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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이 레 18:5에서 율법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했는가?
고경태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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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9  10: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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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칼빈 주석(5권)에 있는 레위기 18:5에 관한 주해인데, 성서연구원 번역의 글을 그대로 옮겼다(색과 굵은 글은 필자가 첨가했다). 좀 더 정교한 번역이라고 볼 수 있는 크리스찬다이제스트의 번역이 완역되어 좀 더 좋은 이해를 갖게 해주길 기대한다. 이 글은 황준호 씨의 블로그에서 칼빈의 글을 인용하면서 한 주장(율법을 지켜 의를 획득함)에 대한 비교를 위한 것이다.

"레 18장 5절 .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결혼에 있어서 정숙해야지 이방인들의 근친상간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하는 자리에서 이 귀절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은 훌륭한 귀절이요 여기에는 일반적인 교훈이 담겨 있는 만큼, 바울은 여기에 입각해서 율법의 의에 대한 그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롬 10:5).

이것은 보상의 약속을 통해서 율법을 시인하고 확인한다는 점에서, 이것을 여기서 취급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허용된 것이요 이 귀절을 이 지상의 현세적인 생활로 국한시키는 것은 잘못이다(註2).

그러나 성경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율법 자체가 불완전하거나 그것이 완전한 의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이 약속이 우리의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무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의를 찾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면서(롬 10:4) 아무도 율법의 명령하는 바를 성취하지 않고서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써 그의 말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칭의 문제에 있어 율법은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앙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여 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받도록 하지만 율법은 구원 얻을 조건으로 행위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율법을 성취할 경우 그는 의를 획득한다는 말을 터무니 없는 것으로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어리석다. 결점은 율법의 교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성에 있다는 점은 바울의 다른 곳에서의 증거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다(롬 8:3).

하지만 율법의 계명이 모든 면에 있어서 충족되기 전에는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은 이 계명이나 저 계명 한 가지를 지키는 사람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로써 전체적인(full) 순종이 우리에게서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부분적인 의니 뭐니 하며 떠드는데, 하나님께서는 단 번에 모든 계명을 포함시켜 말씀하고 있는 만큼, 어리석고 하찮은 소리이다. 이 모든 계명을 철두철미 성취했노라고 큰소리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무도 지금까지 율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약속이 무효하게 되는 것은 우리 편에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註 2; Origen, Tostat, Oleaster Vatablus는 이것을 이 세상에서의 현세적인 삶과 번영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 귀절의 의미를 율법의 범죄자들은 죽기로 되어 있듯이 그것을 지키는 자들은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Thom Aquin i. 2- q. 100 ’ a. 12: 그러나 나는, Per quas oeterna vita hominibus datur,라고 말하는 Hesychius의 판단을 따르겠다.” - Willet Hexapla, m loco. 이 문제에 있어서는 신구교 주석자들 간에 모두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Bush와 Holden은 이것을 현세의 삶에 적용한다. Bonar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로 인하여 살다” 의 의미를 “그것으로 얻는 영생" 으로 보면 이 귀절의 의도는 하나님의 율법과 여기에 따르는 모든 내용은 너무도 뛰어난 것이라서, 이것을 사람이 항상 완전하게 지킬 경우에는, 그것을 지키는 자체가 본인에게 영생이 될 것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에 롬 10:5와 갈 3:12를 인용한 것은 이것이 유일한 의미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칼빈의 견해는 Poole‘s Synopsis에 나오듯이, 우리 주님이 마 19:17 의 대 답으로 확인되는 것같다."
 

   
 황준호 씨의 블로그 캡쳐

 

레위기 18:5에 대한 해석은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의 이해를 파악하여 비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황준호 씨가 “칼빈은 율법이 순종하면 영생을 약속한다고 봄”으로 칼빈의 본문의 제시한 것은 칼빈의 본말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황준호 씨는 자기 블로그에서 레 18:5에 대한 칼빈 주석을 근거로, “칼빈은 율법이 순종하면 영생을 약속한다고 봄”이라고 제목을 잡았는데, 율법을 순종하여 영생을 얻은 것이 칼빈의 사상으로 독서한 것이다. “칼빈은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준다는 율법의 약속이 행위구원으로 이끈다는 두려움은 근거 없는 것으로 봅니다”라고 제시했다. 황준호 씨는 율법준수와 행위구원의 연관성을 인정하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제시하는 문장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율법준수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의 본 글을 그렇게 보기는 매우 어렵다. 위 본문의 글은 “율법을 지켜 영생에 이르라는 말이나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율법을 지킬 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칼빈은 모세오경 주석을 성경 목록 순서대로 주석하지 않았다. 창세기(1554년) 이후 출애굽기부터는 십계명에 맞추어서 재배열해서 제시했다(1563년). 레위기 18:15절은 18:16절보다 훨씬 뒤 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레 18:15은 “약속과 경고에 담겨있는 율법의 제재”의 부분에 있다. 칼빈의 레 18:15의 글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매우 완만하고 포괄적이지만 핵심(율법을 지킬 자가 없음)을 제시하는 글이라 생각한다.

첫째, 칼빈은 율법의 기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반드시 영생의 소망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구약 시대에는 매우 타당하지만, 십자가 구속 이후에 율법 기능은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역(逆)이 더 정확한 문장이 될 것이다. “영생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율법을 사랑한다.”

둘째, 칼빈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면 의롭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당위성을 제시했다. 어떤 사람이 율법을 성취했다면 그 사람이 의롭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칼빈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율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음을 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본말은 오히려 율법을 지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사도 바울도 마지막까지 육체의 가시를 빼달라고 간구했다(고후 12:7). 칼빈의 의도는 만약 인간이 스스로 율법을 모두 지켜버린다면 하나님과 약속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결코 율법을 지킬 수 없을 피력했다.

또 한 번의 상상을 하면, 원죄를 사함받고,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율법을 다 지켜 의를 획득한다면, 그 공로는 누구에게 있겠는가? 감리교나 오순절 계통에서 Method(Methodist)나 성령으로 완전을 이루는 것(완전성화)을 의문하고, 챨스 피니의 새로운 수단들(new measures)로 이룰 수 있다는 완전주의(perfectionism)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공로로 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가? 성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정죄는 당연하고, 완전 성화에 이룬 후에도 탈락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칼빈은 율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의를 찾도록 인도했다. 이것은 황 씨가 제시하면서도 율법 준수를 다시 반복했다. 칼빈이 “율법을 구원얻을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바울 시대와 계시종결시대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에 율법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바라보도록 하는 몽학선생이었다. 그러나 율법이 성취된 뒤에 율법은 조건이나 형식이 아닌 “영적 당위성”이 되었다.

그러나 칼빈은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강조했다. 칼빈은 은혜에 착념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율법의 조건을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면 구원 얻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율법으로 구원 얻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누구도 율법을 지켜 성취할 수 없다. 즉 구원은 율법을 준수한 사람에게 있을 수 없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다. 구원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조건없이 죄를 속하는 십자가의 피이다. 십자가 피의 구속의 은혜는 믿는 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이 복음의 비밀은 흉내 낼 수 없는 것 같다. 복음의 비밀은 너무나 깊이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너무나 쉽게 드러난 십자가의 피의 은혜이다(고전 1:17). “겸손하고 온유한 십자가 피의 구속의 은혜”를 고백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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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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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4-30 12:11:31

    오늘 든 생각입니다만, 인간의 타락의 원인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부재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세아 6:6-7
    For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and acknowledgment of God rather than burnt offerings. Like Adam, they have broken the covenant-- they were unfaithful to me there.

    그 믿음을 생성하시는 성령, 믿음으로 의롭게 됨, 성령을 통해 하나이지 영원한 언약이신 그리스도와 binding, 사도들과 주님께서 강조하신 믿음과의 연결을 생각해볼 때 아담에게 없었던 것은 결국 '믿음'이었다는 것은 아닐까요. 그 불신앙이 패역의 원인이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은 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가정 안에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법을 못 지켜서 영생을 못 받았으니 그리스도께서 지키셨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유아수준의 이론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4-29 14:49:08

      타락 전 아담도 오만한 자로 본 칼빈이 아담이 겉으로만 법을 지켰다면 영생을 얻었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능동/수동적 순종이론을 지지하는 분들은 인간이 타락해서 법을 못 지킴으로 그리스도께서 지켰다는 주장인데, 칼빈의 아담에 대한 해석에 의하면 타락 전에도 못지킬 종자였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김리훈 2019-04-29 12:25:33

        아주 좋은 글 입니다.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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