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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우 목사, 율법의 기능과 복음의 기능 균형있게 가르쳐야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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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9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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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우 목사는 <마르투스> 출판사의 공동대표이다


조엘 비키의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의 서문3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서문3을 쓴 사람은 이 책을 번역하고 보급한 <마르투스> 출판사의 공동대표인 정성우 목사이다. 먼저 정성우 목사의 글에서 지금까지 접했던 준비론 관련 글들 가운데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필자는 무작정 반대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이므로 개인의 감정이 개입될 수도 있고, 미숙한 신학적 오판이 개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날선 표현은 저널리스트의 호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유순한 제목과 평이한 제목에는 독자들의 반응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평균 이상의 상식 수준과 이성적인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많음 허물이 있음에도 함께 예수 믿는 형제로서 인정해 주는 분들이 많으니 늘 고맙게 생각한다. 정성우 목사의 글을 보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정성우 목사의 글을 함께 살펴보자.
 

1. 율법과 복음을 균형있게 선포하라!

“오늘날 교회 중에는 복음의 열매를 올바로 맺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인들에게 윤리학을 가르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 하지만 나는 도덕적인 설교를 하기보다 율법의 기능과 복음의 기능을 군형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성령께서는 택자들의 내면을 변화시켜 주신다 ... 악한 인간들이 회심을 통하여 선한 마음과 의지로 변화되려면 율법과 복음의 선포가 있어야 한다.” (정성우 목사)

지금까지 필자가 접했던 준비론 주장자들은 하나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전, 먼저 무서운 율법을 전하여 사람을 쓰러뜨리고 절망하게 만들고 나서 그리스도의 용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했다. 성경의 사도들의 사역이나, 기존의 개혁신학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용이므로 매우 난감하였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함께 균형있게 선포해야 한다는 정성우 목사의 말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사도 바울의 복음선포의 핵심도 바로 그것이었다. 바울은 율법에 의해 저주와 영원한 사망에 떨어진 인간의 비참한 운명을 선언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언제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저주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복음을 함께 선포했다. 율법 없는 복음은 존재하지 않고, 복음 없는 율법도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율법과 복음이 십자가를 중심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전파되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자기 백성으로 예정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신앙을 일으키시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개혁신학의 내용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정성우 목사의 말 속에서 조금 이해되지 않거나, 보충하는 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을 이야기 해 보자.
 

2. 청교도 준비론이 천주교 사상, 알미니안 사상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어떤 신학자들은 준비론에 대하여 가톨릭에서나 하는, 또는 알미니안들이나 내세우는 교리로 취급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정성우 목사)

사실 필자가 보기에 청교도 준비론은 알미니안 신학보다는 천주교의 구원론의 초기 도움의 은총에 관한 부분과 매우 흡사하다. 알미니안 신학은 성령의 역사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현되어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른다고 한다. 웨슬리가 가르친 선행은총 사상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역사하여 구원의 길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구원의 직전 단계의 ‘도움의 은총’ 사상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도우셔서 죄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만든다고 한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핵심은 성령이 율법을 정죄의 기능을 이용하여 죄인의 영혼을 깨우고, 죄인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게 한다고 한다.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청교도 준비론과 천주교의 도움의 은총 사상이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3. 청교도 준비론에 관한 학자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개혁주의 진영 안에서도 신학자들의 견해의 차이가 있어 왔으며, 우리가 스스로 깊은 연구를 통하여 확실하게 알기까지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성우 목사)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정성우 목사의 말과 이동훈 목사의 말에서, 그리고 다른 준비론 서적「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와 이 책을 번역하고 추천한 서문강 목사의 말에서도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17, 18세기에 형성된 초기 인물들의 준비론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특히 최근의 조엘 비키의 준비론의 핵심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할 것 같다.
 

4. 성령이 준비시키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준비론은 조건적인 사랑을 만들어 내거나, 구원을 조건적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라는 부분이다. 준비론이 구원에 조건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가 불에 잘 탈 수 있도록 성령께서 그들을 준비해 주시는 것 뿐이다.” (정성우 목사)

“준비론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는 영혼으로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만약 준비론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그리스도보다 준비론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변화의 여부에 전전긍긍하며 자신만을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다.” (정성우 목사)

“다시 말하지만, 준비론과 구원을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그들을 준비시켜 나아가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 구원얻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성우 목사)

“청교도들은 중생 전에 성령께서 자연인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준비시키는 원리로 준비론을 말한다.” (정성우 목사)

정성우 목사가 말하는 이 내용은 필자가 준비론은 접할 때, 준비론이 개혁신학의 핵심 교리에서 벗어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게 만든 부분이다. 필자는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를 통하여 준비론을 처음 접했다. 저자 존 에인젤 제임스는 성령의 율법 사역으로 깨어난 영혼이라도 반드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영혼이 각성되어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을지라도 그 사람 자신이 바르게 구원의 길을 찾아서 나아가면 구원에 이르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흑암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정성우 목사가 하는 말도 비슷한 내용이다. 성령이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준비하도록 깨워주기는 해도,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왜 불신자의 영혼을 각성시키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개혁신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하나님의 조건없는 선택’, ‘효과적인 부르심’(불가항력적 은혜)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 성령께서 단지 불신자의 영혼을 깨워주시고, 이후의 구원의 여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직 그 사람 자신에게 맡기신다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5. 준비론이 죄를 미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게 만든다

“준비론은 성도들이 죄를 미워하며 죄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가르치며 인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율법의 원리를 통해 죄의 각성으로 인도하여 자신의 비참함을 볼 수 있게 하고, 중생의 역사 안에서 복음적 겸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죄의 수치를 더욱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죄를 미워하거나,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정성우 목사)

청교도 준비론을 가르치는 것이 신자들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게 한다고 하는 정성우 목사의 말이 모두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이 죄를 지적하고 이기게 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조금 빗나가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성령받고, 성령의 충만을 누리는 성도는 준비론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죄를 발견하고, 미워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싸우기 시작한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한다. 오히려 준비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령의 성품을 가르치는 것이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게하는데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6. 중생 후 성화의 과정에서 준비론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준비론은 중생 전이나 중생 후 성화 안에서 율법의 기능으로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해설에서는 율법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옛 사람 혹은 육체를 ’죽이는 것‘은 우리 본성의 부패성을 제쳐두는 것과 억제하는 것에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1)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지식, 2) 죄에 대한 비애, 또한 하나님을 거스른 일에 대한 후회, 3) 죄에 대한 미움과 또한 죄를 피하고자 하는 진정한 바람.’” (정성우 목사)

“오늘날 교회 내의 성도들은 준비론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선인지 악인지도 모르기에 죄에 대한 민감함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와 진노에 민감함이 없고 감각이 없는 자들이 되었다. 나는 모든 교회가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민감하길 바란다 ... 죄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훈련시킨다면 그 사람들은 잘못하여 자기의 죄에 빠져 헤멜지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먼저 초점을 두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인간의 죄를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정성우 목사)

정성우 목사가 한 위의 제시는 바르다고 생각한다. 신약 성경은 중생한 신자들에게 구약의 무서운 율법을 가르쳐서 자신의 부패한 본성을 용납하지 말고 싸우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를 적용해 주시는 성령의 사역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죄에 무력했던 옛 사람과 전적으로 다른 재창조된 새 피조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기 때문이다.

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백성들에게 선포하여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시키는 성령의 권세,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참된 양식을 삼고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추구하라고 신약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로 율법의 수준 이상의 거룩한 삶이 이루어진다고 신약 성경은 가르친다.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죄에 대해 민감해지는 별도의 훈련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성령에 인도하심 받으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법을 따라가는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상으로 정성우 목사가 말하는 청교도 준비론에 대한 소개의 글을 통해 과연 청교도 준비론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이 청교도 준비론에 대한 모든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성우 목사의 글에서 약간의 위로와 희망을 보았다. 이후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또한 청교도 준비론을 펼치고 있는 분들의 주장이나 설명을 좀 더 면밀히 살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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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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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4-29 14:30:18

    제 생각에는 회심준비론이 성령께서 택자들이 때가 되어 회심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킨다는 이론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율법과 연관지어서 인간이 조금이라도 (1%라도) 자발적으로 회심하도록 준비할 수 있다는 내용이면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일차적 사역은 말씀에 대한 사랑을 일으키시는 것과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요14:26).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내가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해 또한 말씀과 연관되어지고 그 말씀이 내 삶에 살아서 움직이는 때에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인위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자들의 일차적 특징은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리고 성령의 열매들이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갈 5:22-23). 가시적 교회가 아무리 율법을 강조한 들 택자들 외에는 진정한 구원을 알 수 없습니다.

    율법을 강조해야 한다는 둥 방법론을 연구하지 말고, 가장 순수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 말씀읽기를 장려해야 합니다. 성경도 읽지 않으면서 십계명만 열심히 문자적으로 지키면 성도라 할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이 왕궁에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광야에서 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귀 있는 자들(택자들)’때문이지요. 율법을 강조한 것은 바리새인들이고, 세례 요한은 택자들을 향해 회개를 외쳤습니다. 율법을 헛되이 지킨 자들은 실은 바리새인들이었지요. 주님께서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주님을 증오하였습니다. 주님께선 성경과 성령을 통해 이 '귀 있는 자들'께 말씀하십니다. 회심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은 성도들이 할 짓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주님께서 교회에 하시는 메세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될 수 있는 방법입니까?

    지금 세상이 얼마나 성도들에게 힘든가 하면 괜찮다는 신학자들도 기존의 잘못된 이론들에 적절히 맞는 말을 넣어서 분별을 쉽지 않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또 이론이 변화무쌍하므로 누구도 그 이론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별과 정죄가 어렵게 됩니다.

    “나는 모든 교회가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민감하길 바란다 ...”

    민감하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십니다. 그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성경읽기를 우선 장려하십시오. 교인들 모두 성경을 매일 읽는 곳이 얼마나 될런지요.신고 | 수정 | 삭제

    • 김리훈 2019-04-29 14:04:54

      정성우 목사의 율법의 기능과 복음의 기능을 균형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죄를 죄로 보지않고 죄에 대해 무감각 하여진 이 시대,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이 시대에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은 어느정도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심준비론이 현대 시대에 있어서 칭의되기 이전의 가르침 이라기 보다는 구원받은 후 구원 받은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단계로 본다면 그 의미는 더욱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았다고 확신하는 자들이 믿음에서 탈선하는 자들이 이 시대에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 받았다면 내 영혼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내 양심의 죄악을 깨닫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지 내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구속의 은혜를 당신의 백성에게 적용시키는 분 이십니다(칼빈의 제한속죄). 제가 이러한 점을 저의 글,’청교도와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과 현대 교회의 신앙’에서 밝힌바가 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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