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훈 장로(치과의사, 라스베가스)

요즈음 교역자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수위가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음행, 간음, 강간, 성추행, 성폭력, 살인, 자살, 학력위조, 논문표절, 교회의 사유화, 교회세습, 배임, 횡령, 황금만능주의, 불법, 탈세 등 우리가 전에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가면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라고 하는 말씀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계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요? 이것이 과연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조들이 했던 일이었을까요? 과연 이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 입니까?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밀레데 항구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한 고별연설에서,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자들을 돕고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3-35)라고 말했습니다.

요즈음 얼마나 많은 교역자들이 물질에서 깨끗하고,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고 있으며, 얼마나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여 약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을 돕고, 베풀고 주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주님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물론 이 시대에 훌륭한 교역자들도 많이 있음을 필자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는 것은 이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섬기고 있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과 사도들, 칼빈을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 영미의 청교도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도덕적 윤리적인 면에서, 물질적인 면에서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600년대, William Perkins을 비롯한 청교도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여 신자들의 참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회심준비론을 설정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때도 위선자들이 있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 타락한 교역자들은 생각(확신)하기를, ‘자기는 이미 구원 받았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구원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망상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새벽 예배에 나와 이 현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여부를 판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의 죄만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의 중보하심으로만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셔서 천국에 보내십니다. 택하신 백성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진리 안에서 행하며, 선행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늘 생각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요즘 능동순종 사상, 청교도의 회심론 등 율법 순종을 강조하는 사상이 다시 대두되는 것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현시대에 대한 반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의식 제사 절기법, 민법 형법이 아니라 도덕법 윤리법이며, 그 중심사상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 시대에 칼빈의 제한속죄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리훈 장로는 Nevada주의 Las Vegas에 거주하며, 갈보리장로교회(협동장로)에 출석한다.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라스베가스의 '김리훈 보철치과'의 원장이다. 남가주대학(USC), 캘리포니아대학(UCLA, 치의학박사), 미시간대학(U of M, 보철전문의 석사)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또한 미주 총신(M.Div)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