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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교수의 능동순종 신학의 출처는 베자와 회중파 청교도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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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6  23: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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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교수의 저서 『개혁주의 전가교리』(지평서원, 2016)를 지난 번에 이어서 읽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게 어두운 하늘에서 서광이 비치는 것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칼빈의 제자였으나 스승의 신학에서 이탈했던 베자가 루터파 신학자의 책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배워서 가르쳤다는 내용을 발견하였다.

독자들은 회심준비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의의 전가 교리 등 문제 있는 많은 신학이 회중파 청교도라는 종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필자가 외롭게 외치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필자의 이전의 글 “청교도 신학 무조건 칭송하고 따르면 크게 넘어질 수 있다”(바른믿음, 20194.12)을 보기 바란다. 당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존 칼빈의 종교개혁 정통신학과 상당히 다른 회중파 청교도의 특이한 사상은 다음과 같다:

1)특이하고 위험스럽게 율법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2)영혼이 깨어나서 스스로 구원의 길을 모색하게 만드는 회심준비주의

3)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묵상 신비주의

4)원죄를 반역으로 해석하지 않고 율법준수 실패로 해석

5)메시야가 율법준수하여 의를 획득하고 전가한다는 교리

6)오순절-신사도 유형의 성령체험

7)성령의 직접적 성화 신비주의

8)개혁신학의 법정적 칭의와 다른 체험적 칭의” (정이철 목사)

필자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의의 전가 교리가 회중파 청교도에서 발전되었다고 진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청교도 회심준비론

회중교-청교도의 초기의 지도자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과 그의 제자 에임스 등이 복음보다 먼저 율법을 강조하고, 율법으로 죄인에게 죄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떨게 한 후 복음을 전하여 성령의 회심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청교도의 회심준비론’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 교리 외에도 다른 여러 곳에서 율법을 비성경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회중교-청교도의 특징이고, 그들의 율법주의는 칼빈, 루터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2. 사보이 선언(1658년)

회중파 청교도들이 장로파 청교도들과는 신앙의 길을 함께 할 수 없다 판단하고, 서명하였던 웨민고백서(WCF, 1646년)와 결별한 후,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채택하였다. 그 속에 “율법 전체를 향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그의 죽음을 통한 수동 순종을 그들의 모든 행위와 유일한 의로서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라고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사보이선언 11장).
 

3. 베자와 회중파 청교도 초기 지도자 퍼킨슨, 에임스

회중교-청교도 초기 지도자 퍼킨슨과 에임스가 베자에게서 신학을 배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장로교-청교도는 칼빈에게서, 회중교-청교도는 칼빈의 제자 베자에게서 영향 받았으니, 표면적으로 둘 다 종교개혁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칼빈주의 신학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칼빈과 그의 제자 베자 사이에 신학의 불일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지금부터 자세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이철 목사, 앞의 기사)

그러데 신호섭 교수의 책에서 베자에 대한 특별한 내용을 보았다.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를 정통 개혁신학이라고 주장하는 신호섭 교수는 슈타인메츠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칼빈은 비록 죄 용서를 더욱 강조했지만, 칭의를 그리스도로 인한 죄의 용서와 전가로 간주했다. 그러나 베자는 루터파 신학자인 플라시우스의 저작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는 개념을 가져왔다.” (신호섭,「개혁주의 전가교리」, 73)

정리해 보자. 칼빈, 루터의 신학과 다른 율법을 강조하는 구원론을 형성한 종파는 회중교-청교도 파이다. 그들의 조상 퍼킨슨과 에임스가 칼빈에게서 배우지 않고 베자에게서 배웠다. 베자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이전에는 몰랐으나, 신호섭 교수의 책에게 드디어 발견했다. 베자는 루터파 신학자 플라시우스의 책을 통해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개념을 배웠다. 회중교-청교도 파들에게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교리를 가르친 초기 인물이 베자였던 것이다. 

신호섭 교수의 책을 보니, 베자가 가르친 능동적 순종의 의 사상이 칼빈의 신학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신호섭 교수는 크리포드, 윌리엄 커닝햄 등이 베자가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이탈했다고 지적했음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평가가 바르지 못했다고 정리하였다. 신 교수는 능동적 순종 교리를 가장 먼저 마음에 품은 사람이 칼빈이라고 주장하였다. 신호섭 교수의 말을 직접 읽어보자.

“베자는 칼빈과 마찬가지로 칭의가 죄 용서 이상의 어떤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자에 따르면, 단순한 죄 용서로서는 불충분하다. 죄인에게는 죄 용서를 뛰어넘는 적극적인 의가 필요하다.” (신호섭, 74)

여기의 신호섭 교수의 말은 맞다. 칼빈은 그냥 죄 용서 만으로 칭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칭의를 얻는다고 했다. 그러나 신호섭 교수의 다음의 말은 칼빈의 신학을 왜곡하여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를 개혁신학으로 둔갑시키는 바르지 못한 학문의 방법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베자와 칼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칼빈과 베자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에 대해 합의하여 사용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베자는 이런 구별을 사용한 반면, 칼빈은 이런 구별을 사용하지 않았다.” (신호섭, 74)

“그러나 이것은 베자가 종교개혁의 신학적 전통을 떠났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도, 칼빈이 칭의를 단순히 죄 용서로 제한했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칼빈으로부터 베자의 견해를 추론해 낼 수 있다.” (신호섭, 74)

신호섭 교수는 칼빈이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이미 가르치고 있었는데, 단지 능동적 순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다. 신호섭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칼빈에게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권리(의)를 얻고, 전가하였다는 능동순종의 의 사상은 전혀 없었다고 필자는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 칼빈에게 칭의의 근거이고 핵심은 ‘죄 사함’이었다.
 

   


“그러므로 "의롭게 한다."는 뜻은 고소를 당한 사람에 대해서, 마치 그의 무죄가 확정된 것같이, 그 죄책이 없다고 무죄 석방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중재로 의롭다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이 사면은 우리 자신의 무죄가 확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우리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이 죄를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고(시 32:1-2) 그 선언한 그 정의에 찬성한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단순히 죄액의 반대 개념인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강요, 3.11.4)

칼빈은 단지 ‘죄 사함’만이 칭의 모든 요건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까지 포함되어야 칭의의 완성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을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았다고 말할 때에(갈 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서 의를 전가하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은가? 또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불경건한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다고 말할 때(롬 3:26). 그것은 불경건하여 당연히 정죄를 받을 사람들이 믿음의 덕택으로 그 정죄에서 풀려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독교강요, 3.11.3)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한 것과 똑같은 뜻이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4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칭의를 "의의 전가"라고 부르며 칭의를 죄의 용서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기독교강요, 3.11.4)

칼빈의 칭의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죄 사함’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이다. 만일 칼빈이 말한 ‘의의 전가’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전라라고 우기고 싶은 사람은 칼빈의 글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내용을 한 줄이라도 찾아오기 바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율법의 완성’(마침, 롬 10:4)을 그리스도가 율법대로 죽으시어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1.6.2.)

신호섭 교수가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의 출처를 칼빈의 신학에서 이탈했던 베자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칼반에게까지 확대하려고 한 것은 자신의 그릇된 주장을 위해 칼빈을 악용하려는 것이다. 참고로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성도의 의의 핵심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죄 사함으로 본다.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하나님은 사람이 주 예수를 자기의 유일한 구주로 믿는다고 보백하면 그 믿음을 받으시고 그 믿음을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신다 (롬 3:22; 10:10). 피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하시로 정하셨기 때문에 (롬 3:24-26); 4:23-25; 5:6-9),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셨다 (롬 5:1; 3:22024). 왜냐하면 주 예수를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갚은 죗값을 내가 갚은 것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혹시 서철원 박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의의 전가를 말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억지 부리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서 박사님도 칼빈과 동일하게 칭의를 ‘죄 사함’, ‘의의 전가’로 해석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의는 율법을 지켜서 얻은 의가 아니고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성취하신 의라고 설명한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 (롬 5:17-19)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 (롬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165)

신호섭 교수는 칼빈주의 진영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처음 가르친 사람을 칼빈의 신학에서 이탈했던 베자에게 국한시켰어야 옳았다. 무리하게 칼빈에게까지 확대하여 오히려 자신의 신학적 논리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신호섭 교수는 자신의 주장의 거의 전부가 칼빈의 정통 개혁신학과는 계보가 다른 회중교-청교도 파가 발전시킨 위험한 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속히 깨달아야 한다. 신호섭 교수의 책을 보니, 초기 능동적 순종 교리를 발전시키는데 관여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회중교-청교도들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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