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모 목사의 성경 오역(誤譯), 오석(誤釋) 바로잡기(4)

 

글을 시작하며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 자라면 누구나 위의 제목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요19:14(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에서 요한이 제시하고 있는 두 개의 시간들, 즉 ‘유월절의 예비일’(일반적으로 목요일이라고 생각한다)과 ‘제 육시’(일반적으로 정오라고 생각한다)가 공관복음에서 한 목소리로 제시하는 시간들(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받는 요일과 시간)과 상충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신자는 물론이고 목회자들마저도 이 부분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중동 지역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삶의 정황(관습과 문화)을 염두에 두고 요19:14의 “유월절의 예비일”과 “제 육시”를 읽을 수 있다면, 요한이 제시한 날짜(유월절의 예비일)와 시간(제 육시)이 공관복음의 그것과 상충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이 묘사한 “유월절의 예비일”은 정확히 언제일까?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19:14)

대부분의 주석들은 요19:14에 나오는 “유월절의 예비일”을 문자 그대로 유월절 전 날, 즉 니산월 14일의 전 날(니산월 13일, 즉 수요일 해가 진 뒤부터 목요일 해지기 전까지)로 이해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유월절 식사는 수요일 해가 진 뒤 목요일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에 하신 것이 된다(예수님 당시의 시간을 계산할 때에는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즉 해가 지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 시간은 니산월 13일 해가 진 뒤, 즉 니산월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이다. 그럼에도 이때 하는 식사를 유월절 식사라고 호칭하는 것은,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의 8일간 전체를 통상적으로 유월절, 또는 무교절이라고 구분 없이 부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유월절 식사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 시간보다 하루 앞당겨서 목요일 저녁에 미리 한 것이 되고 만다.

앞의 시간 이해에 따른다면, 예수님은 수요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수요일 밤 늦게 겟세마네 동산 아래에서 가룟 유다를 앞장세운 무리들에게 체포당하셨다. 그리고 가야바에게 끌려가서 밤새도록(목요일 새벽까지) 가야바의 신문을 받으시고 난 뒤 목요일 새벽에 빌라도에게 넘겨졌다(요18:28). 그 시각에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재판은 시작되었고, 정오쯤에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선고 후 예수님은 로마 병정에게 넘겨져서 골고다 언덕까지 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적어도 목요일 정오 이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된다.

이런 이유(예수님의 십자가 시간표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하루 차이가 나는 것) 때문에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관복음이 제시하는 시간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요한복음이 제시하는 시간은 요한이 자신의 신학적인 목적 때문에, 즉 유월절 전 날에 유월절 양을 잡는 것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시간표를 공관복음의 시간표보다 하루 앞당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월절의 예비일”을 잘못 해석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요19:14의 ‘유월절의 예비일’로 번역된 헬라어 “paraskeuh. tou/ pa,sca”(파라스큐에 투 파스카)에서 ‘예비일’로 번역된 “paraskeuh.”(파라스큐에)는 어떤 유대 문헌에서도 ‘안식일의 예비일’, 즉 ‘금요일’을 의미하는 용도 외에 다른 의미로는 쓰인 흔적이 없다. 따라서 만약 요한이 요19:14에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 받는 날이 목요일이었음을 독자들에게 알리려고 했다면, ‘유월절 예비일’이라고 표현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유월절 전 날’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유대인들은 “paraskeuh.”(파라스큐에)를 ‘안식일의 예비일’인 ‘금요일’을 의미하는 뜻으로만 사용했다. 이것은 요19:31에서 요한이 “예비일”(paraskeuh./파라스큐에)을 안식일 전 날, 즉 금요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 것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만약 요19:14의 ‘예비일’과 요19:31의 ‘예비일’이 서로 다른 날이었다면, 요한은 독자들이 이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말로 묘사했을 것이다. 다시 또 말하지만 유대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안식일 전 날인 금요일이 아닌 다른 날을 ‘예비일’(paraskeuh/파라스큐에)로 결코 호칭하지 않는다(이것은 현대의 이스라엘에서도 “paraskeuh”(파라스큐에)는 금요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월절의 예비일’은 유월절 기간에 있는 안식일 전 날인 금요일을 지칭하는 것이 명백하다. 예수님이 죽으신 날이 금요일이 명백한 것은 요19:31(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한은 31절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날이 안식일 전날, 즉 금요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요한은 안식일의 예비일인 금요일을 왜 ‘유월절의 예비일’이라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요한이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요한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인 ‘예비일’, 즉 금요일을 ‘유월절의 예비일’이라고 묘사한 것은 유월절의 어린양처럼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신 날이 유월절 기간 중에 있는 금요일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NIV는 요19:14(It was the day of Preparation of Passover Week, about the sixth hour. "Here is your king," Pilate said to the Jews.)을 그런대로 바르게 제대로 번역했다.

 

요한이 묘사한 “제 육시”는 아침 6시인가, 아니면 정오인가?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19:14)

위 본문에 기록된 ‘제 육시’를 유대 시간으로 보고, 로마 시간으로는 ‘정오’라고 이해하면, 공관복음에서 일관되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을 아침 9시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상충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요19:14의 ‘제 육시’를 ‘정오’로 보는 이유는 이미 요4: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에 나오는 “제 칠시”는 상식적으로 예수님이 왕의 신하와 대화한 때가 이른 시간인 아침 7시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오후 한 시가 확실하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이, 유대인들의 문화와 관습(당시의 삶의 정황)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서구 문화와 관습대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실수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해가 뜨기 시작하여 어슴푸레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한다. 왜냐하면 사막 기후의 한 낮은 인간이 활동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 낮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최고의 권력자 빌라도가 하찮은 피지배민족의 랍비 한 사람을 재판하기 위해, 짜증나도록 무더운 낮 12시에 재판정에 나왔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당시의 유대 지방의 로마 총독의 일반적인 공무는 보통 새벽 6시 전후로 시작되어진다. 물론 로마 총독은 최고의 권력자답게 이 시간에 자기 마음대로 잠을 잘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요한복음에 기록된 시간은 모두 로마 시간으로 표기되었다. 그럼에도 다음 본문도 대부분 낮 12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4:6)

일반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물 길러 온 시간을 낮 12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 여인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도 물 길러 오지 않는 낮 12시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4:6의 여섯 시는 로마시간으로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각은 아침 6시가 아니면, 저녁 6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시간에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갔을까? 사마리아 여인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물가에 가려고 했다면 적어도 아침 6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히브리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우물에 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집안에 있는 시간인 저녁 6시에 아무도 없을 우물가에 물 길러 갔을 것이다. 이 추측은 이 시간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다는 사실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우리와 달리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끼만 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점심을 먹지 않는 낮 12시에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을 리는 만무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저녁 6시쯤에 저녁 먹거리를 구하려고 마을에 들어갔음이 틀림없다.

아무튼 예수님은 유대인의 전통대로 금요일이 시작되는 저녁(니산월 14일, 그러나 우리 시간으로 보면 아직 목요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오시면 습관대로 늘 가셨던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고, 그날 밤 늦게 겟세마네 동산 아래에서 가룟 유다를 앞장세운 일단의 무리들에게 체포당하셨다. 그리고 안나스에게 먼저 끌려갔다가, 가야바에게 넘겨져서 밤새도록(금요일 새벽까지) 가야바의 신문을 받고 난 뒤, 금요일 아침 6시쯤에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따라서 그 시각(요19:14/제 육시)에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아침 6시부터 시작된 빌라도의 재판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시간, 증인들의 증언들을 듣는 시간, 그리고 바라바와 예수님을 놓고 군중들이 바라바를 선택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서 사형선고를 내린 시간까지 족히 2-3시간쯤 걸렸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따라서 빌라도의 재판은 아침 6시에 시작되어서 아침 8시 반쯤에 재판이 끝나고, 로마 군인들에게 예수님이 넘겨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는 데 30분쯤 소요되었다면(빌라도의 관정에서 골고다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렸다고 기록하고 있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시간적으로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어떤 주석은 요4:52의 ‘제 칠시’는 유대시간으로 보고 ‘오후 한 시’로 해석하고, 요19:14의 ‘제 육시’는 공관복음과 상충되지 않도록 로마시간 그대로 ‘아침 6시’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관복음의 십자가 시간표와 일치하는 해석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해석은 해석에 일관성이 없는 더 나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앞에서 언급한 예수님의 십자가 시간표를 염두에 두면, 아래 본문에 언급된 “유월절 잔치”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18:28)

위 본문에서 ‘유월절 잔치를’로 번역된 헬라어 “to. pa,sca”(토 파스카)는 일반적으로 니산월 14일 저녁(니산월 13일 저녁 6시쯤 해 진 이후, 즉 니산월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의 유월절 첫 저녁 식사를 포함해서 유월절 기간(무교절 포함 8일간) 중의 모든 식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to. pa,sca”(토 파스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후문맥을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면 요18:28의 “to. pa,sca”(토 파스카)는 유월절 첫 저녁 식사 시간 이후이므로, 니산월 14일 밤에 먹는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기간 중에 먹는 식사 전체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유월절 기간 중에 먹는 식사도 부정한 자들은 먹을 수 없다). 특히 본문에서의 새벽 그 시간은 유월절 첫 아침 식사 전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한 마지막 유월절 식사 시간은 요한이 의도적으로 하루 앞당긴 날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 시간(니산월 14일이 시작되는 해진 후 저녁 식사 시간)과 다르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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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