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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링거의 제 2차 스위스 신앙고백서 ( 제 2 헬베틱 신앙고백서)
고경태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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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5  12: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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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vetic'(헬베틱)은 스위스(Switzerland)의 라틴 이름이다. 'Helvetian'은  '스위스 사람'이란 뜻으로, 로마 교회(사보이 공작령)에서 독립한 스위스 개신교를 의미한다.

프랑스 개신교는 '위그노'이고, 신성로마제국의 개신교는 '루터파' 혹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이고, 영국의 개신교는 '청교도'(Puritan)이었다. 스위스에서 츠빙글리파(불링거)와 칼빈이 교회개혁 운동에 주도적이었는데, 두 사람이 연합함으로 스위스 칸톤들의 교회가 '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로 한 교회를 이루었다.

'제 1 헬베틱 신앙고백서'는 '제 2 바젤 신앙고백서'인데, 1536년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가 적성했고, 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가 서명했다. 칼빈은 제 1 헬베틱 신앙고백을 작성하기 위해서 5회 취리히의 불링거를 방문하며 교류했다.

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는 불링거가 30조항으로 확장해서 신학 문장을 작성했고, 칼빈과 끊임없는 교류를 가졌다. 천주교 측의 1545년 트렌트 회의(Council of Trent, 1545-1563)가 개최되고, 정경확정(1546년), 원죄(1546년), 칭의교령(1547년) 등이 확정되면서, 이에 대응적인 공적 문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1549년 취리히 일치신조(Zurich Consensus)는 불링거와 칼빈의 신학적 일치를 선언했다. 헬베틱 문서에서 칼빈의 신학을 자문 했던 피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 흔적도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버미글리는 1542년 스타라스부르크의 부처의 지지로 망명했다. 크랜머(Thomas Cranmer)의 초청으로 잉글랜드에서 6년을 활동했고(1547-1553), 스타라스부르크에서 3년(-1556), 취리히에서 마지막 생애를(-1562) 보냈다.

1562년 출판 당시 제 2 헬베틱 신앙고백서의 제목은 '참된 기독교를 위한 바른 신앙과 보편타당한 교리'(Confessio et expositio simplex orthodoxae fidei et dogmatum Catholicorum syncerae religionis Christianae)였는데, 이후에 '제 2 헬베틱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osterior)'로 불렀다.

2 헬베틱 신앙고백서도 불링거가 작성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가 아우구스부르크 협약(The Peace of Augsburg, 1555년)을 근거해서 구교도 루터파도 아닌 팔츠에 개혁신학(칼빈파)을 제거하려고 할 때,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 III, 1515-1576)가 불링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불링거의 '참된 기독교를 위한 바른 신앙과 보편타당한 교리'를 가지고 지지를 삼았다.

그리고 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을 작성했다. 올레비아누스(Kaspar Olevianus, 1536-1587)와 우르시누스(Zacharius Ursinus, 1534-1583)가 '참된 기독교를 위한 바른 신앙과 보편타당한 교리'를 근거해서 요리문답(Catechism)을 작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서는 1566년 3월 12일에 스위스 칸톤들이 공적 신조로 인준했다. 그리고 제2헬베틱 신앙고백서는 스코틀랜드(1566년), 헝가리(1567년), 프랑스(1571년), 폴란드(1578년)에서 공식문서로 채용했다. 또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에서도 호의적으로 수용했는데, 그것은 개혁신학에 가장 권위있는 문장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제 2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와 기독론에서 고대 교리를 제시하고 있고, 개혁 신학에 의해서 강조된 믿음 내용을 담고 있다. 개혁신학은 성경의 절대권위, 형상숭배에 대한 금지, 율법, 복음 그리고 믿음이다. 또한 개혁신학의 섭리, 예정, 교회, 사역, 성례 등을 확립하여 고대와 당대 이단 사상들을 배격했다.

제 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는 불링거가 작성했지만, 칼빈파 신앙고백서의 원형이고 전형이다. 칼빈파의 겸손과 교회연합을 위한 자기부정을 볼 수 있다. 헬베텍신앙고백서의 탁월성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견주는 수준이다. 불링거가 만들고 칼빈이 협력하여 만든 헬베틱 신앙고백서와 잉글랜드 개신교가 만들고 스코틀랜드 언약도가 협력하여 만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묘한 반복이 있다.

칼빈파인 스코틀랜드 언약도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채택했고(1647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총회), 그 후예들은 비록 내용을 바꿨지만 이름은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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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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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n 2019-04-26 18:14:22

    저에게 하신 답은 아니지만 '믿음'님이 링크하신 글을 읽어봤습니다. 우선 피터 릴벡은 책 마지막 부분에서 칼빈이 행위언약을 주장했다고 추측했는데, 기독교강요에 비슷한 내용은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아담이 그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요. 책을 길게 쓰고 그런 결론에 도달하다니 칼빈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칼빈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에서 오히려, 아브라함의 자손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교회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선택과 그 구별된 택자에 대한 효과적인 부르심을 강조하고 있다.’ 라고 황교수님이 쓰셨는데요.

    칼빈의 언약사상을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칼빈이 말했듯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로 집약되기 때문에 엡 1:4-5와 연결지을 수밖에 없겠지요. 이 구절에 창세 전 선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과 하신 모든 약속은 결과를 정해놓고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강요 3-23-7,8 참조). 그러므로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넷에 ‘언약의 역사적 발전사 고찰’이라는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개념에 대해 2019-04-25 16:11:31

      볼링거와 베자는 행위언약을 어떻게 취급하였고 정리했나요?

      WCF 7장의 행위언약은 어떻게 도입되었습니까?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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