려고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자신의 심장이 소생하지 못하자 포기하고 돌아서는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달라!”고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전혀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 영혼이 살았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를 생각해 보자.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은 영혼의 하나님을 향한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에서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인격으로 보고, 인격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발생한다고 본다. 육체는 의지와 이성을 만들지 못하므로 영혼이 의지, 인격, 이성의 작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아담을 ‘생령’(a living soul, 고전 15:45)이라고 하였다. 아담의 영혼과 육체가 갈등하지 않았고, 영혼의 의지가 육체를 통해 그대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범죄 이전의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행위와 자세는 그의 살아있는 영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적 관점에서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생각하고 추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범죄로 인해 아담의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범죄 이전에 아담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발휘되었던 기능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죄를 회개하거나, 죄를 피하는 능력을 보이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추진하는 등의 기능이 전멸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의 영혼의 다른 기능들까지 다 사라져서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담의 죄의 전가 아래 태어난 후손들이 문명, 학문, 예술, 문화를 발전시켜 동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생애와 역사를 구현하였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범죄로 영혼 속에 자리한 ‘하나님의 형상’이 심히 타격 받았으나,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어 도덕, 철학, 과학, 정치, 문화,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주를 인식하고, 경외하는 피조물 본연의 의무와 관련된 영혼의 기능은 파손되었다. 범죄 직후부터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는 사실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섬기는 영혼의 기능 전부가 타격받지 않았다는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안 신학의 주장은 거짓이다. 그들은 특별계시와 성령의 도우심이 없어도 인간이 남아있는 영혼의 기능으로 여건이 주어지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 창조주를 인식하고 구원을 사모하는 영혼의 기능이 남아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말씀을 보존하고, 지키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원수의 사람들 사이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영혼이 죽었으므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특별계시를 보내야만 했고, 또한 죽은 영혼들이 말씀을 깨달아 알도록 택하신 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도록 성령이 역사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났다.

“또한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흠정역)

“And you He made alive,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Ephesians 2:2, NKJV)

성경은 중생되기 전, 우리의 영혼은 죽은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중생하지 못한 영혼이 스스로 구원을 열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죽은 영혼이 하나님에 대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택자의 죽은 영혼에게 구원의 특별계시가 주어질 때, 성령께서 먼저 그 영혼을 살리시어 믿게하시고, 동시에 회개가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시간 차이와 순서는 아니지만, 죽은 영혼이 복음을 이해하고 믿도록 먼저 살려주시지 않으면, 영혼이 스스로 믿음고백에 이르러 구원받는 일은 일어나지 못한다. 청교도 준비론이 말하는 것처럼, 중생하지 못한 죽은 영혼이 회개하고 예배드리며 구원의 길을 스스로 찾도록 깨어난다는 것은 결코 없는 일이다. 서철원 박사의 말을 들어보라!

“복음선포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과 동시적으로 성령의 권면을 따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하게 된다. 믿음고백과 함께 회개한다. 믿음고백과 회개는 언제든지 같이 가기 때문이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66)

복음선포가 있을 때, 성령이 영혼을 살려서 반응하게 하시고 믿음고백이 나타나고 회개가 시작되는 것은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믿음고백에 이르기 위해 성령이 죽은 영혼을 먼저 살려주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생 이전에 영혼이 스스로 회개하고 근심하면서 구원을 열망하게 된다는 청교도 준비론의 핵심은 성경과 개혁신학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1. 성경와 청교도 준비론

회심준비론 등의 판단하기 어려운 이론의 진위를 판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성경은 모든 신학의 표준이고 진위를 판결하는 재판관이다. 신학이 성경적 진리대로 구성되면 합당한 그리스도교 신학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성경의 판결을 받아 그리스도도 신학이 되지 못하여 배척된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신학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에 근거될 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을 판결 받는다. 따라서 모든 신학은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과 합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30)

서철원 박사의 말은 모든 신학적 주장을 진위를 판단하는 최고의 재판관은 성경이라는 것이다. 율법의 저주를 선포하여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슬퍼하면서 구원을 준비하고 열망한다는 청교도 회심론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필자는 아직까지 성경에서 그 비슷한 내용도 찾지 못했다. 과연 성경 어디에서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율법의 저주를 선포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겸비하게 만든다는 사상을 성경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마 9:22)

병들어 지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결사적으로 군중을 헤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에게 언제 저주의 율법으로 회개하고 겸비하게 만든 회심준비 과정이 있었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그리스도와 함께 달렸던 진짜 죄수는 언제 회심준비 과정을 경험하고 구원에 이르렀는가? 사도 바울을 보자.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한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유대인들이 저주스럽게 취급하고, 이방인들은 미련스럽게 여겼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다. 바울이 언제 저주의 율법을 먼저 전하여 죄인의 영혼이 스스로 회개하고 겸비하게 만든 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는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 2:8)

바울은 구원이 사람의 준비와는 상관이 없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겸비하고, 예배와 기도회에 다니는 등의 준비 과정을 거친 후 얻는 구원이라면,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였을까?
 

2. 개혁신학과 청교도 준비론

서철원 박사는 청교도 준비론 같은 난제를 판단 할 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적용해야 할 기준이 교리라고 한다.

“교리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근본진리를 뜻한다. 교리는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신적 권위에 근거하여 교회가 신앙고백 형식으로 표현한 명제이다 ... 교리는 교회의 생명의 표현이므로 교회는 교리를 반복해서 살아야한다. 모든 교회가 교리 이해로 들어가야 하고 그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 ... 교의신학자는 교리에 의거해서 신학한다. 교회의 교리에 의거해서 신학하지 않고 당대의 주된 사상을 의지해서 신학하면 교회의 신학이 되지 못한다 ... 교리는 성경에서 나왔고, 성경에 근거하여 공식화되었으므로 신적권위를 갖는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92-93)

종교개혁 교회의 신앙을 구성하는 신학의 핵심 기둥 다섯 가지와 청교도 준비론을 비교해 보자.

1. 전적타락(전적타락과 무능력, Total depravity, 롬 5:12-21)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롬 4:4-8)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엡1:4, 마1:21)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요 6:37-40, 롬 8:18-39)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벧전 5:10)

이 다섯 가지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청교도 준비론과 부딪힌다면 청교도 준비론은 개혁교회가 받을 수 없는 거짓 사상이다. 청교도 준비론은 하나님이 택하신자의 영혼만 깨어나게 하신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혼이 깨어난 사람이라도 꼭 예수 믿고 구원에 이르다는 보장도 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의 영혼을 깨워주어 스스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 준비하는 선에서 성령의 역사는 그친다고 한다.

개혁교회는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예정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고 예정된 사람을 반드시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효과적으로 부르신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을 끝까지 지키신다고 가르친다. 청교도 준비론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예정, 효과적인 부르심(불가항력적 은혜) 교리와 맞지 않는다. 청교도 준비론에서는 꼭 예정된 사람에게만 영적각성이 임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각성의 상태에 들어온 사람이라도 꼭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3.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회심준비론

개혁교회가 신학적인 난제를 풀 때, 성경과 교리 다음으로 참고해야 할 것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라고 서철원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신학은 개혁교회의 신학, 즉 개혁신학이므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규범과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 삼는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신학 전개와 그의 주석에 나타난 성경이해를 준거해서 신학한다. 물론 고대교회이 교리를 기본 진리로 받아서 신학함은 말할 필요도 업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31)

개혁신학의 토대를 마련한 칼빈은『기독교강요』에서 청교도 준비론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청교도 준비론은 중생하기 전에 영혼이 각성된 사람이 스스로 죄를 회개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길게는 10년 짧게는 1,2년 또는 몇 개월 동안 근심하면서 구원을 열망하는 과정을 거치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은 성령의 중생사역 이전에는 결코 회개가 나타나지 못한다고 했다.

“회개가 항상 믿음을 따를 뿐 아니라 또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복음을 전하여 죄가 용서됨을 알리는 목적은 죄인들이 사탄의 압박과 죄의 멍에와 타락한 생활의 속박에서 풀려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게 하려는 것이므로, 이 복음의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은 반드시 과거 생활의 과오를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서며 회개를 실천하는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믿음보다 회개가 선행한다고 하며, 회개가 믿음을 따르거나, 나무의 열매같이 믿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의 능력을 깨달은 일이 없고 사소한 이유로 이런 생각을 한다.” (기독교강요, 3.3.1)

“회개의 근원이 믿음에 있다고 할 때에, 우리는 회개를 하게 만들기까지에 어떤 시간의 공간적 사이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뜻은 자기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진심으로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려는데 있다.” (기독교강요, 3.3.2)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와 같이 중생을 통해서 죄의 결박에서 풀려난다. 그러나 그들은 육의 괴롭힘을 전혀 느끼지 않으리만큼 완전한 자유를 소유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들 안에는 싸워야 할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훈련이 계속된다. 그들은 훈련을 받을 뿐 아니라, 자기의 무력을 더욱 깨닫게 된다.” (기독교강요, 3.3.10)

서철원 박사도 칼빈과 동일하게 가르친다. 성령의 중생 사역 이전에 죽은 영혼이 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친다. 회개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는 중생 사역과 함께 시작된다고 가르친다.

“복음선포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과 동시적으로 성령의 권면을 따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하게 된다. 믿음고백과 함께 회개한다. 믿음고백과 회개는 언제든지 같이 가기 때문이다.” (서철원,『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66)

   

맺는 말

청교도 준비론을 가르치는 교회들이 신자들에게 읽게 하는 이 책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의 첫 장의 첫 문단이  ‘최근에 영적인 각성을 받아 근심하며’라는 문구가 나오고, 맨 끝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단도 ‘영적 각성을 받아 구원을 열망하는 이들이여’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성령의 중생사역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기 전에는 구원에 관한 영혼의 기능은 완전히 죽은 상태라는 성경과 개혁신학과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가르침과 완전히 다른 내용의 신학을 책 한권에 가득 담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구원의 여정에 관한 비성경적이고 개혁신학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다음부터 이 책 속의 그릇된 내용을 하나씩 요약하고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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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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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udent 2019-05-03 23:37:54

    마르투스 출판사 차린 두 사람, 이동훈 목사와 정성우(다니엘 정) 목사를 상당히 앞으로 주시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굉장한 실력자들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개혁주의 중에서도 성골 개혁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심론을 추종한다는 것 하나만 보아도 아닙니다. 앞으로 주의하여 보다가, 이상한 것을 들고 나오면 바로 이단으로 쳐야 합니다. 교회를 망치는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이런 정통 중의 정통으로 가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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